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88)
하지만 그녀는 그저 멍하니 선 채 공격을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활통이 텅 비어 있었다.
일호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 자신의 몸에 박힌 화살들을 뽑아 그녀에게 던졌다.
“쓰시오.”
엘프 궁수 좀비는 자신의 발치에 떨어진 화살들을 보다 그중 단 하나만을 집어 들었다.
일호를 무시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 하나로 충분했을테니까.
그녀가 자신의 황금 활시위에 하나의 화살을 걸었다.
끼기기기기기긱!
콰아아아아!
죽은 자에게서는 나올 수 없을 성스러운 황금 광휘가 엘프 궁수 좀비의 활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츠츠츠츠!
세상을 뒤덮을 기세의 광휘가 한 점으로 압축되며 활시위에 건 화살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나는 직감했다.
저것이 여태까지의 공격과는 차원이 다른 더없이 위험한 비기라는 것을.
비기가 완성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
하지만 일호는 그러지 않았다.
일호가 멍한 얼굴로 그 비기를 보더니 무엇을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압축과 집중······.”
파직! 파지직!
마침내 엘프 궁수 좀비의 비기가 완성됐다.
화르륵!
엄청난 광휘와 열기를 머금은 화살에 엘프 궁수 좀비의 몸도 불타고 있었다.
그것을 쓰는 자마저 파괴하는 기술.
일호가 근육이 살아있듯 꿈틀거리고 있는 양팔을 활짝 펼쳤다.
“오시오!”
파스스!
화살을 움켜쥔 엘프 궁수 좀비의 손이 마침내 잿더미로 변했다.
동시에 사슬에서 풀려난 도사견처럼 황금 화살이 일호의 미간을 향해 맹렬히 날아갔다.
“근유우우욱!!”
활짝 펼친 일호의 양손이 부딪쳤다.
번쩍!
짜아아악!!
눈부신 황금 광휘와 천둥성 같은 파열음은 마치 번개가 일호에게 직접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파직! 파지직!
하지만 번개는 합장한 일호의 양손에 목덜미를 움켜잡힌 채 멈춰 있었다.
치이익!
시커멓게 타들어 간 일호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그는 건재했다.
화살을 붙잡은 채 합장한 자세로 있던 일호가 불타는 엘프 궁수 좀비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고맙소. 덕분에 궁극의 근육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소.”
감사, 압도적 감사.
“당신의 가르침은 내 안에 영원히 함께할 것이오. 부디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에게 유일신님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내 기분 탓일까.
불타는 엘프 궁수 좀비의 입술에 미소가 어린 것 같았다.
파스스스.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는 엘프 궁수 좀비와 그녀의 파티들을 뒤로 한 채 일호가 걸음을 옮겼다.
[‘전설의 모험가 파티’ 의 의지가 일호에게 계승되었다.‘극한의 집중’을 손에 넣었다.]
일호의 약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쓰러뜨릴 수 없는 불사의 데스나이트와의 격전.
전처럼 내가 약점을 찾아 줄 필요도 없었다.
거대화한 아령검으로 일호는 단 일격에 데스나이트들을 산산조각 내버렸으니.
“용맹한 기사들이여, 그대들에게도 유일신님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파스스스!
[‘백룡 기사단’의 의지가 일호에게 계승되었다.‘필살의 일격’을 손에 넣었다.]
그 다음 단계인 미로 던전에서는 조금 막히긴 했지만.
“유일신께서는 말씀하셨다! 근육이 좋으면 머리가 편하다고! 근유우우욱!!”
쾅! 콰콰쾅!
아령검으로 미로를 통째로 때려 부수는 일호의 모습에 숨어 있던 흡혈귀들이 기겁하며 튀어나왔다.
일호는 당황하지 않고 모기 같은 흡혈귀들의 머리통을 무 뽑듯 뽑으며 돌진했다.
“이 혐오스런 모기놈들 ! 네 놈들에게 줄 유일신님의 가호는 없도다!”
끼에에엑!
부서진 미궁에서 처참하게 울려 퍼지는 흡혈귀들의 비명.
그리고 마침내 일호는 그를 녹여버렸던, 그 백골 드래곤이 있는 입구에까지 이르렀으니.
일호가 웅혼하게 외쳤다.
“나 일호가 돌아왔다! 뼈다귀 도마뱀 놈아! 다시 붙어보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 내 도움 없이도 여기까지 온 일호의 모습이 너무나 기특하고 멋있었다.
끼기기기긱!
나는 긴장하며 용이 새겨진 철문을 미는 일호를 응원했다.
‘힘내라, 일호야! 너는 할 수 있어!’
낄낄낄! 키히히히!
그때 다시 귀곡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짜증나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 지금 중요한 장면이잖아! 조용히 좀 해!”
하지만 도무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 없는 놈들이었다
-키히히히!
-이히히!
스르릉! 철컥!
어둠 속에 숨어있던 귀면탈을 쓴 괴인들이 내 목에 푸른 귀기가 어린 창칼을 겨누며 나를 포위했다.
내 눈이 그들을 감정했다.
띠링!
[고사득의 야차병]-네크로맨서 고사득이 일평생 모은 시귀 사역마들이다.
특이 사항 : 본래 납치 명령을 받았으나, 주인의 명령을 어기고 당신을 먹고 싶어 한다.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쭈?”
이것이 궁극의 근육! 초강체다!
91.
고사득은 청년 시절에는 박수무당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그의 영능은 워낙 유명해서 고위층에서도 돈 가방을 들고 줄을 섰고, 심지어는 흑마법에도 조예가 깊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그가 각성했다.
갓 설립된 헌터 협회에서는 그런 그에게 기대가 컸다.
하지만, 그가 각성한 이능은 ‘시체 교감’ 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괴이한 이능이었다.
‘시체 교감’의 이능은 반경 1km 안에 시체가 있을 때,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괴이한 능력이었다.
지금처럼 각성 측정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확립되기 전에는 거의 육체적인 스펙이나 가시적인 이능을 위주로 평가했기 때문에, 그가 받은 랭크는 겨우 C급에 불과했다.
고사득은 자신의 이능을 바탕으로 불사 길드의 전신인 ‘삼족오’ 팀을 꾸렸다.
삼족오들이 주로 하는 일은 시체 회수.
원정이 끝난 균열이나 던전에서 전사한 헌터들의 시체나 유품을 회수하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
전투의 일선에 서는 헌터들에게 사냥터의 찌꺼기나 주워 먹는 까마귀라 멸시당하면서도 고사득은 10년 동안 묵묵히 삼족오를 이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예고 없이 제주도에 게이트가 열렸다.
무려 SS급 게이트가!
게이트를 열고 나타난 것은 SS랭크 군주 몬스터와 그가 이끄는 수천의 마수 군단.
[버러지 같은 하등 종족들아! 영광으로 여겨라! 내 주인 ‘강식과 기만의 야수’께서 너희들의 피를 원하시니!]세 개의 머리를 가진 10미터의 키메라 군주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포효하는 것이 생중계로 대한민국 전역에 퍼졌다.
아직 나락용 강림의 상흔이 생생히 남아있는 한국에 일대 패닉이 일어났다.
헌터 협회도, 군부대도 제주도를 포기했다.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미국이 나락용 사태 이후, 개발한 전략무기 라그나로크를 투하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
대피령이 내려진 그 절망의 섬에 검은 장포 차림의 중년 남성과 음산한 어둠이 피어오르는 검은 갑옷으로 무장한 괴인이 당도했다.
“쯧, 미라클 그 귀신같은 년. 이런 귀찮은 일을 나한테 떠넘기다니.”
“호호. 그러니까 적당히 빼돌렸어야지. 괜히 욕심부리다 이렇게 약점을 잡히잖아.”
“흥, 포기할 수 없었다. 오래간만에 나온 S급 시체였단 말이다. 조금 아쉽군. 최강산 놈도 그때 뒈졌으면 좀 더 수월했을 텐데.”
“휴우, 많긴 많네.”
괴인이 오색의 눈동자를 빛내며 제주도를 잠식하고 있는 마수 군단들을 감정했다.
“하나하나가 B랭크 이상의 괴수들이 무려 오 천. 거기에 저들을 이끄는 군주는 준사도급이야.”
“흥, 또 그놈의 사도 타령이냐!”
괴인이 슬쩍 고사득을 보았다.
“아무래도 좀 힘들 것 같은데. 어때? 내가 도와줄까?”
그러자 모욕이라도 들은 것처럼 고사득의 검은 입술이 뒤틀렸다.
“흥, 나약한 계집은 가만히 있어라! 어딜 사내가 하는 일에 함부로 나서려 하느냐!”
“어머, 나약하다니?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한편 그 괴수들을 이끄는 SS급 키메라 군주가 분노한 듯 세 개의 머리를 시뻘겋게 물들인 채, 여섯 개의 팔로 고사득과 괴인을 가리키며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고사득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저놈이 뭐라고 떠드는 거냐? 릴리스, 너라면 알아들을 수 있겠지?”
투구로 얼굴을 가린 괴인이 코웃음 쳤다.
“나보고 배신자에다 더러운 갈보라는데? 긍지 높은 마의 일족이 어딜 빌붙을 게 없어서 하등생물 따위에게 가랑이를 벌리느냐고.”
까드드득!
고사득이 부서질 듯 이를 갈았다.
그가 검게 물든 손톱을 키메라 군주에게 가리켰다.
“저 씹어 먹을 육시럴 놈에게 전하거라! 감히 내 여자에게 함부로 지껄인 그 주둥아리들을 내가 손수 찢어주겠다고!”
“어멋, 자기 멋져~.”
펄럭!
고사득이 장포를 휘날리며 홀로 마수 군단을 향해 걸어갔다.
겨우 C급 헌터인 그가 제주도를 뒤덮고 있는 마수 군단에게 홀로 가는 것은 자살행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일어나라, 시귀 야차병단.”
쩌적! 쩌저적!
고사득 주변의 공간이 마치 게이트를 열 듯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귀면탈을 쓴 병사들이 개미 떼처럼 기어 나왔다.
그들은 바로 고사득이 10년 동안 모은 헌터들의 시체들로 만든 시귀들.
“자고로 군자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법.”
고사득이 검은 입술이 비릿하게 뒤틀렸다.
“끌끌, 인고의 세월 동안 키워온 우리들의 힘을 세계에 보여 주거라.”
-키히히힛!
-킬킬킬!
피에 살육에 굶주린 야차병들이 마수 군단과 격돌했다.
그날, 고사득은 최강산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전설이 되었다.
***
그리고 훗날 그의 활약에 감명받은 모 웹소설 작가가 고사득의 활약을 담은 ‘나 혼자 100만 야차병단’ 이란 소설을 쓰기도 했다.
-키히히!
-킬킬킬!
지옥도에서 보았던 지옥의 도깨비 같은 흉측하고 무서운 가면을 쓴 병사들이 눈앞에서 바글거렸다.
그 명성 높은 야차병들이 지금 내 앞에 있었다.
100만 야차병단이란 숫자는 소설다운 과장이 좀 섞여 있긴 했지만, 적어도 일만은 가볍게 넘길 것 같았다.
일단 내가 왜 이곳에 괴이한 공간에 야차병들과 같이 있는지 말하자면.
처음 내가 갓메이커의 메시지를 보고 교장실을 뛰쳐나갔을 때였다.
“안 돼! 일호야!”
쩌적! 쩌저적!
덥석! 덥석!
“헉?”
갑자기 내 배후 공간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수백개의 팔들이 나를 휘감았다.
그리고 이 기묘한 공간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그때 나는 일호에게 신경을 집중하기도 했고, 너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대응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당황하긴 했지만 야차병들이 딱히 내게 위해를 끼치려고 하는 것 같진 않았고, 당장은 일호의 안위가 급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고사득의 야차병]-네크로맨서 고사득이 일평생 모은 시귀 사역마들이다.
특이 사항 : 본래 납치 명령을 받았으나, 주인의 명령을 어기고 당신을 먹고 싶어 한다.
야차병들이 나를 먹고 싶어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툭툭, 후드득!
야차병들이 쓴 귀면탈의 턱을 타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질질 흘러내렸다.
아무래도 야차병들에게는 내가 자정의 치킨처럼 참을 수 없이 유혹적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거기에.
쿵! 쿵!
콰콰쾅!
이공간을 뒤흔드는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다른 야차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야차병이 내게 다가왔다.
심지어 놈의 머리는 세 개였다.
내 눈이 그놈을 감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