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10
“여러분, 잠시 쉬는 시간 가질게요~”
스태프들이 재정비하는 동안, 유일은 화장실로 향했다.
박준기와 이종순, 그리고 민소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모두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단하네.”
먼저 그 말을 꺼낸 사람은 박준기였다.
“그러게 말이야.”
이종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민소희 역시 진심으로 공감했다.
그들은 한유일과 적게는 15세, 많게는 50세까지 차이가 나는 배우들이었다. 첫 촬영날 다 같이 만났을 때, 그들은 어린 유일을 그저 귀여워했다.
그와 연기를 하기 전까지는.
“···전에, 지금은 돌아가신 대선배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 있어요.”
민소희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정말 훌륭한 배우는 내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연기를 살리는 배우라고.”
이종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
그들 역시 열정과 연륜은 유명 배우들에게 뒤지지 않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연기에는 재능의 벽이라는 게 존재하긴 했다.
세상엔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많다. 그리고 운이 좋은 배우들도, 외모가 뛰어난 이들도 많다.
민소희도, 박준기도, 이종순도,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뒤지지 않고 싶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연기로 돋보이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주연의 들러리’로서 소비되던 나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수십 년을 그런 슬픔과 괴리감에 힘들어하며 보낸 이들이었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꽤 많은 배우를 만났지.’
그러나 그들 중 재능과 노력, 그 이상을 가지고 있는 배우는 정말 흔치 않았다.
“좋은 배우네요, 유일 씨는.”
이종순과 박준기는 민소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될 거야.”
“혹시 아나. 나중에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게 우리한테도 엄청난 포트폴리오가 될지.”
이종순은 그렇게 말하고 끌끌 웃었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소리세요, 선배님.”
셋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유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오래 사셔야죠. 무병장수 시대인데요. 아직 한참 남으셨잖아요.”
유일의 말에 민소희는 풉 웃음을 터트렸다. 웃지 않기 위해 이상한 표정을 짓던 박준기까지 크게 웃음을 터트리자, 한유일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혹시 내 이야기 중이었나.’
【만약 한유일 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면, 38%의 확률로 칭찬, 47%의 확률로 뒷담화를···】
‘그만.’
*
짧은 잡담시간이 지나갔다. 촬영 재개를 알리는 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곧 슛 들어갑니다~!”
유일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디어 이 장면을 찍네.’
이제부터 찍을 씬은 유일이 이번 영화에서 가장 애를 쓰며 연습했던 장면이었다. 꽤나 어려운 씬이었으나, 어려운 만큼 준비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적당히 기분 좋은 긴장감은 활기가 되어 유일의 혈관을 타고 흘렀다. 한유일은 옅은 기대감이 드러난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대로 해야지.’
그리고 그는 정말 ‘제대로 할’ 자신이 있었다.
────────────────────────────────────
────────────────────────────────────
마지막 맛집을 위해 (4)
“···액션!”
경쾌한 사인과 함께, 유일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한유일은 또다시 속 ‘유일’이 되었다.
“···어.”
화장실을 다녀온 소희는 그들의 차 앞에서 쓰러지고 만다.
태평하게 바나나 우유를 마시던 그의 눈앞에, 힘없이 쓰러지는 소희가 보인다.
“···누나?”
유일의 손에서 바나나 우유가 툭 떨어진다. 그가 쓰러진 소희를 향해 무릎을 굽히고,
“누나···!”
소희를 흔들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살짝 벌어진 한유일의 입과 눈이 떨리기 시작한다.
‘설마.’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소희의 코에 손을 댄다.
호흡이··· 있다.
흐려졌던 그의 눈이 천천히 빛을 찾기 시작한다.
‘이야···.’
로우 앵글에서 유일의 얼굴을 담던 카메라 감독은 조용히 감탄했다.
‘대단한데.’
이렇게 카메라에 적절하게 잡힐 정도로 떨림을 만들어 내다니.
‘일부러 이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겠다.’
카메라에 또 다른 얼굴들이 보인다.
유일의 뒤로 창백하게 질린 준기와 종순이 다가온다.
연신 욕설을 중얼거리는 준기를 밀치고 종순이 쪼그려 앉는다.
소희의 맥박을 짚어보고 눈꺼풀을 열어 동공을 확인해본 그녀가 작게 읊조린다.
“설마···.”
“···왜요.”
종순은 쉽게 답하지 않는다. 준기의 얼굴에 짜증이, 유일에게는 답답함이 차오르기 시작하고,
“대체 왜 그러는데요?”
“그려, 또다시 그라는디요?!”
그제야 종순은 입술을 연다.
“···독”
그 말을 들은 유일은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할머니.”
“당장 119 불러라.”
유일은 멍하니 종순을 바라본다.
독이라고?
···왜지?
그는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 그들은 다 같이 밥을 먹었다. 그런데 왜···.
“얼른!”
이종순의 눈에서 불이 튄다. 불호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유일이 눈을 깜박이기 시작한다.
놀라서일까. 자꾸만 눈앞이 자꾸만 뿌옇게 흐려진다.
설마 저대로 죽는 건 아니겠지, 이대로 죽는 건···.
“응··· 응급실! 응급실!”
준기의 외침을 들으며 유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눌렀다.
그러나 스크린에 119를 띄워둔 채로, 유일의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서 잠시 멈춘다.
“뭐혀, 얼른 전화 안 하고!”
“···우리, 병원 가도 괜찮은 거 맞아요?”
그 말에 종순과 준기가 유일을 바라본다.
“···.”
“정말, 괜찮은 거냐고요.”
무서울 정도로 텅 빈 눈동자가 움직인다.
눈동자는 명품 브랜드 로고가 박힌 소희의 코트와 가방을, 그리고 70대 여자와 초라한 중년 남자의 얼굴을 차례로 훑는다.
같이 지내던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동시에 혹시나 이 사태의 책임을 자신이 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잔혹한 이기심이 담긴 눈이.
“난···.”
준기의 입이 열렸다가··· 닫힌다.
유일의 손에서 힘이 점점 빠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종순이 유일의 핸드폰을 빼앗는다.
“···!”
그리고 순식간에 통화 버튼을 누른다.
“···컷!”
촬영장엔 정적이 감돌았다.
배우들 역시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굳은 것처럼 모니터를 바라보던 유재호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배우들에게 다가갔다. 약간 화난 것처럼 보이는 얼굴로.
모든 스태프들이 숨을 죽인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배우들 앞에 선 유재호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
유재호의 얼굴을 본 유일은 조금 놀랐다. 그의 눈가가 촉촉했던 탓이었다.
브윈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린 건 그때였다.
【1단계 목표 93% 달성.】
‘···뭐라고?’
그러나 브윈은 한유일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외부 온도로 인해 체온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실내에 들어가거나 핫팩 사용을 추천해 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릴 뿐이었다.
*
같은 시각, 성수동에 있는 NVB 사옥의 연습실.
그 안에선 하얀 맨투맨에 검은색 츄리닝 바지를 입은 금발 남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감싸던 모자와 목도리는 연습실 구석에 놓여 있었다.
남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은 채 몸을 풀고 있었다.
원, 투··· 쓰리 포.
원 앤 투, 쓰리 앤 포.
그는 입으로 박자를 세며 발을 놀렸다. 처음 춤으로 소속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은 그였다.
춤을 출 때마다 움직임에 맞춰 탄탄한 몸의 선이 드러났다.
“여어~ 김하랑.”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높은 목소리와 함께 연습실 문이 열리고, 검은 모자를 쓰고 회색 츄리닝 세트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동료이자 블랙씨 멤버인 장우신이었다.
“오랜만~”
“오랜만이에요, 형!”
최근까지 각종 행사와 홍보를 위한 촬영 스케줄을 소화한 블랙씨는 각자 짧은 휴가를 받았다. 이렇게 연습실에서 만난 것도 며칠 만이었다.
“야, 김하랑. 너 며칠 전에 월명대 갔다며? 매니저 형이 그러던데~”
“넹.”
“은호 형도 없는데 왜 갔냐?”
“아아~ 그 형 보러 간 건 아니었거든요!”
김하랑은 우신의 질문에 가볍게 답한 뒤 다시 춤에 집중했다. 장우신 역시 더 묻지 않았다.
역시, 단순해서 편한 상대다. 하랑은 그렇게 생각하며 음악을 바꿨다.
김하랑이 그날 월명대를 간 것은 대학원생인 누나 때문이었다.
‘정작 누나보단 다른 사람을 더 오래 본 것 같긴 하지만···’
편의점에서는 그를 도와주고, 옥상 카페에선 연기를 연습하던 그 남자.
–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할머니.
그 순간, 남자는 손끝을 떨고 있었다.
만약 귀에 이어폰이라도 꽂혀 있었으면 통화라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남자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상대역도, 하다못해 소품도 없는 상태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집중력이었다. 남자는 김하랑이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했다.
‘신인 배우였을까.’
목을 축이며 잠시 딴생각을 한 하랑은 다시 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연습실에 또 다른 멤버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형!”
“오랜만~”
그는 블랙씨의 메인 보컬인 유연호였다. 유연호는 옅은 갈색 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세 명이 따로 연습을 하며 몸을 풀던 그때, 연습실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멤버가 아니었다.
“어, 실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긴 머리를 하나로 높이 묶어 올린 여자. 블랙씨의 기획부터 함께 했던 실장이었다.
“어~ 은호랑 민오 빼고 다 있네?”
실장은 휴가 마지막 날에도 연습실로 돌아온 멤버들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아이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물론 끼, 외모, 노래, 춤··· 다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기본으로 받쳐줘야 하는 것은 끈기였다.
연예계 같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판에서 4년 이상 꾸준히 높은 자리를 유지하기란 외줄 타기보다 어려웠다.
‘이런 애들이니까 여기까지 온 거겠지만.’
블랙씨는 그녀의 처음이자 가장 큰 커리어였다.
“잘 쉬었니?”
“네, 완전 잘 쉬었죠~”
“우신아. 얼굴 보니까 알겠다. 너 선크림도 안 발랐니? 얼굴 뭐니? 어쩜 그렇게 탔어?”
엄청난 속도로 장우신에게 잔소리를 쏟아부은 실장은 곧 김하랑을 콕 가리키며 말했다.
“참, 하랑아. 내일부터 넌 연기수업 추가로 들어야 해.”
“연기수업이요?”
“너 웹드라마 들어가게 됐다.”
“네에?”
김하랑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묻자, 실장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감독님이 네 이미지가 마음에 든대. 그 사람이 요즘 제이엠이 스튜디오에서 밀고 있는 감독이거든. 오튜브에 공개되고 한 달 뒤부터는 완전판으로 뉴블릭스에 공개될 거라네?”
뉴블릭스는 세계적인 OTT 플랫폼으로, 최근 몇 주간 사상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었다.
“오오~ 김하랑!”
장우신이 곁에서 장난스럽게 툭툭 쳤으나, 김하랑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은호도 같이 들어가니까 이것저것 물어봐. 하랑이 너도 이제 연기 시작해봐야지.”
“실장님, 실장님! 저는요?”
곁에 있던 장우신이 눈을 빛내자, 실장은 살짝 웃었다.
“우신이는··· 예능 열심히 하자.”
“치.”
장우신이 토라진 척했으나 김하랑은 피식 웃었다. 애초에 그가 연기에 관심이 먼지 한 톨 만큼도 없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았다.
“실장님.”
“응?”
“드라마는 무슨 내용인데요?”
김하랑이 묻자, 관심 없는 척해도 내심 궁금했던 유연호도 귀를 쫑긋 세웠다. 그의 질문에 짧게 고민을 하던 실장이 아, 하며 입을 열었다.
“하이틴.”
“···하이틴이요?”
“응. 하이틴 뮤지컬 드라마야.”
“와 씨! 나 하이X쿨 뮤지컬 진짜 좋아하는데!”
실장은 방방 뛰는 장우신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춤 잘 추는 애, 노래하는 애, 노래 못 하는데 춤 잘 추는 애, 춤 못 추는데 노래 잘하는 애들이 모여서 무대 올리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뭐. 대본 나오면 읽어봐.”
“알겠습니당.”
“···아, 그리고 하랑아.”
“네! 실장님.”
실장이 김하랑을 보며 싱긋 웃었다.
“네가 ‘노래 못 하는데 춤 잘 추는 애’야.”
*
한편, 촬영은 점차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촬영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고, 사람들은 모두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유재호는 저녁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크···.”
“···감독님, 다 흘리셨어요.”
그는 바지에 김치 국물이 묻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실실 웃고 있었다.
“아, 죽인다.”
유재호는 지금 현장편집 기사가 재빠르게 이어붙인 컷들을 보고 있었다. 빠르게 작업 된 터라 아직 제대로 된 편집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생각보다 더 완성도 있는 작업물이 나왔다.
8할은 배우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배우를 너무 잘 뽑았어.’
유재호는 자신의 안목을 자축하는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주변에 보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진작에 그랬을 것이다.
“추가로 촬영해야 할 건 없지?”
“네. 이제 남은 씬들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예요.”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촬영은 오직 단 하루였다.
“벌써 아쉽네~”
민소희가 눈을 찡그리듯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마지막 촬영만 남았잖아.”
“그러게요.”
유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 역시 촬영이 끝나가는 게 아쉬웠다.
“나, 유일 씨 덕분에 많이 배웠다~”
“무슨 소리세요, 선배님. 제가 더 배웠죠.”
유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자, 민소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진심으로 말하는데 뭐라 더 할 말은 없었지만···.
‘남다른 친구야.’
자신은 한유일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이 영화에서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따뜻한 눈으로 유일을 보던 이종순도 말을 보탰다.
“나도 덕분에 젊어진 기분이었네. 내가 언제 이렇게 젊은 배우랑 연기를 다 해보겠어.”
“에이, 다들 앞으로 더 잘 되실 것 같은데요.”
“유일 씨는 보면 참 얼굴도 좋고 성격도 좋고! 응? 아주 대성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