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351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351화
351. 크로노스와의 만남
잠깐 위층으로 올라간 민도준이 누군가를 데리고 내려왔다.
장발에 안경을 쓴 미남자.
형상화된 모습이겠지만 외모만으로는 크로노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이건가? 내 영혼에 남아 있다는 크로노스의 힘의 잔재가?’
신력이나 테라와는 확실히 다른 기운이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검은 낫 님. 시간의 신, 크로노스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모습은 인간을 형상화했을 뿐이고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 크로노스는 민도준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마자 준비했다는 듯 민도준의 아내가 차를 내어왔다.
[고맙습니다.]크로노스가 받더니 스스럼없이 마신다.
자신과 달리 민도준을 의심하지 않는 모습.
그 모습에 안심을 한 건 아니었다.
마음의 진정이 필요했다.
후룹-
류민이 비로소 카모마일 차를 마시자 민도준이 웃으며 말했다.
[거봐. 마셔야 할 거라고 했잖아.]“크로노스 님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가이아의 눈을 피해 도망칠 곳을 찾고 있는 그를 내가 숨겨줬지. 여기에 있으면 아카식 레코드의 기록을 피할 수 있거든.]“하지만 루브아히의 말로는 아카식 레코드로 민도준 님의 존재를 알았다고…….”
“그럼 가이아도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겠군요. 아카식 레코드로 찾을 수 없는 장소라면 한정되어 있을 테니까.”
[오오, 꽤 머리가 돌아가시는군요?]가만히 듣고 있던 크로노스가 감탄을 내뱉었다.
[검은 낫 님 말대로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이쪽 차원계에 숨었을 거라 의심하고 계시죠. 하지만 학살의 신님이 차원을 뒤지도록 허락할 리도 없고 명확한 증거도 없기에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계세요.]“그래서 저를 이용해 크로노스 님의 위치를 파악하려던 거군요. 증거를 확보하려고.”
[맞아요. 하지만 증거 따윈 필요 없을 겁니다. 정확한 위치만 파악하면 아버지의 도움으로 저를 순식간에 빼내 올 수 있거든요.]“카오스의 도움으로?”
[예. 검은 낫 님을 제물 삼아 시간의 힘을 추출하면 같은 성질의 힘을 가진 저의 좌표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뒤 공간 도약이 장기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저를 빼낼 생각이었겠죠. 그렇기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손을 잡으려 할 겁니다. 저를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가장 강한 태초의 신 두 명이 손을 잡으려 한다니.
이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면 저희도 손을 잡으면 그만이니.]“저랑 손을 잡겠다고요?”
[예. 부디 류민 씨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카오스와 가이아를 소멸시킬 수 있도록.]크로노스의 제안에 류민은 침묵했다.
아들의 입에서 부모를 죽이자는 말을 꺼내다니.
어떻게 보면 패륜이 아니던가?
“정말 그러길 원합니까? 그래도 부모인데.”
[부모? 그것들은 부모라고 부르기도 역겹습니다. 자식을 죽이려는 존재를 어찌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죠.]어지간히 증오하는지 크로노스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아버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머니까지 저를 배신할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 제힘에 넘어가서 이용하고 죽이려고만 하다니……. 그러니 죽임당하기 전에 먼저 둘을 죽여야겠습니다. 비록 부모라 하더라도 말이죠.]“으음…….”
크로노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부모라고 좋은 부모만 있는 법은 아니니까.
‘그렇다 해도 저렇게 죽이고 싶을까? 그래도 부모인데.’
부모님이 간절한 자신으로선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냥 여기서 살면 되지 않습니까? 물론 학살의 신님이 허락한다는 전제하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지금 이렇게 숨겨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인데. 더 이상 신세 질 수야 없죠. 그리고…….]크로노스가 한숨을 쉬었다.
[도망 다니는 건 이제 지쳤습니다. 저도 이젠 떳떳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에요.]“소멸시키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나요? 당신의 힘으로 시간을 돌리는 건?”
결국 소멸시키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나도 그걸 원하지만.’
카오스에 이어 가이아가 복수할 목록에 추가됐지만 아무래도 좋다.
놈들을 소멸시키고 원래의 삶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나저나 내가 뭘 어떻게 도와야 하지?’
도와줄 마음이야 충분했지만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초의 신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의 힘은 그 둘에게 비비기엔 미약하기 그지없는데.
그것도 플레이어의 힘 대부분을 잃은 현재로서는.
‘으음.’
말없이 고민하고 있자 크로노스가 불안한 눈으로 힐끔거린다.
그러더니 자신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판단한 듯, 제안한다.
[아무래도 대가가 있어야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죠? 둘을 소멸시키게 도와주신다면 검은 낫 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겠습니다.]“소원이요?”
[검은 낫 님이 원하는 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거지요? 저를 도와주시면 천사가 나타나지 않았던 시절로 시간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102번째 회귀가 되겠군요.]“그게 의미가 있나요? 때가 되면 또다시 천사가 나타날 텐데요? 게다가 소멸시킨 후 시간을 돌리면 카오스와 가이아도 되살아나는 것 아닙니까?”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없던 존재가 되어버리죠. 이쪽 세계선과 그쪽 세계선을 잘라서 이어붙인다면 말입니다.]“……세계선?”
[후후, 우선 세계선이란 개념부터 알려드려야 할 것 같군요.]머리를 쓸어넘기며 잘난 미소를 짓던 크로노스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처럼 말했다.
[검은 낫 님이 현재 걷고 있는 세계선은 하나가 아닙니다. 평행우주라고 들어보셨습니까?]“그 정도는 압니다. 현대의 지구와 다른 역사로 진행된, 또 다른 지구가 무한히 있다는 이론이죠.”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검은 낫 님은 현재 평행우주가 만들어낸 무수한 세계선 중 하나에 속해 있을 뿐이니까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보통 회귀했을 때 과거로 돌아간다고 알고 있죠?]류민이 끄덕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회귀 시 검은 낫 님이 아는 과거로 돌아가는 건 맞지만, 진짜 과거는 아닙니다. 말하자면 복사된 과거죠.]“복사된 과거?”
“…….”
[실질적으로 검은 낫 님이 죽은 1회차의 세계는 어딘가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검은 낫 님이 죽은 세상으로서 말이죠.]“……그러니까 내가 죽은 1회차가 평행세계로서 존재하고 있다?”
[맞습니다. 2회차도, 3회차도, 100회차도. 또 다른 세계선으로 전부 존재하고 있습니다. 검은 낫 님이라는 존재 없이 말이죠.]“그럼 지금의 나는…….”
[101회차. 검은 낫 님은 현재 101회차의 세계선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일 뿐입니다.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요.]평행우주의 개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복사된 과거라는 말이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완벽히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저라도 시간을 거스르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그게 불변의 법칙입니다. 그저 나뭇가지에 줄기가 갈라지는 것처럼 무수한 세계선을 양성해낼 뿐이죠. 파이널 라운드의 보상인 소원의 방도 그런 개념입니다.]“……소원의 방이?”
[생각해 보세요. 통과한 사람 모두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세상이 얼마나 꼬이고 복잡해질지.]류민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다.
한 명도 아니고 97명이 소원을 비는데 그걸 어떻게 다 적용할 수 있을까?
누구는 회귀를 원할 수도 있고, 누구는 특정인의 죽음이나 부활을 원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설마……?”
“…….”
[그 세계선에서 누구는 부자로 살아갈 테고, 누구는 과거로 돌아갔을 테고, 누구는 플레이어로서 능력을 뽐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각자 원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까요?]크로노스의 이론은 현실이되 현실이 아닌, 불가해한 영역이었다.
‘그렇다면 민주리도, 서아린도, 크리스틴도, 각자의 소원을 이룬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인가? 제각기 만들어낸 꿈처럼?’
그곳에선 류민, 자신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또 다른 평행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제 좀 이해가 됩니까?]“이제 알겠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세계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지금의 제가 1회차의 류민이 아닌 101번째의 세계선에 속한 류민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검은 낫 님이 복사된 가짜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평행우주라는 개념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니…….]“알고 있습니다. 그럼 아까 세계선을 이어붙인다는 말의 뜻은?”
[현재 검은 낫 님의 세계선에선 18억의 인구가 죽어버린 상황이죠. 하지만 카오스와 가이아가 없는 미래를 만든 뒤, 새로운 세계선을 만들어 이어붙인다면? 인구는 유지된 채로 카오스와 가이아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그게 가능한 겁니까?”
[가능하지 않았다면 이런 제안을 하지도 않았죠.]원하는 부분만 잘라낸 뒤 세계선을 이어 붙인다?
그럼 원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상적인 세계.
‘쉽게 말해 원하는 부분만 골라서 편집할 수 있다는 말이군.’
확실히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어떻습니까? 이제 저를 도울 마음이 생기셨나요?]‘어차피 카오스를 죽이겠다고 계약도 했고 목적도 같으니 도와줄 생각이었다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 류민이었다.
“알겠습니다. 도와드리죠. 그런데 별다른 힘도 없는 제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힘이 없다면 가지면 됩니다.]“어떻게?”
[드라카니아에 묻어 놓은 막대한 양의 테라가 있잖아요?]“아.”
비록 이전과 같은 힘은 없지만 테라가 있다면 해볼 만하다.
얼마나 묻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살의 신님이?”
류민의 시선에 민도준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플레이어로서 가졌던 모든 힘을 복구시켜 주지.]“제가 가진…… 모든 힘을요?”
[그래.]“하지만 가이아가 이미 삭제된 데이터라 불가능하다고…….”
[가이아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자신만만한 민도준의 미소에 류민은 놀란 표정만 지을 따름이었다.
‘기존의 힘을 복구하고 묻혀 있는 테라를 모두 확보한다면…….’
카오스와 가이아를 상대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옆에는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야. 데이터 복구를 위해선 나한테서 한가지 시술을 받아야 해.]“예? 시술이요?”
[나와 같은 초월자가 되어야 잠재된 데이터를 끄집어낼 수 있거든.]“초월자?”
갑작스러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류민의 눈에 결연함이 깃들었다.
더 강하게 만들어주겠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럼 부탁드립니다. 학살의 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