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148
148
소드마스터 힐러님 148화
47장 전장에서(3)
종족 연합의 대회의장에 4명의 종족 대표가 모였다. 그들은 뱀파이어와 트롤, 그리고 오크와 오우거였다.
놀라운 점은 모두 예복을 갖춰 입었다는 것이었다. 귀족을 자처하는 뱀파이어는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야만적인 이미지의 오크와 트롤, 그리고 오우거가 예복을 입은 모습은 낯설었다.
“이 옷은 익숙해지지 않는군.”
오크 대표, 헬로드는 예전부터 예복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불편한 것인지 인상을 찌푸리며 옷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대회의장의 규칙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트롤 대표 쿠라에가 말했다. 옆을 지키고 있던 오우거 대표 베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창가 쪽에서 밖을 보고 있는 뱀파이어 대표 리블하인은 침묵을 지켰다.
창가 쪽의 햇빛은 강렬했지만, 그는 태양의 영향을 받지 않는 뱀파이어 귀족 중에서도 대공이라는 지위를 가진 강력한 존재였기에 일광욕을 쬐는 듯한 나른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대규모 군대가 건너갈 수 있는 차원 관문을 열기에 충분한 마력이 모였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이제 이계 원정군을 편성할 일만 남았습니다.”
“이계 원정군 선봉대는 제국에서 먼저 편성하기로 하지 않았었나?”
헬로드가 지적했다. 이계 원정군 선봉대 편성 문제는 제국과 종족 연합 간에 합의가 되어 있는 내용이었다.
“내부 사정도 있고 무엇보다 왕국 연합을 완전히 정리하고 가세한다고 합니다. 잘된 일입니다. 우리 종족 연합이 원정 초기 전리품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리블하인이 말했다. 그러자 베그가 입을 열었다.
“이계의 군대는 대부분 마력을 다루지 못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베그 대표. 이미 우리가 보낸 ‘던전’들이 확인 작업을 끝냈습니다.”
리블하인의 대답에 대표들은 저마다 사악한 미소를 흘리며 기뻐했다.
“그렇다면 ‘마력 피부’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겠군.”
헬로드가 말했다. 일종의 보호막이라고 할 수 있는 ‘마력 피부’의 존재는 마물들에게 현대 무기가 통하지 않는 이유였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종족의 대표들도 연합에서 이계 원정군 선봉대를 편성한다는 사실에 찬성하셨습니다. 여러분들만 찬성해주시면 만장일치로 선봉대가 편성됩니다.”“안 될 것 있나? 찬성하겠네.”
“저도 찬성합니다.”
“오우거 부족도 선봉에 설 것이다.”
모두 찬성했다. 먼저 말을 꺼낸 리블하인도 당연히 찬성이었다.
“그럼 이것으로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으니 선봉대를 편성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선봉대 편성은 나에게 맡겨주겠나? 약탈이라면 자신 있다.”
헬로드였다. 리블하인의 시선이 향하자 그는 들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래쉬 족장의 붉은 도끼 부족을 보낼 생각이다.”
“붉은 도끼 부족이라면 선봉으로 충분하겠군요. 맡기겠습니다.”
“목표는?”
헬로드가 물었다.
“많은 국가가 있지만, 제국군에서 특히 어떤 국가 하나를 지정했습니다. 이미 좌표가 지정되었으니 차원 관문 앞에 병력을 집결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며칠 뒤, 거대한 차원 관문 앞에 붉은 도끼 부족이 집결했다. 거대한 전쟁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각성 던전을 나오면서 보상으로 동조율이 상승하여 58%가 되었다. 성준은 산도르에게서 대륙 전쟁의 진행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전황이 이 정도로 나빠졌을 줄은 몰랐습니다.
리슈발트가 말했다. 성준은 던전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드론의 조명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차분한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리슈발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주군!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왕국 연합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왕국 연합은 총동원령까지 내렸지만, 제국과 종족 연합의 공세를 버티는 것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산도르의 말에 의하면 두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했던 왕국 연합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점차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엔 중앙 전선이 후퇴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전선이 후퇴했을 정도이니 서부와 동부의 전선 후퇴도 시간문제였다.
“지금 조급해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성준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앞으로의 행동에 박차를 가하겠지만 조급함을 부하에게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성준은 전생에 언제나 그렇게 행동했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를 믿고 따랐었다.
-그래도 제로스 경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 생각이야.”
성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조급해 하는 것과 서두르는 것은 달랐다.
중앙 전선이 밀리기 시작했으니 왕국 연합이 무너지는 게 시간 문제라는 리슈발트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다. 제로스도 이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해야만 했다.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던전 출구가 보였다. 성준은 차를 타고 던전 관리국에 이동하여 마정석을 매각했다. 각성 던전을 열기 위해 클리어한 던전에서 루팅한 마정석들이었다.
“헌터님의 계좌로 입금을 끝냈습니다!”
소은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며 던전 관리국을 나온 성준은 저택으로 이동했다.
“형님! 오셨습니까?”
정원에서 장훈이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좋은 현상이었다. 헌터는 신체의 한계를 초월한 인간이기 때문에 수련을 할수록 더 강해진다.
그는 대검을 잠시 놓고는 성준에게 달려왔다.
“다들 어디 있어?”
“박정철 씨랑 외출하셨습니다. 제로스 씨는 지하실에서 다른 용무를 보고 있습니다.”
성준의 물음에 장훈이 설명했다.
“그래, 수고가 많다.”
“형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늦게 먹을 거야. 먼저 먹어.”
성준은 대답과 함께 제로스가 있는 지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국 연합 문제 때문에 식사할 생각이 없었다.
“이건 좀 복잡하군!”
계단을 통해 지하실로 내려가자 공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로스는 구석에서 피곤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법 술식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는 곧 성준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강성준 경?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이계에서 무슨 일 있으셨던 겁니까?”
“앉아서 얘기해야 할 것 같아.”
“앉으시지요.”
성준은 제로스의 앞에 앉았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좋을까? 그는 약 3분 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제로스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성준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각성 던전이 열린 곳은 ‘전장’이었어.”
“전장의 한 가운데에 차원 관문이 열렸다는 겁니까?”
“그래. 왕국 연합과 제국 간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어.”
성준이 말했다. 밀리고 있던 왕국 연합군을 도와 제국군 지휘부를 격파하고 중앙 3군의 장군인 산도르를 만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들은 것까지 설명했다.
“중앙 전선이 후퇴하고 3군까지 나섰다면 왕국 연합의 상황도 좋지 않은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로스도 리슈발트와 같은 의견이었다. 성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로스는 옆에 놓인 물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차원 관문 소환기 개발에 조금 더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제로스는 성준이 굳이 공방까지 내려온 이유를 금세 파악했다.
“이론은 완벽합니다. 이제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공략이 끝난 던전을 이용할 수 있는 술식을 찾아냈다. 이론이 완성되었으니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제로스는 생각했다.
“필요한 아이템 있으면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바로 말해.”
“역시 강성준 경입니다.”
제로스는 작게 감탄했다.
“그럼 수고.”
“최대한 빨리 만들겠습니다.”
성준은 제로스의 공방을 나와 서재로 이동했다. 그리고 단테를 죽이고 루팅한 목걸이와 반지를 꺼냈다. 전장이라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는 루팅을 잊지 않았다.
-서열 278위가 맞습니다.
목걸이와 반지에는 ‘278’의 숫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합성하겠습니다.
성준이 고개 끄덕이며 끼고 있던 반지와 목걸이를 올려놓자 리슈발트는 마력을 끌어 올려 성준의 것을 단테의 것과 합성시켰다.
-새로운 아이템의 존재를 확인.
계측기가 반응했다. 성준은 감정 기능을 사용했다.
[기사 여단의 반지+9.]B+급.
오러 지속 효과 확인.
A급.
마력 회복 효과 확인.
반지와 목걸이에 합성 횟수가 추가되었지만, 등급의 변화는 없었다. 성준은 합성을 끝낸 반지와 목걸이를 다시 착용했다.
오러 지속 효과는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없었지만, 마력 회복은 미약하게 빨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쉬어야겠다.”
성준은 2층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많은 마력을 소모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땅히 할 게 없었다.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던전을 공략하고 각성 던전까지 클리어했으니 조금 쉬어도 될 거라고 생각되었다.
-휴식입니까?
“그래.”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너무 무리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테라스에 도착한 그는 편한 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쉬고 있을 때 벨 소리가 울렸고 성준은 화면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귓가로 가져갔다.
-강성준 씨?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설아의 목소리였다.
“네.”
-길드 등록 때문에 상의드릴 게 있는 데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성준은 흔쾌히 대답했다. 설아의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아무 생각 없이 밤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길드 등록은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장소는 어떻게 할까요?
“이쪽으로 오시죠.”
-그래도 될까요?“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1시간 정도 기다리자 대문이 열리고 설아가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들어왔다. 성준은 테라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1층으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많이 바쁘셨나 봐요?”
설아의 물음에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공략 중에는 마력의 영향으로 스마트폰을 포함한 통신 및 녹화 장비가 먹통이 되니 연락을 받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길드 등록 문제라고 들었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성준은 그녀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고용된 관리인이 커피를 2잔 준비해서 내어놓았다. 설아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입을 열었다.
“오늘 오후에 헌터 관리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헌터 관리국에서요?”
“네. 등록 담당자가 저로 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뭐라고 하던가요?”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등록이 끝날 것 같다고 하네요.”
“크리스마스라…….”
성준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길드를 지탱하게 될 팀원들을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크리스마스 같이…….”
설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성준은 강력한 마력 반응을 느끼고 테라스로 뛰어나갔다.
-하늘에서 마력 반응입니다!
“변형!”
성준은 즉시 반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로엘’을 검으로 변형시키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경악했다.
“맙소사…….”
하늘에 거대한 차원 관문이 열려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레이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