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170
‘아∼ 그 방산 비리 사건 해결하신 검사님이시구나.’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해 맴돌았다.
어둠속에서 들리는 남성의 음성에 당황하는 건 여성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고, 내 정체를 알고 나서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첫마디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앵커라는 사실과 내가 검사라는 사실에서 나올 수 있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첫마디였단 말이다.
그렇기에 나를 자신의 집안으로 들인 것이고.
또한 그녀는 방문 목적을 묻기보다 차를 먼저 끓이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클럽의 마스터와 연관이 있다면 조금 다른 말이 나왔을 것이다.
예를 들면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에요?’ 같은 그런 말이.
‘후… 헷갈리네.’
혼자 소설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지만, 남용찬, 즉 카스티요가 그녀의 아들이란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지금 클럽의 마스터는 두 사람 중 한 명일 확률이 너무나도 높았다.
그리고 그 모든 사실은 오직 나와 수사팀만이 알고 있었다.
“늦었고 하니. 홍차로 준비했는데 괜찮죠?”
“네, 괜찮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들고 자리에 앉는 남민지.
“쓰읍…….”
그녀는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내 입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리려 찾아왔습니다.”
“호호, 궁금하네요.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님이 저에게 묻고 싶은 게 뭔지. 혹시 적어야 하나요?”
“아니요. 적는 건 앵커님이 아니라 저일 것 같네요.”
내가 남민지를 찾은 목적은 오직 하나. 그물을 칠 끝과 끝 두 군데 중에 한 곳이 남민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뚝을 확실히 박아 놓고, 남민지 역시 단단히 묶어 놔야 했다.
자신이 잡혀 있다는 사실을 떠들어 대 중간에 있는 사냥감들이 달아나면 안 되니까.
“흠… 뭘 물어보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으실까.”
“앵커님을 만나러 오기 전 손진철 전 대통령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네?!”
나에게서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이름.
그 이름이 듣기 싫은지 아니면 그리운지는 모르겠지만, 남민지는 많이 놀란 듯 보였다.
“두 분이 이혼하셨다는 사실은 전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 됐고, 제가 궁금한 건…….”
“자, 잠깐만요! 한 검사,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앵커님께 몇 가지를 여쭙고 싶어서 왔다고.”
“그게 아니라 지금 내 앞에서 전 남편 이름을 꺼내는 이유가 뭐냐고요!”
“저희가 지금 진행 중인 수사에 필요하니까요.”
“무슨 수사를 하길래 저와 제 전남편이 연관되어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런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제가 모르는 게 말이 되나요?”
남민지의 집을 찾아오기 전.
수사팀들과 꽤 긴 회의를 했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남민지를 떠보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잡는 것이었다.
두 명의 용의자.
남민지와 남용찬 중 어떤 사람이 마스터인 줄도 모르고, 혹은 두 사람이 모두 마스터일 가능성도 있다.
남민지는 남용찬을 버린 게 아니라 숨긴 것이니까.
결국 우리는 두 사람과 싸워야 한다는 소리다.
두 사람 모두를 잡을 수는 없겠지만, 한 사람은 확실히 잡아놔야 했다.
물론 쉽지는 않을 테다.
“수사 내용을 외부에 유출할 수는 없습니다.”
“진짜 어이가 없네. 지금 나한테 물으러 왔다면서 무슨 사건인지는 얘기를 못 하겠다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내가 검사님 질문에 성실히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모든 피의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요.”
“지, 지금 나보고 피의자라고 한 거예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죠.”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재정신이 아니었네.”
쓰윽—
남민지는 나와 더 이상 마주 앉아 있기 싫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당장 나가요. 문제 일으키기 전에.”
현관문을 활짝 열고 말하는 남민지.
하지만 나는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고, 그녀가 열어준 현관문으로 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직 제 질문과 앵커님이 하셔야 할 답변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어요. 그리고 제가 답을 해야 할 의무도 없는 걸로 아는데요.”
검사가 범인을 소환하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올 때는 몇 가지 준비 과정이 있다.
특히나 남민지처럼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을 찾을 때는 더더욱.
준비 없이 찾아갔다가 문전 박대를 당하는 건 물론이고, 그녀의 전화 한 통으로 겪게 될 보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독립관청?
‘깡’이라는 단어를 가지지 못한 검사들이 과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가행정 조직 중 하나인 법무부, 그리고 법무부의 외청인 검찰청.
독립성을 철저히 지킨다고는 하나, 결국 검찰도 정부 조직 중 하나이다.
그리고 검사는 검찰에 소속된 공무원이고.
즉, 더 위에서 내려오는 외압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는 소리이다.
“일단 앉으시죠. 전 남편 분 얘기가 듣기 거북하시면 아드님 얘기 먼저 물을 테니.”
“뭐……?”
하지만 내 손에 무기가 들려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밝혀져서는 안 될 의혹.
혹은 이미 밝혀진 의혹을 뒷받침해 줄 만한 증거.
이 모든 것들을 재판대에 올릴 수 있는 검사만이 가진 기소권.
굳이 내 손에 체포 영장이 없다고 하더라도 범인을 묶어 둘 수 있었다.
특히나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강하게 묶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뭐라 그랬어요?”
“전 남편에게 유산이라 말하고, 미국의 한 가정에 거짓 입양을 한 앵커님의 아드님에 대해 여쭙겠다고 했습니다.”
“너 뭐야… 그걸 어떻게 알았어?”
“흠… 제가 예상한 반응이랑은 조금 다르네요.”
물론 보통의 경우라면 지금 남민지 앵커의 반응이 맞을 것이다.
하나 그녀가 마스터이거나 혹은 자신의 아들이 클럽의 마스터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지금 남민지의 반응은 조금 이상했다.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리 연기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속일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흔들리는 눈빛.
뭐… 연기에 익숙하고 연기력이 뛰어나다면 흔들리는 눈빛 정도야 고정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감정과 표정을 동시에 연기하다 보면 반드시 어색한 부분이 생긴다.
특히 검사의 눈으로 본다면 반드시 그 어색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클럽.”
“뭐?”
“당신이 마스터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아들이 마스터입니까?”
하지만 그녀가 지금 내비치는 감정과 표정에서는 도저히 어색한 부분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더 이상 그녀를 떠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검은 이미 뽑아든 상태였고, 지금은 휘둘러야 할 타이밍이었다.
“…….”
내 말에 고개를 숙이는 남민지.
이제야 내가 예상한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답을 못 하시는 걸 보니 알고 계신가 보군요. 아니면 본인이 마스터이거나.”
활짝 열려 있던 현관문은 닫혔고, 그녀는 다시 나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아까완 달리 손톱을 뜯기 시작했다.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기도 했다.
긴장.
굳이 검사가 아니라 해도 그녀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나가요. 제가 다시 연락드릴 테니.”
“그럴 수 있나요. 이미 칼을 뽑아 들었는데.”
“제발요…….”
문제는 긴장뿐만 아니라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불안해하고 있는 걸까.
내가 아들의 존재를 알고 있어서?
아니면 클럽이라는 조직이 나 하나 때문에 무너질 것 같아서?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고작 내 한마디에 불안에 떨 인물이 아니란 말이다.
“말씀하세요.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했고, 입으로 가져간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게…….”
그리고 그녀에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다 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라웠다.
“저와 아들은 클럽의 마스터가 아니라 클럽으로부터 철저히 이용당한 겁니다… 아니, 이용당하고 있는 겁니다…….”
* * *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럴 의무도 없고요.”
몇 번이고 그녀를 설득해 봤지만 소용없었고, 결국 그녀의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방 속에 가득 담아 온 많은 서류들 역시 쓸모가 없어졌다.
그녀가 나에게 한 말은 수사팀과 몇날 며칠을 고심하여 작성한 시나리오에 없던 말이니까.
만약 나를 내쫓기 위한 작전이라면 그녀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쉽사리 포기한 것은 아니다.
소파에 붙힌 엉덩이를 붙인 채 그녀의 입을 열어 보려 했지만, 그녀가 나에게 건넨 말은 나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기 충분했다.
‘일주일 뒤에 제가 검사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저와 제 아들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 주세요.’
‘보호라니요?’
‘클럽에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란 말입니다. 아니면 클럽을 완벽히 무너트릴 수 있는 힘을 갖추던가요. 그럼 검사님께 모든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복잡한 건 올림픽대로 뿐만이 아니었다.
“이용당하고 있다고?”
그녀의 말을 완벽히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인해 볼 필요는 있었다.
확인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테다.
만약 지금 그녀가 나에게 연막을 치고 있는 거라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이미 그녀는 클럽이란 곳의 존재를 알고 있다 말했으며, 마스터란 존재 역시 알고 있다 말했다.
즉, 어려운 확인 과정을 거쳐 그녀의 말이 거짓이라 판명되는 순간, 남민지와 남민지의 아들이 마스터라 확정지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말이 사실일 경우다.
무슨 이용을 당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두 사람이 마스터란 놈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거라면 어렵게 특정한 남민지와 남용찬은 마스터가 아니란 말이 되는 것이고, 뒤에 숨어 조정하는 마스터를 새롭게 특정해야 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클럽을 무너트릴 힘을 가진다는 조건하에 남민지는 나에게 모든 것을 말한다고 했다.
하나 그녀가 마스터란 놈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거의 다 푼 매듭인 줄 알았는데 더 꼬여 버린 것 같네…….”
자신의 존재를 감춘 채 두 사람을 조종하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두 사람이 조종당하고 있는 이유는 빤했다.
마스터란 놈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
그 무언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남민지를 조종하는 리모컨일 것이다.
지금 내가 김주상과 정종진을 조종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럼 남민지 앵커가 마스터한테 무언가 약점을 잡혔다는 소리인데…….”
나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고, 차량은 어느새 종로에 도착했다.
끼익—
이제는 우리 집보다 더 익숙한 강철호가 살고 있는 집 주차장에 차량을 세웠다.
“일단 말씀드려 보자.”
혼자보다는 두 사람의 머리를 맞대는 게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물며 나와 머리를 맞댈 한 사람이 산전수전 다 겪은 검찰총장 출신이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건 자명했다.
삑삑—
“저예요.”
— 비밀번호 알면서 왜 초인종을 누르고 그래.
“손이 없어서요.”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이 다른 한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있는 탓에 머리로 누른 초인종.
“이게 다 뭐야.”
얼마 지나지 않아 강철호 총장이 문을 열고 나왔다.
“남민지 앵커 집 압수 수색이라도 해 온 거야?”
“그게 아니라 준비한 서류들을 전부 바꿔야 될 것 같아서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만한 것이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낸 만큼 차량에 서류들이 쌓인다는 걸.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내 차량에는 클럽에 관한 모든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남민지의 한마디의 말로 인해 모든 서류들의 재검토가 필요했기에 낑낑대며 무거운 서류 더미를 집으로 들고온 것이다.
“전부 바꿔야 되다니?”
“그게…….”
나는 강철호 총장에게 남민지 앵커의 말을 그대로 전했고, 그 역시 꽤 충격적인 듯 입이 벌어졌다.
“흐음…….”
“그녀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지만, 거짓 같지는 않습니다.”
“무슨 근거로?”
“근거를 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취조해 본 검사로서의 견해라고 봐 주십시오.”
“그럼 거짓이 아니란 얘기인데…….”
근거를 댈 수 없었지만, 강철호 총장은 언제나 그렇듯 나를 믿어 주었다.
“거참 복잡하네…….”
“지금 저희에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남민지의 말대로 움직이든가, 아니면 남민지를 철저히 무시하고 저희 계획대로 가든가.”
“자네 생각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남민지 앵커의 말을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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