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78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78화
178. 도플갱어
미궁의 숲엔 도플갱어라는 보스가 산다.
공격력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까다로운 녀석이다.
‘물론 처음 보는 상대에게는 말이지.’
그러나 류민은 도플갱어를 숱하게 상대해 보고 죽여봤다.
몇 번 죽였는지 기억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약한 놈이었다.
‘적월+월광섬 콤보면 쉽게 공략할 수 있는 놈이었지.’
그렇다고 도플갱어를 직접 죽일 생각은 없다.
“도플갱어를 죽이는 건 너여야 한다.”
“제, 제가요?”
뒤따르던 주성탁을 향해 도플갱어를 상대할 때의 작전을 일러뒀다.
간단한 작전이었기에 놈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알겠지? 시킨 대로만 하면 문제없이 잡을 수 있을 거다.”
“예. 걱정 마십시오. 주인님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때였다.
류민의 앞에 처음으로 몬스터가 나타났다.
꾸물꾸물-
미궁의 숲에서 주로 등장하는 맹독 슬라임이었다.
도플갱어의 서식지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보스를 양보하는 대신 이놈은 내가 잡지.”
조금의 포인트라도 얻기 위해 류민이 낫을 들고 나섰다.
스악-!
맹독을 뿌리기 전에 반으로 잘라버렸지만.
꾸물꾸물-
슬라임은 오히려 두 마리로 늘어났다.
‘역시 물리 공격은 통하지 않는군.’
자르면 자를수록 늘어나는 게 슬라임이라는 놈들이다.
귀찮지만 마법을 쓸 수밖에 없다.
파직파직-
한 손에는 낫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전류를 일으켰다.
“사출.”
파지지지직-!
전류에 직격당한 슬라임 한 마리가 온데간데없이 타버렸다.
물리 공격에는 면역이지만 마법 공격에는 치명적인 피해를 보는 몬스터가 바로 슬라임이었다.
그런데 한 마리만으로는 아무런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맹독 슬라임을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0.09%] [골드+300] [포인트+30]두 마리를 다 잡자 비로소 보상이 들어왔다.
‘두 마리로 늘어났다고 해서 경험치가 두 배가 되는 건 아니란 소리지.’
그게 가능했다면 한자리에서 죽치고 앉아 슬라임만 분열시키며 보상을 있는 대로 뽑아먹었을 것이다.
“가자. 금방 도착할 것 같군.”
“예. 주인님.”
류민은 슬라임을 잡으면서도 이따금 천리안으로 뒤쫓는 무리를 감시했다.
먼저 확인한 건 중국인들.
‘추적하기랑 주변 탐색이 먹히지 않으니 다들 당황하고 있군.’
미궁에 들어오면 바깥세상과의 연결이 차단된다.
길이 틀어지면 추적 불능으로 뜨고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고 나온다.
‘보아하니 길 안내하던 한국인을 놓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모양이군.’
서로 5m 이내로 붙어 있지 않으면 저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이산가족이 된다.
모든 길은 큐브처럼 이어져 있기에 언젠가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거다.
‘놈들의 위치를 외워둬야겠어. 도플갱어를 잡는 데 중국인들의 도움도 필요하니.’
씨익 웃던 류민이 시점을 바꿨다.
길을 잃고 당황하고 있는 건 중국인만이 아니었다.
마경록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낫을 추적하려고 들어왔다가 신호가 끊기자 당황하는 안상철이 보인다.
‘그러니 정체도 모르는 곳을 함부로 따라 들어와선 안 되지.’
핀잔을 주면서도 계획대로 진행되자 만족스럽게 웃는 류민이었다.
‘그나저나 크리스틴은 괜찮으려나?’
확인해 보니 아직도 처음 있던 장소에서 이동하지 않은 채 다른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 결과 2명이었던 추종자가 10명으로 늘어났다.
‘일행이 많으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모양인데…… 소용없는 짓이야. 절망교에서도 그만큼 세력을 불러 모을 테니까.’
사령술사 존 델가도의 시점으로 전환해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녀석이 크리스틴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크리스틴이 자신의 추종자들을 기다리는 동안, 녀석도 자신의 신도들을 모은 뒤에 한꺼번에 기습할 생각이군.’
바로 그때가 류민이 나설 타이밍이었다.
지금처럼 위험하지도 않은 순간에 나서봐야 명분도 서지 않고 미친놈 취급당하기 딱이다.
‘물론 그 전에 도플갱어부터 잡고 이곳을 빠져나가야겠지만.’
슬라임이 나타나는 빈도가 줄어드는 걸 보니 거의 다 왔다.
도플갱어의 서식지가 가까이에 있었다.
그때였다.
“누구 없어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숲 너머에서 가느다란 미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걸으니 웬 여성이 나무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헉, 헉…… 누가 좀 도와…… 아!”
류민과 주성탁을 본 여성이 반색했다.
“사, 살았다! 나 말고도 사람이 있었어!”
플레이어로 보이는 옷차림의 여성이 반가운 마음에 몸을 일으키려다가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아흐윽…… 저, 저기요, 저 좀 도와주세요. 일어날 수가 없어요. 발목이 다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슬라임에게 공격받았어요. 발이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
힐끔 쳐다본 여성의 발목은 맹독에 걸린 것처럼 파랗게 부어 있었다.
“흠. 못 움직일만하네요.”
“너무 아파요, 흐흑.”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는 건지?”
류민의 반응이 시큰둥한 걸 느꼈는지 여성의 얼굴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저, 저 좀 데리고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해달라는 건 뭐든지 할게요. 네?”
“뭐든지요?”
“네! 뭐든지요. 마, 말하기 부끄럽지만, 욕정을 풀고 싶으시면 들어줄 수도…….”
“됐고, 가지고 있는 아이템 있으면 다 주실 수 있습니까?”
“아이템이요? 그럼요!”
여성은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들을 꺼냈다.
몇 개의 유니크 재료와 상급 마정석이었다.
“일단 이것만 드릴게요. 나머지는 저를 구해주신 후에 드리죠. 어떠세요?”
“좋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류민은 아이템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낫을 들고 여성에게 다가갈 뿐.
“뭐 하시는…….”
그리곤 여성이 반응하기도 전에 목을 쳐버렸다.
툭-!
놀란 표정의 머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갑작스러운 살인에 흠칫할 법도 했지만 주성탁은 무덤덤했다.
이미 류민으로부터 언질을 들었기 때문이다.
-도플갱어는 죽인 사람의 모습과 기억을 훔쳐서 미궁에 들어온 다른 인간들을 현혹한다. 흔히 슬라임에게 당했다며 부축해 달라고 하다가 빙의해서 죽여 버리지.
미리 이야기를 들었기에 주성탁은 여성을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이 바로 이곳의 보스인 도플갱어라는 것을.
파스스스스-
여성의 신체가 가루처럼 흩날리며 사라졌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아이템도 사라졌다.
전부 다 가짜였다.
플레이어의 모습과 기억만큼은 진짜였지만.
스멀스멀-
시체가 사라진 자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사람의 형태를 갖췄다.
[어떻게 알았지? 내 연기는 완벽했을 텐데?]유창한 한국말을 지껄이는 놈을 보며, 류민이 대놓고 비웃어줬다.
“몬스터 주제에 인간이랑 대화하려 들다니. 어이가 없군.”
[몬스터? 남의 영역에 침범한 너희 인간이야말로 몬스터가 아니겠느냐?]“지랄 말고 덤벼라. 몬스터 새끼야.”
[입이 거친 인간이구나.]그때 마침 류민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조건 ▶ 도플갱어의 함정 파훼하고 본모습 마주하기
[서브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포인트+2,000]└조건 ▶ 도플갱어가 다른 사냥감을 죽이는 걸 지켜보기
└현재 도플갱어가 처치한 사냥감 (0/10)
└조건 ▶ 직접 도플갱어 죽이기
서브 퀘스트는 주성탁에게도 떠올랐는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성탁.”
“예?”
“뛰어라.”
그 말만 남긴 채 류민이 자리를 박차고 달렸다.
작전을 떠올린 주성탁이 잽싸게 주인을 따라 달렸다.
[어딜 가느냐, 인간!]도플갱어의 인영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왔다.
난데없이 줄행랑을 치는 모습에 도플갱어가 쫓아가면서도 비웃었다.
[먼저 덤비라더니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거냐? 조금 전의 패기는 어딜 간 거냐? 인간!]류민은 대꾸도 없이 미궁을 달리기에 바빴다.
[거기 서라! 너희들이 감히 내 구역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응.’
그리 대답하고 싶었지만 류민은 참았다.
도발은 충분히 했으니 도플갱어를 유인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도플갱어는 느려. 느려 터졌지.’
둥둥 떠다니곤 있지만, 플레이어의 달리기를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도플갱어를 뿌리치는 건 일도 아니란 소리.
하지만 일부러 잡힐 듯 말듯 간당간당하게 속도를 조절했다.
도플갱어에게 먹이를 주는 퀘스트를 깨야 하니까.
‘조금 있으면 미궁의 위치가 바뀔 시간이다. 저 구간까지는 유인해야 해.’
류민은 위치를 확인하며 주성탁과 함께 한 나무 앞에 멈춰 섰다.
[뭐냐? 쥐새끼처럼 도망 다니더니, 이제야 포기한 거냐!]킬킬거리던 도플갱어가 5m 이내로 다가온 순간.
“어?”
“뭐, 뭐야?”
미궁의 위치가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하게 됐다.
다름 아닌 흑사회 무리였다.
다들 당황하는 가운데, 도플갱어의 형상만이 입을 길쭉하게 늘리고 있었다.
[호오? 이게 웬 떡이냐? 갑자기 먹잇감이 늘어나다니. 킬킬.]중국인들이 있는 장소로 유인해 줬더니 예상대로 도플갱어가 좋아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아아!]* * *
시즈캉은 당황했다.
난데없이 눈앞에 동양인 두 사람이 나타난 건 그렇다 치자.
문제는.
“으아악, 살려줘!”
콰드득- 콰드득- 빠드득!
부하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검은 형상을 한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시, 시즈캉니이임!”
검은 형상이 부하 한 명에게 흡수되듯 스며들어 가더니 이내 온몸이 비틀리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빠드득- 빠득-
“끄아아아악! 으아악!”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5초 사이에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인 채로 죽은 부하에게서 검은 형상이 영혼처럼 빠져나왔다.
그러더니 이내 다른 부하에게 들러붙으며 똑같이 사지를 360도로 비틀어버렸다.
뿌드드득-
“커어컥! 컥!”
‘X이이이이발.’
순식간에 세 명의 부하가 죽었다.
딱 봐도 저 검은 형상이 원인인 듯하다.
‘저게 뭐냐고 대체.’
정확히는 몰라도 사람을 죽이는 귀신 같은 존재로 보인다.
당장은 급박한 이 상황부터 해결해야 한다.
“다들 멀뚱히 뭐 하고 있어! 저 검은 형상이 원인이다! 얼른 죽여!”
시즈캉의 지시에 부하들이 정신을 차리고 검은 형상이 붙은 부하를 향해 검을 겨눴다.
그러나.
“얘, 얘들아! 왜 이래! 나야, 나! 첸푸!”
익숙한 중국어로 손사래 치는 동료의 모습에 차마 검을 휘두르지 못하는 부하들이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망설임이 생사를 가를 줄은 그들도 몰랐다.
푹-! 푹-!
“커허으억…….”
“커컥……!”
검으로 주저 없이 동료의 목을 꿰뚫어버린 첸푸가 어느새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큭큭, 병신들. 이런 간단한 연기에 속아 넘어가다니. 하여간 인간 놈들은 하나 같이 약해빠졌다니까?”
“저, 저놈 뭐야?”
“괴, 괴물이었어?”
“죽어라, 괴물아!”
본색을 드러낸 첸푸를 향해 동료들이 검을 찔렀다.
순식간에 꼬챙이가 된 첸푸가 고개를 꺾었지만, 도플갱어는 죽지 않고 다른 몸으로 옮겨갔다.
“킥킥, 날 죽이겠다고? 어디 한 번 죽여봐.”
계속해서 몸을 옮겨타며 부하들을 죽여버리는 정체불명의 괴물에, 시즈캉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저, 저런 걸 어떻게 죽이라고. 전혀 대미지를 입지 않잖아!’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시즈캉이 도망가려는 그때.
“어딜 가시게.”
류민이 낫을 든 채로 그의 앞을 막아섰다.
“넌 뭐야! 저리 비켜!”
“날 찾아온 거 아니었나?”
“네가 누군데 새끼야!”
“보면 몰라?”
어깨에 걸쳐 맨 낫을 흔들어 보인 류민이 웃으며 말했다.
“나야. 검은 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