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50)
650화 바바리안 비즈니스 (3)
라프도니아의 재상, 테르세리온 후작이 나를 보자마자 한숨을 푹 내쉰다.
면전에 대고 이러는 건 귀족계에서는 예의가 아닌 행동이지만, 상대가 나라서 그런가?
이제 이 할아버지도 그냥 거리낌이 없네.
“말하지 않을 건가?”
“그 전에 먼저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어서 해보게.”
“그동안 왜 나를 피한 거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구차한 대사긴 하지만, 만나면 꼭 직접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피하다니? 무슨 뜻인가?”
“만나고 싶다고 약속을 그렇게 잡으려 했는데, 후작 네가 내 연락을 다 무시하지 않았나.”
나를 의도적으로 피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행동.
하면, 후작은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
나랑 밀당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실 회의 자리도 내어주며, 자기 딸내미마저 시집을 보내려 관심을 보였으면서.
후작의 입을 통해 들은 진실은 몹시 간단했다.
“바빴네.”
“답장을 보내기도 어려울 만큼?”
“애초에 연락이 온 줄도 몰랐네. 최근 며칠 동안은 아예 왕궁 내에서 지냈으니까.”
그리 말하는 후작을 다시 살펴보니 눈 밑에 감출 수 없는 짙은 피로가 깔려 있었다.
한데 그래서일까?
후작의 목소리도 평소보다 더 예민하고 날이 서 있다.
“애초에 집사장도 자네에게 그렇게 설명을 했다고 들었는데?”
“어…….”
설명을 듣기는 했는데, 정말로 그게 변명이 아니라 진짜일 줄은 몰랐지.
왠지 무안해져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후작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나를 보았다.
“자네도 참 이상하군. 만나주지 않았다고 왜 피하냐며 찾아오다니. 너무 오만한 거 아닌가?”
“……응?”
“자네가 만나고 싶어한다고 모든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시간을 내어줄 거란 생각은 말게.”
“알겠다. 이번 일은 내가 사과하겠다.”
“사과가 아니라 약속을 하게. 다시는 나를 이런 식으로 찾아오지 말게. 어느 정도의 무례는 문화의 차이로 용인할 수 있으나, 이는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니.”
“……알겠다고 하지 않나.”
아쉬운 입장으로 찾아온 탓일까?
대놓고 정색하며 저렇게 말하니 무서워서 뭔 말을 못하겠다.
‘…요즘 왜 그렇게 바빴는지도 궁금한데 말이지.’
황도 카르논에서 출퇴근하는 후작이 무슨 일로 며칠 동안 왕궁에서 나오지도 못할 만큼 바빴을까.
못내 그 이유가 궁금했으나, 끝내 나는 입을 열어 묻지는 못했다.
애초에 저쪽에서 그럴 틈을 주지 않기도 했고.
“자, 그럼 용건을 말해보게. 금쪽 같은 휴식 시간을 더 낭비할 수 없으니.”
짧은 대화 속에서 후작이 몇 번이나 시간이 없고 피곤함을 어필한 만큼, 나도 군말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7구역 재건 공사를 우리 얀델 가문으로 선정해달라 부탁하려 왔다.”
한데 이렇게 뻔뻔한 청탁은 난생처음이어서일까.
아니면, 나라는 사람이 청탁 같은 걸 해올 줄은 예상하지 못해서일까.
“……허?”
어이 없다는 감정이 실린 탄성을 뱉어낸 후작이 이내 나를 보며 물었다.
“굳이 이렇게 할 필요까지 있나? 무슨 수를 쓴 건진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멜베스에서 자네를 대표로 선정했다고 들었네만.”
뭐, 그건 그렇지.
멜베스의 지지를 받는 만큼 정상적으로 수주 경쟁에 참여해도 크게 밀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원래 사업이란 게 그렇다.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데, 그 방법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나.”
“그 사고 방식 자체는 동의하네마는…….”
이내 후작이 눈살을 좁힌다.
“맡긴 물건을 찾으러 온 듯하는 자네의 태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군.”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일면이었다.
앞에서 머리를 부숴버리겠다 농담을 했을 때도 이렇게 짜증을 내는 듯한 말투는 아니었건만.
‘하필 너무 바쁠 때를 골라 찾아왔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들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뭐 어쩌랴.
애초에 마냥 기다렸으면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언제 성사됐을지 모르는데.
“말해보게. 내가 자네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일관성 있게 그냥 뻔뻔한 태도로 응수했다.
“독신 선물이라고 생각해라.”
“독신 선물……?”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는 후작.
거, 이래서 어르신들이란.
“왜 나는 앞으로 결혼도 못하는데, 선물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
실제로 내가 이 세상에 끌려오기 전까지 우리 사회도 그런 케이스가 있었다.
그야 비혼 주의자들은 억울하잖아?
축의금을 낼 대로 내고 돌려받진 못하는데.
“…….”
그런 내 논리에 후작은 잠시 생각에 잠기듯 말을 멈추었다.
하기야 억지처럼 들리긴 해도 내 혼삿길을 막은 장본인으로서 그냥 흘려 들을 수만은 없었겠지.
“…자네 말도 일리가 있군.”
그래도 다행인 건, 후작도 기브 앤 테이크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란 거였다.
“하나 국무에 관련된 사안을 내 멋대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 이걸 어째야 한담…….”
후작이 곤란하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사실 공감은 전혀 되지 않는다.
이인자의 자리에서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걸 다하는 노괴가 바로 이 후작이었으니까.
앓는 듯한 말은 그냥 본론을 꺼내기 전 윤활제처럼 뿌리는 거라 생각하고 걸러 듣는 편이 옳다.
바로 이렇게.
“아, 그럼 이건 어떤가?”
역시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후작이 타협안을 제시했다.
“정당하게 경쟁할 수 있을 기회를 주겠네.”
“기회……?”
“실은 얀델가를 포함해 총 다섯 개의 가문이 유력 후보로 올라 검토 중에 있는 건 사실이네마는. 얀델 가문이 선택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네.”
뭐, 그건 예상한 바였다.
지금까지 얀델가에서 건축 관련으로는 어떠한 것도 보여준 적 없으니까.
필시 멜베스의 지원 사격이 없었다면 저 후보에 올라가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얌전히 기다리지 못하고 후작과 만나려 한 것도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기회를 준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일세. 판을 깔아줄 테니 자네가 스스로 자격을 증명해보게.”
대체 어떤 식으로 판을 깔아주겠다는 것일까.
쉬이 머릿속에 그려지지가 않아서 이후 후작의 설명을 들어보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정리해보자면……. 다섯 가문끼리 모여 건축 시합을 벌이라는 거군?”
“시합이라 하기는 그렇고, 각 가문들이 뭘 잘하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는 시연에 가까운 자리가 될 걸세.”
그게 그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어진 후작의 말은 제법 든든했다.
“내 체면이 망가지지 않게 어느 정도의 성과만 올리게. 그럼 이번 수주 건은 얀델 남작가에서 가져가게 될 터이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어쩌다 보니 흐지부지되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면 원래 멜베스에서도 드워프 가문 하나랑 이 비슷한 걸 하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좋다, 시일이 정해지면 알려줘라.”
…노가다 대결이 이렇게 성립될 줄이야.
***
후작과의 대화를 끝마친 후 성지로 돌아왔을 때, 그때까지도 우리 행정사무총장은 불을 켜두고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음, 아닌가?
“샤빈, 뭘 그리 열심히 읽고 있냐?”
“아… 그게… 서신이요. 알미너스 은행의 지점장이 저한테 이직할 생각은 없냐는데……. 이상하네요. 딱히 저랑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뭐지?
설마 알미너스 백작이 언질을 준 건가? 한번 만나서 스카우트 할 수 있으면 하려는 식으로?
‘이 할배가 진짜…….’
“그냥 무시해라, 틀림없이 사기꾼일 테니까.”
“……그러니까 갑자기 자존심이 확 상하는데요?”
“기분 탓이다, 기분 탓.”
“그래서 이 시간에는 무슨 일이에요?”
“내가 일이 있어야지만 오는 사람이냐?”
“네. 제가 뭐 시킬까 봐 평소에도 이쪽은 얼씬도 안 하시는 걸 제가 모를 줄 알고요?”
어…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왠지 무안해졌기에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재상과 대화를 나누고 오는 길이다.”
“…재상님이랑요?”
“왜 그렇게 보는 거냐?”
“그냥요. 이런 걸 보면 참 대단한 사람 같기는 한데…….”
찝찝하게 뒷말을 흐리는 샤빈이었지만, 어차피 오늘은 이런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니니까.
이후 나는 후작과 나눈 대화를 샤빈에게 공유한 뒤, 내일 직접 우리 전사들의 노가다 능력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선언했다.
“내일… 이요……?”
떨리는 샤빈의 목소리에서 왠지 살기가 느껴진 나는 서둘러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많이는 부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대신 평균을 볼 수 있게 잘 하는 녀석만 부르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불러내라.”
“음… 그렇다면 어렵진 않기는 한데요.”
“너무 부담 가질 필요도 없다. 당장은 전사들의 솜씨가 어떤지 알아보고, 뭘 더 준비해야 할지 분석을 해보려는 거니까.”
“알았어요. 그렇게 준비해둘게요.”
오케이, 그럼 이건 내일 직접 보면 될 거 같고…….
용무를 끝마친 나는 샤빈과 부족 내 업무 이야기나 좀 더 하다가 임시 숙소로 몰래 돌아가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오오오오오오!”
“일족 최강의 전사가 우리의 솜씨를 보러 왔다!!”
“내 실력을 보여줄 때다!”
“베헬—라아아아아아아아!”
어째선지 아침 댓바람부터 불려온 바바리안들은 열성적인 자세로 시험에 임해주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지금 내가 싸우는 실력을 보겠다는 것도 아닌데.
‘언제 이리들 건축에 진심이 된 거지?’
궁금해서 아이나르에게 넌지시 묻자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왔다.아니, 정확히는…….
“행정사무총장의 세뇌 덕분이다.”
부족장으로서 흘려 들을 수 없는 단어가 등장했다.
“…세뇌?”
“행정사무총장이 말하길, 적당한 보상과 끊임없는 칭찬이면 고블린의 관념도 고칠 수 있다고 하더군.”
뭔 소리인가 싶어 마저 얘기를 들어보니, 전사들의 인식 개변을 위해 샤빈이 여러 방면에서 노력을 한 거 같았다.
작업을 끝마친 전사들에게는 소정의 보상을 주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엄청나게 추켜세워주며 명예욕도 채워주는 등.
‘인정 욕구를 채워주다니…….’
바바리안이 미쳐 팔짝 뛰는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 해야 하나?
애초에 전사들이 그토록 무력에 열광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무력이 생활 자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단 것도 이유겠지만…….
본질은 인정 욕구가 충족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강한 사람을 인정해주기에, 우리 전사들은 매일같이 피와 땀을 흘린다.
“잘 모르겠지만 얼마 전엔 집 빨리 짓기 대화 같은 것도 했었다! 거기에서 우승을 하면 이성에게 인기가 많아진데서 나가봤는데 어렵더군!”
“…….”
“아쉽다! 나도 미궁에 들어가지 않고 건축일을 배웠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이나르마저 본말전도가 된 말을 할 정도이니, 부족 내에서 건축술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테고…….
‘이게 잘 된 건지 아닌 건지…….’
부족장으로서 좀 걱정이 되지만, 되도록 긍정적인 부분을 보기로 했다.
건축술이 더 발전하면 전사로 살지 않아도 먹고 살 길이 생긴다는 뜻 아닌가.
선택지가 늘어나는 건 언제든 좋은 현상이었다.
‘…그나저나 이러면 기대를 해봐도 좋겠는데?’
이내 나는 멀찍이 떨어진 채, 샤빈 에무어가 준비해온 시범 건축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전사들의 건축술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철근 세 개를 옮길 수 있다!!”
“아니, 나는 네 개도 가능하다!!”
운반 능력 상.
“베헬—라아아아아아!!”
작업 속도 상.
“뭐 하냐! 거기에 대충 박아 넣어라!”
디테일 하.
“…뭬, 뭴카의 두 번째 아들 키리타! 여, 여기 창문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떡하면 좋나!!”
고난이도 작업 기술 하.
“다들 힘내라! 오늘 내로 다 지으면 총장이 1만 스톤씩 주겠다고 했다!”
인건비 하.
또한, 여기에 몇 가지 특이점을 꼽자면.
사각형 구조의 건물밖에 만들지 못함.
원형 지붕은 만들 줄 모름.
전반적으로 빠르긴 한데 실수가 잦음.
설계도를 아예 읽을 줄 모름…….
‘이 정도인가…….’
장점만큼이나 뚜렷한 단점들을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쓰읍…….”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Any updates? I know it’s on a break but still some more chapters r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