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5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005화
이도류(二刀流)
#. 프랑스 비오
#-1. 브라세리 라르시옹
모두를 얼어붙게 만든 리턴이 나온 직후, 신우주와 치치파스의 연습경기는 중단되었다. 치치파스의 아버지 아포스톨로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등장과 함께 “우리 아들을 데리고 뭐 하는 짓이냐?!”라며, 자신에게 허락받지 않은 연습경기는 할 수 없다고 외쳤다.
다행히 무하토글루의 빠른 사과로 소란으로까진 이어지지 않았으나, 그로서도 진땀을 흘렸던 일이었다.
사태를 수습 후, 무하토글루는 플라브시치와 신우주를 대접하고자 비오의 한 식당을 찾았다.
마흐텅 역시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
“못 먹는 음식은 없니?”
“네. 다 좋아해요.”
“그렇구나.”
신우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마흐텅이 메뉴를 설명하는 동안, 플라브시치를 돌아본 무하토글루가 자신이 보았던 서비스 리턴에 대해 말한다.
정확히 그와 같은 리턴을 과거에 본 적이 있었다.
대략 20년 전쯤에.
“그건…….”
“그래. 스트랜드야.”
“…….”
스트랜드(Strand).
발을 묶다, 라는 뜻을 가진 동사(動詞).
어느 날 주니어 대회에 나타나 빠르게 순위를 끌어 올리더니, 프로 데뷔 경기에서 940위 순위로 세계 랭킹 26위를 꺾은 한 젊은 선수가 사용한 기술을 뜻했다.
충분히 포핸드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굳이 백핸드로 받아, 다운 더 라인으로 보내버리는 믿기 힘든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 기술은 딱 한 경기에서만 시연되었다.
다음 날, 사고로 은퇴해 버렸기 때문이다.
“놀랍군. 솔직히, 안드레이 이후에 그걸 할 수 있는 녀석이 나올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어.”
“우리도 마찬가질세.”
“우리?”
“나. 안드레이. 얀코. 그리고 나머지 TTA에서 일하는 코치 녀석들. 솔직히, 환상 속의 기술이지 않나.”
“…….”
일반적으로 테니스는 서비스를 손에 쥔 선수가 세트를 따낼 확률이 더 높다.
테니스에서 서브는 곧 공격이라서인데, 이를 받아치는 리턴(Return)은 공격을 받아치는 방어수단이다. 그래서 모든 테니스 코치들은 어린 선수에게 안정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굳이 무리하게 서브에 반격하기보단, 방어적인 목적에 충실해 안정적으로 네트를 넘기라고 말이다.
기량이 쌓이고 프로를 바라보는 단계가 되면 좀 더 다양한 방식을 배우게 되지만, 그래도 리턴이 서브를 방어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안드레이 시미치가 선보인 스트랜드는 이러한 테니스계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은 기술이었다.
공격을 공격으로 받아쳤기 때문이다.
소름이 돋는 것을 느껴 자신의 팔을 바라본 무하토글루가 맞은편에 앉아 마흐텅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신우주를 본다. 영락없는 평범한 10대 동양인 소년이다.
다만,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온 비슷한 또래의 동양인보다는 신체적인 조건이 좋았다.
“신체 조건은?”
“180.3㎝. 지난달엔 178.5㎝였는데, 하루가 멀다고 성장하고 있어. 아마, 부모님의 영향 탓일 거야.”
“어째서?”
“우주의 아버지가 핸드볼 선수야. 국가대표 선수였지. 그리고 어머니는 수영 선수였어. 선수 때는 평범했지만, 은퇴 후에는 수영 코치를 했지. 운동 가문이야.”
“음- 완벽하군.”
“그래.”
많은 사람이 흔히 간과하는 사실 중 하나는 테니스에서 피지컬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굳이 좋은 피지컬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훌륭한 테니스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지만, 가능은 해도 신체 조건을 갖췄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17살에 롤랑가로스(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하며 역대 최연소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이클 창(Michael Chang)도 이런 신체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경쟁자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175㎝의 신장이었던 마이클 창. 그는 통산 34개의 단식 타이틀을 따냈지만, 그랜드슬램 우승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역대 최고의 테니스 선수로 평가받는 로저 페더러가 185㎝. 이를 위협하는 노박 조코비치가 188㎝. 라파엘 나달 역시 페더러와 같은 185㎝다.
너무 키가 커도 곤란하지만, 최소 185㎝는 되어야 세계 최고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3㎝의 신장을 지닌 아버지와 171㎝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신우주는 유전적으로 테니스 하기 딱 좋은 환경을 갖춘 셈이었다.
“잊지 말게.”
“응? 뭐가?”
“자네 지금 꼭 먹잇감을 앞에 둔 포식자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리쿠르팅은 없다. 자네가 했던 약속이야.”
“크흠. 내가 언제 그랬다고.”
머쓱한 모습의 무하토글루를 본 플라브시치가 신우주를 돌아보며 물을 한 잔 따라준다.
곧 두 사람은 서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세르비아어로 대화를 나눴고,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무하토글루와 마흐텅은 눈빛을 교환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쉽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실례합니다, 선생님들.”
“오- 식사가 왔군.”
전반적으로 불친절하다고 소문난 프랑스의 웨이트리스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테니스 코치들 앞에서는 어지간해선 보이지 않는 미소와 친절함을 발휘하고 있다.
곧 식탁의 정 중앙에 다양한 해산물이 가득 담긴 큰 접시가 놓였고, 이를 본 신우주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말했다.
“얼마든지.”
“정말요? 그럼, 다들 여길 봐주세요.”
“응? 우리도?”
“네! 당연하죠!”
환한 표정으로 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말하는 신우주. 이를 보며 마흐텅은 곤란해했지만 무하토글루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상체를 쑥 앞으로 밀어왔다.
그러곤 마흐텅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그럼, 김치-!”
“뭐? 뭐??”
찰칵!
김치라는 단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던 무하토글루의 황당해하는 표정. 쭈뼛거렸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평온하게 찍힌 마흐텅. 그리고 익숙한 듯 자연스러운 플라브시치.
마지막으로 이 세 명의 훌륭한 테니스 코치 앞에서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신우주가 카메라에 담겼다.
* * *
#. 대한민국, 대전시
#-1. 대전 대림 두레 아파트
평범한 대한민국 가정의 저녁 시간.
적적한 분위기에도 익숙해진 신현철-장미애 부부는 TV를 시청하며 식사를 하고 있다. 즐겨보는 예능 프로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간헐적인 웃음꽃이 피웠다.
그러던 중.
까톡.
“응?”
장미애의 휴대전화에서 메신저의 알림음이 들렸고, 반가운 이름을 확인한 그녀는 아들과 똑같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남편 신현철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두들겼다.
“여보. 우주.”
“뭐? 우주가?”
“응.”
“보자. 얼르은~”
“아이, 참! 좀 기다려요. 자꾸 보채고 그래. 쯧.”
“뭐야? 사진이야?”
평소에도 아들 바보로 유명했던 남편의 성화에도, 묵묵히 장미애는 자신의 속도에 맞춰 메시지를 확인했다.
잠시 뒤.
“어이구, 우리 아들. 잘 있네~!”
“그러엄~ 잘 있어야지. 자기들이 모셔갔는데.”
“뒤에는 그…… 코치고. 다른 둘은 누구야?”
“글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잘 모르겠네.”
보고 싶은 아들의 사진을 말없이 한참 동안 바라본 두 사람. 얼마 뒤 메시지를 보내보라며 다시 성화인 신현철에 못 이긴 척, 장미애가 답을 보낸다.
폰을 보고 있었는지, 답은 바로 돌아온다.
까톡.
“아이, 진짜. 얘도 참.”
“응? 왜? 뭐라는데?”
“아니~ 프랑스에 갔다고 해서 구경 좀 했냐고 했는데, 글쎄 얘가 뭐라고 답이 왔는지 알아요? 클레이코트를 봤대! 얘는 진짜 테니스밖에 모르는가…….”
“냅둬. 우주 원래 그런 애잖아.”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나? 그래도 우리 아들 생전 처음으로 프랑스에 갔는데, 에펠탑도 보고 그러면 좀 좋아.”
“그거야 나중에 보면 되지.”
“나중에 언제?”
“혹시 알아? 우리 우주가? 응? 그거 누구야? 페더러? 아무튼. 그 사람처럼 되어서 전 세계를 여행하고 다닐지. 지금도 여전히 테니스가 참 좋은가 봐, 여보.”
학교에 다니는 것도.
친구와 어울리는 것도.
그 외 공부도.
운동도.
미술도.
모든 것을 마지못해서 하는 듯했고 늘 평범했던 아들이었지만, 테니스를 만난 이후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그 왜, 기억나? 동네 테니스 클럽에 갔을 때 말이야.”
“당연히 기억나지. 한…… 삼 개월쯤이었나?”
“삼 개월은 무슨! 한 달! 아니, 한 달 만에 몇 년이나 한 사람 다 이기고, 코치 바로 아래까지 갔잖아.”
“맞아, 맞아. 그리고 또…….”
TV를 보며 웃는 것 말고는 딱히 대화할 거리가 없었던 부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심심했던 두 사람은 지금 신우주의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그렇게, 한국의 밤은 깊어간다.
***
#. 2015년 4월 9일.
#-1. 프랑스 비오
#-2. 무하토글루 테니스 아카데미
전날 밤, MTA의 수장 무하토글루는 세레나 윌리엄스와의 만남을 위해 L.A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 MTA를 찾은 플라브시치와 신우주는 약속대로 마음껏 클레이코트를 경험하고 있다. 잠시 뒤, 레슨을 끝마친 마흐텅이 코트 안으로 들어선다.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흠- 그게 너희 나라말이니?”
“네!”
환하게 웃는 신우주를 본 마흐텅은 변함없이 밝은 소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미소가 사람의 기분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말이다.
독선적이고 오만한 치치파스를 전담해온 마흐텅으로선, 신우주를 보면 꼭 치유 받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얼른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신우주의 정확한 실력이 궁금했다.
“제가 이어받아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네.”
플라브시치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마흐텅이 함께 코트에 주저앉아 히팅을 시작한다.
전날과는 다른 꽤 꼼꼼한 히팅이었다.
“역시.”
“네?”
“어제는 시간이 없어서 그랬던 거니?”
“네. 원래는 연습 때 2시간 정도 히팅을 하거든요.”
“음, 아직 시합 경험은 없다고 했나?”
“연습경기라면 몇 번 한 적이 있어요.”
마흐텅은 플라브시치로부터 어째서 신우주를 주니어 대회에 출전시키지 않았는지를 들었다.
일단 주니어 대회에 출전하게 되면 그 즉시 테니스계에 노출이 될 텐데, 쏟아지게 될 유혹으로부터 신우주를 지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극히 사소한 이유였고, 진짜 목적은 지금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주니어 투어에 참여하게 되면, 좋건 싫건 일정에 맞춰진 삶을 살아야 한다. 대회에 참가해야 랭킹을 올릴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를 통해 프로 데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이라…….’
플라브시치의 말에 따르면, 신우주는 지금까지 미국과 세르비아를 오가며 테니스를 배웠다.
유명한 테니스 아카데미를 찾아 그곳의 문화와 코트를 경험했고, ITF(국제 테니스 연맹)가 주관하는 다양한 경기를 지켜보며 간접적인 체험을 했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몇 번인가 그랜드슬램의 볼보이로서 참여한 전력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신우주 스스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이런 모습 또한 쉽게 볼 수 없다.
보통은 하루라도 빨리 프로가 되기 위해 훈련에 매진한다. 치치파스처럼 승부욕이 강한 경우라면, 집과 테니스 코트 이외의 장소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실제로 치치파스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훈련장으로 오는 차 안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물론 제대로 된 식단을 하곤 있지만, 가끔 마흐텅은 치치파스가 여유를 갖길 원했다.
‘뭐가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 애초부터 없으니까.’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소년이란 생각을 하며, 마흐텅이 줄곧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한다.
“혹시, 원래부터 양손잡이니?”
“아뇨. 오른손이요.”
“그런데 어제는 왜 왼손으로 시작했지? 네가 그러진 않을 성격이라곤 생각하지만, 치치가 거기에 많이 화를 내고 있어.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말하면서 말이야.”
“네. 그건 좀 미안하게 생각해요.”
“응? 무슨 말이니?”
머리를 살짝 긁적인 신우주가 왼손으로 연습경기를 시작한 이유를 말한다.
“저는…….”
“?”
“양손 모두로 테니스를 잘하고 싶거든요.”
“……뭐?”
어처구니없는 신우주의 대답.
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린 마흐텅의 위로, 이름 모를 새 떼 무리가 힘껏 날갯짓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