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42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42화
42. 마경록과의 식사
‘깔끔하군.’
핏물로 가득했던 현장이 마법처럼 깔끔해졌다.
장석현의 시체 또한 온데간데없었다.
다름 아닌 이번에 배운 공용 스킬 덕분이다.
[공용 스킬 – 흔적 지우기]-효과 : 시체, 핏물, 지문, 발자국 등, 현장의 흔적을 모두 지운다.
‘성능 하난 확실하군.’
스킬 설명대로 현장이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이곳에서 살인이 일어났다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
2만 골드를 투자한 보람이 있다.
‘뒤처리는 이렇게 깔끔해야 좋지.’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죽은 사람도 부활시키는 게 스킬의 능력이었으니까.
‘이게 있으니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활개 치고 다니지.’
흔적 지우기는 범죄를 저지르고 뒤처리하기에 딱 좋은 스킬이다.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라고 만들어진 스킬이 아닐까 싶을 정도.
나중엔 흔적을 대신 지워준다는 플레이어마저 생긴다.
‘그 대가로 아이템을 요구하긴 하지만.’
공짜가 아니지만, 수요는 많다.
2만 골드를 모아서 스킬을 배우기보다 아이템 하나 주고 흔적 지우는 게 더 싸게 먹히니까.
‘지금도 있겠지만 나중에 가면 스킬을 대행해 주는 플레이어는 더욱 늘어나게 돼.’
40레벨이 되면 [거래] 기능이 생긴다.
서로 간에 아이템이나 골드를 거래할 수 있는 기능이다.
그때는 본격적으로 골드 장사를 하는 플레이어가 생긴다.
추적하기나 흔적 지우기 같은 공용 스킬로 대신 사람을 찾아주거나 살해 현장 흔적을 지워주는 식이다.
‘난 그렇게 골드 장사할 생각은 없지만.’
추적하기나 흔적 지우기는 앞으로 쓸 일이 많다.
대행보다는 구매하는 편이 류민으로선 좋은 선택이다.
‘게다가 몇 푼 벌자고 남의 범죄에 개입하기도 싫고.’
어차피 골드를 벌어들일 방법은 생각해뒀다.
다름 아닌 마경록의 회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내일 점심에 만나기로 했지?’
마경록과의 식사 약속을 떠올린 류민이 현장을 치운 뒤 폐공장을 나섰다.
살인에 관한 생각이나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내일을 위해 정장이라도 하나 사둬야겠군.’
그저 마경록을 만날 생각뿐.
장석현에 관한 생각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였다.
* * *
다음 날 점심.
류원은 정장을 빼입은 형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장 차림을 보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형, 주말에 데이트 약속 있어?”
“데이트는 뭔 데이트야.”
“갑자기 정장을 입으니까 그러지.”
“중요한 약속이라 그래.”
“누구 만나러 가는데?”
“사업 파트너.”
“엥? 형 사업할 거야?”
류민이 끄덕이자 동생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주시하자 어김없이 동생의 생각이 전해져 온다.
-저번엔 주식에 올인하더니 이번엔 사업에 손댄다고? 이러다 망하면 어떡하지? 크게 실망할 텐데.
돈을 떠나서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을까 봐 걱정하는 동생이었다.
‘이렇게 성공했는데 아직도 걱정하네. 하긴 불안해 보이는 게 정상인가?’
류민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자세한 건 사업 파트너랑 이야기가 잘 풀리면 말해줄게. 너무 걱정하진 말고. 형 믿지?”
“믿지! 내가 형 말고 믿을 사람이 어딨어.”
“그럼 얌전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밖은 플레이어들 때문에 위험하니까.”
“안 그래도 뉴스 봤어. 플레이어들이 범죄에 능력을 활용해서 골치라더라. 외국에선 범죄자들이 교도소도 탈출했다던데?”
“범죄자들도 나이만 되면 예외 없이 플레이어가 되니까.”
세상이 급변하리라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
매달 인구는 줄고 플레이어는 강해지는데 변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는 일반인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냥하며 노예로 부리는 시대가 온다.’
그야말로 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플레이어가 갑인 시대.
그런 무법 도시가 되어버리기 전에.
‘압도적으로 힘을 키우고 검은 낫의 명성도 더 올려야 한다.’
류민이 구두를 신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밖에 나갈 땐 조심해. 이번 3라운드에 대부분이 직업을 가져서 플레이어 수준이 전체적으로 향상됐으니까. 그만큼 더 위험해진 거지.”
“알았어. 그런데 형 직업은 언제 말해줄 거야?”
“비밀이야.”
“궁금하단 말이야.”
“조만간 알려줄 테니 보채지 좀 마.”
“정말?”
반색하는 동생을 뒤로하고 류민이 문을 열었다.
“나가서 사업 파트너랑 점심 먹고 올게. 기다리지 말고 혼자서 먹어. 짜장면보다 비싼 거 좀 사 먹고.”
* *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초거대기업 오성.
그 오성 그룹 산하에 있는 호텔 로비에 류민이 들어섰다.
다름 아닌 마경록의 호텔이다.
‘여기서 보자고 할 줄 알았지. 축구도 홈그라운드에서 하는 게 유리하니까.’
하지만 호텔이 마경록 소유라는 건 어디까지나 대외비.
게다가 천마 컨설팅 또한 오성 그룹 산하에 있지 않다.
마경록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비밀리에 차린 회사니까.
‘아마 일반인 중에 이런 정보를 아는 사람은 나 말고 없겠지.’
기껏해야 마경록의 친인척들이나 아는 사실.
그렇기에 가급적 이 정보를 활용해 마경록에게 어필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그러기 전에 이미지 메이킹부터.’
류민이 두리번거리며 어리숙한 표정으로 프런트 데스크에 다가갔다.
“아, 안녕하세요. 약속이 있어서 왔는데 호텔에 도착하면 데스크에 말하라고 해서요…….”
“아, 혹시 천마 컨설팅 대표님과의 약속 말씀이십니까?”
“예.”
직원이 인이어에 손을 대더니 친절하게 말했다.
“대표님은 조금 있으면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그동안 저쪽 라운지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도착하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한 뒤 어색한 걸음으로 로비 라운지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바보처럼 입을 벌렸다.
이게 다 만일을 대비한 이미지 메이킹이다.
그때 로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안상철이 보였다.
‘이제 왔군.’
최대한 아는 척하지 않으려 애쓰며 감탄하는 표정으로 호텔 내부를 둘러봤다.
데스크에서 대화를 나누던 안상철이 이쪽으로 걸어온다.
“류민 씨 되십니까?”
“아, 예! 안녕하…….”
류민이 깜짝 놀라는 척을 했다.
포커페이스인 안상철도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구면이었기 때문.
“저희 언제 본 적 있죠? 갤러리아 포레스트에서.”
“아…… 예. 이사했다고 위층에 떡 돌리다가 본 거 같네요. 서아린 배우 옆에 있던 분이시죠?”
류민의 말에 안상철도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맞습니다. 혹시 천마 컨설팅의 대주주 되십니까?”
“예.”
대답하자마자 안상철이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저번의 결례는 사과드리겠습니다.”
겉으론 사과하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아니었다.
-이런 20살도 안 돼 보이는 애송이가 2,800억을 투자한 대주주라고? 말이 안 되는데?
겉으론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으론 의심하고 있다.
눈빛에선 희미하게나마 경계심마저 엿보인다.
‘뭐, 당연한 반응인가? 내 나이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없으니.’
그렇다고 지금 안상철을 납득시켜야 할 의무는 없다.
자신이 대화해야 할 사람은 마경록이었으니까.
물론 지금 보여야 할 반응은 정해져 있다.
“아아, 괜찮습니다. 잘 모르고 하신 행동이니까요. 저도 천마 컨설팅 대표님이 윗집에 사실 줄은…….”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전 대표가 아닙니다.”
“예?”
“소개가 늦었습니다. 안상철 실장이라고 합니다. 대표님은 조금 늦으실 예정이라 먼저 왔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다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마경록을 모른다고 했을 때 이렇게 반응하는 게 맞으니까.
“대표님 오실 때까지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죠.”
“아, 예.”
안상철을 따라 호텔 내부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과연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호텔이라 그런지 식당 인테리어가 화려하다.
“와.”
서울에 상경한 시골 촌놈처럼 입을 벌리며 식당 안을 둘러봤다.
안상철이 힐끔- 쳐다보는 게 곁눈질로 보인다.
‘못 미더운 눈초리군.’
눈초리만이 아니라 엿들은 생각이 그랬다.
뭐, 의도한 바지만.
“여기 앉아서 편하게 기다리죠. 대표님도 곧 오실 겁니다.”
“네네.”
룸으로 된 예약석에 앉아 멀뚱히 기다리는 동안, 안상철이 문 앞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대표님. 먼저 만나보니 누군가 대타로 내세운 사람 같습니다. 직접 거금을 투자할만한 그릇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을지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문자 내용이 그대로 머릿속에 전해졌다.
뒤통수를 보는데도 생각이 읽힌다.
‘그럼 그렇지. 정찰 차원에서 안상철을 먼저 보낸 거군.’
예상은 했다.
마경록처럼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 이런 중요한 약속에 늦을 리가 없으니까.
잠시 뒤.
드르륵-
“안녕하십니까.”
남자다운 외모에 훤칠한 키의 사내가 등장했다.
다름 아닌 마경록이었다.
키가 작아 정장이 어색한 류민과 달리 슈트빨이 끝내준다.
“천마 컨설팅의 마경록 대표라고 합니다.”
“아…… 류민입니다.”
황급히 일어서서 마경록이 내미는 손을 잡았다.
“자, 앉으시죠.”
“예…….”
“안 실장도 제 옆에 앉으시죠.”
“예.”
허락도 받지 않고 안상철을 겸상시킨다.
‘은근슬쩍 주도권을 가져갈 속셈이군.’
류민의 시선을 느꼈는지 마경록이 이해해달라는 듯 웃었다.
“안 실장은 제가 누구보다 믿는 직원입니다. 같이 앉아 얘기를 들어도 괜찮겠지요?”
“아,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일 얘기를 하기 전에 우선 밥부터 먹죠. 한정식으로 준비했는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이런 고급 호텔에서 내놓는 거면 뭘 먹어도 맛있겠죠.”
잠시 후 마경록의 지시에 따라 준비된 음식이 나왔다.
스프, 냉채, 어죽, 한우구이, 갈비찜, 돌솥밥, 비빔밥 등등.
플레이팅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코스 요리를 차례대로 접하는 동안.
세 사람은 먹기에만 집중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맛있네요.”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입니다.”
가끔 이런 대화나 오갈 뿐.
하지만 속마음을 읽는 류민에겐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생각을 읽어보니 머릿속이 복잡해 보이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인지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다른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생각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군.’
아니나 다를까.
-안 실장 말대로야. 2,800억의 거금을 투자했다기엔 나이가 너무 어려. 못해도 20살 안팎으로 보이잖아? 그럴 강단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마경록을 보니 복잡한 생각이 전해져온다.
-뒷배가 있는 게 분명해. 누군가 허수아비로 세운 걸 거야. 누가 사주한 거지? 형제들? 삼촌? 우리 회사 경영권을 가져가서 뭐할 속셈이지?
겉으로는 여유롭게 차를 마시던 마경록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뭐가 됐든 얘기해 봐서 정보를 캐내는 수밖에 없겠어.
생각을 읽히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마경록이 운을 뗐다.
“류민 씨를 처음 뵀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대주주가 이렇게 젊으신 분이라니. 실례가 안 된다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20살입니다.”
“20살이요?”
마경록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눈빛은 차분했다.
-예상대로 어리네. 역시 사주를 받은 건가?
예상대로 어리다는 반응.
-그래도 경계를 놓으면 안 되겠어. 3라운드가 끝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 보면 어리숙한 모습과 달리 실력은 있다는 거니까. 뭐, 운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마경록은 상대가 어리다고 얕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류민이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마경록이군. 15라운드까지 살아남는 재능충다워.’
안상철처럼 섣불리 상대를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는다.
확실한 전력을 파악할 때까지 매의 시선으로 경계하고 바라본다.
하지만 포커페이스가 완벽한 마경록은 그런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20살이라니. 저는 29살입니다. 같은 20대로서 반갑네요. 하하.”
“예…… 저도 반갑습니다.”
“어떻게 그런 젊은 나이에 그만한 거금을 가지고 계시죠? 혹시 재벌가의 자제분이신가요?”
‘꽤 단도직입적으로 나오는군.’
류민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손을 저으며 답했다.
“재벌이라뇨. 아닙니다. 염려하시는 것처럼 제 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슬슬 본론을 꺼낼 필요성을 느낀 류민이 입을 열었다.
“혹시 기사 보셨나요?”
“무슨……?”
“로또 1등에 5연속 당첨됐다는 벼락부자의 기사요.”
“아아, 예. 봤습니다만.”
류민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게 바로 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