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90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90화
90. 뜻밖의 만남
러셀은 류민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헐, 로또로 그만큼이나 버셨다는 겁니까?”
“예, 파워볼 부럽지 않게 벌었죠.”
“그다음은요? 그 돈으로 또 어떻게 불리셨죠?”
자랑 같았지만, 러셀이 계속해서 물어보기에 어쩔 수 없었다.
코인으로 불리고 31%의 지분을 사서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했다는 것까지 전부 얘기했다.
“아, 그래서 회사의 실질적인 소유주라고 하셨군요?”
“네. 앞으로 성장할 일만 남은 회사입니다. 이번에 회사명도 바꾸고 사업 아이템도 완전히 갈아치워서 야심 차게 준비 중이거든요.”
“단기간에 몇천억을 불린 예언자님의 말이니 어련할까요. 투자하길 정말 잘했네요, 하하…… 아 참, 이것도 따지고 보면 예언자님 돈이지?”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러셀을 보며 류민이 자애롭게 웃었다.
“부담가지지 말고 쓰세요.”
‘아니, 계속 이렇게 부담 좀 느꼈으면 한다. 그래야 훗날 든든한 아군이 될 테니까.’
겉과 다른 속말을 중얼거리던 류민이 사무실로 이끌었다.
“들어가서 어떤 사업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되겠는걸요. 예언자님이 올인하신 곳이라면 당연히 대박 나고도 남겠지요.”
“그래도 엄연히 거금을 투자했는데 어떤 회사인지는 알아야죠. 들어보면 러셀도 아마 혹할 겁니다.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관심 가질 법한 사업이라서요.”
씨익 웃던 류민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곳곳에 30대 이상의 일반인 직원들이 보였다.
전부 천마 컨설팅일 적에 일하던 사람들이다.
“이쪽으로.”
류민은 직원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대표실로 향했다.
마침 대표실 앞에는 안상철이 목석처럼 서 있었다.
‘뭔데 저렇게 문을 막고 서 있는 거지? 손님이라도 왔나?’
류민이 의아해할 무렵, 안상철이 놀란 눈으로 말을 걸었다.
“류민 대주주님? 여긴 어쩐 일로…….”
“예고 없이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외국인 투자자분께 회사 좀 소개해 드리려고요.”
“아.”
힐끔 안상철의 시선이 러셀에게 닿았다.
젊어 보이는 게 플레이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대표님을 뵈려고 하는데 안에 계시죠?”
“예. 계시긴 한데 지금 손님이 와계시는지라…….”
“손님이요?”
일부러 고개를 기웃거렸음에도 안상철은 우두커니 서 있을 뿐, 비킬 생각을 안 했다.
아무래도 마경록이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지시한 모양.
‘그렇다고 해도 예언자인 내가 이렇게 눈치를 주는데 먼 산이나 보고 있다니.’
어이없었지만 안상철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하면 이해는 됐다.
‘하긴 대표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이라도 하는 녀석이니.’
어쩌면 시늉이 아니라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가 찾아왔길래?’
궁금한 나머지 안상철의 생각을 읽어봤다.
생각을 읽던 류민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누구라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크리스틴이…… 왔다고?’
애써 입꼬리를 억누르며 표정 관리에 신경 써야 했다.
마경록에게 접근한 이유이자 20라운드에 데려가야 할 프리스트가 찾아왔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크리스틴과 만나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나오라고 하지?’
생각해 보니 나오라고 할 필요는 없다.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린다.’
류민이 돌아서는 듯하다가 한쪽에 서서 대기했다.
그 모습에 안상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기…… 기다리시려고요?”
“대표님에게 할 말이 있어서요.”
“…….”
차마 가라고 할 수 없던 안상철이 다시 허공을 보며 목석처럼 자리를 지킨다.
“미스터 류, 무슨 얘기한 겁니까?”
“대표님을 뵈러 왔는데 안에 손님이 있다는군요.”
러셀에게 영어로 사정을 설명하며 기다렸다.
마경록이 나올 때까지 이러고 있을 참이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크리스틴에게 얼굴도장이라도 찍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잠시 후 얘기가 끝났는지 달칵-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나왔다.
한 사람은 마경록,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류민이 20라운드까지 데리고 가야 할 프리스트였다.
“응? 류민 대주주님?”
갑작스러운 류민의 방문에 마경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락도 없이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제가 연락이 와야지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류민의 말대꾸에 마경록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제가 말을 이상하게 해서 오해를 부른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오해는 무슨. 겉으로는 예언자라며 우대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날 깔보고 있는 거 다 안다.’
물론 류민이 만만하게 보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기본적으로 마경록은 그를 약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예언자라는 게 강한 직업도 아니거니와, 미래를 본다는 것만 빼면 별거 없어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항상 라운드가 끝나면 내가 살아남았는지 걱정하고 있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마경록이 어색함을 풀고자 말을 이었다.
“대주주님이야 당연히 우리 회사의 최고 경영자이신데 언제든지 오실 수야 있죠. 항상 약속을 잡고 오신 분이 오늘은 예고도 없이 오셔서 그렇게 말했던 겁니다.”
“그렇습니까?”
류민이 씩 웃었다.
‘변명 좋네. 그래 봐야 넌 내 손바닥 안이다.’
류민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금발 머리의 외국인 여성이 기품 있는 자세로 서 있다.
‘드디어 만났군. 전 세계에 한 명뿐인 유일한 프리스트.’
크리스틴 크레이그.
유일 직업군인 프리스트이자 15라운드까지 생존한 전적이 있는 여자다.
류민이 20라운드에 꼭 데려갈 직업으로 염두에 둔 여자이기도 하다.
‘버퍼와 마찬가지로 프리스트는 필수로 손꼽히는 서포터 직업군이야.’
프리스트의 스킬들은 뭐하나 빠짐없이 상당한 도움이 된다.
특히 60레벨 스킬인 [부활]은 생명을 되살리는, 두말할 것 없는 사기 스킬이다.
‘물론 제약은 있지. 죽은 지 10분 이내의 플레이어만 살릴 수 있으니.’
그렇다 쳐도 목숨이 하나 더 생긴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원래 마경록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접선할 생각이었는데 계획보다 일찍 만나게 됐다.
‘하긴 이 시점에 회사를 방문한 적은 없었으니.’
러셀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회사에 들를 생각은 안 했을 거다.
사업 준비야 마경록이 알아서 잘할 테니까.
미래가 바뀌었지만, 오히려 잘 됐다.
어차피 만나야 했던 사람.
계획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크리스틴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류민이 크리스틴을 쳐다보며 마경록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분은?”
“아…… 이쪽은 제 친구인 크리스틴 크레이그라고 합니다.”
‘친구? 웃기지도 않는군.’
류민은 안다.
크리스틴은 마경록의 단순한 외국 친구가 아니라는 걸.
‘혼맥을 위한 외국인 약혼녀지.’
기업의 재벌들은 정략결혼의 대상을 국내에서 찾곤 했지만 그건 옛말이다.
‘요즘은 혼맥의 대상을 외국에서 찾기도 하지.’
글로벌 시대라 그런지 재벌들도 이젠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곤 한다.
물론 평범한 집안의 자제에게 눈길을 줄 리는 없다.
‘당연하지만 크리스틴의 집안은 부유한 편이고.’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10만 명의 교인을 거느린 성직자의 자녀가 크리스틴이다.
당연히 약혼녀로서 부족함은 없으리라.
‘나한테는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고 말했건만, 약혼녀인 걸 숨기겠다 이거지?’
마경록을 한번 노려본 류민이 크리스틴을 향해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반갑습니다, 크리스틴. 저는 마경록 대표의 사업 파트너 류민이라고 합니다.”
류민의 자기소개에 마경록이 놀란 눈을 떴다.
영어로 자기소개 정도야 할 수 있다지만 혀를 굴리는 발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눈 감고 들으면 외국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
크리스틴도 의외라는 듯 눈을 떴다가 한국식으로 다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반가워요, 류민. 대표님에게 사업 파트너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그렇습니까? 저도 마 대표님에게 이런 아리따운 약혼녀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 이 사람이 우리 관계를 말했나 보군요?”
크리스틴의 눈빛에 마경록이 당황했다.
그야 약혼녀라고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하니 약혼녀의 존재까지 알고 있었단 말인가?’
새삼 예언자를 속여선 안 되겠다고 여긴 마경록이 류민을 쳐다봤다.
마치 자신에게 약혼녀를 소개하지 않으려고 했냐는 눈빛.
마경록이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잘못을 고했다.
“죄송합니다. 예언자님. 제가 속이려고 속인 게 아니라…….”
“괜찮습니다. 약혼녀를 소개하기엔 부담스러우셨겠죠. 이해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
“하지만 저를 좀 더 믿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말끝을 흐리며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자 마경록으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예언자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없는데…….’
마경록이 친구라고 소개한 걸 후회하는 와중, 크리스틴이 물었다.
“둘이 무슨 얘기 나누시는 거예요?”
한국말로 뭔가 심각한 대화를 주고받자 궁금했던 모양.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깐 사업 얘기를 했을 뿐입니다.”
“그래요? 하긴 얼마 후면 사업을 오픈한다고 하셨으니…….”
이해한다는 듯 말한 크리스틴이지만 눈빛은 무심하기 그지없다.
약혼녀라지만 정략결혼이라 그런지 둘 사이에서 달달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회장님께는 잘 말씀드려주세요. 예배가 있어서 먼저 가보겠다고.”
“그럼요. 아버지도 바쁘시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해하실 겁니다.”
“고마워요. 그럼 다음 라운드에 살아서 뵙기를.”
“크리스틴에게도 행운이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마경록과 인사한 크리스틴이 류민을 한 번 쳐다본 뒤 관심 없다는 듯 자리를 떴다.
아니, 뜨려고 했다.
“잠시만요, 크리스틴.”
류민이 그녀의 발길을 세웠다.
마경록과 안상철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다.
크리스틴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죠?”
“다음 라운드 말입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
크리스틴은 대답 대신 마경록을 쳐다봤다.
‘이 사람 뭐죠?’
눈빛을 읽은 마경록이 당황을 감춘 채 말했다.
“대주주님. 그 부분은 이따가 저랑 얘기하시죠.”
“마 대표님. 굳이 제 정체를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대표님의 약혼녀께서도 다음 라운드 정보를 알면 좋지 않겠습니까? 약혼녀를 위해서도 그게 옳은 길일 테고요.”
류민은 일부러 한국어로 말했다.
마경록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경록으로선 선택지가 없었다.
조금 전 자신의 잘못으로 류민에게 주도권이 넘어간 상황.
여기서 거절했다간 류민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물론 약혼녀의 생사에 신경 쓰지 않는 매정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예언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약혼녀를 위한다면 숨겨선 안 되겠죠.”
마경록이 크리스틴을 보며 말했다.
“잠깐 안으로 들어갈까요? 못다 한 얘기가 있어서요.”
크리스틴이 어리둥절해하다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눈치는 있어서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할 거라고 직감할 수 있었다.
“러셀은 여기서 잠깐 기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미스터 류.”
러셀을 대기시킨 류민이 마경록을 따라 대표실로 들어갔다.
끼익- 달칵-
문을 닫자 바깥과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됐다.
크리스틴이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 마경록을 주시했다.
“크리스틴. 제가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습니다만, 여기 이분은 제 사업 파트너이자 우리 회사의 경영자입니다. 그리고…….”
대답하기 전 마경록이 허락을 구하듯 류민의 눈치를 봤다.
류민이 끄덕이자 말을 이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언자 클래스이기도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예언자?”
크리스틴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말을 어느 누가 믿겠는가?
크리스틴의 눈빛에 류민이 바통을 이었다.
“대표님 말은 사실입니다. 저는 유일 클래스인 예언자로,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 7라운드에 대한 공략법을 말이죠.”
“정말이에요?”
마경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언자님의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한 번도 적중이 틀린 적이 없고요.”
“그 말은 여태껏 이분의 도움을 받았다는 거예요?”
“예. 예언자님 덕분에 다음 라운드를 미리 알고 공략할 수 있었죠.”
“…….”
믿기지 않는 말이었으나 두 사람의 표정은 워낙 진지했다.
“그래서, 저한테 갑자기 그걸 밝히는 이유가 뭐죠?”
“크리스틴. 당신에게 7라운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요?”
대가부터 논하는 걸 보면 그녀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걱정 마세요. 아무런 대가 없이 드리겠습니다.”
프리스트가 살아야 류민에게도 도움이 된다.
‘어차피 내 도움이 없어도 15라운드까진 살아남겠지만…….’
결과야 어쨌든 도움을 주는 모양새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
크리스틴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를 주겠다니 한 번 들어는 볼게요.”
미래 정보를 주겠다는데도 참으로 당당하다.
‘아직 믿지 못한다는 거겠지.’
류민은 마경록에게도 들으라는 듯 7라운드 정보를 말해줬다.
“유혹에 현혹되지 말 것. 7라운드는 그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음…… 그게 끝입니까? 예언자님?”
“더는 말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랬다간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유혹에 현혹되지 말 것. 주문 외우듯 반드시 숙지하고 계셔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
크리스틴도 마경록도 말을 아꼈다.
다소 부정확한 예언이 황당한 모양.
“그것뿐이에요?”
“예. 하지만 크리스틴, 당신에겐 따로 들려줄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요?”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만…….”
뜸을 들이던 류민이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크리스틴. 11라운드가 되면 당신은 위험에 빠집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제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구해줄 동아줄이 내려올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