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93
“아∼ 광수대에서 보내온 수사 자료예요?”
“네, 맞습니다.”
큰 의미가 없을 걸 알지만 그렇다고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광수대가 파악한 사이트 목록이랑 충전과 환전에 이용된 통장 목록일 겁니다. 아마 규모가 큰 사이트들만 집중적으로 조사했겠죠.”
“네. 정리해 놓겠습니다.”
“또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비자금을 받은 정치인들 목록이 있을 겁니다. 첩보라고는 하는데… 정확한 근거를 찾아보세요. 자금이 흘러들어간 경로라던가.”
“네!”
채현호 청장과 유대명 지검장.
두 사람이 노리는 타깃들이 적혀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노린다고 해서 수사를 하지 않을 건 아니다.
뭐가 됐든 혐의가 나온다면 부패한 정치인인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영장 받아서 계좌 추적 확실히 하시고. 적혀 있는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 차명 계좌까지 파악해서 정리해 보세요. 사소한 혐의라도 나오면 바로 알려 주시구요.”
“휴… 차라리 현장으로 보내 주십시오, 검사님.”
“하하하하!”
한숨을 쉬며 말하는 정대필 수사관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알고 있다.
오랜 현장 경험에 사무실에서 서류를 만지는 게 익숙하지 않다는 걸.
사실 내가 하는 게 더 빠를 거라는 사실까지.
하나 지금 내 몸은 두 개가 아니다.
“다녀와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렇기에 더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한다.
“아… 그리고 차량 요청 하나만 해 주세요.”
“검사님 차 있지 않으세요?”
“그건 차가 아니라 고물입니다. 제 것도 아니고요.”
육기통이라며 떵떵 거리던 서윤호는 폐차비가 아까운지 나에게 차를 버리다시피 주었고, 어쩔 수 없이 타고 다녔지만 지금은 지검 주차장에서 비를 맞으며 녹슬어 가고 있었다.
“하여튼 입만 살아가지고.”
“네?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 아닙니다. 그런 동기가 한 명 있어서요.”
“서 검사님이요?”
아차.
깜빡했다.
중앙 지검 안에 내 동기라고는 서윤호밖에 없다는 걸.
“하하… 능력은 있지만 어디 내놓기 창피한 동기죠…….”
* * *
끼익―
“워, 이거 뭐야!”
2,000㏄짜리 중형차가 최고급 스포츠카처럼 느껴졌다.
부우우우웅.
서윤호의 차를 타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인지 액셀을 있는 힘껏 밟았기 때문이다.
“살살 밟아야겠네.”
몇 번이나 사고가 날 뻔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이게 자동차구나…….”
그리고 적응해 갈수록 깨달았다.
내가 지금껏 탄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장난감이었다는 걸 말이다.
“오랜만에 보겠네.”
뭐가 됐든 나는 지금 복잡한 서울 시내를 달리고 있다.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
도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세계.
그런 곳을 속 시원하게 알려줄 한 사람이 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온 사람.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어엿한 회사의 대표가 된 사람.
민태호.
과거를 청산한다고 기억까지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민태호란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조직폭력배들은 아직까지 벌벌 떨 정도였다.
워낙 대단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웬만한 소규모 조직은 말 한마디로 와해될 만큼 민태호의 영향력은 대단했고, 그가 회사의 대표가 된다는 소문이 돌자 꽤 많은 조직폭력배들이 SY를 찾았다고 한다.
민태호는 무슨 선택을 하겠는가?
운동을 한 사람은 보안과 경호 인력으로. 공부를 좀 했다는 사람은 잘 가리켜 회사 업무를 맡겼다.
물론 아무나 받아 주지는 않았다.
강서빈 이사 허락하에 직원을 채용했고, 조금이라도 과거가 보인다면 가차 없이 내쳤으니까.
민태호가, 아니, 내가 만든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꽤 많은 조폭들이 과거를 청산하고 전설과도 같은 민태호의 길을 따랐으니까 말이다.
“이쯤인데…….”
꽤 복잡한 서울 시내였지만, SY 본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중앙 지검이 있는 서초에서 강남까지는 꽤 가까운 거리였으니까.
“와… 생각보다 꽤 크네.”
최근 SY는 코스닥에 상장을 했고, 무서울 기세로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민태호의 능력보다는 강서빈 이사의 능력이 훨씬 더 컷을 것이다.
소명 그룹과 천재학 회장을 위해 쓰던 능력.
재계 순위를 몇 십 단계나 올려놓은 능력을 말이다.
끼익―
“오셨습니까, 검사님. 대표님 연락받고 모시러 나왔습니다.”
차가 멈추자 저 멀리 SY 직원이 뛰어나와 차문을 열며 말했다.
“유난 떨지 말라니까.”
“죄송합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하는 SY의 직원.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쪽한테 한 거 아닙니다. 그리고 제발 조용히…….”
“네… 죄송합니다, 검사님.”
검찰 마크가 대문짝만하게 박힌 차에서 내린 남자가 깡패 같은 외모의 남자에게 90도로 인사를 받는다?
수많은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는 광경이다.
“안내하겠습니다, 검사님.”
“아닙니다. 몇 층인지만 알려 주십시오.”
“그래도 제가…….”
힐끔.
“그냥 알려 주십시오.”
“11층 대회의실입니다.”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자 SY 직원은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내 나이쯤 되어 보였나?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조폭 생활을 하며 형님들을 모시고 살았으니 회사에 들어온다고 하루아침에 버릇이 고쳐지지는 않겠지.
그래도 끝까지 버틴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훨씬 뿌듯하고 보람찬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 11층입니다.
“아따∼ 도대체 얼마만인겨!”
“삼촌은 그대로시네. 살 좀 빼요.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그러면 무서워서 미팅이라도 하겠어요?”
“이건 살이 아니라 근육이여.”
오랜만에 본 삼촌.
여전히 덩치가 컸고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제 얼굴에서조차 어둠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말이다.
“회의실로 가자. 이사님도 기다리니께.”
민태호와의 만남.
강서빈 이사와의 만남은 예상치 못했다.
하나 오히려 잘된 일이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재무 전문가에게 수사 조언도 들을 수 있으니까.
“이야∼ 한 검사. 이게 얼마만이야.”
꾸벅.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이사님.”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강서빈 이사가 건넨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요. 뉴스에서 봤어요. 아주 날아다니더구만.”
“하하… 아닙니다.”
강서빈 이사 역시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예전보다 더 활력이 생겼다는 것 정도?
하긴.
더러운 곳에서 해방된 건 민태호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강서빈 이사 역시 소명 그룹과 천재학 회장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삼촌, 혹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 좀 알아요?”
“흠… 내는 옛날 건달이라 인터넷 같은 건 몰러.”
피식.
내가 찾아온 이유를 벌써 눈치챘는지 강서빈 이사가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근디 갑자기 도박 사이트는 왜 묻는 겨?”
“수사에 필요해서요. 알아봐 주실 수는 있죠?”
“전화 몇 통이면 와꾸는 짤 수 있제.”
찌릿.
강서빈 이사가 민태호를 노려본다.
“씁! 대표님, 말투!”
“지송혀라…….”
“하하하하!”
나는 박장대소했고, 민태호는 전화기를 들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밖으로 향했다.
전화를 해야 하는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예전 말버릇이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강서빈 이사를 피하는 것이다.
“요즘 온라인 도박 사이트가 문제라더니 특수부가 움직이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더군다나…….”
“하긴 앞으로 총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역시.
강서빈 이사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할 말을 다 알고 있었다.
“도박 사이트는 피라미드 구조로 수많은 관계자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총책을 잡아야 하고 그래야 큰 틀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 대표님은 왜 찾으신 거예요?”
사이트 운영자들과 관리자들은 조폭이 아니다.
하나 불법적인 일에는 조폭들이 반드시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제일 빠른 경로라 판단했습니다.”
“해외에 있고 추적하기가 쉽지 않으니 공권력보다 낫다고 판단하신 거네요.”
“역시 이사님 앞에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네요.”
“칭찬인거죠? 하하하.”
물론 경찰도 수사가 어려울 때 형량이나 불체포를 대가로 조폭들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
다만,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뿐더러 대답만 할 뿐 공권력을 위해 움직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태호의 전화는 다를 것이다.
전화 한 통으로 조폭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바쁘지 않으시면 수사에 조언을 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자료들 가져오세요. 저도 인맥을 총동원해서 비자금 경로 알아볼 테니까.”
너무 좋았다.
지금 내 앞에 민태호와 강서빈 이사가 있다는 게 말이다.
“워메∼ 시대가 변해 부렀구먼. 조폭이 인터넷으로 돈을 버는 시대가 오고 말이여.”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통화를 마친 민태호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뭐 좀 나왔어요?”
시계를 보니 10분쯤 흘러 있었다.
영장과 조사.
그리고 관련 기관의 협조 요청.
그런 과정은 필요 없었다.
또 국내 최대 도박 사이트의 관련자들을 알아내기에 10분이라는 시간은 충분했다.
“영등포 쪽 식구들 같은디 사무실 주소 알려줄 텐께 한 번 가 봐.”
“감사해요, 삼촌.”
“깡패 사무실인디 같이 갈 텨?”
나는 민태호의 정보가 필요한 거지 주먹이 필요해서 온 것이 아니다.
삼촌이 주먹을 쓰는 걸 보고 싶지도 않았고.
“걱정 마요, 민 대표님. 치우 씨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아시잖아요.”
가만히 지켜보던 강서빈 이사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래도 워낙 무식한 놈들이니께 그러제요.”
사실 깡패 사무실을 무작정 쳐들어가는 건 별로 겁이 나지 않는다.
내가 대한민국 검사라서?
“저 그렇게 안 약해요, 삼촌.”
아니.
주먹으로 따져도 내 몸 하나 건사할 정도는 자신 있으니까.
“나가 니 걱정하는 것 같어?”
“그럼요?”
민태호는 나를 잘 알고 있다.
분노를 주체 못하고 미쳐 날뛰는 과거의 한치우 모습을.
“고노마들 질질 짤까봐 그런 거지. 너 검사여. 이자 고노마들 몽뚱아리에 구멍 내면 안 된다. 알았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