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6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006화
계속되는 프랑스 여정
#. 2015년 4월 10일.
#-1.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2. 팁사레비치 테니스 아카데미
오늘도 어김없이 TTA 곳곳에서 구슬땀이 흘러내리는 중이다. 제2의 노박 조코비치 혹은 제2의 로저 페더러나 라파엘 나달이 되길 바라는 꿈나무들이다.
며칠 전 꿈에 그리던 TTA 입학에 성공한 미오미르 역시, 코트 위에서 힘껏 라켓을 휘두르고 있다.
“흐읍!”
팡!
손쉬웠던 스트로크가 앨리(Alley)라인과 사이드라인 사이에 떨어지고, 그 즉시 코치의 호통이 뿜어져 나왔다.
“집중해!”
“후우-”
종종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게 미오미르의 단점이었지만, 어제와 오늘은 그것이 유독 심한 편이었다.
오디션 날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다르코 가지치 : “자넨 이 아카데미에서 두 번째야.”]세르비아 내에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는 노박 조코비치의 등장 이후, 수많은 어린 소년·소녀들이 테니스 라켓을 쥐고 코트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르비아의 테니스 유스 풀(Youth Pool)은 충분하지 못했고, 뚜렷한 재능이 출현하지 않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오미르는 ‘제2의 노박 조코비치’로 평가받는 가장 주목받는 유망주였고, 당연히 TTA에서도 자신이 최고가 될 거라고 믿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도대체 걔가 누구예요?”
“또 시작이네. 그에 대한 신경을 꺼. 지금은 오직 네 훈련에만 집중할 때라고.”
훈련 도중 쉬는 시간, 또 한 번 자신을 귀찮게 하는 미오미르를 본 고이코 스타나레비치가 불필요한 관심을 끄라며 어린 선수를 달래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난 이틀 제법 많은 정보를 취득한 듯, 미오미르는 집요히 파고들었다.
“걔는 꼭 유령 같아요.”
“뭐?”
“여기 애들한테 물었어요. 이 테니스 클럽에서 가장 잘하는 녀석과 붙어본 적이 있냐고요. 몇 명이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래서 물었죠. 어떤 녀석이냐고. 그런데…….”
“그런데?”
“전부 달랐어요.”
“뭐?”
“전부 얘기가 달랐다고요! 어떤 녀석은 걔가 왼손으로 테니스를 친다고 해요. 그런데 어떤 녀석은 개가 오른손으로 스트로크를 날리는 걸 분명히 봤다고 하죠.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줘요. 그건 그냥 이 아카데미의 전설 같은 거죠?”
질문하는 미오미르는 꽤 절박해 보였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듯했다.
신우주를 전설로 취급한 미오미르가 자신이 들었던 모든 것을 고이코 앞에 털어놓는다.
그리고 은근한 미소와 함께 가만히 이야기를 들은 TTA의 16세 이하 코치는, 답을 원하는 소년을 향해 고개를 틀며 이렇게 대답했다.
“우주는 실존 인물이 맞아.”
“맞다고요?”
“응. 그리고 네가 들은 이야기도 맞아.”
“……네?”
“뭐랄까, 걔는 좀 특별한 존재야.”
“특별해요? 저보다?”
“그게 아니야, 미오미르. 누가 더 중요하고 특별하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걔는 특별해. 너는 혹시 테니스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이 몇 개나 있는지 알고 있니?”
“대충 10개 정도 아니에요?”
“비슷해.”
플레이 스타일은 테니스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 자체로 무기가 되고 또 전술이 된다.
크게 서비스&발리어/베이스라이너/올라운더/스페셜리스트의 네 가지로 구분되며, 현대에 와서는 더 세분화하여 최대 11개의 플레이 스타일이 있다고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신우주는.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아이야.”
“뭐라고요?!”
“믿기 어려운 거 알아. 하지만, 그게 사실이야. 굳이 따지자면 걔는 올라운더지만, 일반적인 올라운더 하고는 또 달라. 어떠한 날은 애거시 같고, 어떠한 날은 로저를 연상시켜.”
“지금 저보고 그걸 믿으라고요?”
“그건 네 자유지. 강요하진 않아.”
“…….”
지금까지 모든 영역에서 뛰어난 테니스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완전체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로저 페더러나 노박 조코비치도 하지 못하는 플레이가 있다.
누구도,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여전한 불신 속에 약간의 충격을 받은 미오미르는 멍한 표정이었고, 그를 재촉해 다시 훈련 준비를 끝낸 고이코가 그늘을 벗어나 땡볕을 나왔다.
베오그라드의 하늘은 오늘도 맑고 푸르르다.
‘그러고 보니, 곧인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고이코는 플라브시치와 떠난 신우주가 비오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할 때임을 떠올렸다.
이제 두 사람은 프랑스의 다른 도시로 향한다.
ATP 투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팔자 좋은 녀석.’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테니스 관련 경험을 습득 중인 신우주가 부럽다면 부럽고, 대단하다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드는 고이코 스타나레비치다.
* * *
#. 프랑스 비오
#-1. 무하토글루 테니스 아카데미
약속한 이틀의 시간이 지나고, 오전 마지막으로 클레이코트에서 연습한 신우주가 감사의 인사를 남기며 MTA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 마흐텅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소년이 남기고 간 선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자그마한 모형이었다.
신우주는 이것이 한국의 전통 가옥인 한옥(韓屋)이라고 소개했다.
‘언젠가…… 또 볼 수 있겠지?’
어제 한나절 함께 훈련한 신우주는 마흐텅이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재능이었다.
가르쳐 주는 모든 걸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모든 설명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앙투카를 그토록 빨리 이해하는 녀석은 처음이었어.’
본래 신우주는 클레이코트. 그중에서도 붉은 벽돌을 분쇄하여 만든 앙투카를 경험코자 MTA를 찾았다.
큰 틀에서는 같은 클레이코트로 취급되지만, 점토로 만드는 바닥과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바운드나 미끄러지는 정도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한참을 점토와 앙투카를 오가며 훈련해 봐야 알 수 있는 그런 차이를 신우주는 단 2시간 만에 이해했다.
오후 훈련을 진행할 땐 완전히 익숙해진 듯 마음껏 코트를 날아다녔고, 스트로크를 진행하는 그의 얼굴은 처음 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더욱 놀라웠던 건 그가 자신에게 말한 대로, 양손으로 스트로크를 휘둘렀다는 사실이었다.
왼손으로 하는 스트로크가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나이와 경력을 생각하면 왼손잡이라 착각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똑똑똑.
닫혀 있던 사무실의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방문한 이가 누구인지를 알았던 마흐텅이 밖의 사람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문을 열고 등장한 건, 다름 아닌 치치파스다.
“무슨 일이시죠?”
“이거.”
“……이게 뭔데요?”
“이틀 전에 잠깐 연습경기를 했던 꼬마 있지?”
신우주와의 연습경기를 말하기 무섭게, 치치파스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를 마흐텅은 보지 못했다.
“걔가 선물이라고 남기고 갔어. 연습경기 파트너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이야. 그의 나라 전통 가옥이라는데, 이름이…….”
“필요 없어요.”
“뭐?”
“필요 없다고요. 이딴 거. 그럼 볼 일은 따로 없는 거죠?”
“치치. 이건 예의가 아니야.”
“예의는 걔가 먼저 없었죠. 그럼.”
명백한 적의를 드러낸 치치파스가 차갑게 몸을 돌려 사무실을 다시 빠져나간다.
열려있는 문을 본 마흐텅이 허탈해하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고, 얼마 뒤 치치파스가 거부한 선물을 앞서 자신이 놓아두었던 모형의 곁에 놓아두었다.
모양새가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라, 꼭 두 개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소심한 녀석. 아직도 그 일을 담아두는 건가?’
여전히 치치파스는 신우주가 처음 왼손으로 테니스 채를 잡은 것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기분이 상할 만한 일인 것은 맞다.
하지만, 예의를 져버린 건 아니다.
신우주는 분명 왼손으로도 테니스를 할 수 있다.
“양손잡이라니. 그게 가능할 리가.”
테니스의 유형 중엔 ‘Ambidextrous’라고 불리는 양손잡이들이 있다.
백핸드가 없고 포핸드로 모든 서비스를 처리할 수 있어 엄청난 장점이 있지만, 중요한 건 투어(Tour) 레벨에서는 그러한 선수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세대에서 몇 있기는 했지만, 그들 모두 형편없는 실력을 양쪽 포핸드라는 변칙으로 감추려던 것에 불과했다.
그나마 비슷하게 존재하는 유형이 양손 포핸드인데, 슈테피 그라프를 강력하게 위협했던 모니카 셀레스(Monica Seles)가 이런 양손 포핸드 유형이었다.
양손 포핸드는 안정성이 높아 스트로크에서 실수가 나올 확률이 크게 떨어지지만, 속도가 크게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
강렬했던 신우주와의 만남을 좀처럼 떨쳐내고 있지 못한 마흐텅. 그는 곧 전날, 플라브시치 모르게 녹화해 두었던 영상을 확인했다.
화면 속, 신우주는 양손으로 서비스를 넣고 있다.
팡!
팡!
* * *
#. 2015년 4월 11일
#-1. 프랑스 호끄뷴느
#-2. 호텔 르 그랑 캽
비오에서 열차를 탄 플라브시치와 신우주는 약 3시간에 걸친 여정 끝에 2015 몬테-카를로 마스터스가 열리는 아름다운 해안도시 호끄뷴느에 도착했다.
열차 역에서 택시를 탄 둘은 곧바로 호텔로 향했다.
“조금 쉬려무나.”
“네. 2시간만 잘게요.”
“그래. 휴대폰 곁에다 뒀지?”
“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불은 끄고 갈게.”
“감사해요.”
“뭘.”
딸깍.
오전 훈련 직후에 바로 이어진 열차 여행으로 피곤한 신우주를 남겨두고, 플라브시치가 객실을 나선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인데, 호텔 로비로 나서기 무섭게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환하게 웃어 보인 플라브시치가 한쪽으로 걸어가 불쑥 말을 꺼내 든다.
“꼼짝 마.”
“아- 제발. 또 그 장난이야?”
“큭큭큭. 안드레이!”
“잘 지냈어?”
“그래.”
얼마 전 미오미르 케크마노비치의 입학 오디션을 담당했던 안드레이 시미치가 플라브시치가 만나기로 한 인물이다.
“이번에도 노박이 자넬 골랐군.”
“뭐, 오랫동안 함께했으니까.”
“그럼 노박과 함께 머무는 건가?”
“며칠은. 우주는 어때?”
“놀라워. 이걸 좀 볼 텐가?”
자신이 직접 찍은 MTA에서의 훈련 영상을 시작으로, 플라브시치는 비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치치파스라면 꽤 하는 녀석이잖아?”
“그렇지. TTA에도 새로운 꼬맹이가 왔다며?”
“응. 미오미르. 잠재력은 있어. 다만, 걔가 세계적인 레벨로 올라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야.”
“어째서?”
“그냥 첫 느낌.”
“…….”
막연한 추측이었지만, 안드레이의 날카로운 감각을 알고 있던 플라브시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망주를 판단하는 데 있어, 안드레이는 언제나 TTA의 어떤 코치들보다도 뛰어났다.
비극적인 사고로 데뷔 경기가 유일한 프로 경력이 되었지만, 그것을 생각하면 안드레이 시미치는 테니스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지도 몰랐다.
잔인함을 장난기가 많다고 속이는 신(神)이 뜬금없는 변덕을 부린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플라브시치는 늘 그 점이 안타까웠다.
“여긴 얼마나 머무는 거야?”
“열흘. 대회 기간은 연습과 관람을 병행하고, 하루 정도는 쉴 생각이야. 그러곤 바로 스페인이지.”
“바르셀로나 오픈이지?”
“응. 그러곤 한동안 스페인에 머물 생각이야.”
“그럼, 얀코하고 함께 돌아오겠군.”
“아마도?”
“걔는 인간 승리야. 잘되어야 하는데.”
“뭐, 이미 충분하지.”
“훗. 그건 그래.”
TTA의 설립자 얀코 팁사레비치는 2014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훈련 도중 발 근육이 손상되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뤄졌고, 성공적인 수술 이후 무려 17개월에 걸친 재활을 했다. 재활이 이뤄진 장소는 L.A인데, 그동안 팁사레비치는 TTA를 떠나 있었다.
그러다 이번 3월 마이애미 마스터스에서 복귀, 노박 조코비치와 함께 복식 경기에 나섰지만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며칠 전 휴스턴에서 열린 U.S 클레이코트 챔피언십에 출전해, 2라운드 탈락을 경험했다. 워낙에 긴 재활이었던지라, 아직은 온전히 실력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우주를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어.”
“워낙 피곤해해서 말이야. 그리고 이거.”
“응? 또?”
“그래. 심심하면 늘 이런 걸 만들지 않나. 봐, 이번엔 자네의 딸을 위한 거니까.”
“…….”
신우주의 유일한 취미는 각종 블록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어째서 그것이 좋은지를 묻자, “유일하게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순간.”이라고 대답한 것이 기억났다.
테니스는 고도의 심리전을 요구하는 스포츠다.
그래서 늘 머리를 많이 쓴다.
그런 만큼 생각을 비우는 과정 역시도 중요했는데, 누가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 이것을 생각할 만큼 신우주는 성숙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나는 가끔 걔가 어른 같아.”
“쿡쿡. 무슨 말인지 알아. 배울 게 참 많은 꼬마지.”
“그래서 너도 담배를 끊은 거고 말이야. 아냐?”
“걔가 내 폐를 살렸지.”
“그리고 네 얇은 지갑도.”
“X까.”
“쿡쿡쿡.”
각별한 친분을 과시하는 두 사람.
이들이 바로 신우주의 전담 코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