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187
187
소드마스터 힐러님 187화
59장 하얀 악마(1)
“하얀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무거운 침묵을 강타했다. 회담장에 모인 귀족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어디입니까?”
“서부 전선의 리디크 평원에서 출현했습니다.”
백작위를 상징하는 흉장을 달고 있는 귀족의 질문에 답한 이는 제국 특무군 사령관을 맡고 있는 아레스 백작이었다.
“하얀 악마가 누구입니까?”
누군가 물었다. 아레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인제 보니 그는 사정이 있어서 지난 회담에 참여하지 못했던 귀족이었다.
“지난 회담에서 다뤘던 문제이니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얀 악마는 최근 출현안 정체불명의 검성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는 중앙 전선에서 왕국 연합군 산도르 장군을 몰아 붙였던 제국군을 전멸시켰고 서부 전선에서 노블 오더가 지휘하는 부대를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아레스가 긴 설명을 끝내자 회담장의 모두가 경악했다.
“노블 오더가 패배했다는 말입니까?”
제국군 소속의 장군으로 보이는 자작위의 귀족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노블 오더’의 제국 내에서도 패전 확률이 가장 낮은 집단이었다. 결판이 나지 않는 경우는 많아도 그들이 패배하는 전투는 드물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노블 오더의 참모장 제스퍼 후작은 귀족 지휘관의 패전을 인정했다. 어차피 모두가 알게 될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추한 일이었다.
“하얀 악마는 중앙 전선에서 처음 출현했습니다. 그때 저희 노블 오더에서는 그를 위협적인 존재로 규정 지었고 제국 특무군에 추격 및 암살 요청을 보냈었습니다.”
제스퍼의 시선이 아레스에게 향했다. 패전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짊어질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니 특무군에서 일 처리가 늦은 모양입니다.”
“조사 부대와 유령 부대를 보냈지만 이동 흔적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레스가 말했다. 제스퍼의 말대로 노블 오더에서 요청이 들어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병력을 보냈지만, 전장에서 이동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성준은 전투가 종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구로 돌아갔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특무군 조사 부대가 추적에 실패했다는 말입니까?”
“맙소사! 도대체…….”
귀족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제국 특무군 조사 부대는 귀신의 흔적조차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능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특무군은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쓸데없는 일에 병력을 낭비하지 말고 전선에 집중하게나!!”
제국 동부 방면군 사령관 페이드 후작이었다. 제국의 검성들 중 한 명인 그는 특무군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부 방면군이 배치된 국경은 과거에 종족 연합과의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었다.
그 때문에 동맹이 체결되고 난 뒤에 페이드의 부하 여럿이 억울하게 숙청당했던 적이 있었다.
“쓸데없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후작님. 제국 특무군은 병력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지요.”
아레스가 대답했다. 그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지만 페이드가 말하는 ‘쓸데없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숙청’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얀 악마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아낸 것이 있는가?”
“일부 정보를 확인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말해보게나.”
페이드의 말에 귀족들의 시선이 아레스에게 집중되었다.
“왕국 연합에 침투한 첩자들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하얀 악마는 지구에서 루델 자작을 살해하고 노블 오더의 계획을 저지한 SS급 헌터 ‘강성준’일 확률이 높습니다.”
“로우켈의 검술을 구사한다는 그 ‘헌터’말인가?”
페이드가 물었다. 아레스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알겠네.”
페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강성준이 차원을 넘었다는 말입니까?”
누군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차원을 넘었다면 조사 부대가 흔적을 찾지 못한 것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레스가 대답했다. 분위기가 한층 더 심각해졌다. 차원 이동 기술은 제국과 종족 연합의 동맹이 지금까지 독점해 왔었다.
그런데 아레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왕국 연합뿐만 아니라 차원 너머에서의 공격까지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강성준은 특등 살수의 암살을 막아낸 괴물 아닙니까?”
“제기랄!”
제국의 귀족들조차 동요할 정도로 적대적인 검성의 새로운 출현은 치명적이었다.
“대책은 있습니까?”
안펠리코 후작이었다. 깊게 눌러 쓴 후드의 그림자 아래로 보이는 입가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좋지 않은 소식이지만 특무군은 지금 지구의 공작에 집중할 여력이 없습니다. 얼마 전부터 왕국 연합의 암흑 살수대가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암흑 살수대는 왕국 연합의 최정예 집단으로 특무군 유령 부대보다 암살에 특화되어 있었다.
“이럴 때 종족 연합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페이드가 불평을 흘렸다. 과거에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기억 때문에 종족 연합도 좋아하지 않았다.
“말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스퍼가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며 종족 연합을 두둔했다. 페이드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뒤로 종족 연합을 증오하는 귀족들이 모였다. 그에 맞서 제스퍼의 뒤에도 귀족들이 모여 들었다.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군. 나는 이만 가보겠네. 수고들 하게나.”
페이드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종족 연합과의 동맹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다른 귀족들도 함께 회담장을 벗어났다.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문제가 있었습니까?”
회담장을 벗어나 복도로 나온 페이드의 뒤로 부관이 따라 붙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늘 있는 일이지.”
“방면군 사령부로 향할 마차를 준비해 뒀습니다.”
“아니, ‘그곳’에 간다.”
페이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관은 심각한 표정으로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대역과 수행원들을 방면군 사령부로 먼저 보내겠습니다.”
수상한 행동이었지만 부관은 여러 번 겪은 듯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은 뒤, 대역과 수행원들이 방면군 사령부로 출발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제국 수도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서도 빈민가에 있는 지하 묘지로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낡은 갑옷을 입은 기사 여럿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다들 잘 지냈나?”
페이드는 그들과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네. 오늘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급히 전해야 할 소식이 있어서 온 것이야.”
직위가 가장 높아 보이는 기사의 말에 페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급히 전해야 할 소식…… 입니까?”
“그래. 해방군 사령관에게 전하게. 로우켈의 의지를 깃든 검이 제국에 재림했다고.”
* * *
공격 던전을 경험한 성준은 길드원들과 함께 공략을 진행하는 게 더욱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정보를 공개하기 위해 저택에서 가장 넓은 방에 그들을 모이게 했다.
“다 모였지?”
성준은 방에 모인 길드원들을 한 차례 훑었다. 모두 모여 있었다. 이윽고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로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제로스를 호명했다. 처음에는 직접 할까 싶었지만, 설명은 제로스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럼……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성준의 옆에 서 있던 제로스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저는 얼마 전 전혀 새로운 타입의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타입의 던전이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겁니까?”
질문을 한 사람은 신철이었다.
“기존의 던전이나 레이드와 달리 우리가 직접 ‘이계’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이계……? 그런 게 있는 건가?”
장훈이 말했다. 던전과 레이드의 등장으로 이계존재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실 장훈은 부정하는 것보다는 무관심한 쪽이었다.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쪽으로 넘어가서 마물들을 사냥할 수 있습니다.”
제로스가 간단하게 설명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정철이 입을 열었다.
“이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는 하군요. 정보는 있습니까?”
“보스를 잡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과 던전으로 규정된 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정도만 강성준 경이 직접 공략을 진행하면서 알아내셨습니다.”
제로스가 대답했다. 이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직 길드원들에게 공개할 때가 아니라고 성준과 함께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았다.
제로스는 곧 보충 설명을 끝냈지만 던전 관리국에 보고를 해야 하지 않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길드원은 없었다.
“추가 질문 있습니까?”
손을 들거나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성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아. 내일 출발할 거야.”
며칠 동안 던전 2곳을 솔플 공략하면서 차원 열쇠에 마력을 충분히 채워 두었다.
길드원들만 준비된다면 차원 관문을 열 수 있었다.
반대 의견은 없었고 다음 날 성준은 길드원들과 함께 던전으로 향했다.
공략 일정이 잡혀 있는 S급 던전이 있었다. 식충 식물 형태의 마물이 주로 등장하는 정글 형태의 던전이었다.
보스를 잡고 던전을 클리어했다. 마정석과 아이템의 루팅을 끝낸 성준은 차원 열쇠를 꺼냈다.
“그겁니까?”
신철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성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차원 열쇠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차원 관문이 열렸다.
“오! 뭔가 느낌 있는데요?”
장훈이 말했다. 다른 이들도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차원 관문을 관찰했다.
“내가 먼저 들어갈게.”
성준은 모범을 보이기 위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차원 관문 속으로 사라지자 다른 로드 길드원들도 앞다투어 차원 관문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 보는 ‘이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와. 이계는 처음이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성준이 뒤늦게 도착한 길드원들을 환영했다.
길드원들은 던전이나 레이드를 통해 이계에서 건너온 마물들을 사냥한 경험은 풍부했지만 이계로 넘어온 것은 처음이라 그런지 주변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차원 관문이 열린 곳은 수풀이 우거진 숲속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뻗은 높은 나무들이 시야를 가렸고 나무의 중간 지점부터 신비한 모습의 건물들이 매미처럼 붙어 있었다.
-종족 연합, 엘프령입니다.
리슈발트가 설명했다.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숲의 중심은 엘프령의 군사 기지가 분명했다.
“온다. 준비해.”
성준은 말을 마치며 ‘변형’이라는 시동어를 내뱉었다. 반지가 검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