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79
다만, 그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알고 있다.
입을 벌리며 보고 있는 세 판사들을 포함해서.
“이제 영장 발부해 주시죠.”
* * *
내가 모는 낡은 차가 굉음을 내며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탓에 나도 모르게 엑셀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고, 덕분에 순찰을 돌던 차량이 뒤에 따라붙었다.
삐용삐용―
“충성, 신호 위반에 과속하셨습니다. 면허증 보여 주시죠.”
스윽.
[서울 지방 검찰청 검사 한치우]“충성!”
“죄송합니다. 급한 일 때문에······.”
창문을 내리고 경례를 하는 순경에게 조수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압수수색영장]“아닙니다! 얼른 가시죠, 검사님. 신호 통제해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범칙금 통지서는 제 검사실로 보내 주십시오.”
“공무 중이신 거 아닙니까?”
“공무 중이긴 한데··· 긴급차량이 아닌 차량으로 신호위반을 했으면 벌금을 내야죠. 보내세요, 정하늘 순경님.”
명찰을 보며 순경의 이름을 불렀다.
법을 가장 먼저 수호해야 하는 검사.
그런 위치에서 특혜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법은 법이니까.
어떤 사람이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니까 말이다.
아, 물론 나쁜 새끼들은 빼고.
“네 그럼 보내겠습니다, 검사님. 충성!”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끼익―
잠깐의 브레이크를 떼고 차량을 다시 출발시켰다.
FS 본사가 있는 남양주.
서울 근교이지만 막히는 차량 덕분에 꽤 시간이 걸렸다.
“휴··· 바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보면 검사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현장에 나가 경찰들을 지휘하며 조폭들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하나 실제로 검사가 현장에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사관들이나 관할구역 경찰들이 검사의 수사권 아래에서 움직이며 검사는 사무실에서 상황을 보고 받고, 필요한 영장을 청구해 주거나 피의자들을 기소할지에 대한 결정문 등을 쓴다.
귀찮거나 권위적이어서가 아니다.
검사실에 앉아만 있어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업무가 있으니까 그런 거지.
그래서 수사관을 마누라보다 더 잘 만나야 된다는 소리가 검사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떤 수사관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검사의 재량이 달라지니까.
띠리링―
― 검사님 어디쯤이세요?!
“10분 안에 도착합니다. 상황 어때요?”
― 서류들 트럭에 거진 다 옮겨 실은 거 같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오셔야 하는데······.
“조금만 시간 좀 끌어 주세요.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다만, 모든 검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한 달에 수백 개의 사건을 처리하는 검사들과 달리, 특수부 검사는 수백 개의 사건들과 맞먹는 한두 개의 사건을 처리하니까 말이다.
즉, 기록 하나하나를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하고 미심쩍은 면이 있으면 직접 현장에 나가기도 한다.
또 인지 수사 사건을 다루는 특수부 검사 특성상 경찰들과 정보 공유가 되지 않는 사건이 대부분이고, 보안 유지를 위해 같은 검사실 소속 수사관이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한다.
그게 내가 직접 영장을 들고 FS 본사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끼익―
차량은 FS 식품 주차장에 들어서고 내 시야에는 꽤 많은 승합차들이 보였다.
작동되지 않는 기계처럼 빈 파란 박스를 들고 멈추어 있는 여려 수사관들.
곧이어 수사관들에게 영장이라는 배터리가 들어갈 것이다.
“검사님!”
그중 내 차량을 가장 먼저 알아본 정대필 수사관이 차가 멈추기도 전에 나를 부르며 달려온다.
얼마나 초초했는지 바짝 말라 있는 입술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얼른 가시죠.”
하지만 정대필 수사관의 마른 입술을 다시 촉촉하게 만들어 줄 한 장의 서류.
[압수수색 영장]그 서류가 내 손안에 있다.
“역시! 소문대로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빨리 영장을 받아오실 줄은 몰랐네요.”
“칭찬은 나중에 천천히 듣을 테니 일단 일부터 하시죠.”
“네!”
영장을 건네받은 정대필 수사관과 함께 서둘러 FS 본사를 향해 뛰었다.
“카메라 안 치워?!”
“이 서류들은 뭐죠? 한 말씀만 해 주시죠!”
“당신이 뭔 상관인데!”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는지 나민호 기자는 상자를 들고 나오는 FS 직원들을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덩치가 제법 돼 보이는 직원들.
아마 사무직 직원들이 아닌 보안 요원들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밀리지 않는 나민호 기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뛰는 기자의 사명감과 함께 개인적인 원한까지 더해진 나민호 기자를 뚫기란 쉽지 않겠지.
“송암 일보 나민호 기자입니다. 오늘 아침 KH 그룹과 의혹 기사가 난 후 갑자기 대량의 내부 자료를 옮기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치우라고!”
빠악!
“아!”
FS 직원들에 의해 바닥을 나뒹구는 나민호 기자.
“기자님··· 그만하세요. 이러다 다치겠어요.”
그를 말리는 카메라 감독이었다.
수도 없이 취재를 했고 수도 없이 보도를 하려 했을 것이다.
하나 광고로 먹고 사는 언론사가 꽤 많은 광고료를 내는 KH 그룹을 건드리기란 쉽지 않았다.
“저를 믿으세요, 감독님. 이거 특종입니다.”
다만, 광고료를 포기해도 될 구독료와 시청률이 나올 수 있다면?
그런 엄청난 특종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 지금 보도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송암 일보의 높은 분들의 뒤통수를 친 두 사람이 있다.
나민호 기자와 송암 일보의 사회부 부장.
TV 송출은 몰라도 인터넷 뉴스 정도는 통과시켜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회부 부장은, 나민호 기자의 원한을 알고 있는 꽤 좋은 선배였기에 이 일을 돕기로 결정한 것이다.
“잠깐 스탑!”
또한 내가 개입되는 순간 아무도 보도를 막지 못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서로 특종을 놓치지 않으려 경쟁을 하려 들 테지.
수만 명이 보는 인터넷 뉴스는 수천만 명이 볼지도 모르는 9시 뉴스로 바뀌게 될 테니까.
힐끔.
“기자님, 고생하셨어요. 이제 저와 수사관님한테 맡기시죠.”
초라하게 바닥에 나뒹굴던 나민호 기자의 눈은 안정을 되찾았고, 당당하게 서 있던 FS 직원들은 불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스윽.
“서울 중앙 지검 특수 1부 한치우 검사입니다.”
목에 걸고 있던 신분증을 보이며 말하자 그 불안감은 더욱 심해져 간다.
“무슨 일이시죠······.”
까딱.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수많은 수사관들 앞에 있던 정대필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 FS 식품 본사와 회사 소유 모든 물건에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겠습니다.”
더 이상 바짝 말라 버린 입술도 초조함에 갈 곳 잃은 눈빛도 보이지 않는 정대필 수사관.
그의 손에는 영장이, 뒤에는 든든한 수사관들이 있었다.
부르릉.
“시동 끄세요!”
“문서 파쇄 업체 차량입니다. 저희랑은 상관없는······.”
“차량은 타 업체 소유일지도 모르지만, 실려 있는 서류들은 FS 식품의 소유 재산입니다. 즉 압수수색영장 범위 안에 들어가는 물건이지요.”
그렇기에 꼼수를 부려 보아도 소용없을 것이다.
법치주의 아래에서는 어떤 것보다 법이 우선이니까 말이다.
“지금 하던 거 전부 멈추시고 서류들 바닥에 내려놓으세요! 이 수사관은 가서 화물차 시동부터 꺼.”
“네! 장 수사관님.”
그렇게 영장 집행을 위한 준비가 완료되었지만, 몇몇 보안 요원들은 반항이라도 해 보려는 듯 서류가 든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았다.
“내려놓으세요. 얼른!”
“이건 회사 소유가 아니라 제 개인적인 물건입니다.”
“그건 제가 판단합니다. 지금 당장······.”
톡톡.
수사관과 보안 요원들 간의 실랑이.
정리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정대필 수사관의 어깨를 치며 다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잘 들어요. 저희는 형사소송법 제215조의 의한 정당한 영장 집행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136조에 의거하여 영장 집행을 방해하거나 위력을 행사할 시 현행범으로 체포되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엄포를 하는 나와 빨간 불이 켜져 있는 카메라를 번갈아 보는 FS 식품의 직원들.
지금 내가 하는 말과 FS 직원들의 행동은 전 국민이 보게 될 것이다.
“영장 집행하세요! 방해하는 모든 인원에 대해서 현행범 체포를 허가합니다. 위계나 폭력을 행사할 시 공권력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허가하며 책임은 제가 집니다.”
“네, 검사님!”
현장에 직접 나온 검사가 내린 명령.
덕분에 수사관들의 행동은 더욱 빨라졌다.
“여성 수사관들은 여성 직원을, 남성 수사관들은 남자 직원의 몸을 수색하세요.”
“네!”
파란 압수수색 박스를 들고 일제히 움직이는 수많은 수사관들.
털썩.
힘없이 바닥에 떨어진 박스들처럼 카메라를 통해 이 상황을 지켜보는 누군가의 마음도 내려앉을 것이다.
끼익―
“당신들 뭐야?!”
누군가의 떨어지는 마음이 자신의 목과 연관되어 있던 한 사람.
급하게 FS 식품으로 도착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낯이 익다.
“누구십니까?”
“FS 식품의 법무팀······.”
흠칫.
남자의 소개는 내 신분증을 보자 멈추었다.
왜?
이름을 말하는 순간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테니까.
“법무팀이요? 제가 알기로는 FS 식품에는 법무팀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아니, FS 식품의 법무팀이 아니라 FS 식품 대표님의 변호사입니다.”
하나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상하네요. KH 그룹의 법무팀장님이 왜 FS 식품 대표님의 변호사를 하고 계시는지······.”
“······.”
잊어버리기에는 조금 특이한 목소리였다.
KH 그룹에서 내 전화를 받던 차정민의 목소리가 말이다.
“KH 그룹과 FS 식품의 법무가 공유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후······.”
자신의 이름과 신분이 탄로 나자 긴 한숨을 쉬는 차정민.
하나 당황하지 않고 나를 응시했다.
“저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납품 업체입니다. KH 그룹의 법무팀장으로서 FS 식품 대표님의 법무를 지원하는 게 이상한가요?”
힐끔.
카메라를 의식한 차정민이 대답을 하며 조금씩 나와의 거리를 좁혀 왔다.
“적당히 하시죠. 회장님과 자리 마련할 테니.”
그리고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진짜 대답.
“무슨 자리요?”
“원하는 거 편히 말씀하실 수 있는 자리요.”
“하하, 지금 수사 중인 그룹의 변호사가 담당 검사를 회유하는 겁니까?”
“그쪽 다칠까 봐 그래요. 폭행 사건 피해자들과 정식으로 합의하고 대국민 사과할 테니까 이쯤하시라는 겁니다. 그 정도 건수면 충분하잖아요.”
힐끔.
다시 곁눈질로 카메라를 힐끔거리던 차정민이 나와의 거리를 벌렸다.
“정당한 영장 집행이니 협조해 주시죠, 팀장님.”
“네,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그리고 취재도 이쯤하시죠. 라이브인 것 같은데 협조한다 말했으니 앞으로 촬영하는 모든 영상은 정식적으로 문제 삼겠습니다.”
스윽.
꼬투리를 잡힐 걸 빤히 알기에 나민호 기자에게 손짓했고, 카메라는 바닥으로 향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팀장님들은 서류 하나도 빠짐없이 검찰에 넘기셔도 됩니다.”
상황을 정리하는 차정민의 행동은 노련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