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84)
제 1084화
255화. 켈리악 지플의 죽음, 그리고…….(1)
“카아악!”
괴성을 내지르는 켈리악.
내내 온몸에 강력한 보호막을 두른 게 지금은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 절단된 그의 어깨는 검으로 벤 게 아니라 마치 손으로 잡아 뜯은 듯 환부가 끔찍하고 거칠었다.
팔이 잘렸고 무기를 놓쳤다. 마법사가 무인에 비해 무기 의존도가 낮은 편이라고는 하나, 안 그래도 밀리던 싸움은 이제 반전의 여지가 한 줌도 남지 않게 되었다.
퍼엉-!
그래도 켈리악은 진이 일격을 내지른 틈을 타 그의 얼굴 바로 앞에 공간 폭발을 시전했다. 본래는 바로 머리를 터뜨리고 싶었으나 진은 결코 공간 폭발을 정타로 허용하지 않았다. 싸우는 내내 켈리악의 행동을 예측해서 피한 것이다.
‘그래도 이번엔 깊다!’
켈리악은 그렇게 판단했다.
분명히 타격을 받을 정도는 될 것이라고, 어쩌면 얼굴 일부가 뜯겨나갈 만큼 깊은 상처를 입혔으리라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처럼 후속타가 늦을 이유가 없어. 우선 지팡이부터 되찾…….’
거기까지 생각하며 지팡이를 줍고자 허리를 굽힌 찰나, 켈리악은 별안간 발아래가 꺼지는 듯한 감각에 몸을 움츠렸다.
크직, 쩌어어억……!
바닥이 갈라지고 있었다. 방금 진의 검이 지나간 자리, 그건 단지 중앙부의 바닥만 갈라지는 게 아니었다.
‘탑 전체를, 양단했다고!?’
등허리로 오싹 소름이 돋았다. 지팡이를 다시 쥐려던 왼손은 갑작스레 탑이 갈라지며 생긴 단차 때문에 한 뼘 차이로 허공을 붙잡았다.
탑이 무너지기 시작한 방향대로 켈리악의 몸도 사선으로 기울고 있었다. 지팡이는 이미 갈라진 틈 사이의 어둠으로 떨어져 사라졌고, 이야기의 탑은 마치 침몰하는 배처럼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지플의 상징이었던, 그들의 심장이 반으로 갈라진 채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후우.”
충격에 휩싸인 켈리악과 달리 진은 차분히 숨을 골랐다. 켈리악을 향한 추가타가 늦은 건, 단지 이야기의 탑을 베느라 순간적으로 너무 많은 힘을 사용한 까닭이었다.
탑의 최후 방어 장치들이 작동하고 있었다. 과거엔 오직 지플만이 누릴 수 있던 온갖 방어 아티팩트들이 경보음을 울리며 마력을 방출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미 손상이 심각한 상태였다. 강화된 업화와 황금함대의 포격에 이미 외부 장갑도 온전한 부분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다.
사방에서 날카로운 마력 광선이 날아들었다. 진은 피할 필요조차 없었다. 수백 갈래의 광선은 그의 보호막에 닿기는커녕, 업화의 열기조차 뚫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흩어졌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켈리악 지플. 세계제일가의 수장이라는 자가, 실은 집에 무의미한 방어 아티팩트나 잔뜩 깔아두는 겁쟁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 도래했을 때, 이딴 것들이 조금이라도 너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나?”
켈리악은 대답하지 않고 전방을 노려보았다.
업화와 태양기, 황금함대의 포격이 일으킨 빛 때문에 눈이 부셔 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누군가 망치로 심장을 두들기는 것 같았다.
켈리악은, 살면서 딱 한 번 지금 진을 마주한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젊은 시절 시론 룬칸델에게 직접 맞서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도망친 날이었다.
패배감, 그리고 공포.
이제 정말 끝이라는 두려움.
‘그때의 시론보다, 더 강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지러운 빛을 뚫고 성큼성큼 자신에게 다가오는 진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업화가 들러붙어 계속 타들어 가고 있는 환부의 통증조차 느낄 수 없었다. 켈리악의 온 신경은 오로지 진을 향하고 있었다.
이번엔 그때처럼 도망칠 곳이 없다.
정말로 물러날 길이 없었다. 가문의 마법사들은 적들의 검에 몰살되는 중이고, 퇴로는 처음부터 닫혀 있었다.
이야기의 탑은 추락하고 있으며 마신석은, 말루기아는 그를 버렸다. 계속 싸워서 진을 이길 가능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변수라고 부를 만한 게 있다면, 그건 오로지 마신대의 지원뿐이었다.
“눈이 멍하군, 켈리악 지플. 그러나 그 속에 여전히 헛된 희망이 남아 있어. 마신대의 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겠지.”
어지러운 빛 사이로 진이 나타났다.
잔상처가 몇 보일 뿐 너무나 멀쩡한 모습이었다. 오랜 시간 인세의 거인이자 한 축이었던 인물과 싸웠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러나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이 널 돕고자 했다면, 이 꼴이 나기 전에 도착했으리라는 것을. 넌 오만하게도 세상이 전부 네 발아래 있다고 생각해왔을 테지만…… 보아라, 이게 네 민낯이다.”
이야기의 탑이 지상에 근접하고 있었다. 이미 큰 덩어리 몇 개는 황금의 바다로 떨어져 가라앉았다.
진은 오랜 추적 끝에 마침내 범인을 마주했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역사를 조작하고, 세상을 농락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범인의 모습은, 초라한 노괴.
섭리를 거스르고 악을 쌓으며 늙은 자들 특유의 지저분한 주름이 가득한 얼굴, 한때는 굶주린 짐승처럼 욕망으로 무섭게 번들거렸을 눈동자는 그저 겁에 질려있다. 하나 남은 팔은 힘없이 늘어진 채 덜덜 떨렸다.
그림자는 그의 지난 어둡고 더러운 삶을 보여주듯 진하고 길게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진 룬칸델…… 나를 죽일 것인가?”
막 켈리악의 그림자를 밟은 진은 그 말에 움찔하며 눈동자를 크게 떴다.
“뭐라고? 지금,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냐……?”
그의 최후가 비참하리라는 건 오래전부터 예견하고 있었다.
반드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하리라, 오랜 시간 다짐하고 결심해왔다. 유사 이래, 그는 최악의 전쟁범죄자이자 학살자였다.
역사 조작이라는 수단을 앞세워서 수도 없이 세상과 역사를 모독한 괴물이며, 어린 자식들을 실험체로 이용한 끔찍한 아비였다.
악 그 자체.
지금 이 자리에서 진의 검 앞에 허물어지기 전까지는, 분명 한 손으로 세상을 좌지우지하던 권력의 화신.
그런 켈리악 지플이, 지금 그 해로운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진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한동안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신석이…… 더 있다. 제작 중인 마신석이. 너는 내가 죽인 사람들을 살리고 싶을 것이 아닌가? 그 마신석들이 완성되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귀가 썩어버릴 것 같군.”
“나를 죽이면 그 마신석들은 완성될 수 없다. 우리 지플과 싸우며, 그간 죽은 이들이 수없이 돌아온 걸 너는 그 누구보다도 많이 겪었다. 네 두 눈으로 직접 보았지.”
스걱-!
진이 켈리악의 남은 팔을 베었다. 그는 막대처럼 바닥에 쓰러졌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서는 다시 진을 올려다보았다.
“게다가 내게는 지토로부터 빼앗은 권능도 있다. 기억할 것이다. 내가 지토의 마지막 권능을 획득한 순간을. 그 힘 또한 마신석과 합치면 진마전쟁 때 죽은 마족들을 되살릴 수 있지. 그런데, 이 모든 걸 배제하고 네가 나를 죽일 수 있겠느냐?”
흐하하하……!
별안간 켈리악은 광인처럼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야기의 탑은 마침내 긴 추락을 끝내고 황금의 바다 위로 떨어져 내려앉았다.
추락하는 내내 터지고 찢겼다고는 하나 이야기의 탑은 여전히 금빛 바다를 단숨에 뒤집을 만큼 거대했다.
엄청난 충격이 찾아오긴 했으나 업화의 기운과 보호막으로 인해 진은 중심을 잃지 않았다. 켈리악은 공처럼 튕기며 몸 곳곳이 터지고 꺾였지만, 숨이 끊어지진 않았다.
탑의 사면을 따라 해일이 치솟았다.
진은 켈리악의 뒤편으로 퍼진 해일을 쳐다보았는데, 방금까지 황금으로 빛나던 물들이 녹색빛으로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건 과거 진이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빛깔이었다.
‘……성지?’
발레리아를 살리고자 찾아갔을 때 본, 지플의 성지. 2500년 전 ‘나무’에서부터 엘로나 지플이 태어난 곳.
지플은 켈리악이 돌아온 순간부터 성지를 이야기의 탑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지금 탑이 완전히 파괴되며 감춰져 있던 성지가 드러난 것이다. 이미 일대의 바다 전부가 녹색으로 물든 상태였다.
“끄으으……!”
발레리아가 완전마력체로서 성지에서 치명상을 회복했듯이, 신음을 토하는 켈리악의 몸이 천천히 재생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쉬누와 불완전한 마신석의 힘으로 완전마력체를 흉내 냈을 뿐인 만큼 회복이 아주 빠르지는 않았다. 여전히 켈리악은 살아나갈 구멍이 없었다.
“큽, 흐흐…… 정녕 나를 죽이고 그들이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것이냐? 네가 정녕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냐?”
키이이이이……!
성지의 힘에 녹빛으로 변한 바다 곳곳에서 마신석의 괴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여러 겹으로 겹친 괴성이었다.
바다 위로 미완성된 마신석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말루기아의 힘이 더해질 수는 없다고 하나, 분명 마신석이었다.
진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마신석들을 완성하면, 정말 켈리악의 말대로 죽은 이들을 부활시킬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하아, 켈리악 지플……. 진심이냐? 진심으로 내가 저 마신석들 때문에 너를 살려줄 것이라 믿는 것이냐?”
진이 켈리악의 무릎을 걷어차며 말했다. 박살 난 무릎뼈가 살점을 뚫고 튀어나왔고, 그는 주저앉을 수조차 없어 지렁이처럼 바닥에 들러붙었다.
“아니면 내가 조금이라도 흔들릴 것 같던가? 오히려 이 마신석들은, 더더욱 네놈을 이 세상에서 없애야 할 이유일 뿐이다.”
“그래……. 그렇다면 유감이군. 하지만 나를 죽여도, 너는 이긴 것이 아니다. 어차피 너를 기다리는 것 또한 파멸과 종말뿐일 터! 죽여라. 아니, 죽고 싶지 않아…… 살려다오! 살려만 준다면 무엇이든 하마. 흐하하하…….”
진이 켈리악의 머리통을 쥐었다. 피로 얼룩진 그의 얼굴 아래, 목에 남은 흉터가 보였다.
그 흉터는 말루기아가 남긴 각인이었다. 진은 흉터에 빛나는 태양기가 말루기아의 것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켈리악 지플. 넌 룬칸델 지하감옥에서 마지막까지 고통받고, 무언가를 실토하다 죽게 될 것이다. 오늘로…… 너의 지플은, 끝이다.”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남는 건 익숙하다. 아느냐? 살아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기회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난 이미 지옥도 거슬러 올라왔단 말이다. 푸흐흐, 흐, 흑, 커…… 컥……!”
웃음을 터뜨리던 켈리악이 돌연 목이 막힌 듯 신음을 내뱉었다. 진은 흠칫하며 그의 목에 남은 흉터를 쳐다보았다.
퍼억-!
흉터는 한순간 번쩍이자마자 폭발하며 켈리악의 머리를 터뜨리고 말았다.
진은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며 막대기 같은 몸만 남은 켈리악의 시신을 쳐다보았다. 시신이 갈라지며, 그 속에서부터 차원문이 열리는 모습이 이어졌다.
“677차원의 공기는…… 탁하고 불쾌하기 그지없군.”
차원문을 빠져나오며 고개를 젓는 인물.
그는 마신대의 수장, 33차원의 켈리악 지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