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24)
〈 224화 〉 앨리스 토벌전 – 막간 (3)
* * *
아이작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매로 카를로스 황제를 쏘아보았다.
로얄 가드 자큘 칼릭스와 황실 기사들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고.
얼음 기사 모르칸 또한 언제든지 허리춤에 찬 백은검을 빼 들 수 있도록 준비 동작을 취했다.
처컥, 하고 검신이 검집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났다.
“어, 자, 잠깐?! 아아…!”
살벌한 분위기 속, 가장 크게 식겁한 사람은 단연 교장 엘레나였다. 그녀의 양손이 허공을 방황했다. 일개 학생이 아닌 빙제로서 이 자리에 선 아이작을 어떻게 말려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은 냉소적인 어조로 말했다.
“내가 여태 부유섬이고 뭐고 다 토벌하면서 마족 문제 손수 뒷바라지해주고, 좋게좋게 웃어 주면서 대하니까 간과한 것 같은데. 너희는 을이야.”
아이작은 카를로스 황제가 한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황제 입장에선 타당한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곳엔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아이작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하물며 명분도, 대의도, 행보도, 모든 면에서 아이작은 카를로스 황제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따위로 나오면 곤란한 쪽은 나라고.”
그런 상황에서 [심리 간파]로 카를로스 황제의 심리를 읽었다. 그는 아이작이 나이가 적고 너르게 나오기까지 하자, 그 태도를 이용하여 회담의 페이스를 자신에게로 끌고 오려 했다.
동시에 뒤펜도르프의 국력 강화까지 경계했다. 앨리스에게서 정보를 캐낸 뒤, 황국에 이익이 되도록 그녀에게 어떻게 미리 손을 써둘지 고심하려 했다. 만일의 경우, 손해를 메워주겠다고 말한 건 그런 의도였다.
아이작은 그조차도 이해했다.
상대가 자신을 얕보든 말든, 생각 자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않으면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애당초 황제도 사람이니, 당연히 그런 생각을 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앨리스에게 손을 쓴다? 그런 생각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면 문제가 되겠지만, 생각을 품는 것까지는 아이작은 공감할 수 있었다. 카를로스 황제는 황국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하지만 그런 의도를 품고 코웃음까지 치며 아이작에게 입장을 굽히라는 뉘앙스로 말했던 황제의 태도를, 아이작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또한, 카를로스 황제는 황국의 안녕과 평화를 추구하는 자.
무력으론 감히 아무도 대항하지 못할 아이작을 상대로,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전쟁을 벌일 위인이 절대로 아니었다.
전술했듯, 대마법사에게 치외법권을 인정해 줄 정도이니. 아이작은 그 성격 또한 고려했다.
그렇기에 아이작은 경각심을 일깨워주고자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판단해서 단검을 던진 것이었다.
“뭐 하자는 거냐, 지금?”
“황제 폐하께 무슨 망언이냐?”
자큘이 살의를 담은 목소리로 따지자 아이작은 그를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넌 뭔데 끼어드냐?”
“자큘.”
카를로스 황제는 가볍게 손을 들어 자큘이 더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도록 막았다.
자큘은 긴장한 황제를 바라보며 눈을 찌푸리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내 사과하지.”
카를로스 황제는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언사가 조금 공격적이었군. 화를 부추긴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다시 눈을 뜨고 아이작을 바라보는 카를로스 황제.
아이작은 뜸을 들이고 목소리를 조금 부드럽게 되돌렸다.
“말씀은 이해합니다. 악신이 언제 부활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하트 왕국은 다른 세계에 있지만, 앨리스와 팔라딘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악신의 부활 정보를 공유하여 그들을 동료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제르베르 황국은 아니었다.
‘어차피 협력하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잖아.’
끝내 황국은 악신 토벌에 가세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니 적당히 협력 관계만 유지하면 될 터였다.
여기서 황국에 미래에 벌어질 일, 악신의 부활 시기 등 중요한 정보를 벌써 손에 쥐어주면 감당하기 어려운 변수와 혼란만 가중될 위험이 높았다.
이미 누군가에게 전해진 정보는 도로 주워 담을 수 없을 뿐더러, 그걸 악용하거나 혼란을 초래할 놈이 튀어나올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물며 깊은 신뢰 관계를 쌓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통제 못할 위험을 아이작은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정보를 아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쪽에도 굽히지 못할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이 뭔가?”
“사람들을 지켜내는 일입니다. 말씀드렸듯 앨리스는 그 일에 쓰일 겁니다.”
“…그 숭고한 뜻은 정말로 감사하게 여기고 있네.”
카를로스 황제는 아이작의 눈을 응시하며, 스스로가 신중하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한 발짝 물러서기로 했다.
상대는 원옥마수까지 부리며 얼마든지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제르베르 황국의 귀중한 인재들을 지켜왔고, 직접 사람들을 지켜내겠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돌아보면 비상식적이고도 말도 안 되는 희극처럼 보였다.
애초에 이런 대마법사가 협상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부터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고작 단검 하나 날린 것도 많이 봐준 것일 터.
그렇지만, 카를로스 황제는 황국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는 걸 포기할 마음은 결단코 없었다.
“하지만 말일세. 우리 황국은….”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카를로스 황제는 말을 멈추었다.
아이작은 품 안에서 회중시계 하나를 꺼내 얼음 기사 모르칸에게 건넸다.
“전해줘.”
모르칸은 회중시계를 로얄 가드 자큘에게 건넨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자큘은 시계에 위험한 게 없는지 살핀 후, 카를로스 황제에게 다가가 그 시계를 내보였다.
“……!”
카를로스 황제의 눈이 흔들렸다.
색감이 일부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지만, 스노우화이트가 소중히 여겨 온 회중시계임이 틀림없었다.
카를로스 황제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크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어째서 자네가 이 시계를…?”
“다행히 바로 알아봐 주셨네요.”
“이걸 모를 리가. 짐의 딸, 스노우화이트의 시계이지 않는가…!”
아이작은 검지로 천장을 가리켰다.
“하늘에 나타났던 마족. 그 시계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아이작의 충격적인 발언에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카를로스 황제의 두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이내, 그는 재빨리 표정을 갈무리하고 경계심 어린 얼굴로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의심되면 조사해 보십시오. 증거가 차고 넘칠 테니까.”
“…….”
카를로스 황제는 출입문 옆에 대기 중이던 황실 마법사를 보고 회중시계 쪽으로 턱짓했다.
“확인해 보거라.”
황실 마법사는 긴장한 얼굴로 다가와 돋보기가 붙어 있는 마도구로 회중시계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돋보기를 바라보는 황실 마법사의 눈앞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 시계가 평범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건 금방이었다.
“스노우화이트 황녀님의 시계가 분명합니다. 그나저나… 마력을 담아낼 수 있는 용량이 가늠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어마어마한 밀도를 가진 어둠 마력의 잔흔도 보입니다. 이제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평범한 시계로밖에 쓸 수 없겠지만…, 이건 대체….”
“결론부터 말하게.”
“황실 마탑에서 관측했던, 별하늘 마족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부정의 여지가 없습니다.”
무언가를 숨기는 건 인식 저해 마법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무언가를 다르게 인식시키는 것도 아이작이라면 가능할 것이었다.
하지만, 황실 마탑에서 이미 측정했던 별하늘 마족의 마력 측정 결과 값은 어찌하든 속일 수도, 꾸밀 수도 없는 명백한 것이었다. 아이작이 그 회중시계에 아무런 장난도 치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카를로스 황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스노우화이트가 황후로부터 받았던 회중시계다.
그 시계를 의심하지 않았던 건 결코 아니었다. 황후가 배후에서 스노우화이트 암살을 공작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신하를 부려 그 시계부터 면밀히 조사했기 때문이었다.
이상 없는 시계라고 밝혀졌고, 황후가 화이트에게 평범하게 준 유일한 생일 선물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안도하고 화이트에게 그 회중시계를 돌려주었다. 그녀가 무척 아끼는 것이었고, 그녀에게 큰 의미를 지닌 것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그 회중시계는 처음에 본래의 기능을 교묘하게 숨겨 놨던 모양이었다.
황실 마탑의 수준조차 아득히 뛰어넘는 인식 저해 마법이라도 걸려 있었던 걸까. 혹은 그와 비슷한 장치라도 있었던 걸까.
…그럴 것이었다. 하늘을 지배했던 무시무시한 마족, 통칭 ‘별하늘’이 담겨 있었을 정도이니. 이를 가능케 한 존재가 시계에 무슨 기적을 부렸든 놀라울 게 없었다.
문득 황후의 시체가 떠올랐다. 잠자리를 가질 때조차 보기 흉한 흉터가 있다며 결코 목을 보여 주지 않았던 그녀는, 시체가 되어서야 목에 새겨진 정체불명의 낙인을 내보였다.
황후는… 대체 얼마나 위험한 마족에게서 이런 시계를 받았었단 말인가.
“알겠네…. 돌아가게.”
황실 마법사는 고개를 조아리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카를로스 황제는 생각을 정리하며 두 눈을 지그시 깜박였다.
이 시계는 황실의 치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위험 요소 때문에 황족과 수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를 일을 아이작이 해결해주었단 사실이었다.
아이작은 여러 마족 사건으로부터 황실 기사단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아무도 죽지 않게 힘써 오면서.
끝내는 황후의 마지막 암살 수단까지 저지해 황족을 지켜냈다.
황국은 아이작에게 뭐라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부채를 진 셈이었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카를로스 황제는 눈을 내리깔았다.
“스노우화이트는 무사하다고 들었네만…. 전부 자네 덕이었군. 이 시계가 범상치 않았던 것임을 사전에 간파했던 건가?”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작.
카를로스 황제는 심란한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기까지 수 초의 정적이 필요했다.
“재차 사과하겠네. 자네에겐 너무도 많은 빚을 졌네. 스노우화이트를… 지켜줘서 고맙네.”
아이작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시계에 관한 일은 함구하겠습니다.”
“…부탁하지.”
어차피 무저갱이 떠나가고 이젠 시계 본연의 역할밖에 못하는 평범한 시계다.
여기 있는 누군가가 시계 일로 몰래 떠들고 황실의 치부를 드러내도 아이작이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배려하는 모습만 보이면 될 뿐.
아이작은 잔잔한 목소리로 자기 입장을 공고히 했다.
“카를로스 황제 폐하. 아까도 말씀드렸듯, 우리도 황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이 아카데미를 지켜내고 싶습니다. ”
“…….”
“뒤펜도르프 차원에서 황국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가능한 한 공유하겠습니다. 또한, 앨리스 캐럴은 이 아카데미와 황국 국민을 지켜내는 일에 쓰겠다고도 약속하겠습니다. 앨리스를 아카데미에 계속 재학시키려는 가장 큰 이유가 그거니까요. 그러니… 협력 부탁드립니다.”
아이작은 고개를 숙였고.
카를로스 황제는 눈을 감고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 힘없이 도로 앉았다.
* * *
카를로스 황제는 초기에 밝혔던 조율안을 철회하고 내 뜻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써 앨리스 캐럴의 신변은 온전히 내게로 넘어왔다.
그리고 카를로스 황제는 ‘되도록 앨리스 캐럴의 오명이 벗겨지도록 협조하겠으나, 차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따라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나는 그 뜻을 받아들였다.
카를로스 황제가 뜻을 굽힌 건 무엇이 황국을 위한 일인지 저울질한 까닭이리라. 희대의 대마법사라 불리는 내가 황국을 지키는 일에 힘써왔으니, 나를 척 지고 싶진 않겠지.
참고로 황제의 뜻은 황국 법도 위에 존재한다. 황제의 확고한 의사만 있다면 법 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어차피 우리 하는 일이 황국 지키는 건데.’
시나리오가 진행될 때마다 앨리스는 나를 도울 테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지켜내고 살릴 것이었다. 그 주요 무대가 황국 영토였으니, 우리가 할 일은 필연적으로 황국을 지키는 게 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카를로스 황제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앨리스와 함께 메르헨 아카데미에 계속 재학하겠으며, 대신 황실에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며 이전처럼 아카데미를 지키겠다’라고도 말했다.
아카데미에 남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기 위한 핵심적인 키가 아카데미에 몰려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가 >메르헨의 마법 기사> 중심지잖아.
이제는 강한 무력만으로 쓰러뜨릴 수 없는 적들도 출현할 터. 설령 아카데미를 떠나고 싶어졌다 해도 떠나선 안 됐다.
어쨌든, 나와 카를로스 황제는 회담을 마치고 협력 관계를 맺기로 했다.
“황제 폐하!”
“스노우화이트?”
아카데미 교문 앞.
호위를 둔 카를로스 황제가 황실 마차를 타고 떠나려 하자 스노우화이트와 호위 기사 메를린 아스트레앙이 달려왔다.
나는 교직원들, 황실 기사단과 함께 황제를 배웅한 참이었기에 화이트와 눈이 마주쳤다.
화이트는 나를 보곤 흠칫 놀라더니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였다.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화이트와 카를로스 황제가 마주보고 섰다.
“미리 알현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오신 줄도 모르고…!”
“짐의 뜻이었으니 심려치 말거라.”
카를로스 황제는 허둥지둥하는 화이트에게 다가갔다.
그는 딸바보다. 새로운 원왕을 만나야 하는 자리에서, 화이트를 만나면 엄숙함이 저해될 것이라 염려했다. 그래서 화이트에게 정확한 행차 일정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황제 폐하?”
카를로스 황제는 화이트를 껴안았다.
화이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구심 어린 표정이었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구나, 사랑하는 내 딸아.”
“……?”
카를로스 황제는 그 말을 남기고 한동안 화이트를 지그시 바라본 후, 마차에 올라탔다. 호위병은 마차 문을 닫았다.
황실 마차는 말을 탄 호위병들과 함께 아카데미에서 떠나갔고, 교직원들과 황실 기사단은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
화이트는 떠나가는 마차를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화이트와 얘기라도 나눌까, 하다가 등을 돌리고 발을 옮겼다.
아직 화이트는 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듯했으니까. 배려하려는 의도였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기도 하고.
“아.”
화이트의 목소리.
화이트와 메를린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아카데미 구치소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앨리스와 팔라딘을 보러 갈 생각이었으니.
그때였다.
“아이작 선배!!”
발을 멈추었다. 설마 화이트가 이 자리에서 대놓고 나를 부를 줄은 몰랐다.
화이트는 메를린과 함께 내 쪽으로 달려왔다.
등을 돌렸다. 화이트는 내 앞에서 상체를 숙인 채 무릎을 짚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 이거. 이렇게 됐으니 뭐라도 말을 꺼내야 할 듯했다. 최대한 화이트에게 부담이 안 가도록.
일단 큰 사건이 있었으니까, 형식적으로….
“화이트, 무사해서 다행….”
“떠나시려는 거예요…?”
“뭐?”
이건 또 뭔 소리야?
화이트의 목소리는 울음기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호흡을 갈무리하며 상체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길게 맺혀 있었다.
“왜 절 보고도 그냥 가시는 거예요오…? 왜 절 피하시는 거냐고요….”
“아니, 그건….”
“흐윽, 숨기지 마요…. 예전부터 갑자기 말수가 줄었던 거, 사실 이런 거 때문이었죠…?”
“뭐라는 거야?”
‘이런 거’라는 게 뭔지 이해가 안 가서 화이트의 심리를 읽었다.
예전에 말수 줄었던 거 7성급 마법 익히느라 그랬던 거야. 정체 드러내고 너 떠나려고 마음 정리했던 거 아니라고.
안심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새로 이상한 오해를 품어버린 화이트는 코를 훌쩍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늘어졌다.
“아이작 선배가아, 흐윽, 정말로 굉장한 사람이란 건 알았어요…. 이제 정체가 드러났으니까, 이 아카데미에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거죠…? 저, 사실 다 눈치채고 있었다고요오…. 제 곁을 떠나려고 준비하셨던 거….”
“그런 거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요오오…! 흐아앙…! 안 보낼 거야아!”
“야, 화이트?!”
돌연 화이트는 엉엉 울면서 내 품에 껴안기더니 내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 정 많은 애를 어쩌면 좋을까.
아무래도 나는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 화이트 마음에 드는 짓을 너무 골라 했던 모양이었다. 적당한 선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는데.
메를린과 황실 기사단, 교직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들 앞에서 황녀의 몸에 막 손대면 골치가 아파질 듯하여 두 팔을 슬쩍 들었다.
곤란했다. 어서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아니, 진짜 안 떠나. 안 떠난다고…. 아직 너 가르쳐야 하는데 내가 왜 떠나냐.”
“으아앙…! 거짓말이야아…!”
“진짜라니까….”
내가 거짓말을 왜 해.
끼이익!
별안간 황실 마차가 급격히 드리프트했다.
바람이 몰아칠 만큼 황실 마차는 엄청난 속도로 교문으로 되돌아왔고.
카를로스 황제는 헐레벌떡 마차 문을 열어젖혔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더냐!”
“화이트 황녀님, 부디 떨어져 주십시오! 체통을…!”
“흐윽, 아이작 선배애애…!”
…그냥 될 대로 돼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