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89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89화
89. 러셀의 방문
허태석이 처음에 느낀 감정은 감격이었다.
‘검은 낫님이 나를 파티원으로 받아주시다니…….’
그 유명한 검은 낫과 파티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두 번째는 감탄이었다.
다섯 명이 달라붙어도 고전하는 켄타우로스를 단칼에 베어버렸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위.
‘과연 검은 낫님이야. 정말 존경할만한 분이시다.’
자신도 검은 낫처럼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느낀 감정은.
‘헐……. 검은 낫님 덕분에 6시간 동안 엄청나게 레벨이 올랐잖아?’
바로 감사함이었다.
처음 파티했을 때만 해도 13레벨이나 오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감사합니다, 검은 낫님. 보잘것없는 저를 파티원으로 받아주셔서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검은 낫을 만나고부터 행운이 찾아왔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 이 모든 감정을 한순간에 잊어버리게 만든 감정이 있었다.
“크워어어!”
서걱- 쿵-!
바로 전율이었다.
‘보, 보스를 하, 한 방에?’
아무리 검은 낫이 강하다지만 설마 한 방에 죽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미친 새끼! 멍청한 새끼!’
허태석은 조금 전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자신을 질타했다.
‘검은 낫님처럼 강해지고 싶다고? 그건 불가능해!’
뒤늦게 깨달았다.
검은 낫님은 아무리 올라가도 닿을 수 없는 영역에 계신 분이라는 걸.
‘이분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분이시다.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존재시고.’
그야말로 신.
허태석의 눈엔 신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같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검은 낫님에게 은혜를 입었는데 어쩌지? 내가 뭘 도와줄 수 있지?’
귀환해서도 은혜를 갚을 방법을 강구해 봤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곁에 붙어 다니는 버퍼라는 여자보다도 쓰임새가 없는 게 자신이었다.
괜스레 우울감이 밀려왔다.
‘후우……. 내가 검은 낫님께 도움 되는 직업이었더라면…….’
흑마법사는 사냥에만 좋을 뿐, 다른 면에선 도움 될 일이 없다.
‘그렇다고 검은 낫님께 사냥으로 도움을 줄 수도 없고…….’
새끼 늑대가 다 큰 늑대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그저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
‘이계에선 내가 도울 일이 없다.’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를테면 현실에서.’
딱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겠는가?
‘신앙심 깊은 신도들이지.’
허태석이 히죽 미소 지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류민은 핸드폰으로 항공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러셀한테 가서 다시 한번 내구력을 회복해야겠어.’
아마 이번에 가면 전과 달리 환대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말해준 6라운드 예언이 큰 도움이 됐을 테니까.
그때 류민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응?”
국제 전화가 걸려왔는데 발신인이 아는 번호였다.
즉시 전화를 받았다.
-미스터 류의 번호가 맞습니까?
“예, 저예요. 러셀 다니엘.”
-아, 안녕하십니까, 예언자님. 우선 감사하다는 말부터 드리겠습니다. 덕분에 죽다 살아났습니다.
러셀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무슨 일인지 짐작은 가지만.
“무슨 일 있었나요?”
-일단 자세한 얘기는 그쪽으로 가서 하겠습니다.
“예? 한국으로 온다고요?”
-네. 이미 티켓 끊고 줄 서는 중입니다.
안 그래도 러셀을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이미 줄 서고 있단다.
‘뭐지? 이전 회차에선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는데…….’
러셀에게 도움을 준 적은 수십 번이 넘지만, 한국까지 오겠다고 한 적은 처음이다.
-미스터 류? 제가 실례한 겁니까? 부담되신다면 지금이라도 취…….
“아닙니다. 안 그래도 만나고 싶었는데 직접 오신다니 잘됐네요.”
-도움을 받았는데 예언자님을 움직이게 할 순 없죠. 서울로 가면 되겠습니까?
“인천공항으로 마중 가겠습니다. 도착 시간 알려주시고 공항에 오면 전화 한 번 더 주세요.”
-그러겠습니다. 미스터 류. 그럼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 * *
러셀과의 만남은 다음 날 이루어졌다.
“미스터 류!”
간단한 배낭을 메고 걸어오던 러셀이 류민을 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이렇게 보니 반갑네요, 정말!”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러셀.”
가볍게 악수를 한 뒤 주차장으로 이끌었다.
“가시죠. 제가 가이드해 드리겠습니다.”
“하, 이거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근질근질한데, 일단 참겠습니다. 하핫!”
러셀은 의외로 말이 많은 사내였다.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입 좀 다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타시죠.”
“헉, 잠깐! 이, 이거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아닙니까?”
“알아보시는군요?”
“제가 너무 산에만 박혀 있다고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이건 제 드림카나 다름없다고요!”
“꿈 깨시죠. 대장질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살 수 없을 테니.”
“그러니까 드림카죠! 하하!”
두 사람은 스포츠카를 타고 도로를 달렸다.
“어디 가고 싶은데 있으세요?”
“그것보단 어디 조용히 대화 나눌 곳 없을까요?”
잠시 고민하던 류민이 시간을 확인했다.
“마침 런치타임인데 밥이나 먹을까요?”
“오, 좋아요. 한국 음식이 유명하다고 해서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럼 제가 잘 아는 데로 소개해 드리죠.”
류민은 러셀을 마경록의 호텔 안에 있는 한정식집으로 데리고 갔다.
혹시 몰라 예약해 뒀기에 자리를 잡는 데 문제는 없었다.
“여기 조용하고 좋네요. 룸으로 되어 있고. 한식집인가요?”
“그런 셈이죠.”
잠시 후 음식들이 즐비하게 나왔고 러셀은 그때마다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종류가 이렇게 많아요? 내 생전 이런 코스 요리는 처음 받아봐요.”
“만족스럽다는 뜻이죠? 다행이네요. 많이 드세요. 제가 사는 거니까.”
“아니에요. 미스터 류! 언제까지 신세만 질 순 없죠. 식사는 부디 제가 살 수 있게 해주세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여기가 좀 비싼 집인데.”
“얼마인데요?”
“인당 130파운드 정도 됩니다.”
“커헠!”
물을 마시던 러셀이 급히 잔을 내려놨다.
하마터면 예언자 얼굴에 뿜을 뻔했다.
‘어, 어쩐지 비싸 보이더라니! 130파운드면 재료가 몇 개야?’
비싸 봐야 30파운드를 예상하던 러셀이 당황을 감추며 말했다.
“제, 제가 내겠습니다. 이 정도야 문제없죠.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어차피 러셀의 돈은 류민에게서 얻은 돈.
아끼고 아껴서 재룟값으로 쓸 생각이었지만 원래부터 없던 돈이라 생각하면 아깝지 않았다.
“러셀. 그러지 말고 식사는 제가 내게 해주시죠. 대신 저번처럼 내구력 좀 고쳐주시고요.”
“내구력이요? 그건 당연히 해드려야죠!”
영면의 구슬을 받아든 러셀이 내구력을 고친 뒤 금세 돌려줬다.
“감사합니다. 밥값은 제가 낼게요.”
“으음, 이 정도로는 제가 해드린 게 너무 없는데…….”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예요? 죽다 살아났다니.”
“아, 그게 말이죠.”
러셀의 말은 별것 아니었다.
조언해 준 대로 파티를 꾸려서 6시간 가까이 사냥한 뒤 보스에 도전했는데, 하마터면 죽을뻔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예언자님 말대로 조금이라도 레벨을 올리지 않았으면 정말 큰 일 치를 뻔했지 뭡니까?”
“제가 도움 됐다니 다행이네요. 레벨은 많이 올리셨습니까?”
“29까지는 올렸습니다.”
‘마경록이랑 레벨이 같네.’
대장장이는 이름처럼 전투에 적합한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파티원의 무기를 강화해 주거나 내구력을 고쳐줌으로써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버퍼와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볼 수 있지.’
때문에 파티원 전체의 시너지를 높였다면 이만큼 레벨업한 것도 이해는 간다.
뭐, 러셀 자체도 오크 따위는 쉽게 잡을 정도로 강한 편이긴 하지만.
“그런데 낯부끄러운 말입니다만…… 제가 정말로 대장장이 중에서 정점을 찍나요? 워낙 믿기지 않아서…….”
“노력한다면 가능합니다. 제 도움을 받으시면 그 이상도 가능하고요.”
“하핫, 벌써 든든하네요. 예언자님이 도와주신다면야 무서울 건 없죠. 엇, 또 요리가?”
종업원이 요리들을 내놓고 가자 러셀이 감탄을 흘렸다.
“뷔페도 아니고 무슨 요리가 끊임없이 나오나요? 음!? 이거 진짜 맛있네? 이 음식 이름이 뭐죠?”
“불고기라고 합니다.”
“이거 진짜 제 입맛에 맞네요. 한국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을 줄이야.”
그렇게 말한 러셀은 무슨 걸신들린 듯이 먹어 치웠다.
아무래도 식비를 아껴서 재룟값이랑 티켓값을 마련한 모양이다.
“그런데 예언자님은 재벌 2세라도 되십니까? 젊으신 분이 차도 그렇고, 저번에 큰돈을 턱턱 내주시는 것도 그렇고…….”
“재벌이라뇨,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죠.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데 이 정도도 못 벌면 되겠습니까? 나중엔 러셀도 저처럼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 주식 때문에 말입니까?”
“예. 제가 투자하라는 회사엔 투자하신 거죠?”
“물론이죠. 넣으라고 하신 날 바로 계좌 만들러 갔습니다. 그때 말씀하신 절반보다 더 많이 투자하긴 했지만…….”
“잘하셨습니다. 그 정도면 나중에 제가 지원해 주지 않아도 생활에 걱정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회사가 정말로 대박이 터지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투자하라고 했지요.”
“무슨 일을 하는 기업이길래?”
“그것도 안 찾아보시고 투자하신 겁니까?”
“예언자님의 말만 믿고 그저 괜찮겠거니 하고 있었죠. 하하…….”
“흠…….”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자, 류민이 말을 꺼냈다.
“그러면 제가 회사 한번 소개해 드릴까요?”
“회사를?”
“여기서 가깝습니다.”
“오, 그렇담 한 번 보고 갈까요?”
계산을 마치고 차를 탄 두 사람은 이내 마경록의 사무실로 향했다.
“여깁니다.”
도착해서 보니 천마 컨설팅이란 간판은 사라지고 플레이어 플레이스란 간판이 걸려 있었다.
‘어느 정도 준비는 끝났나 보군.’
예고도 없이 찾아왔지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어차피 최고 경영권자인 류민의 회사나 다름없었으니까.
“여기가 제 전 재산의 70%를 투자한 회사라 이거죠? 아! 죄송합니다. 제 돈이 아니라 예언자님 돈이지…….”
“그 돈은 러셀 돈입니다. 부담가지지 마시고 쓰세요.”
“역시 예언자님은 천사이십니다. 크!”
외국인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는 러셀을 보며 류민이 픽 실소를 지었다.
“그 말은 이제 칭찬이 아니라 욕 아닌가요?”
“앗, 그, 그렇게 되나요?”
“그런데 30%만 남겼으면 생활하기에 부족하지 않습니까?”
“조금 빠듯하긴 한데 괜찮습니다. 세 끼 먹을 거 두 끼로 좀 줄이면…….”
“이따가 회사에서 나가면 현금 좀 뽑아드리겠습니다. 1만 파운드면 당분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겠지요?”
“헉! 그, 그야 물론이죠.”
“거절하겠다는 말은 안 하시네요.”
“아, 하하하하…….”
예의상으로도 거절할 자신이 없었던 러셀은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남의 회사에 이렇게 막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괜찮습니다. 대표는 아니지만 제 회사나 다름없으니까요.”
“예?”
눈을 껌벅이던 러셀이 뭔가를 깨달았는지 입까지 벌렸다.
“설마 투자하라는 회사가…….”
“예, 제가 이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