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Time Stop Player RAW novel - Chapter (3)
ⓒ 애모르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어느 순간 초침이 똑딱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소리는 점차 느려지고 모든 것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진다.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도 녀석의 비웃음도 공포에 떠는 아이들의 표정도 교관의 고통에 찬 신음도 서서히 느려지며.
딱-
뚝 멈춰 섰다.
어느 순간 적막, 침묵, 정적이 찾아왔고.
시간은 멈췄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진짜 멈췄네.”
그러나.
나는 현상을 그리고 법칙을 거스르는 광경 앞에서도 침착했다.
가슴의 어떠한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고 차분했다.
반대로 당연하다는 듯이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위기감이 사라진 위화감이 드는 현상이었으나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방법을 생각했다. 일단 이유는 대충 알 거 같았으니.
아마 시간 정지와 함께 받은 정신 방어 스킬 [지고한 불굴] 덕분일 것이다.
그것 외에는 이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직 시간 정지라는 스킬이 완벽한지도 모르며 갑작스럽게 다시 시간이 흐를지는 모르니까. 지금은 당황보다는 해결책이다.
“자, 그럼 이제··········.”
최우선으로는 역시 녀석을 죽여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A급 빌런 완력가.
스토리상 녀석의 등장은 쭉 이어진다.
생도회장의 원수인 동시에 빌런 연합에 가담해 아카데미를 습격하는 에피소드를 포함해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녀석이다. 그 과정에서 살해당하는 영웅과 생도, 시민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그 영웅과 살해당하는 시민 안에 내가 포함될 수도 있다.
완력가의 태도를 보아하니 나는 이미 녀석에게 찍힌 거 같으니.
‘정사가 바뀔 수도 있지만··········.’
별수 없지.
좀 번거롭겠다만 지금은 녀석을 죽이는 게 최우선이다.
“그럼··········.”
일단 나는 녀석을 죽일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간단하게 날카로운 무언가로 녀석의 목 혹은 심장을 찌르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A급인 동시에 완력가라는 이명답게 녀석의 힘과 체력은 ‘경계의 극치’라 불리는 500을 넘어섰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게 몸 또한 단단하기로 소문난 녀석이다.
아마 웬만한 날붙이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은 녀석이 진심이었을 때의 얘기다.
호쾌하게 처웃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몸에 그렇게 힘을 주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시도나 해볼까?’
버스 안에서 날카로운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준은 먼저 수험생들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 불리는 천재들만이 모이는 아카데미다.
아마 어디 최상위 영웅의 아들이나 협회장의 손녀, 유명한 길드의 아들 등등.
유망주들이 모이는 아카데미이니 아마 레어 혹은 유니크에 준하는 무기를 가진 애들이 몇 명 있을 거다.
그러나 여기서 하준은 예상치 못한 봉변을 마주했다.
“에라이!”
지퍼가 열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고정되어 있었다.
동시에 가방 또한 딱딱한 돌이나 다름이 없었다.
무엇 하나 움직이지 않는 세상에 하준은 난처함을 느끼고 말았다.
“········일단 포기.”
하준은 빠르게 판단했고 이내 버스를 포기했다.
결국 버스를 나와 터널 근처를 돌아다니던 중.
툭-
“응?”
허공에 떠도는 무언가에 어깨를 부딪친 하준이었다.
하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방금 허공에 떠 있는 유리 조각이 하준의 어깨에 퉁겨져 조금 움직인 것이다.
“이거 설마··········.”
혹시 몰라 하준은 한 번 더 유리 조각을 손가락으로 튕겨보았다.
동시에 유리 조각이 살짝 밀리다가 뚝 하고 멈춰 섰다.
‘허공에 떠 있는 건 움직임에 제약이 없나 보네.’
하준은 곧바로 허공에 떠도는 유리 조각을 챙긴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전혀 없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생기기 시작했다.
곧이어 하준은 비슷하게 허공에 떠 있는 물건이 없는지 살피기 시작했고 곧이어 발견한 것은 터널 옆 벽에 처박혀 반파된 차량이었다.
허공에 떠도는 차량의 무수한 유리 조각과 무너지는 벽.
“별 도움이 되는 게··········.”
없을 거라 생각한 순간.
어느 아이디어가 떠오른 하준이었다.
‘생각해보니 이거 부서지기는 하나?’
돌처럼 딱딱해진 가방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하준은 곧장 유리 조각을 바닥으로 내리쳐보았고 결과는 하준의 예상대로였다.
‘안 깨지네··········.’
그렇다면 이 주위에 떠도는 모든 잔해가 유니크 혹은 레전더리에 준하는 내구성을 가졌다는 소리였다.
“나쁘지 않네.”
하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뭔가 조금 실마리가 잡히는 기분이었다.
* * *
시간을 멈춘 지 하루가 지났을 때쯤.
시간이 멈춘 공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한 하준이었다.
첫 번째로 시간이 멈췄기에 무엇이든 파괴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녀석을 죽일 방법이 없어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한 가지.
하준의 뇌리에 스치듯 지나간 아이디어가 있었다.
“제발 이게 돼야 할 텐데.”
팅! 팅!
하준이 떠올린 방법은 무식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이었다.
녀석의 심장 부근에 유리 조각을 갖다 댄 뒤, 허공에 떠돌던 주먹 크기의 돌멩이를 들고 나무에 못을 박듯 무식하게 쳐내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완력가의 몸이 뚫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다시 시간이 흐른다면 중첩된 힘이 녀석을 심장을 관통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 만화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기에 확실치는 않았다.
뭐, 안 된다면 다시 시간을 멈추는 수밖에.
‘적어도 한두 시간 정도는 안 돼··········.’
완력가의 내구성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무식하다.
유니크 혹은 레전더리 정도의 보구를 스킬 하나 없이 맨몸으로 막을 정도이니 말이다.
적어도 하루 아니, 이틀 정도의 힘이 중첩되어야만 가능성이 있었다.
다행히도 널린 게 시간이다.
급할 필요는 없다.
녀석을 완벽하게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준비를 갖춰야 하니.
*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3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팅! 팅!
어느 순간 거세게 망치질하던 하준의 손이 멈춰 섰다.
하준은 이마에 흐르던 땀을 닦으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완력가의 양쪽 아킬레스건에도 유리 조각을 박아 놓은 하준이었다. 모든 준비는 완벽하다.
이제 운명에 맡길 뿐이었다.
“뒤져, 이 새끼야.”
그 말과 함께 스킬이 해제되고 시간이 흐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교관의 고통에 찬 신음이 움츠리고 우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들려왔고
곧.
“크하하하하하하!!!”
녀석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려왔으며.
동시에.
키이이잉!!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던 유리 조각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인 유리가 완력가의 심장에 파고들었고.
동시에.
파캉!!
박혀 든 가느다란 유리가 그대로 녀석의 심장을 찌른 상태에서 중첩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조각난 조각은 예리한 예기로 변하여 완력가의 심장을 찢어발겼고.
“크하하하- 크헤엑! 쿨럭 커어헉!!”
녀석은 피를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든 완력가의 시선이 하준을 향했다.
“쿨럭- 크허억········어, 어떻게.”
“뭘, 어떻게야. 빨리 가 인마.”
“크하아아악!! 이대로는 못 간다!!”
완력가는 마지막 죽기 전의 발버둥이라도 치려는 듯 온몸의 근육을 팽창시키기 시작했다. 하준은 두, 세 걸음 정도 물러설 뿐이었다.
어차피 녀석은.
쿵-
곧이어 몸을 일으킨 완력가였지만 걸음마를 처음 떼는 아이처럼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녀석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목에 일어난 현상을 눈치챈 것이다.
“크허·········, 너는 대체 뭐··········.”
그것이 녀석의 마지막 말이었다.
눈동자의 이채는 사라진 채 벌컥- 벌컥- 홍수처럼 쏟아지는 피.
그것이 A급 완력가라 불리던 빌런의 최후였다.
“세상에·········.”
“말도 안 돼··········.”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 순간.
나는 쓰러지듯 의자에 앉은 뒤, 그대로 눈을 감았다.
3일 동안의 노력에 결실을 맛볼 차례였다.
지금의 버스 의자는 내게 어느 유명한 가구점의 부드럽고 푹신한 소파와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스킬이 편하긴 편하네.’
찌를 듯한 여러 명의 시선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니까.
그렇게 나는 잠자리에 들었고.
[메인 퀘스트]퀘스트 가능 캐릭터 : 김하준(리베르 라필턴 필 에르만)
설명 : A급 빌런 완력가를 처치하십시오.
보상 : 250P
[성공!] [보상이 주어집니다.]* * *
내가 잠에서 일어났을 때는 익숙지 않은 병원의 침대였다.
다만, 내가 병원에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몸 어디에도 경미한 부상은 없었으니까.
그저 3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한 거 정도?
“일어났나?”
고개를 돌리니 회색의 정장 차림에 백발이 서성한 노인이 앉아있었다.
‘아, 이거··········.’
하준은 대충 노인이 무슨 말을 꺼내려는 지 알 거 같았다.
아마 심문이겠지.
“자네가 완력가를 쓰러트린 그 학생이 맞나?”
“예, 김하준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더 젊군··········젊어서 더 놀라워··········.”
나는 잠시 눈앞의 노인을 바라봤다.
회색의 정장과 잘 가다듬어진 수염 그리고 청명할 정도로 푸른 오드 아이를 가진 남자.
내가 잘 알고 있는 노인이었다.
“혹시 현자 최중원 교장님 되십니까?”
한국 최초의 마법사이자 로키아 아카데미의 총책임자 .
현자 최중원이었다.
“허, 허, 허 반갑네. 그래, 그럼 일어나자마자 미안하지만, 자네는 정체가 뭔가?”
그 말과 동시에 최중원의 푸른 눈동자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의미를 명백히 알고 있었다.
아마 거짓말을 감지하려는 거겠지.
“지금 교내를 포함해서 전국에서 자네 얘기로 떠들썩하네.”
“혹시 이름도요?”
“아직 밝히지 않았네.”
나는 속으로 안심하며 최중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일단은 자네 정체를 파악해야 해서 말일세.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무명이 A급 완력가를 쓰러트렸다는 게 영 믿기지 않구먼.”
“일단 빌런은 아닙니다. 입학시험을 보러 온 평범한 학생입니다.”
설명은 명확하고 간결할수록 진실을 간파하는 눈은 빠르게 판단한다.
그 한마디에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 최중원이었다.
나 또한 담담한 얼굴로 최중원을 마주 봤고.
이내 최중원의 일렁이는 푸른 눈이 사그라들며 만면의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허허, 하하하! 대단하구먼. 학생 중에 이런 인재가 있을 줄이야.”
“과찬이십니다.”
“내 마력을 마주하고도 그리 담담하게 있는 건 자네가 처음일세.”
마력?
혹시 마력을 흩뿌리고 있었나?
최상급의 격에 도달한 인간의 마력은 보통의 정신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마력을 느낄 수 없었다.
개 같게도 시스템놈이 마력을 주지 않았다.
당연히 마력을 느낄 수 있을 리가 있나.
“어떤가? 내 자네가 원한다면 곧바로 특대생으로 아카데미에 입학시키고 전국에 자네의 명성을 떨치게 해주겠네. 괜찮나?”
이 노인네가 노망이 났나?
누굴 죽이려고········. 아니, 간 보는 건가?
“교장 선생님 저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그 한마디에 최중원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역시 간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미 빌런 연합에 소속됐을지도 모르는 A급 완력가를 쓰러트린 학생이 있다?
당연히 놈들의 표적으로 몰릴지도 모른다.
더구나 전국에 내 이름이 알려진다면 더더욱.
“그럼 어떻게 할 텐가?”
“정사대로 가죠. A급 빌런을 쓰러트린 학생의 이름을 공표하지 말고 또 특대생권을 취소한 뒤 평범하게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하겠습니다.”
“후훗, 자네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내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놨네. 학생과 교관에게도 입막음을 해놨으니 걱정하지 말겠나.”
역시 간 보고 있었네 요망한 노인네.
나의 살짝 꾸겨진 미간을 본 노인네 아니 최중원은 미소를 지은 채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본래의 나였다면 놀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항상 발동되는 스킬이 내 마음을 침착하게 만들고 있었다.
최중원이 말했다.
“정말 고맙네, 우리 아카데미의 교관과 미래가 유망한 학생들을 살려줘서.”
“저도 죽기 싫어서 죽였습니다.”
“하하하! 참 그걸 간단하게 말하는 군,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아니, 자네에게는 쉬웠나? 영상을 봤네.”
이 노인네가 뭔가 점점 나를 괴물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거 같다만 의외로 괜찮은 상황이었다. 전 영웅 협회장이며 아카데미의 교장인 그와 친분을 쌓으면 도움받을 일이 많아질 테니.
“그럼 몸은 괜찮나?”
“예. 솔직히 다친 곳은 없습니다.”
“정말 대단하단 말이지 녀석을 상대하고 멀쩡한 녀석이 있다니··········좋네. 그럼 바로 시험을 볼 수 있겠네?”
시험? 입시 시험 기간은 지나지 않았나?
솔직히 말해 포기하고 빈둥거리며 1년을 놀다가 여유롭게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최중원의 말이 내 생각을 잘라냈다.
“내 자네를 위해서 3일을 지연했네. 몸이 안 좋으면 더 지연할 수도 있고.”
오우, 역시 권력이 좋긴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