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3)
제 88화
29화. 무서운 가문
“부, 부탁……?”
토나 형제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막내가 서재에서 살아 돌아온 것도 신기한데, 난데없이 부탁까지 운운하니 도무지 정신이 없었다.
“아,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내 파벌 생도들 말이야. 나 돌아오기 전까지 형들이 신경 좀 잘 써 주라고. 가기 전에 애들한테도 말해 놓을게.”
토나 형제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은 이미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걱정하고 있을 루나와 길리에게 사태가 잘 마무리되었다는 걸 알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막내는 여전하네…… 쟤, 방금 아버지 뵙고 온 것 맞지?”
“맞아.”
진의 뒷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이는 토나 형제.
“근데 우린 저 녀석 어디가 예쁘다고 이렇게 걱정을 했던 거지?”
“그러게?”
“음, 모르겠다. 일단 막내가 파벌 생도들을 우리한테 맡기고 싶단 말이지. 흐흐, 다시 중급반 실세는 우리 몫이겠어.”
한편, 바깥에서 루나와 길리를 압박하고 있던 형제들은. 진이 멀쩡히 저택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형제들 중 진의 죽음을 가장 염원하는 뮤와 앤은 완전히 얼굴이 하얗게 질린 모습.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막내와 이야길 잘 하신 것 같네. 이제 다들 검 치우지? 싹 죽여 버리기 전에.”
루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형제들과 수호기사들이 급히 무기를 거뒀다.
특히 길리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던 수호기사는, 일순 발산된 루나의 살기에 두 눈을 까뒤집으며 실신까지 할 지경이었다.
‘젠장, 막내 녀석. 매번 잘도 살아남는군……!’
뮤와 앤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갈았고.
‘역시, 이렇게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지. 조금만 더 커서 이 누나를 즐겁게 해 줘라!’
메리는 미소를 지으며 진을 쳐다보았다.
“루나 누님, 아버지께 한번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의 일에 대해 몇 가지 사항이 궁금하신 것 같더군요.”
“그래, 알겠다.”
“그리고 전 아버지께 받은 숙제가 하나 있어서, 잠시 이동 관문에 다녀와야 합니다. 이따가 다시 뵈어요.”
“이동 관문? 흠, 무슨 숙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따 봐.”
태연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진과 루나.
심지어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의 일?’
‘이동 관문을 다녀오겠다고? 설마, 나갔다가 검의 정원으로 다시 들어오겠다는 말인가?’
‘아버지께서 숙제를 내리셨다는 건 대체 무슨 말이야!?’
무슨 내용인지 물어볼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형제들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가자, 길리.”
“아, 예! 도련님.”
길리도 이렇게까지 상황이 잘 풀릴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다소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이내 두 사람이 검의 정원을 빠져나갔고, 루나는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원에 남은 형제들이 할 수 있는 건, 한동안 멀뚱히 서 있는 것뿐이었다.
* * *
세 시간 후, 다시 시론의 서재.
진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시론을 마주한 모습이었고, 시론은 표정에 드러나지 않지만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
“……어쩐지, 네 녀석이 시험 내용을 듣고도 전혀 당황하질 않더라니. 괜한 자신감이 아니었구나.”
허허, 낮게 웃음을 뱉는 시론의 시선이 카시미르에게 닿았다.
그는 방금 막 진과 함께 이동 관문을 이용해 검의 정원을 찾은 참이었다. 신분은 숨긴 채였다.
‘이 사람이. 세계 최강의 기사, 시론 룬칸델. 으으,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체할 것 같군.’
카시미르는 그간 룬칸델의 초급 생도 선생 제의를 몇 번이나 거절해 왔다.
티칸을 ‘국가’로 만드는 일에 룬칸델 선생 경력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카시미르에게 시론은 ‘웬만해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다. 행여 룬칸델의 청을 거절한 게 불쾌하다는 이유로 시론이 불쾌감을 드러낸다면 답이 없었고.
무엇보다 시론이 직접 티칸을 룬칸델에 합병시키려는 의지를 드러낸다면, 카시미르로서는 대항할 수단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단 진 공자의 부탁이니 오긴 했는데…… 엄청나게 불편하군. 내가 그간 이런 사람의 부탁을 거절해 온 건가?’
직접 본 시론은.
소문을 한참 뛰어넘는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카시미르 본인도 내로라하는 무인이었으나, 시론 앞에서 자신의 검술은 애들 장난조차 될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절대 강자의 위엄이로군.’
그래도 기죽지는 말자.
카시미르가 진 쪽을 의식하며 결심했다.
‘나는 진 공자의 손님이다. 시론 경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
“자네가 귀검 카시미르란 말이지.”
“네, 넵! 하나 귀, 귀검은 시론 경 앞에서 감히 붙이기 민망한 이명이니 빼 주셔도 좋습니다!”
반사적으로 주절주절 대답한 카시미르는, 본인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똑바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눈물이 흘렀고, 겉으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옆에서 진이 이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창피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하, 내 신세야. 저번엔 무라칸 님한테 두들겨 맞을 뻔하고. 이번엔 시론 경께 추태를…….’
어째 진을 만난 이후 하나같이 버거운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말하라.”
“카시미르 경과 제 관계는 이를테면, 운명 공동체…… 같은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약속을 지켜 주실 차례입니다.”
진이 또박또박 말하는 사이, 카시미르는 제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진 공자, 어찌 시론 경을 상대로 이렇게 당당할 수가? 게다가 운명 공동체라니! 내가 먼저 한 말이긴 하지만, 하필 시론 경 앞에서 운명 공동체를 운운하면……!’
순간적으로 카시미르의 뇌리에 온갖 어두운 미래가 스쳐 갔다.
-카시미르, 넌 내 아들과 운명 공동체라지? 그렇다면 티칸은 룬칸델의 것이다.
-운명 공동체라…… 룬칸델과 티칸의 관계도 그렇게 될 수 있겠군.
-그럼 오늘부터 룬칸델과 티칸도 운명 공동체가 되면 되겠군, 크하하!
이런 대사를 쏟아 내는 시론의 모습이 그려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순전히 카시미르의 공포감에서 비롯된 기우였다.
“고얀 놈…… 이 아비를 속여?”
카시미르의 상상과는 전혀 달리, 시론은 꽤 인자한 얼굴로 진을 내려다보았다.
실제로 시론은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무슨 수로 카시미르를 꾀어낸 것인지는 모르나, 막내는 언제나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속이다니요, 당치 않습니다. 다만 운이 좀 좋았을 뿐이죠. 실은 티칸에 도착하자마자 카시미르 경과 인연을 맺은 상태였으니까요.”
“좋다, 어쨌거나 시험은 합격이다. 오늘부로 그 어떤 룬칸델도 너의 허락 없이는 티칸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이 시론 룬칸델이라 할지라도.”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럼 너는 나가 보아라, 나는 카시미르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진이 꾸벅 인사하고 서재를 나섰다.
시론과 단둘이 남게 된 카시미르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진의 뒷모습만 쳐다보았다.
“그렇게 긴장하지 말게. 누가 보면 내가 자넬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군.”
“하, 하하…… 죄송합니다, 시론 경.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경을 직접 마주하니 경외감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시론이 대답하지 않고 차제구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섰다. 그러곤 이내 차를 한 잔 우려 카시미르에게 내밀었다.
극히 공손히 찻잔을 받아 드는 카시미르.
“내가 막내를 보내고 자네만 남겨 둔 것은.”
꿀꺽.
카시미르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설마 합병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왜 룬칸델 선생직을 자꾸 거절하느냐고 꾸지람을 듣게 될까?
걱정하는 사이, 시론이 뒷말을 이었다.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일세.”
부탁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카시미르 또한 한 단체의 수장이자, 머잖아 일국의 왕이 될 남자였다.
‘계속 바보처럼 굴면 안 돼. 만약 티칸을 요구한다면, 강하게 거부한다!’
마음을 다잡은 카시미르가 시론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말씀하십시오, 시론 경. 티칸에 아무런 위해가 없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돕겠습니다.”
일부러 선을 그어 표현했건만, 시론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눈치였다. 카시미르는 타들어 가는 속을 겨우 진정시키며 시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앞으로 자네는.”
“예, 시론 경.”
“막내가 성장하는 과정을 빠짐없이 내게 알리도록 하게. 아무래도 그 녀석은 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일단 합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니 안심이군. 그리고 시론 경이 진 공자를 얼마나 아끼고 계신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룬칸델의, 그 시론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이야. 카시미르는 새삼 진이 더 궁금해졌다.
‘처음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다고 느끼긴 했지만, 시론 경이 직접 주시할 정도라니. 칠색조의 정보에 의하면 시론 경은 차기 가주로 지목되는 조슈아에게도 이만큼 신경 쓰지 않는다.’
카시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습니다, 시론 경. 핫라인만 하나 열어 주시면, 빠짐없이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카시미르에겐 여러모로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작은 것이라도 시론에게 직접 빚을 지게 만드는 셈이자, 직통 연락망도 하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시론 룬칸델과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다는 건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비먼트의 황제조차 누리지 못하는 특권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는 일.
“고맙군. 수고해 주면 내 잊지 않겠네. 그리고 이 일은 자네 외에 다른 누구도 알아선 안 될 것일세.”
“물론입니다. 진 공자에게도 비밀로 하겠습니다.”
“가기 전에 칸이라는 수호기사가 자네에게 주소를 하나 줄 걸세. 보고는 모두 그리로 하게. 가끔 특별한 사건이 있다면, 직접 찾아와서 이야기해 주게. 좋은 술을 내어 줄 테니.”
“감사합니다, 시론 경.”
“물러가도 좋네.”
카시미르가 인사하고 서재를 나서려는 순간, 시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예, 말씀하십시오.”
“자네도 긴장해야 할 걸세. 막내는 이 룬칸델조차 아직 제 성에 차지 않는다고 했었으니까. 자네와 티칸이 분주히 성장하길 기대하지. 그 녀석이 진짜로 탐을 낼 만큼 말이야.”
이후 진과 함께 다시 티칸으로 떠나기 전까지.
카시미르는 수호기사 칸을 만날 수 없었다.
‘분명 핫라인을 열어 준다고 하셨는데…… 진 공자가 없을 때 다시 한번 찾아뵈어야 하나?’
대신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순간, 낯선 종이 한 장이 손에 잡히는 게 느껴졌다.
쪽지였다.
-반갑습니다, 카시미르 경. 룬칸델 수호기사 칸입니다. 가주께서 말씀하신 주소는…….
카시미르는 모르나, 칸은 이미 그를 관찰했다. 그리고 그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슬쩍 쪽지까지 넣어 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애초에 나 같은 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수 있다는 뜻이겠군. 룬칸델…… 무서운 가문이다.’
카시미르가 가만히 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쩌면 차후 이 무서운 가문의 가주가 될 소년에게로.
“티칸이 룬칸델로부터 자유를 얻은 소감은 어떠십니까? 카시미르 경.”
“얼떨떨하군요. 앞으로 공자와 함께할 날들이 기대된다는 마음입니다.”
카시미르가 황급히 쪽지를 숨기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