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145)
그러고 보니 갑자기 린샤오밍이 S급 헌터들을 내 신도로 만들었다는 메시지가 뜨긴 했다.
태양신과 맞설 때 신력이 없어 허덕이던 내게 큰 도움이 됐었지.
사실 그런 걸 시킨 기억은 희미했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니 분리되었던 악신 놈이 시켰던 것 같기도 한데.
“고맙습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됐어요.”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린샤오밍이 얼굴을 붉히며 몽롱한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아아, 린매가 고귀하신 분께 도움이 되었다니 감동이에요~!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군요.”
쿵쾅쿵쾅!
나 또한 남자인지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이성과 밀폐된 방에 있는 상황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런 내 심장 소리를 듣듯 린샤오밍의 뾰족한 귀가 살짝 움직였다.
그녀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날 향해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신이시여, 혹시 욕정이 생기셨다면 절 사용하셔도 됩니다만?”
나는 그녀에게 시선을 획 돌리며 소리쳤다.
“사용하긴 뭘 사용해요! 이, 일단 옷부터 입어요. 좀! 대체 왜 옷은 벗고 있는 거야!”
“이렇게 있어야 나중에 뒤처리하기 좋으니까요.”
“네? 뒤처리라니 지금 그게 무슨 말······?”
“아직 검신 님께서 내려 주신 임무가 끝나지 않았거든요.”
린샤오밍이 생긋 웃으며 머리를 묶고 있던 비녀를 뽑았다.
샤라락. 흑단처럼 치렁거리는 머리칼이 눈처럼 새하얀 그녀의 몸을 뒤덮는다.
“린매, 마지막으로 검신 님의 존안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었으니 이제 여한은 없어요.”
“네?”
“부디 만수무강하오소서.”
쉬익!
마치 유언 같은 말을 내뱉은 린샤오밍이 손에 쥔 옥비녀를 치켜들었다.
푸욱!
비녀의 날카로운 끝이 송곳처럼 살과 뼈를 파고들었다.
“미, 미쳤어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돌발 행동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방금 린샤오밍은 스스로 목의 경동맥을 찔러 자살하려 했다.
한편 린샤오밍은 내 손에 박혀 있는 자신의 비녀를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바닥에 머리를 쾅 박으며 엎드렸다.
“리, 린매는 검신 님의 명령에 따라서 자결하려 했습니다. 가, 감히 검신 님의 옥체에 상처를 내다니 죽여 주십시오······.”
‘내가 자결하라고······ 했다고?’
그 순간, 마치 그것이 키워드라도 된양 어떤 기억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내 분신, 바로 악신 유일신이 중국 삼협회의 본단에서 저지른 일이.
그때의 ‘나’는 단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싸워 죽이라고 명령했다.
-지금부터 단 1마리가 남을 때까지 서로 죽여라.
강제로 신도로 삼은 삼협회의 잔당을 서로 죽이라고 명령했던 분신.
“으아아악! 죽어!”
“살아남는 건 나다!”
수천 명의 무인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지옥 같은 광경.
서걱! 으드득! 콰직!
검에 베인 사지가 허공을 날고, 피와 살점이 사방에 튀었다.
그곳에 정당한 무인의 대결은 없다.
피 튀기며 대결을 벌이는 자들에게 은밀히 접근해 등에 칼을 꽂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죽고 죽이는 아귀지옥이 벌어지고 3시간 후.
마침내 결국 단 1명이 남았다.
“역시 네가 남았군, 린샤오밍.”
“하아, 하아악······.”
최후에 남은 것은 린샤오밍이었지만, 그녀 또한 온전치는 않았다.
엎드린 채 가쁜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몸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내렸다.
그렇게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린샤오밍을 향해 분신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명령했다.
“너는 지금부터 삼협회의 잔당과 놈들과 연관이 있는 중국의 S급 헌터들을 내 신도로 포섭해라. 만약 거스른다면 모두 죽여도 좋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너는.”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악신의 눈빛이 덜덜 떠는 린샤오밍을 담았다.
“‘자살해라.’”
악신의 언령이 린샤오밍의 뇌리에 낙인처럼 박혔다.
린샤오밍은 공포와 희열이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아, 존명! 그것이 검신 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죽겠나이다!”
시바, 떠올랐다.
죽으라는 놈이나 좋다고 죽겠다고 하는 년이나 똑같은 놈들이다.
아, 그런데 죽으라는 놈은 나였구나.
분신이 한 말이지만 결국 놈도 나니까 누워서 침 뱉기다.
“아무튼 자살하라는 거 취소예요! 그러니까 다시는 죽을 생각 말아요! 특히 내 눈앞에서는 절대! 알겠어요?”
“조, 존명······.”
한때는 린샤오밍을 죽여 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제자인 허저를 죽이고 내 목숨까지 노린 미친 살인귀였으니까.
하지만, 허저를 되살린 지금 그 감정은 많이 퇴색되었다.
게다가 쓸데없이 좋은 내 눈은 린샤오밍이 약육강식의 삼협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는지 보았다.
물론 그것이 그녀가 지금까지 벌인 죄를 덮는 것은 아니지만, 내 명령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자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으.”
나는 일단 손에 박힌 비녀를 뽑았다.
뿅!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손에 조그마한 구멍이 생겼다.
아악! 피 난다! 게다가 쓰라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손이 나가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아프다.
치유 능력으로 치료하고 싶기도 했지만, 보통 사람이면 1Gcoin면 되는 게 신인 나는 기본 천만 코인부터 시작하기에 좀 부담됐다.
밴드가 어디 있더라?
“아아, 저 때문에 검신 님의 귀한 옥체에 상처가······.”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귀 린샤오밍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내 손을 꼬옥 붙잡더니 상처를 혀로 핥았다.
할짝, 할짝.
내 얼굴이 불난 것처럼 화끈 달아올랐다. 난 불에 덴 것처럼 그녀의 혀에서 황급히 손을 빼고 소리쳤다.
“나, 난 괜찮으니까 빨리 옷이나 입고 돌아가요! 당장!”
너무나 위험한 여자다. 이대로 같이 있으면 내가 이성을 잃을지도 몰라!
“······존명.”
린샤오밍이 축 어깨를 늘어뜨린 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녀의 나신이 붉은 차파오로 가려지는 것을 보며 나는 시원섭섭한 기분을 느꼈다.
린샤오밍이 내게 절하며 붉은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그럼 검신 님, 린매는 명령대로 물러가겠습니다. 혹여 나중에라도 제게 내려 주실 명령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소서.”
자살하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삶의 목표를 잃은 사람처럼 허무해 보이기까지 했다.
축 등을 늘어뜨린 채 밖으로 나가는 린샤오밍의 모습을 보니 불안감이 차올랐다.
악신 놈이 내린 언령이 혹시 남아 있는 건 아니겠지? 혹시 저렇게 나가서 확 자살해 버리면 어쩌지?
“저기, 린샤오밍 씨.”
“네? 혹시 내릴 명령이 있으신가요?”
내가 불러 세우자 우울해 보이던 린샤오밍의 얼굴에 조금 화색이 돌았다.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오늘 한 끼도 안 먹었거든요.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나는 냉장고에 붙어 있는 내 단골집, 가화만사성의 쿠폰을 하나씩 뗐다.
열 장이면 탕수육을, 열다섯 장이면 무려 탕수육 대자를 시킬 수 있는 타노스의 건틀렛 같은 비장의 쿠폰 세트가 마침 완성되었다.
“밥이나 먹고 갈래요?”
* * *
우물우물, 꿀꺽!
“하와와!”
달콤한 소스가 잔뜩 묻은 탕수육을 삼킨 선인장 소녀가 별빛처럼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용사님! 너무 맛있는 거시와요!”
일호가 소스가 묻은 손을 핥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껄껄껄! 당연하지!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우리 유일신 님께서 내려 주시는 음식은 모두 천상의 맛이라오! 많이 드시오!”
선인장 소녀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허겁지겁 탕수육을 삼켰다.
용사의 탑 42층, 워터니아.
휘이잉.
그곳에 바람이 불었다.
메마른 사막의 모래 바람과는 달리 숲의 향기를 가득 머금은 싱그러운 바람이다.
쏴아아아!
푸른 나뭇잎이 수해처럼 물결치는 모습을 보며 선인장 소녀가 감격한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하와와와!”
한때 태양신과 그의 권속의 습격으로 사막으로 변했던 워터니아지만, 일호와 선인장 소녀의 활약으로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이게 다 용사님 덕분이어요!”
일호가 우람한 가슴을 내밀며 겸양했다.
“내가 한 것은 없소. 이것은 다 유일신 님께서 내려 주신 근육의 은총이니 그분께 감사하도록 하시오.”
“넹, 유일신 님 감사드리와요! 또 탕수육도 감사드리와요!”
“어허, 그게 아니오. 자, 따라 하시오.”
일호가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이 불끈거리는 양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위대하고 자비로운 우리 유일신 님의 은총을 찬양할지어다! 유일신 님 시바시바!”
“유, 유일신 님 시바시바? 이렇게 하면 돼와요?”
“껄껄껄! 그렇소! 자세가 나오는구려.”
호탕하게 웃던 일호가 자신의 배낭을 등에 멨다.
“그럼 난 이만 떠나야겠소.”
“하와와! 버, 벌써 가시려고요? 좀 더 쉬시지 않고요.”
일호가 고개를 저었다.
“난 한시라도 빨리 이 탑을 정복하여 용사가 되어야 하오. 게다가.”
그가 불굴의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먼 하늘을 응시했다.
“내 형제가 나를 따라 탑을 오르는 것이 느껴지오. 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속도. 부족의 대전사이자 형으로서 그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좀 더 강해져야하지 않겠소?”
선인장 소녀가 투지를 불태우는 일호를 멍하니 보더니,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용사님, 이것을 받아 주시와요.”
“응? 이것은 무엇이오?”
선인장 소녀의 손에 있는 것은 푸른 물결이 신비롭게 일렁이는 물방울이었다.
“물의 여신 ‘만물에 순환하는 자’ 님의 정수가 담긴 신수이와요. 용사님의 여정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어요.”
“오오, 고맙소! 감사히 받겠소이다!”
스스스슥.
일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푸른 물방울이 그의 근육질 육체에 스며들었다.
동시에 그의 오른쪽 주먹에 푸른 물방울 모양의 문신이 새겨졌다.
띠링!
-축하한다. 용사의 탑 42층 ‘시공의 시련 워터니아’를 클리어했다.
-보상으로 ‘물의 축복’을 얻었다.
-물의 축복 : 용사여, 그대는 어떤 상황에도 목마르지 않으리라!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일호가 시험 삼아 문신이 새겨진 오른쪽 주먹에 힘을 슬며시 주자, 문양이 번쩍 빛나더니 그의 앞에 상쾌한 느낌을 주는 물방울이 생겨났다.
“오옷!”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으로 그것을 보던 일호가 물방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맛을 본 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참으로 시원하고 맑은 물이오! 고맙소! 큰 도움이 되겠구려!”
사막을 헤맬 때 물이 없어 개고생했던 시절도 있었던 일호기에 이것은 아주 큰 선물이었다.
선인장 소녀가 말했다.
“비록 지금은 보통의 물밖에 만들 수 없지만, 용사님께서 성장하실수록 그 안에 신비로운 효과가 부가될 것이와요.”
“오오오! 어떤 효과가 부가되오?”
“후훗, 그것은 용사님이 하기에 달렸사와요.”
선인장 소녀가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의 그녀는 마치 화신이 아니라, 마치 물의 여신과도 같은 미소였다.
스스스······.
시련을 끝마친 일호의 몸이 흐릿해지며 다음 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용사님, 그럼 무운을 빌겠사와요.”
“고맙소,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만납······.”
슈욱!
채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일호가 사라졌다.
용사의 탑을 오르는 용사답게 또 다른 세상을 구하러 간 것이다.
선인장 소녀, 아니 물의 여신이 일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부디 이번 생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시기를. 용사님.”
신의 제전(祭戰)
헌터 협회 회의실.
협회장 이지태가 심각한 얼굴로 회의실에 참석한 이들에게 말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작금의 사태가 매우 심각합니다.”
최근 한두 달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졌다.
폐허 도시에 발생한 기괴한 균열부터, SS급 괴물의 헌터 아카데미 습격, 그리고 불과 일주일 전에는 SSS급 균열이 발생하며 불사조 모습을 한 괴물이 서울 하늘에 나타나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
별 피해 없이 불사조가 물러났기에 망정이지, 그것이 만약 강림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어쩌면 제2의 나락용 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협회장이 주름으로 가득한 이마를 어루만졌다.
“점점 여론이 악화되고 있어요. 심지어 협회의 무능을 성토하는 집회도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확실히 미라클 님의 공백이 크군요.”
대한민국 최고의 예지 능력자 미라클 이미래. 그녀가 현역으로 활동했을 때는 게이트와 던전의 발생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예지했다.
그런 그녀조차 나락용의 강림을 예지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프로젝트를 앞당겨야겠소. 이제 두 달 후면 HW 대회도 시작이니 이번에야말로 상위 성적을 거둬 여론을 반전시켜 봅시다.”
헌터 워(Hunter-War).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제 대회로 각국의 헌터들이 그 실력을 겨루는 장이다. 시국이 이런지라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그 열기가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