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7)
먼치킨 길들이기 97화
* * *
‘손잡기, 포옹, 그리고…….’
키네미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헛된 망상을 지워 낸 후에 방문을 노크했다.
똑똑.
대답이 없다.
“……?”
안에 없나? 잠시 기다리던 그녀가 달칵, 문을 연 순간이었다.
분명 빈 공간을 향해 발을 내디뎠는데, 바로 코앞에 나타난 인영 탓에 반사적으로 몸이 굳으며 발목이 삐끗 뒤틀렸다.
“아!”
균형을 잃은 몸이 기우뚱 뒤로 넘어갔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키네미아는 무의식중에 천장까지 쌓인 책더미를 짚었으나, 잡았던 책이 빠지면서 소용없게 되었다.
그때, 쓰러지려는 키네미아의 허리를 커다란 손이 잡았다. 에이얀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문설주를 잡은 채 키네미아를 받쳤다.
키네미아가 넘어지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에이얀이 작게 웃었다.
“안녕.”
어, 음.
어쩔 수 없이 에이얀의 품에 안기게 된 키네미아가 눈을 굴리던 그 순간이었다.
우르르, 책이 그들 위로 무너졌다.
반사적으로 움직인 에이얀이 키네미아를 몸으로 덮었다.
“…….”
“…….”
드물게 놀란 얼굴을 한 그가 나직이 물었다.
“……안 다쳤어?”
에이얀의 걱정 반, 당황 반이 담겨 여유가 사라진 표정을 보면서 키네미아는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안녕, 에이얀. 청소 좀 해.”
“……갑자기?”
“해야겠지?”
“네에.”
에이얀이 시무룩하게 대답하면서 키네미아를 안아 올렸다.
“엥.”
불시에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기게 되자, 당황한 키네미아가 두 주먹을 꼭 쥔 채 그를 응시했다.
“또 넘어질까 봐.”
주먹은 왜 그렇게 꽉 쥐고 있어. 에이얀은 목 안으로 웃음소리를 삼키며 손톱이 박히도록 꽉 쥔 그녀의 주먹을 폈다. 그러고는 다시 주먹을 쥐지 못하도록 엄지로 느릿하게 손바닥을 문질렀다.
살갗을 부드럽게 맴도는 손가락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 정도로 간지러웠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에이얀은 참 잘도 안네.’
가을 하늘 같은 체향, 단단하고 커다란 몸, 제게 향하는 부드러운 시선. 지난날과는 다르게 심장이 세차게 뛰었고 설렘과 동시에 불안함이 느껴졌다.
그는 키네미아가 깨지는 유리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침대에 앉혔다.
그녀가 간지러운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는 사이에 그는 마법을 사용해 쓰러진 책더미를 어딘가로 보냈다.
‘편리해 보이기는 한데, 대체 어디로 보내는 거지.’
키네미아는 문득 스치는 의문을 제쳐 두고 에이얀에게 물었다.
“어디 다녀왔어?”
“스승님께 다녀왔어. 사령술사들이 모이고 있다고 해서. 동향 파악 때문에.”
에이얀은 마법사들이 자신 때문에 앓아누웠다는 이야기는 쏙 빼낸 채 간단히 설명했다.
“아- 아까 보니까 하늘이 약간 심상치 않던데. 비 오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에이얀이 낮게 웃었다.
왜 웃지. 키네미아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왜?”
“귀여워서.”
“……무슨 뜻?”
키네미아의 의문이 더욱 짙어지자 에이얀은 눈을 접어 웃었다.
“네가 바라는 만큼 맑을 거란 뜻인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 생각하던 키네미아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마법으로 그런 것도 돼?”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호오오오. 그녀가 입을 벌렸다.
“왜. 반할 것 같아?”
짓궂은 질문에 키네미아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떨떠름하게 답했다.
“……조금?”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에이얀이 멈칫해 눈을 깜빡였다.
“잘 못 들었는데, 한 번만 더-”
“싫어.”
“한 번만-”
“싫어, 바보야.”
“너무하네.”
에이얀이 시무룩해진 채로 칭얼거리자, 키네미아가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도전적으로 그를 노려본 키네미아의 손이 슬그머니 에이얀의 손으로 향했다.
“……?”
에이얀은 의아해하면서도 키네미아의 손을 잡고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시험.”
“시험?”
“됐어. 가자.”
키네미아가 손을 쏙 빼냈다. 그에 에이얀이 빈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잠깐.”
“응?”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망토가 키네미아의 얼굴을 돌돌 감쌌다.
“이게 뭔데?”
“이대로 가자.”
“되겠어?”
키네미아가 망토를 풀려고 하자 에이얀이 다가와 그대로 끌어안았다.
“아, 안지 마!”
* * *
에이얀이 말한 대로였다. 걱정이 무색하게 하얀 구름 몇 개만이 파란 하늘 위를 느릿하게 움직였다.
새해를 맞이한 가게들은 예쁘게 단장한 채 늘어서 있었다. 키네미아는 에이얀과 함께 소담한 거리를 걸으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인형 가게와 장신구 가게를 지나던 키네미아에게 디저트 가판대의 상인이 사탕을 건넸다.
“예쁜 아가씨, 사탕 하나 받아요. 서비스.”
“아, 고마워요.”
키네미아가 웃으며 사탕을 받으려 하니 에이얀이 대신 사탕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키네미아와 상인 사이를 가로막은 채 상인에게 금화 하나를 던졌다.
“……?!”
얼결에 금화를 받고 놀란 상인을 두고 그가 키네미아의 어깨를 안고 등을 떠밀었다.
에이얀이 미는 대로 움직인 키네미아는 다시 얼굴에 망토를 감네, 마네 하는 사안으로 티격태격하며 상점가를 돌았다.
결국 에이얀에게서 사탕을 받아 낸 그녀는 달달한 사탕을 살살 녹이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에이얀의 마법으로 흐릿하던 날도 맑아진 덕에 거리를 걷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문득 지나치는 행인이 에이얀을 멍하니 응시했다. 키네미아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에이얀을 올려다보았다.
왠지 아까 상인 사이를 가로막았던 에이얀의 기분을 알 것도 같아서 기분이 뒤숭숭했다.
입을 꾹 다문 키네미아는 불쾌감을 떨쳐 내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에이얀.”
“응.”
“시간이 나면 가고 싶은 곳 있어?”
“여름 바다 축제.”
“바다 축제?”
“네가 가자고 했잖아. 그 섬에.”
“아, 맞아!”
마탑으로 떠나기 전에 같이 가기로 약속했었지. 어른들만 몰래 가는 그 섬. 그게 몇 살 적 얘기인데 아직도 그걸 기억하네. 묘하게 가슴이 몽글몽글해진 기분에 키네미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 들었어. 그 섬 있잖아, 커플들이 간대.”
“커플들이 왜?”
“왜겠어. 사람 없고 으슥한 곳이니까.”
그녀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고 그런 거 있잖아.”
“그렇고 그런 게 뭔데?”
엥. 키네미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모, 모른 척하지 마!”
그러나 에이얀은 순진한 척 가증스럽게 고개를 갸웃 기울일 뿐이었다.
“뭘?”
이 자식! 나만 발랑 까진 사람 만들고 혼자 순진한 척을 해? 이 나쁜 놈.
“뭔데? 응?”
“아, 나중에 알려 줄게……. 20살 되면…….”
픽,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낸 에이얀이 잔뜩 찌푸린 키네미아의 미간을 슬슬 문질렀다.
“기대된다. 20살.”
“죽일 거야, 너. 20살 되기 전에.”
“왜에에에-”
얼굴이 달아오른 키네미아가 무섭게 으름장을 놓자 에이얀이 칭얼거리며 달라붙었다.
결국 그녀가 매섭게 에이얀을 떼어 낸 후에야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둘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게를 돌았다.
키네미아는 이걸 꼭 해 보고 싶었다면서, 한 의상실에 들어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주세요.’라고 해서 상인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에이얀은 인형 가게 안에서 마법으로 인형을 늘어세우고 키네미아 주위를 뱅뱅 돌게 해서 시선을 끄는 바람에 후다닥 도망쳐 나오기도 했다.
이것저것 사들인 물품들은 에이얀에 의해 대공 성으로 바로 배송됐다.
아직 겨울이 채 지나지 않아 거리는 금방 으슥해졌다. 키네미아는 하나둘씩 닫는 가게를 바라보다 에이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에이얀, 싫어하는 건?”
“어두운 곳.”
“진짜? 의외다.”
“네가 싫어하잖아.”
“어떻게 알았어?!”
조금만 어두우면 벽에 붙어 다니는데 어떻게 모르냐면서 에이얀이 웃었다. 그가 어둑해지는 거리에 반딧불처럼 작은 광구를 띄우자 지나던 행인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럼 좋아하는 노래는?”
“음…….”
줄곧 이것저것 잘 대답하던 에이얀이 고민하며 말을 줄였다.
“글쎄.”
“없어?”
하긴. 노래를 흥얼거리는 에이얀이라니, 상상이 안 가네.
“아니, 네가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 몰라서.”
순간 키네미아가 입을 벌렸다.
‘지금까지 다 내 얘기였어?’
와락 얼굴을 구긴 그녀가 어물어물하던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에이얀이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다음 질문.”
“응?”
“이제 궁금한 거 없어?”
눈을 아래로 내리깐 키네미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에이얀은 막다른 길목 앞으로 재빠르게 걸어 나가는 키네미아의 이마를 손으로 막았다.
“……?”
“미아, 이제 길이 끊겼는데.”
“아.”
키네미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사위가 완전히 어둠에 잠긴 가운데, 그들이 지나온 길만 에이얀이 밝힌 광구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예쁘네.’
그러고 보니 날이 어두워지면 그는 늘 자연스레 빛으로 주위를 밝혔다.
“네가 싫어하잖아.”
다 알고 그런 거구나. 눈을 내리깐 키네미아가 볼을 문질렀다.
“이제 돌아갈까?”
에이얀이 묻자 주먹을 꼭 쥔 그녀가 에이얀을 올려다보았다.
“에이얀.”
그가 다시 낮게 웃으며 손을 잡아 왔다.
“또 그렇게 쥐네.”
키네미아는 제 손바닥을 문지르는 엄지를 쥐었다.
“에이얀.”
“응?”
“눈 감아 봐.”
키네미아는 의아해하는 에이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시험해 볼 게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