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79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79화
179. 도플갱어의 보상
‘검은…… 낫?’
시즈캉은 자신을 검은 낫이라 자처한 상대를 유심히 보았다.
‘닉네임처럼 낫을 들고 있는 데다 한국 플레이어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본 적은 처음이기에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검은 낫이라고?”
“어. 나 찾으려고 여기까지 따라온 거잖아. 아니야?”
“그걸 네가 어떻게…….”
시즈캉이 묻다 말고 홱 고개를 돌렸다.
“시즈캉 님! 끄아아악!”
바로 등 뒤에서 부하들이 죽어 나가는 절박한 상황이었으니까.
“야, 이 빵즈 새끼야! 저리 안 비켜?”
“말만 그러지 말고 덤벼보던가. 왜 가만히 있대? 쫄았나?”
상대가 이죽거리며 말했지만 시즈캉은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저놈이 만약 진짜로 검은 낫이라면…….’
일대일로 붙을 수 있겠는가?
90레벨인 검은 낫을 상대로?
그런 가정 때문에 섣불리 덤빌 수 없는 것이었다.
뿌드드득-
목이 돌아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주변이 조용해졌다.
시즈캉이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부하들이 모두 죽고 검은 형체가 사람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빌어먹을. 괜히 시간 끌려 가지고……!’
저 새끼 때문이다.
시즈캉의 시선이 자신을 가로막은 남자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선택지가 없다.
물러날 데가 없다.
앞뒤로 적이라면 한쪽을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승부를 거는 수밖에 없다.
‘한쪽을 걸어야 한다면 검은 낫이라고 자처하는 저 새끼를 노린다.’
놈이 진짜 검은 낫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의외로 허약할지도 모르니까.
타깃을 정한 시즈캉의 눈이 번뜩였다.
검은 낫인지 뭔지를 죽이고 당장 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핏빛의 손아귀!’
손을 뻗자 피로 물든 거인의 손이 검은 낫을 움켜쥐었다.
‘됐어! 끝났다!’
피할 줄 알았는데 붙잡혔다.
‘이제 끌려오기만 하면 그대로 머리를…….’
찍어버릴 심산이었던 시즈캉은 순간 생각을 잇지 못했다.
핏빛의 손아귀가 적을 붙잡은 채로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왜 가만히 있는…….’
자세히 보니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다.
손아귀는 부들거리며 상대를 끌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상대를 끌어온다는 스킬의 설명이 무색하게 말이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스킬이 안 먹히는…… 아!’
그러고 보니 적을 당겨오지 못하는 경우가 전에도 있었다.
힘 스탯이 높은 상대는 끌려오다가도 힘으로 풀어버리며 저항하곤 했다.
‘설마 저 새끼, 힘으로 내 스킬을 버티고 있는 거야?’
거인의 손에 붙잡힌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검은 낫을 보며 시즈캉이 놀랐다.
“힘이 대체 얼마나 높길래…….”
시간초과로 손아귀가 자연적으로 소실되자 검은 낫이 픽 실소를 지었다.
“뭘 이거 가지고 놀라. 블레스도 받지 못한 몸인데.”
“블레스? 무슨 개소리냐?”
“알 거 없어.”
비웃음 짓던 검은 낫이 낫을 인벤토리로 집어넣었다.
“뭐 하는 거지?”
“희망 좀 주려고.”
“뭐?”
“무기든 스킬이든 아무것도 안 쓸게. 어디 마음껏 덤벼봐.”
‘저 새끼가…….’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것도 모자라 자신을 조롱하다니.
이 상황에서 자존심이 상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
“오냐, 소원대로 죽여주마.”
검신이 붉게 물들었다.
광전사의 40레벨 스킬, 블러드 오러.
주변에 흩뿌려진 피가 많을수록 더욱 색이 진해지고 강해지는 이 오러는 강철도 두부처럼 자를 수 있는 절삭력을 가진다.
이른바 적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광전사의 강력한 버프 스킬이다.
하지만.
후웅-! 후웅-!
어디까지나 적을 맞힐 수 있을 때나 소용 있는 스킬이었다.
‘X발, 왜 안 맞아. 도대체 왜!’
미친놈처럼 칼을 휘둘러댔지만 검은 낫은 모조리 피해내고 있었다.
검로를 미리 읽기라도 하듯 물 흐르듯 유연한 움직임이었다.
“블러드 오러가 좋긴 하지. 다크 나이트가 가진 오러의 하위호환이긴 하지만 뭐, 나름대로 쓸 만해. 그런데 맞히지도 못하면 무용지물 아닌가?”
“주절주절 나불대지 말고 닥쳐, 이 새끼야!”
“나보단 네가 닥쳐야겠는데.”
그리 말한 검은 낫은 딱 한 번의 공격만 가했다.
퍽-!
그건 단순한 잽이었다.
하지만 총알보다 빨라서 맞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수준의 일격이었다.
“커허헑!”
입안에 있던 옥수수를 피와 함께 흩뿌린 시즈캉이 볼썽사납게 바닥을 뒹굴었다.
턱이 빠져버리고 수십 방을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졌다.
‘무, 무슨 잽이…….’
잽 한 방에 이 지경이 됐다기엔 믿을 수 없는 힘이었다.
“크흐으, 너, 너 이 쉐끼…….”
“이가 몽땅 빠져도 욕할 힘은 남아 있나 보지?”
“즈겨버린다…….”
힘의 차이를 깨달았지만, 자존심은 굽히지 않았다.
자신은 흑사회의 간부이자 얼굴.
자존심을 굽히면 흑사회를 욕보이는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닐 텐데.”
“므어?”
[잘 먹겠습니다. 키힉힉.]시즈캉이 뒤돌아보는 순간, 도플갱어가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속으로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컥, 컥!”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목을 조른 시즈캉은 뿌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10초도 지나지 않아 죽어버렸다.
└조건 ▶ 도플갱어가 다른 사냥감을 죽이는 걸 지켜보기
└현재 도플갱어가 처치한 사냥감 (10/10)
보상이 완료된 걸 확인한 류민이 입꼬리를 올렸다.
상당히 많은 양의 포인트가 들어왔다.
직접 중국인들을 살해했을 때보다 배는 많은 포인트였다.
‘아마 주성탁도 보상을 받았겠지.’
이제 남은 건 도플갱어를 처치하는 일뿐.
[키힉힉힉! 너무 맛있어, 인간의 기억은 너무 맛있다고!]때마침 검은 형상으로 나타난 도플갱어가 류민을 쳐다봤다.
[너 말이야. 나한테 일부러 먹이를 던져준 거지?]“…….”
[대체 왜 그랬어? 그렇게라도 하면 내가 기분 좋아서 살려줄 줄 알았어?]“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파직파직-
류민이 히죽 웃으며 손가락 끝에 전류를 모았다.
“살려달라고 빌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야.”
[흥, 아직도 그런 허세를…….]“차징.”
파지지직-!
쏘아진 전류가 도플갱어의 몸을 강타했다.
[끼야아아아아악!]끔찍한 고통과 함께 수십 미터를 밀려난 도플갱어가 휴짓조각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내가 모르는 줄 알았어? 너 같은 영체 몬스터한텐 마법 대미지가 쥐약이라는 걸?”
[끼으으으으에엑…….]“아니면 나한테 마법이 없는 줄 알고 얕잡아본 건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이제 곧 죽을 놈이니.”
[끼으으으으으…….]‘이거 원, 상태를 보아하니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네.’
죽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빗겨 쳤는데도 이 정도다.
‘민주리의 버프도 없는 상태라 그나마 대미지가 낮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
어쨌거나 놈을 이대로 자신의 손에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
주성탁의 손이라면 몰라도.
“시작해.”
“예, 주인님.”
류민의 명령에 주성탁이 시체 폭발을 사용했다.
시체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지만 문제는 없었다.
도플갱어가 밀려난 주변으로 열 구의 시체가 있었으니까.
* * *
콰콰콰콰콰콰콰쾅-!
갑작스러운 폭음에 마경록과 안상철이 깜짝 놀랐다.
“무슨 소리죠?”
“뭔가 터지는 소리 같은데…….”
폭발의 크기로 봐서 숲을 전부 불태울만한 화력이었다.
“이 정도면 불길이 보여야 하지 않나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둡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다시 생각해도 참으로 이상한 숲이었다.
추적도, 탐색도 불가한 데다가 걸으면 걸을수록 같은 길을 도는 느낌이 든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 실장. 이 소리가 어디서 난 거 같습니까?”
“바로 옆에서 난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나무들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후우. 어쩔 수 없지요. 계속 걷는 수밖에. 길 잃지 않게 잘 따라오세요.”
“네, 대표님.”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며 정처 없이 미궁을 걷는 수밖에 없었다.
* * *
시체 폭발의 효과는 대단했다.
열 구의 시신을 동시에 터트린 덕분에 도플갱어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멸해 버렸다.
보통 이쯤에서 보상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라야 하지만…….
‘아쉽게도 잡은 건 내가 아니란 말이지.’
도플갱어의 막타를 차지한 사람은 주성탁이었기에 류민은 아무런 메시지도 받지 못했다.
정체 드러내기와 먹이 주기 퀘스트 보상으로 12,000 포인트만 받았을 뿐이다.
‘주성탁은 도플갱어를 잡은 보상으로 20,000 포인트를 얻었겠지.’
주인보다 노예가 더 포인트가 많은 상황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건 포인트가 아니라 도플갱어의 아이템이니까.’
게다가 포인트를 벌 방법은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었고 1등 할 자신도 있었다.
주성탁이 앞서봐야 일시적인 앞지름일 뿐이다.
‘어차피 남은 시간은 23시간. 시간적 여유는 많아.’
11라운드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나 다름없었기에 걱정할 건 없다.
‘마지막에 막판 뒤집기가 있긴 하지만.’
주성탁을 보니 허공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보아하니 메시지를 확인하는 모양.
잠깐 생각을 읽어 보니 류민이 원하던 아이템이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다행이군. 예정대로 반지가 나와서.’
비록 주성탁이 보스의 경험치와 포인트를 가져갔지만 괜찮다.
자신의 부하가 된 이상 녀석의 성장은 자신의 성장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부캐를 키우는 느낌이랄까?’
20라운드에 최대한 많은 동료를 데려가야 하는 만큼 같이 성장해서 나쁠 건 없다.
‘날 따라오던 중국인들은 제거했고…… 이제 나머지를 살펴볼까?’
천리안을 쓴 류민은 마경록 일행에게로 눈을 돌렸다.
갑작스러운 폭발 소리에 당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시체 폭발 소리가 저기까지 들린 모양이야.’
위치는 다르지만, 미궁의 숲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마치 벽 하나를 사이에 둔 것처럼.
이 정도 폭발음이면 벽 너머로 들려도 이상할 게 없다.
‘아이템 좀 확인한 후에 녀석들을 만나러 가야겠어.’
미궁에 붙잡아둘 계획이긴 하지만 이대로 놔뒀다간 몇 시간 후에 탈출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정대로 사람들을 죽여 포인트를 쌓으려고 하겠지.’
미궁에서 시간을 허비했으니 절박한 심정일 거다.
타국 플레이어를 죽이러 다닐 게 불 보듯 뻔했다.
11라운드의 마경록은 항상 그랬으니까.
그러니 막아야 한다.
미래를 아는 자신만이 막을 수 있다.
‘죽일 것까진 없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줘야지.’
악마 같은 미소를 짓는 사이, 주성탁이 다가왔다.
“주인님. 여기 도플갱어로부터 들어온 아이템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아이템들을 꺼내 바치는 주성탁이었다.
[도플갱어의 반지]-분류 : 반지
-등급 : 레전더리
-효과 : 닉네임 변경 (이계에서만 사용 가능)
-내구력 : 6,000/6,000
-사용 제한 : 익스퍼트 등급 이상
-설명 : 이계에서 마음대로 닉네임을 변경할 수 있는 아이템. 반지를 해제하면 원래 닉네임으로 돌아온다.
‘원하던 게 들어왔군.’
설명 그대로 닉네임을 변경하는 아이템이다.
이게 있으면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추적당할 걱정은 할 필요 없다.
‘검은 낫이 아닌, 다른 사람 행세를 할 수도 있고 말이지.’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닉네임을 변경하는 권한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이제 얼굴만이 아니라 닉네임까지도 바꿀 수 있다니.’
완벽한 변장술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야. 추가로 갓 등급의 재료까지도 들어왔어.’
재료를 챙긴 류민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주성탁을 살려두길 잘했다.
녀석이 가진 [드랍의 룬] 덕분에 원하던 아이템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류민은 금세 웃음기를 지우고 의아한 얼굴이 됐다.
주성탁이 인벤토리에서 또 하나의 아이템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건 또 뭐지?”
“이것도 도플갱어에게서 나온 아이템입니다.”
반지와 갓 등급 재료 말고 하나가 더 있었나?
아이템을 받아든 류민이 이내 놀란 눈초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