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42)
먼치킨 길들이기 142화
“잠깐만. 나 가야 할, 가야 할 곳이 있어.”
“안 돼!”
고삐를 잡지 못하고 소리가 커졌다.
“미안, 미아. 미안.”
아이리아가 눈을 깜빡이며 삐걱거리는 인형처럼 잘게 머리를 털었다.
“안 돼. 미아, 안 돼. 밖은, 위험해.”
말은 성대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불규칙한 더듬거림으로 나왔다.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자, 키네미아가 걱정스레 그녀를 불렀다.
“엄마.”
“엄마가 집에 데려다줄 거야.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녀가 아이의 손을 쥐었다. 숲 너머에는 마물의 울음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어쩌다 우리 아이가 이런 곳에 오게 된 건지 의문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래, 리온 성으로 가자. 여긴 무서운 괴물이 많아.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엄마, 나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안 돼!”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릴 정도의 고성이었다. 수련을 거듭한 무사의 고함이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제 딸 앞에서는 한 번도 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그녀였으나, 이제 그런 분별력도 사라진 듯했다. 어느새 아이리아의 눈은 핏발이 모조리 서서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아무 데도 못 가! 너는 내가 지켜!”
아이리아는 막무가내로 키네미아를 끌어안았다. 제 품이 아니고는 그 어떤 곳에도 갈 수 없도록.
어린 키네미아가 아이리아의 앞을 막아서던 그날처럼.
* * *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왔단다. 널 소개시켜 주고 싶어.”
요제프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
에이얀은 눈을 내리깔고 이전의 일들을 기억해 냈다.
그는 생전에도 제 영향력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지인들을 자주 초대했었다.
그럴 때면 에이얀은 쥐 죽은 듯 방 안에 숨어 있어야 했다. 어쩌다 방 바깥에 나와 지인들을 마주할 때면 요제프는 새파랗게 질려서 어서 방으로 돌아가라고 반복해 말했다.
아이가 무서워 억지로 방 안에 집어넣지도 못하고, 겁에 질린 채로 비는 듯이 그렇게.
지금처럼 즐겁게 제 손을 잡고 이끄는 일은 결코 없었다.
에이얀은 인형처럼 요제프가 이끄는 대로 얌전히 움직였다. 아버지를 만난 이후로 다시 어린아이가 된 에이얀의 뇌리에 마법은 더욱더 깊게 침투해 갔다.
따라 움직이면 안 되는데. 돌아가야 하는데.
그런데 대체 어디로?
알 수 없다. 무언가 생각을 틀어막는 듯 머릿속이 새카맣게 물든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제 손을 잡은 요제프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잠시 제 팔이 어둠에 잠식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가 나타나길 반복했는데.
착각일까?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엄마에게 가만히 안겨 있는 사이에 뻣뻣하게 긴장했던 몸이 이완됐다.
엄마는 나를 두고 가는 게 이렇게 힘들었겠구나. 이렇게나 늦게 그녀의 입장을 헤아리게 된다.
키네미아는 시체를 보존하는 약품 냄새 사이에서 엄마의 냄새를 찾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켰다.
“엄마 머리, 내가 땋아 줄래.”
이전처럼 보채자 아이리아가 잠자코 등을 보여 주었다.
키네미아는 제 머리를 묶고 있던 머리끈을 풀어 손목에 감았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생기를 잃은 지푸라기같이 거칠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진짜 엄마니까.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나누어 잡아 양옆으로 움직이며 능숙하게 땋아 올렸다.
아이리아는 몸을 흔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제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어 점점 힘이 든다.
빨리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잠시만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심을 이기지 못했다.
“이제 땋는 것도 잘하네.”
예전에는 손이 작아 땋는 흉내만 내곤 했었다. 아이리아는 네 손이 이렇게 작았다면서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보여 주었다.
키네미아가 자그맣게 웃었다.
“엄마, 나 이제는 할 수 있는 게 많아.”
“그렇구나.”
“엄마가 가르쳐 준 검술도 열심히 수련했어. 아까도 봤지?”
“그럼. 엄마는 미아가 잘할 줄 알았어.”
“친구도 사귀고.”
“정말 잘됐다.”
“그리고-”
키네미아가 아이리아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좋,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고.”
“……그러니?”
“응. 그런데 지금 그 애는 내가 없으면 안 돼.”
“……!”
아이리아는 보낼 수 없다고 소리를 지르려던 본능을 참아 냈다. 아이를 위해 보낼 수 없다는 건지, 이지를 잃은 시체에게 남은 이유 모를 분노일 뿐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집에 갈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엄마가 노력하면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하지만 아이는 저를 놓고 떠나던 제 마지막 기술을 시전했다.
“이제 내 차례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러 가야 해.”
아이리아에게서 힘이 쭉 빠졌다. 그녀는 두 팔로 땅을 짚어 몸을 돌려 앉았다.
어느새 딸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작은 아이가 아니라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큰 거지, 내 딸은.
무척이나 사랑하던 제 아빠를 닮아 아주 아름다웠다. 그녀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비볐다.
이미 죽어 버린 몸으로는 제 딸의 온기도, 살결도 느낄 수가 없다. 그래도 한 번쯤은 신의 실수가 찾아오지 않을까 자꾸만 품에 안고 숨을 들이켜고 만지길 반복했다.
아, 아쉽다. 크는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보고 싶었는데.
아이의 빠진 치아를 보석함에 넣어 진열하고 싶었다. 친구를 초대하는 첫 생일 파티에는 리본이 잔뜩 달린 드레스를 입히고 싶었다.
얼마나 예뻤을까.
매일 품 안에 넣고 애지중지 지켜 주고 싶었는데.
어느새 언덕 아래를 지나는 발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일사불란하게 열을 맞추어 이족 보행으로 걷는 짐승들은 마물 군단이었다. 긴 귀를 가진 검은 이리 형태를 한 그들은 모르간에 침입한 전열의 후방을 공격하기 위해 창을 들고 몰려오고 있었다.
이를 본 아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이제는 가야 해. 친구들이 위험해.”
“…….”
다급한 얼굴에서 그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엄마가 없는 사이에도 아이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의무에서 도망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때 다시 머리가 조여 오고 눈앞이 붉어졌다.
아이리아가 일어섰다. 아쉬움은 접어 두기로 했다. 그저 자신이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여기에 있어, 미아. 절대 나오지 말고.”
그녀의 양손에 오러가 흘러나왔다.
“엄마가 길을 낼 테니, 너는 그대로 친구들한테 돌아가는 거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리아가 단숨에 언덕 아래로 쏘아져 내려갔다.
“……!”
키네미아는 그날 처음으로 체감했다. 한 번도 눈으로 직접 본 적 없었던 영웅의 실력을.
무기 하나 쥐지 않은 채로 적을 도륙하는 압도적인 무력을.
오랫동안 기려지던 제국의 영웅이 한 부대의 마물 군단을 전멸시키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피를 한껏 뒤집어쓴 그녀가 삐걱거리며 아이에게로 다가왔다.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키네미아는 아이리아의 이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키네미아가 왼팔의 소매를 걷어 가느다란 팔목을 내밀었다.
팔 하나쯤은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
검을 쥐는 것은 오른팔 하나로 충분할 테니까.
휘청거리며 다가온 아이리아는 아이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죽어 버린 후각에서 아주 맛있어 보이는 달콤한 냄새가 흐르는 착각이 든다.
침을 삼키듯 목울대가 움직였다.
‘여기까진가.’
아이리아가 눈을 감았다. 꼭 집에 데려다주고 싶었는데. 훌쩍 큰 아이는 너무나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
아이리아는 키네미아를 일으켜 세우고 등을 떠밀었다.
“돌아보지 말고 가.”
이제 나쁜 엄마는 퇴장할 차례였다. 오러가 깃든 손이 제 심장께를 파고들었다.
아이의 비명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이걸로 죽을 수 있을까. 그래야 하는데.
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어기고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신이시여, 제발.
죽는 순간조차 신에게 기대 본 적 없다. 그녀를 살리고 죽이는 것은 늘 손에 쥔 검뿐이었다. 그러나 끝의 끝을 앞두고 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이 사랑만은 남겨 주소서.
탁- 머릿속 전원이 꺼진 것처럼 캄캄해졌다.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내가 지이이이이이이이-”
그녀는 제 딸을 안고 점점 더 숨이 막히도록 옥죄었다.
비가 내리는 것처럼 이마 위로 엄마의 식은땀이 떨어졌다. 몸을 떨면서 왈칵왈칵 피를 토하는 것처럼 한 단어를 반복했다.
“지켜지켜지켜지켜지켜지켜지켜지켜-”
이지가 모두 사라져도 사랑 하나만은 남은 것처럼.
삐걱거리는 불규칙한 숨소리, 말라붙어 가는 살점.
품 안에서는 되살아난 자의 고통이 선연히 느껴졌다.
키네미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엄마, 나쁜 마법은 내가 풀어 줄게.”
엄마의 몸이 더 말라 갔다. 키네미아는 바짝 그러안은 품 사이에 틈이 생길까 허겁지겁 더 꽉 끌어안았다.
“나도 많이 사랑해.”
팟!
한순간 두 팔이 허공을 헤매며 자세가 무너졌다.
몸을 감쌌던 품이 먼지가 되어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