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30)
EP.331)# 4
331 – 시간문제 # 4
아이라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무시무시한 게 도사리고 있다.
굴을 파놓고.
그물을 쳐 놓은 채 먹잇감을 노리는 잠복자.
녀석의 존재를 확신한 것은 일찍이 아이라의 내면을 유영했을 때였다.
여러 일들을 겪어 오랜 수면에 빠진 여왕.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내면세계로 뛰어들었던 나는 그곳을 탈출하기에 앞서서 그 괴물 같은 존재와 마주쳤었다.
당장은 탈출하는 데에 급급해서 녀석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만. 지금에 와서 천천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이라의 마음을 좀먹고 있는 그늘 그 자체였다.
아이라의 강렬한 마법 실력도.
이따금 보이는 광기의 발현도 모두 녀석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아이라의 마음속을 헤집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 녀석을 쓰러트리면 무적처럼 보이는 아이라 님의 현 실력에 구멍 하나 정도는 뚫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내 설명에 엘가는 새끼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썹을 슥슥 긁었다.
“그러니까, 내가 설명을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아이라의 마음속에 괴물 같은 게 있다는 거지? 이런 이야기.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엘가가 말끝을 흐릴 때 내 설명을 잠잠히 듣고 있었던 미르나가 입을 연다.
“마치 솔로몬의 대주술 같군요. 사람의 마음을 좀 먹어 망가뜨리는 괴물이라니. 어쩌면 저희가 찾고 있었던 대주술의 하나가 아이라 여왕에게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발란 교수의 일을 겪었기 때문인지 미르나의 사고는 제법 유연하면서도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간단한 설명만을 듣고 내가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깨닫다니.
나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이라의 내면에 깃든 것이 솔로몬의 잔재이리라 추측했다.
그것이라면 아이라가 보이는 비정상적 마법 실력과 어딘가 망가진 것 같은 인격의 문제 등이 쉽게 설명이 되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다만 엘가는 궁금한 게 있는 듯했다.
“대체 아이라의 몸속에 솔로몬의 대주술이 있을 이유가 뭔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런 이야기. 잘 믿겨지지 않아.”
확실히.
어째서 그 강대한 대주술 중 하나가 아이라의 몸속에 있냐 묻는다면 현재의 나로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설명을 해내자면 이것이다.
“마왕의 토벌 이후, 오팔은 무언가를 두려워하여 영생을 추구했습니다. 리오네스 가는 비정상적으로 군비를 늘렸죠. 또 드레이코 가는….”
말을 흐린 나와 눈이 마주친 미르나.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살며시 눈을 감았다.
“드레이코 가는 마왕 토벌 이후 금기인 반혼술에 매달렸어요. 덕분에 저와 나르미라는 기형적 쌍둥이가 태어날 수 있었던 거죠.”
미르나와 나르미.
두 자매가 하나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인위적 금기주술의 증거였다. 일부러 나르미의 영혼을 미르나의 몸속에 집어넣었다고 봐도 좋다.
어째서 드레이코 가문이 그런 일을 벌였느냐 누가 묻는다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더 큰 힘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마왕 토벌에 참여 했었던 유다스 드레이코 역시, 오팔과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게 아닌가 생각 듭니다.”
오팔은 최후에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다.
마왕의 토벌은 실패로 끝이 났고, 자신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물론 우리들은 그것을 노망이 들은 오팔의 망념이라 치부했다만.
그들의 말대로 마왕 솔로몬의 토벌은 실패 혹은 그와 비슷한 상황으로 임시적 종결이 났고.
다음에 있을 또 한 번의 커다란 혼란을 대비하기 위해 그 영웅들이 하나 둘 대비를 갖추어 나갔다고 한다면 충분히 입장의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있었던 타란테라 가문도, 분명 모든 현상을 목도했었을 겁니다. 그리고 다른 자들이 여러모로 노력했던 것처럼 힘을 증강시키기 위해 노력했겠죠.”
이 정도면 설명은 다 끝났겠지.
엘가 또한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힘을 위해 솔로몬의 대주술에 손을 뻗었다…? 들어보니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는 하네. 타란테라의 마녀들이라면 그런 일을 하고도 남긴 하지.”
그때 미르나가 이야기에 끼어든다.
“혹시 그렇다면, 타란테라 왕가의 사람들이 비극적 죽음을 겪었던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르스 노바들은 늘 죽음을 몰고 다니죠.”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혼돈과 동요를 불러일으키니까.
그 동요를 틈타 숙주를 빼앗기 위해 아르스 노바들은 삶을 절망으로 뒤 흔든다. 어쩌면 미르나의 말대로 아이라가 가족을 잃은 건 아이라 내면의 그림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거지같은 이야기네. 혹시 아이라도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냐?”
엘가의 물음에 나는 아이라가 있을 연회장을 슬쩍 바라봤다.
“저도 잘 모릅니다. 알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아마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전혀 모르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죠.”
아이라는 내게 비밀로 하는 것들이 은근히 많았다.
내게 말해주지 않는 이야기들.
나 역시 비밀로 하는 것들이 꽤 있었으니 서로 닮은꼴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짝.
나는 일단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박수를 쳤다.
“아무튼. 그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놈을 처리하려면, 저 또한 아이라 님의 내면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저 혼자서 놈을 감당하는 건 솔직히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료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엘가와 미르나라면, 또 스텔라나 나르미를 잘 포섭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태오 경, 솔직히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미르나의 신중한 말에 엘가가 발끈한다.
“생각하고 자시고가 뭐 있어? 그런 괴물이 안에 있으면. 한 시라도 빨리 빼내야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대주술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보통 두 가지 방법이 꼽혀요.”
슥.
미르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당사자의 내면세계에 진입하거나. 아니면 심층의식 깊숙이 잠든 녀석을 표면까지 끌어올려 쓰러트리는 거죠. 일단 저희가 상대한 발란 교수는 후자에 속했어요.”
미르나는 대주술에 대해 꽤 연구를 한 듯이 보였다. 자신의 가문을 멸망하게 만든 원흉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덕분에 나는 몹시도 미안해졌다.
드레이코 가문에 큰 상처를 준 발란 교수는 지금 내 부하로서 있었으니까.
미르나가 계속해서 말했다.
“후자의 방법은 솔직히 말해서 최후의 것이에요. 숙주가 주술에 완전히 잠식되어서 하나로 융합하는 단계가 되거든요. 아이라 여왕이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 거에요.”
“그럼 그 내면 세계인지 뭔지로 들어가서 괴물을 상대하는 방법밖에 없겠네.”
“그렇죠. 하지만 그건 나비가 거미줄에 발을 딛는 것보다 힘든 일이 될 수 있어요. 녀석의 주무대로 진입하는 꼴이니까. 그곳에서 패배하면….”
미르나는 그것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 * *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하루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막 점심을 먹고 이것저것 이야기 한 것 같았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어둑어둑 저물어서 높은 하늘 위에 달이 걸려 있다.
오늘 아이라가 나와 할 이야기가 있다고 밤에 불렀던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감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의지해야 했다.
지금이 오후 여덟 시.
잘 쳐줘도 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한 아홉 시 정도에 가면 되려나?
그렇다면 한 시간 정도 붕 뜬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가장 알차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명상이라도 할까. 좋은 명상 자리를 찾기 위해 산도라 시청의 정원으로 나서 본다.
이제 슬슬 여름이 저물어가는 시간.
북부의 가을은 제법 쌀쌀하기 때문인지 입김이 나온다.
그런가.
어느덧 더위도 끝났구나.
그런 사색에 잠기며 산도라 시청의 정원을 거닐고 있던 나는, 저기 벤치에 앉아 있는 여성을 발견했다.
“엘가 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보면 몰라? 월광욕하잖아.”
“월광욕요?”
“가끔 이렇게 달빛을 받아주면 태교에 좋다고 하더라. 진짜 효과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해봐서 나쁠 것도 없을 거 같아서.”
슥.
나는 엘가의 옆자리에 앉았다. 엘가의 체온은 제법 높은 편이기 때문에 이렇게 옆에 앉는 것만으로도 화악 열기가 끼쳐온다.
인간 난로인가.
확실히.
엘가의 뜨거운 몸에는 서늘한 달빛을 받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느낌으로 우리 둘은 함께 앉아 달빛을 쐬었다.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 무엇을 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냥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고 이 침묵의 시간이 의외로 낯설고 기분이 좋다.
흘끔.
그 조용한 침묵 속에서 나는 엘가를 살짝 훔쳐봤다.
선이 굵은 얼굴. 오똑한 콧날과 영롱하게 보일 정도로 푸르른 눈동자.
의외로 속눈썹은 가늘고 길다. 또 어딘가 우수에 젖은 표정은 무척 색기가 넘쳐서 무심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엘가가 원래 이렇게 여성스러웠던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잠시.
엘가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야, 그렇게 도둑놈처럼 흘끔흘끔 보지 말고. 그냥 봐.”
“그래도 됩니까?”
내 물음에 엘가는 볼을 긁었다.
“그래, 너는 내 남편이잖아.”
남편인가.
그 낯선 울림에 나는 어딘가 흥분되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이상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사실 우리는 부부가 맞았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전부 했으니까.
새삼스러운 감정에 볼을 긁고 있자니 엘가가 가느다란 눈을 뜨며 날 바라봤다.
“그래서, 너도 만져보고 싶어?”
“그래도 되나요?”
“그래. 일일이 허락해주는 것도 귀찮아.”
엘가의 허락에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사실 오늘 엘가를 만났을 때부터 손을 한 번 가져다 대 보고 싶었다. 다만 그녀의 허락이 없어서 참고 있었을 뿐.
그렇게 조심스럽게 뻗어진 나의 손이 엘가의 배에 닿았다. 하늘하늘한 옷에 가려져 있어서 티가 잘 나지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 볼륨이 있다.
생명의 무게만큼의 볼륨.
이 너머에 나와 엘가의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어쩐지 기분이 오묘하다. 또 본격적으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태어나는 것이구나.
날 닮았을까. 아니면 엘가를 닮았을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엘가를 닮아서 건강하고 진취적인 아이가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꿍꿍이.
레오노르.
레오노이.
아무래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나와라.
“그렇게 좋아?”
그때 엘가의 물음에 나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멋쩍어하고 있으려니 엘가가 몇 마디 덧붙인다.
“아니, 네가 그런 얼굴을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서.”
“제가 어떤 얼굴을 했는데요.”
“몰라. 질투 나겠어, 정말.”
“엘가 님도 질투를 하나요?”
“몰랐어? 그냥 아닌 척 하는 것뿐이지. 그러니까 내 앞에서는 행동에 조심해.”
그런가.
엘가는 질투심이 강하구나.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다.
엘가는 어린 아이 같은 면이 있어서,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건 손에 꼭 쥐고 놓질 않아야 직성이 풀리는 면이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내 눈에 난 흉터가 그 증거다.
그런 질투심 많은 여성이 여러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하렘을 인정해주고, 그것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제법 굉장하다.
만약 반대였으면 가능했을까?
만약 엘가가 다른 남자들을 잔뜩 데려와서 “앞으로 네 가족들이 될 남자야. 이 녀석은 월요일 남편. 얘는 수요일 남편─.”같이 설명한다면 나는 가능할까?
엘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침실에 들어가는 걸 상상해보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 거 용납 못해.
그 분노의 발로로, 나는 천천히 손을 올려 엘가의 가슴을 만졌다.
말캉.
얇은 옷에 감싸여 있지만 그 보드랍고 말랑말랑하면서 따뜻한 감촉은 숨길 수가 없다. 예전보다 더 커진 느낌이네.
“…읏, 갑자기, 무슨 생각이야?”
“반대였다면, 저는 엘가 님을 다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을 겁니다.”
“반대? 아으, 무슨 말을…. 이, 이 손 놔 봐. 여기 사람 올 수도 있어…! 앙…!”
“이 가슴도 목소리도 전부 다 제 것이에요. 아시겠나요?”
“알긴, 뭘…, 하아, 아응, 알았어. 알았으니까 놔 봐…!”
“이게 누구 꺼라구요?”
“너, 진짜 미친놈 같아….”
엘가는 오들오들 떨었다.
하지만 나는 엘가가 은근히 이 상황에 흥분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목덜미에서 풍겨오는 야릇한 땀 냄새란 숨길 수 없는 법이니까.
“네 꺼야, 네 꺼. 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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