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398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22화
22. 호스트 내비게이션
라폴라이는 당황했다.
갑자기 시공의 틈새에 갇힌 것도 모자라 낫을 든 미친 인간을 만나다니.
그리고 그 인간이 자신에게 미친 소리를 한다.
“라폴라이. 그게 네 이름이지?”
“…….”
“알아듣는 거 아니까 대답해. 인간을 숙주로 삼으면서 한국어는 이미 습득했잖아? 기왕이면 모습도 액체화 말고 인간의 형태로 좀 유지하고.”
내심 놀라던 라폴라이가 검은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인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는다.
“그래. 그렇게 변하니까 눈높이가 좀 맞잖아.”
“누구냐?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다 아는 수가 있지.”
“설마 나를 시공의 틈새로 끌어들인 것도 너냐?”
“나 아니면 누구겠어?”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인간이 어떻게 이런 능력을…….”
“인간이 아니야.”
인간으로 보이는 상대가 말을 이었다.
“나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다. 너에게 제안할 게 있어 이곳으로 데려왔지.”
류민은 주저 없이 거짓말을 일삼았다.
저번에 볼루아크를 속였을 때 효과가 좋았기에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의 신? 지랄하고 있네.”
상대는 전과 달리 쉬이 믿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신은 오직 차원의 신인 데오란트 님뿐이다. 그분만이 유일신이며 다른 신들은 믿을 필요 없는 가짜고 쓰레기들이라 말하셨다!”
녀석은 데오란트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다.
“그런데 뭐? 시간의 신? 그딴 신은 있지도 않고 있다고 믿고 싶지도 않다!”
“시공의 틈새에 갇혀놓고도 믿지 못하겠단 말이냐?”
“어. 안 믿어. 너랑 도란도란 대화하고픈 마음도 없고.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이 결계 풀어라?”
이제는 협박까지 하는 녀석.
류민의 입에서 실소가 나왔다.
“멍청해서 그런 것 같은데…… 자신감만큼은 높이 사지.”
“미친 인간이 뒈지려고. 빨리 안 풀어?”
“안 풀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죽여 버린다, 인간!”
살기를 풀풀 날리는 라폴라이였으나 류민에겐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감옥에 갇힌 주제에 간수장에게 윽박지르는 꼴이었으니.
‘지능이 많이 떨어지는 놈이군. 이용해 먹기 좋겠어.’
이미 시드와 호스트를 멸종시키고 하나의 세계선을 구하고 온 류민에게 저딴 협박이 통할 리가 없었다.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간다!”
라폴라이의 기세등등함은 정확히 10분이 흐른 시점에서야 사라지고 말았다.
“헉, 허억…….”
10분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볐지만,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이제 내 턴이지?”
류민의 몸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머리 위에서 나타난 류민이 낫을 크게 휘둘렀다.
라폴라이의 검은 형체가 반으로 갈라졌으나 그는 웃었다.
‘병신. 나는 액체라 물리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
하지만 곧이어 찾아온 짜릿한 통증에 라폴라이의 입이 벌어졌다.
“끄, 끄햐아악!”
“아프지?”
다시 원상 복구된 라폴라이를 류민이 또 한 번 베었다.
“캬아아악!”
“아플 거야. 내 낫은 영혼까지 베어버리니까.”
형체가 복구되자마자 이번엔 허리를 베었다.
다시 머리를 쪼개고, 팔다리를 자르고, 다시 목을 썰어버리고.
온몸을 그야말로 채소 썰듯 토막 내버렸다.
그럴 때마다 있는 대로 비명을 질러대는 라폴라이였다.
“끄으아, 아으아, 으아악!”
몸을 벨 때마다 목소리가 한없이 올라간다.
‘생소하겠지. 고통이라는 느낌이.’
날 때부터 최강자로 태어난 시드들은 고통이라곤 모르는 존재.
자신을 고귀한 왕족으로 여기며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왔을 테니 그럴 수밖에.
“끄, 끄흐흐으으…….”
죽기 직전까지 낫질 당한 라폴라이는 그야말로 처참한 상태였다.
200여 개로 조각난 채 회복조차 못 하는 모습을 보면 반항할 의지조차 엿보이지 않는다.
“라폴라이. 이제 내 말 들을 준비 됐냐?”
“흐끄으…….”
“좀 더 조각내버려야 말귀를 알아들으려나?”
“끅, 아, 아닙니다…… 드, 드를 중비됐슴다…….”
말까지 꼬일 정도로 정신이 갈가리 찢긴 라폴라이를 흡족한 눈으로 바라봤다.
고문이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보기보다 정신력이 약하다.
“말했지만 난 시간의 신이다. 호스트의 기운을 느끼고 제거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내려왔지. 내 말 믿나?”
“미, 믿습니다, 믿어요!”
“태도가 좋군. 진즉에 이렇게 좀 하지. 처음부터 내 말을 믿었으면 이렇게 고통받지 않아도 됐잖아?”
“그,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거나 호스트는 시간의 법칙을 거슬러 태어난 존재야. 나는 놈들을 제거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호스트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단 말이지? 그래서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어,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보자마자 욕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변했다.
“너, 내 호스트 내비게이션이 되어라.”
“예? 내비…요?”
“호스트를 찾아내는데 앞장서란 소리다. 놈들을 제거해야 하니까.”
“아….”
“너무 걱정 마라. 이 땅의 호스트만 제거하면 내 볼일도 끝나니까. 그때가 되면 너는 풀어줄게.”
“저, 정말입니까?”
“물론이지. 내가 뭐 하러 거짓말해?”
물론 거짓말이다.
괜히 시드까지 제거한다고 말했다간 협조에 불응할 수도 있다.
자신이 죽을 목숨인 걸 안다면 다른 살길을 모색하려 들 테니까.
“그 대신 길 안내해 주는 대가로 호스트의 시체는 전부 흡수해도 좋다.”
“아, 알겠습니다.”
화색을 띠는 걸 보니 나름대로 제안에 만족한 모양이다.
‘확실히 덜떨어진 놈이야.’
이참에 궁금한 것을 전부 물어보기로 했다.
뭐든 대답해 줄 것 같았으니까.
“이 세계에 파견된 호스트의 수는 몇 마리지?”
“여기 죽은 놈까지 포함해 300마리입니다.”
“나라마다 하나씩 배치되어 있나?”
“아마 그럴 겁니다.”
“시드의 수는?”
“그건 저도 잘… 저, 정말입니다! 진짜로 모릅니다!”
“누가 뭐래?”
괜히 겁을 집어먹고 소리치는 호스트였지만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거짓이 아니라는걸.
‘호스트가 300마리인 걸 보니 시드도 아마 12마리가 파견됐겠지. 이전 세계선처럼.’
일단은 호스트 내비게이션을 구했으니 한시라도 빨리 제거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바깥 상황을 보니 연구원들이 자리를 비웠군. 결계를 해제해 줄 테니 호스트를 흡수해라. 그 후에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간다. 알아들었나?”
“아, 예…….”
시공의 틈을 해제하자 환경이 뒤바뀌었다.
류민이 말한 대로 연구원들은 휴식을 취하러 갔는지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흡수해라.”
“예.”
라폴라이는 부검대 위에 놓여 있는 호스트의 시신에 손을 가져갔다.
꿀렁꿀렁-
시체에서 올라온 검은 액체가 라폴라이의 손바닥에 완전히 흡수됐다.
껍데기인 송민혁의 시신만 남기고 말끔하게 빨아들였다.
연구원들이 돌아온다면 땅을 칠 만한 상황.
“다 먹었으면 안내해.”
“어디로 말입니까?”
“가장 가까운 호스트가 있는 곳으로.”
* * *
라폴라이와 함께 류민은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가까운 일본부터 북한, 몽골, 중국, 태국, 베트남 등.
모든 나라를 차례로 방문했다.
물론 방문이라기보단 침범에 가까웠지만.
‘손수 괴물을 처리해 주겠다는데 국경 침범이 대수야?’
각 나라의 국가원수들은 류민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뭐 상황이 어떤지 아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파지지지직!
“키에에엑!”
까맣게 타버린 호스트의 시신을 향해 무미건조한 명령이 내려졌다.
“흡수해.”
“예…….”
라폴라이는 별다른 저항도 못 한 채 죽어 버린 호스트를 향해 손을 가져갔다.
만나는 놈들마다 반격 한 번 못 하고 죽어버리는 꼴을 보니 불쌍하다 못해 연민을 느낄 지경.
‘이걸로 15번째야. 시간의 신은 정말 300마리의 호스트를 모두 제거할 셈인가?’
흡수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자신이 느껴졌으나 라폴라이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직 여물지 않은 싹을 뽑아버리는 기분이었기에.
“뭔 생각해?”
“아, 아닙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다음 호스트한테나 안내해라.”
“예, 저, 저쪽입니다. 가시죠.”
검은 형상을 유지한 채로 날아가는 라폴라이를 류민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뒤쫓았다.
‘슬슬 자신의 행동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어.’
볼루아크를 길잡이로 쓸 때도 그랬다.
처음엔 말을 잘 들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정말 잘하고 있는 짓인지 의구심을 품었다.
‘하지만 내가 뒤에서 버티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제거에 앞장설 수밖에 없지.’
끝내 호스트 제거에 크게 기여하고 생을 마감한 볼루아크였다.
여기 있는 라폴라이도 그렇게 될 운명이었고.
‘하지만 제거 속도가 너무 느려.’
각 나라를 방문해야 하는 귀찮음은 둘째치고 속도가 너무 안 난다.
지구가 일직선이 아니다 보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등, 동선 낭비도 해야 한다.
하늘을 날아서 이동하는 탓이다.
‘현재 남은 호스트의 수는 285마리. 이걸 전부 다 잡으려면…….’
적어도 이틀은 꼬박 걸리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호스트에 의해 피해를 보는 일반인이 속출하고 있을 거야. 사냥 속도를 더 높여야 해.’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빨라봤자 소용없다.
정작 길잡이인 라폴라이가 느려터졌으니.
‘비행기보다야 빠르다지만 이래 가지곤 피해를 줄일 수 없어.’
더 빨리 호스트들을 잡는 방법이 어디 없을까?
고민하던 류민의 머리에 한가지 묘수가 떠올랐다.
‘그러면 되겠군.’
씩 웃고 있는데 때마침 라폴라이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 멈춰봐.”
멈추라는 말에 라폴라이가 불안한 눈초리로 묻는다.
“왜, 왜 그러십니까? 뭐가 마음에 안 들기라도…….”
“이래 가지곤 속도가 안 나겠어. 어느 세월에 300마리를 다 잡아?”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잖습니까?”
“없긴 왜 없어? 방법은 있다.”
“예? 어떤…….”
“너, 다른 시드들이랑 텔레파시로 연락 주고받을 수 있지?”
“그렇긴 합니다만…… 설마 시드의 위치를 알려달라는 겁니까? 다른 시드는 저도 찾을 수 없습니다. 주파수를 통해 연락만 할 수 있을 뿐, 찾는 것까진…….”
“누가 찾아달래? 가만 보면 혼자서 막 넘겨짚는단 말이야?”
“그, 그럼, 텔레파시는 왜……?”
“라폴라이.”
류민이 진중하게 물었다.
“너 연기 좀 할 줄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