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27)
제 777화
183화. 내면에서 시작된 전초전(3)
비궁주의 전용 폐관 수련장은 총 두 곳이었다.
한 곳은 만빙과 모트의 힘을 통해야만 갈 수 있는 ‘비궁 속의 비궁’이고, 한 곳은 비궁 최상층이었다.
시리스가 개방하려는 공간은 후자였다.
전자는 시리스가 아직 만빙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개방이 제한적일뿐더러, 그 내부엔 현재 엘로나 지플이 봉인된 상태다.
비궁 속의 비궁을 어설프게 개방해서 미샤와 엘로나를 자극했다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그곳은 진에게 문제가 생겼을 경우 외부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보옹!]시리스가 모트 위에 진을 태웠다. 그를 올리느라 붙잡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너무나 미약했다.
‘분명 진이 겪는 정신 공격은 나나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일 테지…….’
시리스의 생각대로 진을 제외한 사람들이 겪는 정신 공격은 몇 단계 이상 낮은 수준이었다.
그런 걸 지금껏 의연하게 견딘 것도 모자라, 이제는 오롯이 홀로 싸우러 가겠다는 진에게 시리스는 진한 존경심을 느끼고 있었다.
모트는 밖으로 나가 비궁 벽을 서서히 기어 올라갔다.
순간이동을 하려 했으나, 이계설원을 달릴 때의 당연한 요동조차 지금의 진에겐 타격이 될 것 같았다.
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약해진 상태였다.
그사이 발레리아와 콰울을 비롯한 동료들과 비궁의 일원들이 비궁 최상층에 먼저 올라 진을 기다렸다.
이윽고 모트가 최상층에 다다랐다.
“후우…….”
모트의 등에서 내려온 진이 한 차례 깊이 공기를 들이마셨다. 폐부가 아릿해질 만큼 찬 공기였으나 진은 그런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현실 세계의 감각이 극도로 무뎌진 탓이다. 눈은 흐렸고, 귀는 잘 들리지 않았으며, 팔다리에도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사람을 혼자 폐관 수련장으로 보내도 되는 걸까, 지켜보는 동료들은 길리의 부축을 받으며 걷는 진을 보며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은 시야에 흐릿하게 들어오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도련님…….”
길리의 물기 맺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한계까지 지친 진의 모습을 보는 게 힘겨웠다.
“다들, 기다렸나 보군.”
진은 평소처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그러나 지금은 조금 더 솔직한 심정을 나누고 싶었다.
“만약 닷새가 지나도 내가 수련장을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내가 진 겁니다. 그리고 그건, 내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 대목에서 길리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발레리아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이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따로 유언을 남기고 가지는 않겠습니다. 꼭 마지막이 될 것처럼 슬픈 작별을 하고 싶지도 않군요. 이 싸움 다음엔 진짜 결착이 남아 있으니까요.”
진이 시리스에게 눈짓을 보냈다. 폐관 수련장의 문을 열어달라는 의미였다.
시리스가 만빙을 꺼내 열쇠처럼 문에 꽂자, 수련장 내부에서부터 파도처럼 새하얀 기운이 흘러나왔다.
문이 열리자 온통 새하얗고 드넓은 차가운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니 여기서 끝날 수는 없지…….”
진은 터벅터벅 그 너머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팡이처럼 브라다만테로 땅을 누르면서 말이다.
최소한의 식량이 들어 있는 봇짐이 그토록 무겁게 보일 수 없었다.
현실의 감각이 초 단위로 무뎌지고 있었다. 몇 걸음을 떼지도 않았건만 벌써 뒤에 있는 동료들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진! 무사히 돌아와. 나도 정신 공격을 잘 버티고 있으니까, 너는 분명 이길 수 있을 거야! 돌아오면 장어포를 나눠줄게!”
놀랍게도 가장 먼저, 그리고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소리친 것은 다름 아닌 어둠불꽃이었다.
어둠불꽃은 비궁의 작은 수인 중에서 유일하게 정신 공격을 경험하고 있었다.
“어, 뭐, 뭐, 뭐야! 저, 저 녀석 갑자기 말을 왜 이렇게 잘해!?”
팽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숙연하던 동료들도 갑작스러운 어둠불꽃의 정확하고 빠른 음성에 흠칫하고 말았다.
“장어포를 나눠줄게! 장어포를……!”
“야, 어둠불꽃! 너 괜찮은 거냐? 응? 아니, 원래 말 똑바로 할 수 있던 건, 아……니겠구나. 괜찮지도 않고.”
“장어포를 나눠줄게!”
어둠불꽃의 어깨를 붙잡은 팽이는, 그가 지금 정신 공격의 고통에 질끈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 진을 위해 막 소리를 내지른 게, 어쩌다 보니 또박또박 빠르게 발음되고 있을 뿐이었다.
어둠불꽃은 이 비궁에서 명백히 가장 약한 사람이다. 그도 그렇게 힘을 내고 있었다.
장어포를 나눠주겠다는 어둠불꽃의 외침이 도돌이표처럼 이어졌다. 동료들은 볼 수 없었으나, 또한 진 본인도 인지하지 못했으나. 진은 그 소리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진이 폐관 수련장 안으로 완전히 들어서자, 시리스가 무거운 얼굴로 문을 닫았다.
이제 진을 위해 동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그가 승리하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 * *
수련장 내부는 순백이었으나 진의 눈에는 불빛 한 점 없는 밤바다처럼 보였다.
본인이 서 있는 것인지, 앉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쓰러져 있는 것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진에게 중요한 건 현실이 아니다. 그간 한순간도 쉬지 않고 치열하게 이어져 온, 내면의 전장이 더 중요했다.
따라서 내면으로 더 깊게 잠겨야 했다. 아예 현실의 감각이 조금도 남지 않고 완벽하게 지워질 정도로.
굳이 폐관 수련장을 택한 이유였다. 아주 작은 외부 자극조차도 없이, 완벽하게 내면의 전장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진은 신중하게 침잠하고 있었다. 자신의 내계內界를 향해서.
그건 삶과 죽음의 경계 가운데를 걷는 일이다.
한 걸음만 어긋나도 망각과 죽음이 진을 덮칠 것이다.
‘그쪽이 맞다고 생각하느냐?’
‘그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그래서 내게 다다를 수 있겠느냐?’
‘나로부터 그 수많은 사람들을 네가 구할 수 있겠느냐?’
내계로 향하는 와중 이따금씩 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어두운 음성이 자아를 휘저을 때마다 불안감에 몸서리를 쳤다.
후회가 되기도 했다. 당장 돌아서 나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내계에 가까워질수록, 공포는 점점 더 커져 갔다.
전생과 현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공포가 진의 자아를 우그러뜨리고 있었다.
‘네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건 처음 보는구나.’
‘당신이 보는 것만 처음일 뿐, 종종 있었소.’
‘그러하냐?’
‘당신도 인간일 때는 그랬던 적이 있겠지.’
‘나는 두려움에 굴복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너도 보여다오, 나와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엔, 진도 그렇게 하기 위해 홀로 싸울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계에 깊어질수록 진은 빠르게 깨닫고 있었다.
이 황량하고 고독한 세계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려면 결국 로사와 똑같은 괴물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흉신 정도의 괴물이 되지 않고는, 내계의 고독이라는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진의 시야에 한 줄의 하얀 선이 들어왔다.
진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내계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하는, 일종의 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그 너머에선 로사의 자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또한 그 하얀 선은 선택의 기로이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당기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바뀌는 것이다.
괴물이 되려는 마음으로 당기면 괴물이 될 것이고,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 그저 열리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으로 남아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로사는 이제 과거의 링링처럼 진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내계에 맞닿은 자아가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너도 내 생각을 읽을 수 있겠지, 아들아. 이 내면의 싸움은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이 어미는 결착을 짓기 전에, 너를 더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나와 능히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로.’
괴물이 되려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라. 그게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로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진이 하얀 선을 움켜쥐었다. 한 차례 뒤를 돌아보니, 이제껏 내려온 내계의 길이 산산이 부서지며 먼지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괴물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잡아당기려는 순간, 진은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별안간 귓가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로사의 음울한 목소리가 아니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염원이 속삭임처럼 진의 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진은 그 내용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냥 귓속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뿐이었으나, 진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하마터면 당신과 같아지기 위해, 그렇게라도 대적하기 위해 당신보다 뛰어난 단 한 가지를 버릴 뻔했군.’
사람은 공포라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두려워야 도망칠 수 있고, 두려워해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두려움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맞서 싸우는 게 사람의 방식이었다.
‘내가 괴물이 되어 당신을 꺾는다 한들…… 세상엔 또 다른 흉신이 나타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긴 정신 공격에 자아가 황폐해진 탓에 진은 그 당연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결론을 내린 진이 조심스럽게 하얀 선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보인 것은 로사의 자아가 아니었다.
텅 빈 공허한 공간도, 막연한 어둠도 아니었다. 한 남자가 앉아 있는 뒷모습이었다.
“아버지……?”
시론 룬칸델, 진의 아버지였다. 본래 로사의 자아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가 서 있는 이유는, 진이 괴물이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진.”
요즘처럼 절실히 아버지가 보고 싶던 적은 없었다.
흐느적거리던 사지에 다시 예전 같은 힘이 들어찼고, 몽롱하던 머릿속으로 뜨거운 피가 들어차는 것 같았다. 진은 저도 모르게 시론을 향해 뛰고 있었다.
그러나 시론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
대해처럼 깊고 거대한 절벽이 진과 시론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진이 절벽 앞에 멈추자, 시론이 뒤를 돌아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부자는 한동안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잘 견뎌주었다.”
이내 시론이 내뱉은 한마디에, 진은 불현듯 깨달을 수 있었다.
마냥 고독하고 괴로웠던 이 내계에서, 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론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음을.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시론은 뒤돌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각자의 싸움터로 가자는 듯이.
더 깊고 어두운 어딘가를 향해 걷는 아버지를, 진은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아버지에게 무언가 더 말을 보태는 건 이 순간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시론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진도 다시 뒤를 돌아보자, 아까 부스러진 내계의 길들이 다시 형성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은 시론처럼, 그 길을 묵묵히 걸어 올랐다.
진이 내계를 빠져나가 현실의 감각을 되찾았을 때.
바깥은 나흘이 지났고, 세상을 고통 속에 몰아넣던 로사의 정신 공격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운이 충만한 채 힘껏 폐관 수련장의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