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9
유일 : 왜요, 대체 왜 그러는데요?
준기 : 그려, 뭐땜시 그라는디요?!
종순 : ···독.]
그 말을 들은 유일은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할머니.”
“당장 119 불러라.”
유일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종순을 바라보다, 소희를 바라본다.
그럼 지금 소희 누나가 독을 먹었다는 건가?
대체 왜?
“얼른!”
유일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꽁꽁 얼어있던 몸이 그제야 녹은 것처럼.
그래, 연락을 해야지, 119에라도 전화를···
【···유일 님,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감지됩니다.】
‘응?’
유일은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뿌옇던 눈앞이 서서히 돌아왔다.
【대상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네가 내비게이션이냐?
유일이 불평을 입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정말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을 부르거나 하는 일반적인 부름은 아니었다.
“어···! 편의점!”
“…?”
고개를 돌린 유일은 잠시 눈을 깜박이다 아, 소리를 냈다. 아까 편의점에서 취객에게 시비가 걸렸던 바로 그 손님이었다.
“반갑습니다. 월명대 학생이세요?”
유일의 물음에 모자를 눌러 쓴 남자는 눈을 굴렸다.
“아뇨. 저는··· 학생은 아니고요! 아는 사람 보러 왔어요.”
그리고는 웃었다. 유일하게 보이는 커다란 눈이 반달모양으로 접혔다. 그 눈을 보자마자 유일의 머릿속에서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연예인인가?’
이제보니 얼굴 크기나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보았을 때 남다른 느낌이 있었다.
월명대 연기과엔 지은호를 제외하고도 몇몇 연예인들이 있었다. 한유일은 가끔 운 좋게 연예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김진우가 호들갑 떨었던 것을 기억했다.
한유일은 그런 데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배우나 아이돌 역시 직업 아닌가.
게다가 일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러 오는 학교인 만큼, 굳이 신경 쓰이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유일 님도 곧 그렇게 되실 겁니다.】
유일은 또다시 브윈을 무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유일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피하려 하자, 남자는 당황한 듯 유일을 보았다.
곧 그는 작게 웃더니 안녕히 가세요, 하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기분 좋은 일 있나.’
유일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이제부턴 내일 영화 촬영을 준비해야 했다.
*
유일이 옥상카페에 있던 그 시각, 종강을 맞이한 이혜진은 침대 위에 딱 붙은 채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블루챗에 푹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아무 말이나 블루챗에 올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워낙 팔로워가 많은 탓에 아무 소리나 해도 공감수가 빠르게 올라갔다. 그럼에도 이혜진의 심심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예를 들면 연극이라든지, 연극이라든지, 연극이라든지.
그렇다.
그녀는 종강했음에도 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혜진은 건조한 얼굴로 블루챗 게시물들을 훑었다.
[@gmrgmr오늘도 뇨 얼굴은 미쳤다 (사진) (사진)] [@qmfforvjcjehfdl
은호야 사랑한다 (눈물 흘리는 짤)]
“덕질하면 재밌나···.”
하지만 딱히 끌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불현듯 이혜진의 머릿속에 스치는 얼굴이 있었다.
-내 사랑, 내 아내여. 꿀 같은 당신의 호흡을 다 마셔버린 죽음의 신도, 당신의 아름다움만은 정복하지 못했구나.
그렇게 대사를 읊조리며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만 같은 무언가를 다루듯, 여자의 얼굴을 소중히 어루만지던···.
“···연기 진짜 잘했는데.”
‘만약 배우였으면 이미 그 장면도 사진으로 찍어서 다 내 배경화면으로···’
이혜진은 고개를 저었다. 연예인도 아닌 일반인을 두고 이런 생각이라니. 그녀는 자신의 뺨을 한 대 치고는 다시 피드를 새로 고침 했다.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한 게시물이 보였다.
[@dkdlzn우리 쇼 뱀파이어랑 소년 역할로 무대 선대ㅠㅠㅠㅠㅠㅠ미친 거 아님 (사진) (사진)]
“쇼···? 아, 정수호.”
연극 뮤지컬 덕후, 일명 연뮤덕들은 좋아하는 배우들을 다양한 애칭으로 불렀다. 정수호의 애칭은 쇼였다.
“이건 포스터인가?”
무표정한 얼굴로 사진을 눌러본 이혜진은 그만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학, 학우님?”
잘못 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정말 자신의 학우가 맞았다.
첫 번째 포스터는 어리고 병약한 소년 한유일이 웅크린 채 뱀파이어 분장을 한 정수호의 곁에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포스터에서의 한유일은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그는 창백한 피부에 붉은 입술을 말아 올린 채 카메라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엔 정수호가 회색 맨투맨과 청바지를 입고 처연한 표정으로 유일의 곁에 앉아있었다.
“미친.”
이혜진은 입을 틀어막았다.
‘대체 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강의 듣던 사람이었는데···.
그 와중에 이 포스터들은 방에 붙여놓고 싶을 정도로 탐났다.
그 뒤로 이혜진은 눈에 불을 켠 채 먼지 같은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영화도 찍고··· 연극도 한다고? 정말로?’
아무래도 한유일 학우는 명월대 국문학과 학생을 넘어서 배우가 되려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진짜 데뷔··· 하는 거겠지?’
이혜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꼬리 역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올라갔다.
‘나도 이제 덕질할 수 있다···!’
그녀는 그때부터 관련된 기사나 사진을 홀린 듯이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혜진이 덕질용 새 계정을 만든 것도 이즈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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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맛집을 위해 (3)
도시락을 다 먹고 정리한 뒤, 유일은 크게 기지개를 켰다. 말간 하늘이 시야에 가득 담겼다.
‘···아, 좋다.’
날씨도, 기분도 최상이었다.
오늘 촬영은 서울에서 거리가 있는 곳에서 찍는 터라, 배우들은 모두 촬영장에서 점심을 먹은 이후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다들 배부르게 드셨어요?”
스태프의 물음에 유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더 좋은 거 못 드려서 죄송해요. 참, 나중에 촬영 뒤풀이할 때 꼭 오셔야 해요! 감독님이 크게 쏘신다 했거든요.”
빠른 속도로 속삭이듯 말한 스태프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라며 덧붙였다.
“아이고, 영광이네~”
“그러게, 감독님이 우리를 그렇게나 생각해주고!”
밝은 얼굴로 우스갯소리를 하는 배우들을 보며 유일은 스치듯 생각했다.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
【촬영하기 좋은 조건이군요.】
브윈이 딱딱하게 답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이었다. 연기할 때 있어서 좋은 컨디션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수다를 떨며 소화를 시킨 배우들은 촬영할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스탠바이 하겠습니다. 사운드!”
“스피드.”
“롤.”
“38에 1에 1!”
슬레이트가 착, 하고 내려가자, 유재호가 크게 외쳤다.
“액션!”
그들은 휴게소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왜 갑자기 휴게소에서 밥을 먹냐?
그건 바로 이 휴게소가 준기가 고집한 맛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소희는 불통한 얼굴로 우동을 뒤적인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요즘 누가 휴게소 음식을 먹어. 옛날 사람 아니랄까 봐.”
“하이고~ 맛있기만 하고만. 좀스럽게 그러지 말아, 잉?”
준기의 말에 그를 흘기던 소희는 국물을 한 숟가락 뜬다. 그러나 제대로 삼키지도 못하고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
“···으, 뭐야아~ 맛이 너무 이상한데~?”
“맛있기만 한데?”
“나도 괜찮은데요.”
“···진짜? 아니, 할머니는요? 할머니도 괜찮아요?”
소희는 같은 튀김우동을 주문한 종순을 보며 묻는다.
“나도 먹을만하네.”
종순마저 생각했던 답을 내놓지 않자 소희는 울상이 된다.
“뭐야아~ 진짜 나만 그래? 그런 거야?”
“누나, 맛없어도 억지로라도 먹어요. 나중에 쓰러지지 말고.”
불만스럽게 숟가락을 움직이는 소희 곁에서 준기는 허겁지겁 음식을 삼킨다.
“···컷! 좋습니다. 그대로 다음 컷 갈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 유재호 감독은 여러 각도에서 같은 장면을 찍은 뒤 다음 씬으로 넘어갔다.
다음은 39번 씬이었다.
‘맞아, 다음 씬이 좀 짧았지.’
유일이 대본을 보며 생각하자, 기다렸다는 듯 브윈이 말을 걸었다.
【그렇습니다. 금방 끝나겠군요.】
‘방해금지 모드.’
【···.】
39번 째 씬.
소희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유일과 준기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간단한 씬이었다.
그러나 금방 끝날 거란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테이크가 자꾸만 길어졌다.
다름 아닌 민소희 때문이었다.
– 화장실 좀··· 아, 이게 먼저가 아닌데. 죄송해요.
– 나는 걱정 마, 화장실이··· 아니, 아니네. 죄송해요!
– 걱정 마, 나 화장실··· 어머. 진짜 죄송해요. 하, 이게 왜 헷갈리지···.
처음에는 웃고 있던 유재호 감독도 테이크가 늘어날수록 점점 표정이 사라졌다.
테이크가 늘어날수록 민소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아, 죄송해요. 정말~”
“괜찮습니다. 자, 빨리 다음 테이크 가죠!”
박준기와 이종순 역시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늪’에 빠졌군요.】
‘늪?’
【어떤 배우든 가끔 저런 식으로 대사가 꼬일 때가 있습니다.】
한유일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몇 초 뒤, 그가 브윈을 불렀다.
‘···브윈.’
【네, 유일 님.】
‘혹시 이런 방법은 어떨까.’
유일의 생각을 읽어낸 브윈은 몇 초간 정적을 유지하다 목소리를 냈다.
【좋은 방법이군요. 유재호 감독은 포용력이 좋은 편이니 시도해볼 수 있겠습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한유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그에게 집중되었다.
“저, 감독님.”
유재호에게 다가간 유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앞에 대사를 하나 추가하는 건 어떨까요?”
“응?”
유재호는 미간을 좁힌 채 유일을 바라보았다.
“대사를 추가하겠다고?”
‘···일단 들어나 볼까.’
유재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한유일은 대본을 가리켰다.
[S#39 휴게소 앞 (낮)밥을 먹고 각자의 방식대로 소화를 위해 움직이는 일행.
그중 소희의 표정이 좋지 않다.
소희, 벌떡 일어난다.
각자의 음료수를 마시던 유일과 종순이 소희를 바라본다.
소희 : ···걱정 마. 토하려는 거 아니니까. 잠깐 화장실만 다녀오는 거거든?]
“여기서, 제가 소희 선배님이 일어나면 바로 ‘왜요, 또 토하게요?’ 라고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아무래도 저랑 선배님이 주고받는 대사가 있으면 더 쉬울 것 같아서요.”
“···음.”
톡, 톡, 톡.
몇 초간 턱을 두드리던 유재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좋아요. 그렇게 해보죠. 소희 씨도 괜찮아요?”
“네에, 그럼요. 앞에 그렇게 물어보면 더 수월할 것 같아요.”
금방이라도 말라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던 민소희는 맑은 샘이라도 찾아낸 듯 환하게 답했다.
“고마워요, 유일 씨.”
“아닙니다. 한번 맞춰볼까요?”
유재호 감독은 대사를 맞춰보는 한유일과 민소희를 보며 눈을 좁혔다.
‘···제법인데.’
그는 조금 놀랐다. 말의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대단한 배짱이었다.
첫 영화 촬영장에서 이렇게 감독에게 제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 어디 한번 볼까.’
정말 한유일의 대안이 쓸만한 것인지, 직접 확인을 해봐야 했다.
“자, 다시 갑니다~”
카메라에 붉은 불이 켜졌다.
“39에 1에 9!”
슬레이트가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유재호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액션!”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선 그들은, 다시 자살 커뮤니티에서 만난 일행이 되었다.
창백하고 불편한 얼굴로 배를 부여잡던 소희가 벌떡 일어난다.
바나나우유를 마시면서 소희를 지켜보고 있던 유일이 입을 연다.
“왜요, 또 토하게요?”
거칠고 묘하게 거슬리지만, 딱히 시비를 거는 것 같지는 않는 말투.
극 중 유일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걱정 마. 토하려는 거 아니니까.”
그러자 유일은 어깨를 으쓱한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는 듯.
그 모습을 보자, 소희는 슬슬 열이 받는다. 소희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말한다.
“잠깐 화장실만 다녀오는 거거든?
“누가 뭐래요.”
소희는 유일을 짧게 노려본 뒤 뒤를 돌아 걷는다.
걸음 걸음마다 분노가 묻어난다.
유일은 그런 그녀를 보지도 않고 바나나우유를 한 모금 마신다.
조명팀 스태프는 눈을 떼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 대본으로 읽은 장면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엔 대본을 넘어서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컷!”
유재호가 밝은 얼굴로 외쳤다. 컷 소리가 들리자마자 한유일은 눈썹을 떨어뜨렸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대사를 받아쳤습니다, 감독님.”
“아냐, 아냐. 좋아요. 그대로 쓸 거야, 이거.”
유재호는 신이 난 얼굴로 민소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 방금 거 너무 좋은데요? 소희 씨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서!”
“···감사합니다.”
민소희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의 말을 받아친 유일 때문에 화가 아직 남아있는 탓이었다.
“정말 잘하셨어요, 선배님.”
한유일의 말에 민소희는 옅게 웃었다. 촉촉한 눈으로 유일을 보던 그녀가 작게 유일의 이름을 불렀다.
“유일 씨.”
“네?”
“···아니, 아니에요.”
민소희의 주름이 살짝 깊어졌다.
“잠깐 쉬지.”
유재호 감독의 말에 조감독은 고개를 끄덕이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