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17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17화
117. 엘프의 보상
류민은 얼굴을 변형시키지 않았다.
검은 낫의 모습 그대로 배신자들을 기절시켰다.
‘어차피 이놈들은 죽은 목숨이다. 내가 죽이지 않더라도.’
엘프들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특히 공주를 노린 자객에겐 자비가 없다.
류민이 정체를 숨기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차피 살아남은 배신자는 자신뿐일 테니까.
툭툭-
기절한 녀석들을 발로 건드려 봤다.
한 명은 손목이 잘려져 있었고 다른 두 명은 멀쩡했다.
‘확실히 기절했군.’
힘 464의 손날로 목덜미를 가격했다.
갑자기 일어나서 검은 낫이 배신자라고 까발리진 못하리라.
저벅저벅-
유그리토가 다가오자 류민이 고개를 들었다.
“…….”
그는 류민을 보며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일단은 침착하게 상황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유그리토의 시선이 가까이 있던 신입 기사에게로 움직였다.
“제리프.”
“예!”
“어찌 된 상황인지 보았느냐?”
“예! 이계의 전사 넷이 갑자기 공…… 아니, 아가씨가 탄 마차를 급습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중력 마법에 걸려 죽었고, 셋은 보다시피 이분에게 맞고 기절했습니다.”
“공주님은? 무사하시냐?”
“공…… 아니, 아가씨께선 무사…….”
“굳이 숨길 것 없다. 이미 정체가 다 밝혀진 마당에.”
“아, 옙! 공주님께선 무사하십니다. 지금 너무 놀라셔서 마차 안에서 안정을 취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여기 있는 이계의 전사님이 공주님을 구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이분이 제때 나서지 않았다면 공주님께서 큰일을 치르실 뻔했습니다.”
그 말에 유그리토는 앞뒤 잴 것 없이 류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입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은인이라는 건 증명됐다.
“저희 공주님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은인의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류민은 칭호를 사용할까 하다가 관뒀다.
서 있는 배신자도 없겠다, 앞서 드워프 상단처럼 이름을 감출 필요는 없었다.
“검은 낫이다.”
“검은 낫…….”
반말에도 유그리토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하듯 읊조리더니 재차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검은 낫 님. 죄송하지만 상황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이계의 전사들이 왜 공주님을 노렸는지 이해가 안 돼서 말입니다.”
류민은 끄덕이며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어차피 웨어 울프들의 습격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고, 사냥보다 지금이 더 중요했다.
엘프족과의 관계를 다질 기회였으니까.
가만히 설명을 듣던 유그리토의 눈이 커졌다.
“배신자? 이계의 전사 중에서도 배신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설마 악마 대공 플루닉토스와 손을 잡은 겁니까?”
‘악마는 무슨. 천사와 손을 잡았구만.’
류민은 대충 얼버무렸다.
“그것까진 모르겠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거라 본다.”
“아아…… 그럼 혹시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길 원하십니까?”
“아니. 나와는 상관없는 치들이라서.”
“그렇다면 이자들을 저희의 율법에 따라 처리해도 될까요?”
“마음대로.”
유그리토가 배신자들을 내려다보더니 검을 들었다.
서걱- 서걱- 서걱-!
세 번을 내려쳐 머리를 몸뚱이와 분리했다.
류민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니 유그리토가 묻지도 않았는데 대답했다.
“공주님을 노린 자들은 즉각 처형이라서요.”
죽이지 않고 심문할 법도 했건만 가차 없이 죽여 버렸다.
‘자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믿을 수 없다는 게 엘프의 율법이긴 하지.’
엘프의 율법이란 게 이렇게나 무섭다.
이미 다 알고 있던 바지만.
“검은 낫 님. 공주님을 구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 인사만 몇 번을 하는 건지. 얼른 보상이나 내놓으라고.’
그만큼 고맙다는 거겠지만 그렇게 고마우면 성의 표시를 해야 할 것 아닌가?
내심 보상을 못 받을까 걱정도 됐지만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공주를 구해준 것은 엘프족에게 있어서 평생 갚아야 할 은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깨에에엥!”
그때 하나 남았던 웨어 울프가 죽으며 상황이 마무리 지어졌다.
“휴, 다 죽였…….”
“저기 좀 봐. 검은 낫이 엘프와 대화하고 있어.”
습격을 막은 플레이어들이 뒤늦게 엘프와 대화하고 있는 류민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네? 근데 저기 있는 시체들은 플레이어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설마 엘프가 죽인 거야?”
“맞아요. 아까 제가 봤어요! 저 엘프가 갑자기 검으로 이렇게 목을 자르더라고요!”
유그리토가 그 모습을 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거 가만히 있다간 오해만 커지겠네요.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상황 설명을 해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류민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유그리토가 앞으로 나섰다.
“이계의 전사 여러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가 바람의 정령을 통해 플레이어들의 귓가로 전해졌다.
“먼저 정식으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엘소리움의 기사단장 유그리토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이들은 상인이나 마부가 아닌 엘소리움의 기사들이고요.”
상인이 아님을 밝히자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희는 물건을 운반하고자 이동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인이란 신분은 공주님을 호위하기 위한 연막일 뿐이었죠. 잠시지만 속여서 죄송합니다. 자세한 사정은 말할 수 없으나 사실대로 말하고 있으니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엘프들은 인간과의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기사단장이 직접 오해를 밝히는 이유였다.
‘그것이 이 세계의 만들어진 설정인지 실제의 설정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유그리토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안타깝게도 몬스터의 습격을 틈타 저희 공주님을 노리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여기 죽은 인간들이 그 자객들입니다. 여기 계신 검은 낫 님에 의하면 배신자라고 하더군요.”
“배신자?”
“어? 정말로 배신자가 줄었어!”
인원 현황을 보니 배신자가 1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 유일한 배신자가 류민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어째서 여러분 중에 배신자가 있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반응을 보니 여러분도 혼란스러운 것 같군요. 어쨌거나 검은 낫 님이 아니었다면 저희 공주님은 무사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검은 낫 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아니, 그만 감사하라고.’
류민에게 고개를 숙이던 유그리토의 입에서 드디어 원하던 말이 나왔다.
“검은 낫 님.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습니다.”
유그리토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냉큼 받아 든 류민의 얼굴에 드디어 미소가 떠올랐다.
[엘소리움 기사단장 유그리토의 보상으로 ‘초재생의 비약’을 받았습니다.] [초재생의 비약]-분류 : 소모품
-등급 : 레전더리
-효과 : 10초간 신체 재생
-사용 제한 : 마스터 등급 이상
-설명 : 10초간 몸이 찢어져도 순식간에 재생한다. 다만 고통으로 인한 정신 붕괴는 책임지지 않는다.
‘드디어 얻었군. 초재생의 비약.’
설명을 보면 알다시피 10초간 무적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비약이다.
‘타이밍 좋게 사용만 잘하면 수십 번을 죽더라도 되살아날 수 있지.’
그야말로 목숨이 늘어난 셈.
15라운드에서 사용해야 하는 아이템이기에 고이 인벤토리에 넣어뒀다.
“이런 귀한 걸 선뜻 주다니. 고맙군.”
“세상에 공주님의 목숨보다 귀한 게 있을까요. 저희 엘프족은 검은 낫 님께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검은 낫에 대한 엘프의 평판이 ‘중립적’→‘우호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마침 떠오른 평판 변경 메시지를 보며 류민이 씨익 미소 지었다.
“어쨌거나 고맙군.”
“고맙다는 말은 저희가 해야지요.”
그때 마차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입 기사가 유그리토에게 다가왔다.
“제리프. 공주님 상태는 어떠하냐?”
“놀라긴 하셨지만,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그나저나 공주님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은인께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으시답니다.”
“공주님께서? 알았다. 검은 낫 님. 이쪽으로.”
유그리토와 마차 앞으로 다가서자 유피넬시아가 기다렸다는 듯 마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주변에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헉!”
“와, 씹.”
“무슨…….”
다름 아니라 천사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미모였기에.
“안녕하세요. 이계의 전사님. 엘소리움의 유피넬시아라고 해요.”
“검은 낫이라고 불러라.”
류민은 공주에게도 반말로 말했다.
그런데도 공주를 비롯한 엘프들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이미 평판이 우호적으로 바뀐 이상 뭘 해도 문제 되진 않지.’
배신만 하지 않으면 평생 엘프에게 대우받으며 살 수 있다.
“저를 구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정말이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갚지 않아도 된다.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한 것뿐이니까.”
엘프들은 도리와 순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류민이 의도적으로 이런 말을 한 것도 호감을 쌓기 위해서다.
‘규칙에 철저한 엘프족에게 반듯한 인상을 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유그리토와 기사들이 류민을 보는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평생의 은인이라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
하지만 지금의 발언으로 인간이라고 그어놓은 경계선이 조금은 옅어졌다.
‘여기서 차차 우호도를 높여가면 돼. 특히 공주와의 호감을 쌓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엘프 공주가 좋아하는 거야 꿰고 있었기에 어렵진 않으리라.
“공주는 안에 들어가 있으시길. 마차 밖은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아, 아, 가, 감사합니다.”
목숨 바쳐 지켜준다는 말에 부담을 느끼기는커녕 홍조를 띤 유피넬시아가 황급히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그 모습에 유그리토가 놀란 눈으로 다가와 말했다.
“공주님이 저렇게 웃으시는 건 처음 봅니다.”
“그런가?”
“아무래도 검은 낫 님이 지켜주신다는 말에 안심하신 듯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주억이던 류민이 유그리토에게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공주는 내가 지킬 테니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데만 신경 써.”
“그래 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하죠.”
빙긋 웃은 유그리토가 안심하며 전열로 향했고 이어 전투가 지속됐다.
“키에엑!”
“캬아악!”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엘프와 인간들을 습격했고, 류민은 그때마다 낫으로 경험치를 쌓았다.
그렇게 30차례의 웨이브를 치르는 동안 몬스터들은 단 한 번도 공주 근처에 접근하지 못했다.
검은 낫이라는 거대한 벽이 지키고 있었으므로.
실로 믿음직한 그 모습에 유그리토가 다가와 경의를 표했다.
“검은 낫 님이 평범한 분이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하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런가?”
“덕분에 공주님을 안전하게 호위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말하던 유그리토의 표정에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은인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유피넬시아도 그 사실을 아는지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저기…… 검은 낫 님.”
“왜? 할 말이라도 있나?”
“그…… 아닙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머리를 쏙 집어넣은 공주가 다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다, 다시 만나는 날이 오겠지요?”
류민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그때까지 날 잊지 말도록.”
“…….”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유피넬시아가 대답도 안 하고 들어가 버렸다.
‘부끄러워하기는.’
의외로 느끼한 대사를 좋아하는 엘프 공주였다.
이윽고 시간이 됐다.
0초에 이르자 마차를 세우며 유그리토가 칼같이 작별을 고했다.
“이계의 전사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목적지까지 저희를 지켜준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에도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 뵙기를.”
다그닥- 다그닥-
마차 행렬이 움직였고 유그리토가 마지막으로 류민에게 눈인사를 했다.
마차 창문을 연 유피넬시아도 수줍은 소녀 같은 얼굴로 멀어지는 류민의 모습을 바라봤다.
[엘프 상단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호송하였습니다.] [엘프 상단 호위하기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잠시 후 호위 성공 보상으로 전원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주어지는 경험치량은 자신 및 파티원이 사냥한 몬스터의 2배입니다.]마무리되자 경험치 보상이 들어왔다.
‘78레벨까지 올랐네.’
만족할 만한 레벨이다.
무엇보다 엘프와의 평판을 쌓고 원하던 비약까지 얻었으니 더할 나위 없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허태석이 옆에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검은 낫 님. 이제 헤어져야 하는 게 아쉽네요.”
“아쉽긴 뭘. 다음에 또 볼 텐데.”
“아.”
그 말이 허태석에겐 감동이었는지 또다시 표정이 뭔가에 반한 것처럼 멍해진다.
“저, 저도 다시 뵐 수 있을까요?”
옆에 있던 엄준석이 쭈뼛거리며 말하자 류민이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녀석은 이를 드러내며 기쁨을 표현했다.
추종자 후보가 아니라 완전히 추종자가 된 느낌이다.
‘이제 인간 상단으로 가 볼까?’
류민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지막 상단이 남아 있었다.
지켜야 하는 게 아닌, 파괴해야 할 상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