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83)
제 1083화
254화. 태양신의 자아들(7)
기함 사라의 선체에서 거대한 칼날이 솟구치자 황금함대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비행함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 기함 사라는 마치 하강하는 매처럼 이야기의 탑 중앙부에 칼날을 내리꽂았다.
충격파와 굉음이 일며 탑을 구성하는 새하얀 광물의 파편이 튀었다. 진과 켈리악, 두 사람 사이로 솟구친 파편은 열기를 이기지 못해 즉시 입자로 흩어지는 모습.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칼날, 켈리악은 도무지 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 내가…… 켈리악 지플이. 시론도 아닌, 진 룬칸델을 당해낼 수 없다고……!’
평생을 시론 룬칸델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져 2인자의 자리에 머물렀다. 지플이라는 세력 자체는 분명 최강이었으나, 켈리악이라는 개인은 그랬던 적이 없었다.
그토록 많은 것을 가졌고, 많은 것을 누렸고, 많은 것을 지배한 지플의 가주는, 사실 늘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오로지 시론과 맞설 때만 불타오르던 그 열등감은 지금 새파랗게 어린 진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닥쳐라, 진 룬칸델. 이 싸움이 끝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을 것 같더냐?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 같더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아무것도! 오직 마신석만이, 완전한 통제만이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네놈들이 떠들어대는 투쟁 따위가 아니라!”
핏-!
켈리악의 이마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브라다만테가 이마에 남긴 상처는 꼭 그를 비웃는 미소처럼 휘어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나를 꺾어 지금 네놈이 내뱉은 말을 증명하면 될 뿐이다. 그러나 할 수 없겠지. 네놈이 지금껏 내 아버지를 단 한 번도 꺾지 못한 것처럼.”
화아아악-!
업화가 기함 사라와 공명하며 더욱 진한 청화를 퍼뜨리고 있었다. 탑 중앙부는 이제 천장과 벽면이 모조리 녹아 황금으로 물든 바깥 풍경이 다 드러났고, 사방엔 푸른 불꽃이 너울 치고 있었다.
“큽……!”
켈리악은 어깨와 팔에 들러붙은 청화를 털어내며 신음을 토했다. 쉬누 특유의 새빨간 불꽃이 청화를 상쇄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쇄되는 속도가 아주 빠르지는 않았다.
압도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창성에 오른 진, 그의 힘을 증폭시키는 기함 사라는 이제 쉬누 같은 신격조차 뛰어넘은 것이다.
“우습구나, 켈리악. 겨우 이것인가? 유일신이 되겠다고 그토록 끔찍한 악행들을 저지르더니, 마신석 없이는 그저 노괴에 불과하구나.”
“커헉!”
광속 찌르기에 이은 영혼 베기, 두 검기가 켈리악의 육신을 강타했다. 급히 두른 보호막에 가로막히긴 했으나 상당한 충격이 전해졌고, 켈리악은 핏물을 내뱉으며 무릎이 꺾였다.
이어진 연격을 피하느라 켈리악은 몸을 던져 바닥을 굴렀다. 우스운 모양새지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대로 목이 떨어졌을 터.
‘격차가 이렇게 클 리는 없다…… 그런데 왜……!’
켈리악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진처럼 창성에 직접 다다르지는 못했으나 그는 쉬누와 융화하며 그에 상응하는 힘을 얻었다.
분명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진마계를 평정할 때에도, 다시 가문으로 돌아와 가주 자리를 되찾았을 때도, 켈리악은 그 힘을 기반으로 언제나 저항하는 이들을 압도해왔다.
불현듯, 그간 자신이 ‘마신석’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의지했는지, 놀랍고도 비참한 심정이 엄습하고 있었다.
‘켈리악을 죽이는 건 문제가 아니다.’
반면 진은 빈틈없이 압박을 이어가면서도 이 사태를 통찰하고 있었다. 지금은 마침내 지플의 수장을 처치할 수 있다는 감흥에 취할 때가 아니었다.
‘진짜로 경계해야 할 건 이 노괴 따위가 아니라, 말루기아다. 그 태양신의 자아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상황을 만든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야기의 탑 바깥에서 반과 명왕족의 황금함대를 상대하고 있는 크라고스는, 말루기아의 뜻으로 깨어났다.
말루기아의 권능을 받아 본래보다 더 강해졌으며, 단테를 칠 때 켈리악을 지원하기도 했다.
애초에 이 판을 짠 건 켈리악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가정한 바에 따르면, 말루기아는 모든 차원의 파멸을 위해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리고 타 차원을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을 불러들일 필요가 있겠지. 혹은 그들에게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하거나.’
스걱-!
켈리악의 손가락 세 개를 베어낸 후, 진은 반격으로 이어진 공간 폭발을 피하며 자연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블리기에트, 넵돌, 크라고스, 포칼.
불현듯 이 자리에 모인 태양신의 자아가 넷이라는 사실이 뇌리로 도드라졌다. 거기에 어딘가 말루기아가 숨어 있다고 가정하면, 다섯.
‘지금처럼 그 다섯의 엄청난 태양기가 끝도 없이 발산된다면, 그 자체만으로 타 차원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말루기아는 그 영향력을 기반으로, 무언가 일을 꾸밀 수 있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게다가 이곳엔 태양신 포칼과도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차원 이동 능력을 보유한 실키아 아르시아도 존재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지금부터 포칼 님께서는 최대한 태양기 사용을 자제해주십시오. 반 형제와 동료들만으로도 크라고스는 얼마든지 압박할 수 있습니다. 저도 곧 켈리악을 처치하고 합류할 예정이니. 그리고 블리기에트, 넵돌, 실키아 님은 전선 바깥으로 물러나 대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진이 한 번 더 켈리악을 어디론가 처박으며 통신하자, 포칼은 신적인 통찰력으로 단번에 그의 의도를 알아보았다.
[진의 말이 옳다. 아직 말루기아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과도한 태양기 사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겠군.]연합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결과는 적들을 최대한 빨리 끝장내고 전장을 떠나는 것이다. 어떤 변수나 사건이 추가로 발생하기 전에.
이제 켈리악은 진을 상대하며 간신히 버티기만 하는 모양새고, 남아 있던 지플의 마법사들은 벌써 5할 이상이 사망했다.
키다드 홀이나 지옥에서 부활한 지플의 옛 가주들이 나름대로 분전하고 있기는 하나 전세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엘로나 경을 구해야. 아니, 확보해야 한다! 라갈을 더 촘촘하게 포위해라. 놈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베라딘의 목소리였다.
차마 엘로나를 ‘구해야’ 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지금 연합엔, 이 세상엔 그녀의 힘에 의해 가족을 잃고 벗을 잃고 사랑을 잃은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엘로나를 죽이지 않고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그녀와 자신은 결국 삶이 다할 때까지 어떤 식으로든 속죄를 행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반면 죽음의 위기에 놓인 아버지, 켈리악 지플에겐 일말의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있었다. 켈리악에 대해선 그 어떤 것도 용서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그는 속죄를 할 자격조차 없는 괴물이었다.
베라딘이 집중하는 건 오로지 엘로나 지플과 자신의 자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생체 골렘 알마티아, 쿤.
그들만큼은 자신처럼 속죄라는 기회를 부여받을 자격이 있었다. 오히려 자신보다도 그들에게 기회가 있어야 했다. 그때 지플의 유일한 결정권자는,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카이오 형제.”
“예, 투신 형제.”
“형제는 저 라갈이란 놈을 죽이고 엘로나 지플을 확보해라. 놈이 엘로나 지플의 육신에 내내 독을 풀어둔 모양이다.”
오로지 반만이 그 사실을 알아보고 있었다. 진은 켈리악을 상대하며 전체적인 지휘까지 하느라 놓친 부분이었다.
“알겠습니다.”
“린파와 발티록 형제도 알마티아와 쿤이라는 이들을 찾으러 가도록.”
“예, 형제!”
함께 크라고스를 치던 투왕들이 명령에 따라 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크라고스는 일부 투왕들이 물러나는데도 숨통이 트이는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아까부터 자신에게 쏟아지던 포칼의 태양기까지 옅어졌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반의 칼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만큼 반과 무라칸이 크라고스의 힘을 파악하고 이해한 까닭이었다.
게다가 시간도 많지 않았다. 이제 곧 진이 켈리악을 베고 이쪽으로 참전할 것이며, 루나의 심홍검도 태양기를 뚫으며 합류하는 중이었다.
[재미있구나, 내 힘을 이어받은 필멸자여. 블리기에트와 넵돌, 벨티안까지. 그 머저리들도 너를 처음 보고 아주 당황했겠어. 본래 너는 우릴 공격할 수 없어야 하니까…….]크라고스가 검을 그러쥐며 말했다. 아까 단테를 칠 때와 달리 그의 얼굴에선 여유나 웃음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말루기아를 상대로는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필멸자 반. 그녀는 이제 거의 모든 준비를 마쳤어. 종말을 위한 준비를.]“뭐라는 거야, 이 새끼는. 너도 벨티안 옆에서 우리를 위해 일이나 하면 딱 맞을 것 같으니까, 적당히 발악해라. 뒤지게 맞다가 네 다른 형제들처럼 모양 더럽게 빠지고 싶지 않으면.”
무라칸이 대신 대답하며 숨결을 토했다. 크라고스는 숨결을 쳐내고 태양기를 발산했지만, 이제 막 시작된 반의 명왕군림검을 뚫을 수는 없었다.
처음 연합이 황금함대를 완성해서 이야기의 탑을 친 그날처럼.
전장은 좌우로 나뉘어 황금함대와 연계해 강화된 명왕군림검과 업화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진과 반, 두 창성의 기운이 거대해질수록 왜인지 사납게 뒤집어지던 황금 바다가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억울하게 황금의 물이 된 생명들에게, 그 모습이 조금은 위로가 되고 있다는 듯이.
크라고스에게도, 켈리악에게도.
스스로 상황을 반전시킬 능력은 없는 듯 보였다. 특히 켈리악은 이제 완전히 절망에 찬 눈동자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디서 진의 검이 날아들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야기의 탑 중앙부 곳곳에 처박히다 결국 탑 하층까지 떨어졌고, 구덩이 같은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어디냐…… 어디로 올 것이냐!’
이내 켈리악이 사방으로 시뻘건 화염을 흩뿌리며 고개를 든 순간.
그는 바로 자신의 머리로 천둥처럼 떨어지는 한 자루 검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 검은 이미 이야기의 탑 중앙부를 완전히 양단하며 켈리악에게 떨어진 것이었다.
칼날은 지팡이를 쥐고 있던 켈리악의 오른팔과 어깨를 베어버린 채, 이야기의 탑 최하부까지 단숨에 끊어버리는 거대한 검기를 내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