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15
“헐, 고희연이랑 박영현 있는 거기요?”
속닥이며 대화를 하던 사람들은 문득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 사람이 대체 여기 왜 있어?’
심지어 드라마 종방연도 아니고 연극 뒷풀이다. 엔터테인먼트 대표와는 꽤 거리가 있는 자리였다.
장재현은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 행동했다. 서미희 연출과 인사를 나눈 그는 평온한 얼굴로 자연스레 자리에 착석했다. 정수호에게 짧은 인사를 건넨 그는 옆 테이블에 있는 한유일을 향해 말했다.
“반갑습니다, 한유일 배우님.”
한유일 역시 미소로 답하며 인사하자, 장재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 사람들이 움찔 놀랄 만한 몸집이었다.
장재현 대표는 커다란 손을 뻗으며 말했다.
“팬입니다.”
그것이 JJ엔터테인먼트 대표와 한유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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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장재현 대표는 한유일 님 때문에 이곳에 온 것 같습니다.】
장재현 대표가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브윈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설마.’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의식 과잉이었다.
유일의 생각을 반증하듯, 장재현 대표는 한동안 서미희 연출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은 얼굴이 된 서미희는 장재현 대표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선배처럼 바쁜 사람이 여기까진 어떻게 오셨어요~? 학교 다닐 때도 이런 자리는 피하셨잖아요오~”
“내가 연극을 정말 재밌게 봤거든.”
“뭐야. 썬배 그런 사람 아니면서어! 다른 선배들이 붙잡아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사라지고··· 수업 끝나자마자 순간이동하고오옥!”
잔뜩 취한 서미희가 장재현의 과거사를 나열하기 시작했으나 장재현 대표는 여전히 그린듯한 미소를 유지했다.
한편, 소이진은 흥미로운 얼굴로 장재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극이 좋아서 굳이 뒷풀이까지 왔다고?’
극작가로서 뮤지컬과 연극을 쓰는 소이진은 방송계에 아주 빠삭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 김미진을 통해 몇몇 엔터 대표들의 소문을 들은 적은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JJ엔터테인먼트 대표에 대한 이야기였다.
며칠 전, 이진이 김미진을 만났을 때였다.
‘맞아~ 진짜 이상한 대표 하나 있다~?’
‘오, 그래? 너보다 이상해?’
‘어머! 죽을래~?’
사이좋게 험담을 주고받은 뒤, 미진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장재현 대표~! 그 사람 한번 꽂힌 건 절대 안 놓쳐~ 완전 독종이야~! 고희연 데려올 때 그 배우가 다니는 절까지 따라다녔다더라구~’
···그래. 그런 말을 했었다.
소이진은 장재현을 슬쩍 살폈다. 서미희 연출과 계속 대화를 하면서도 장 대표의 시선은 줄곧 다른 테이블을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 끝에 있는 주인공을 살핀 소이진은 곧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왜 왔나 했네.”
소이진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곁에 앉아있던 스태프들만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깜박일 뿐이었다.
*
장재현 대표의 등장으로 잠시 경직되었던 뒷풀이는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한유일은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시원하다.”
알코올로 인해 붕 뜬 것만 같던 기분이 한결 차분해졌다. 한유일이 눈을 감고 겨울 바람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의 앞에서 불쑥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피곤하신가 봅니다?”
“···아.”
장재현이었다.
“그냥 얼굴 좀 식히려고 나왔습니다.”
“몇 시간 전에 비해서 얼굴이 좀 붉어보이시긴 하네요.”
그렇게 말한 장재현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레몬 맛이 첨가된 숙취해소제였다.
“오는 길에 몇 개 사둔 겁니다. 하나 드세요.”
“잘 마시겠습니다.”
장재현에게서 숙취해소제를 받은 유일은 곧바로 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씁쓸하고 달큰한 향이 코에 닿았다.
유일이 숙취해소제의 마지막 방울을 넘길 때였다.
“···어제 제 동생을 만나셨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한유일은 겨우 기침을 삼켜야 했다.
“아, 네. 실장님께서 명함을 주셨습니다.”
“아직 가계약서는 받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마지막 회차라··· 연극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유일의 답을 들은 장재현은 어쩐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사실 서미희 연출 말이 맞습니다. 전 이런 자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장재현이 여기까지 온 것은, 그 답지 않은 조급함 때문이었다.
재현이 철저한 계산과 분석에 의해 움직일 것이라는 타인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감’으로 일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직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을 잡으라고.
장재현의 까만 눈동자가 한유일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곧고 집요한 시선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저는 한유일 씨가 저희 회사와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일 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사실 장재이와 만난 뒤로 한유일은 계속해서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이미 내린 뒤였다.
*
다음 날 오전, 한유일은 강남의 한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달려 나왔다. JJ엔터테인먼트 사원증을 목에 건 직원이었다.
“안녕하세요, 배우님!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직원을 따라 들어간 내부는 깔끔하고도 캐주얼한 분위기였다. 잿빛의 대리석 바닥과 하얀 벽, 중간중간 놓인 오브제들과 몬스테라 등의 커다란 식물들이 자칫 차가울 수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복도에는 맨발에 흰 옷을 입은 배우들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순수하면서도 정제된 이미지의 사진들이었다. 유일은 그들의 프로필 사진들을 눈여겨보자, 브윈이 말을 얹었다.
【고희연과 박영현이군요.】
JJ엔터에 소속된 배우들은 대부분 연기파로 유명한 이들이었으며, 최근 크고 작은 작품들에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앉아계시면 됩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미팅룸에 들어간 유일은 자리에 앉았다. 작지만 깔끔한 미팅룸이었다.
다시 문이 열린 건 5분 쯤 지난 뒤였다.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장재이가 높게 묶은 머리를 찰랑이며 미팅룸으로 들어왔다.
한유일은 미팅룸에 앉아 장재이가 건넨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 빠르게 계약서를 스캔한 브윈이 총평을 내렸다.
【신인 배우 중에서는 조건이 괜찮은 편이긴 하군요.】
보통 신인 배우들의 경우, 50 대 50의 수익 배분을 기본으로 계약을 한다. 그러나 이번에 JJ엔터테인먼트가 한유일에게 건넨 계약서에는 수익 배분이 70:30으로 적혀 있었다. 3년 계약 이후에는 비율 조정이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유일에겐 거절한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
계약서를 마주하니 새삼 기분이 이상했다. 몇달 전까진 배우에 대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이었다. 소속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이렇게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대표나 실장이 자신에 대해 착각을 한 걸지도 몰랐다. 혹은···
【아닙니다.】
그런 유일의 생각을 끊은 것은 브윈이었다.
【스스로를 더 믿으셔도 됩니다, 유일 님.】
‘···.’
감정도, 따뜻함도 없는 목소리였으나 이상하게 일렁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유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인을 하시겠습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인 유일은 펜을 들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한 이후로는 모든 것이 속전속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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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침, 이혜진의 단잠을 깨운 건 블루챗의 알람이었다. 짜증스레 핸드폰을 들었던 이혜진은 게시물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거 진짜야?”
이른 시간부터 자신의 덕질 메이트가 공유한 것은 다름 아닌 한유일의 소속사에 대한 기사였다.
– JJ엔터의 새 얼굴··· 과연 누구?
– 신인배우 한유일, 고희연 박영현과 한솥밥 먹는다
– 연극에서 존재감 뿜어냈던 신인··· JJ엔터의 새로운 보석 되나
정신없이 기사를 읽던 혜진의 눈에 새로운 블루챗 게시물이 들어왔다.
[@yool_actor 우리 배우 프로필도 새로 찍음ㅠㅠㅠ (사진)]“헐.”
짧은 감탄사와 함께 사진을 클릭한 이혜진은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운 한유일의 프로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프로필 속 유일은 하얀 셔츠에 검은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발에는 아무것도 신지 않은 채로.
이렇게 기본인 착장으로도 이런 분위기를 낼 수 있다니. 반칙이었다.
넋을 놓고 프로필을 감상하던 이혜진은 핸드폰을 들고 폭풍처럼 게시물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쏟어지던 잠은 날아간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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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녹음은 처음인데요
【[@jinnnny 님들 한유일 프로필 좀 봐
(사진) (사진)]
┗ [@dbdlf_tkfkd 이게 나라다]
┗ [@yuulll_33 얼른 드라마 찍어주면 좋겠음..]
┗ [@jinnnny 제발··· 장르물이든 로맨스든 뭐든 제발···]】
다음 날.
JJ 엔터테인먼트 미팅룸에서 브윈이 띄워준 SNS 반응을 훑던 유일은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안, 안녕하세요! 배우님! 민우진이라고 합니다!”
군기가 바짝 잡힌 목소리가 미팅룸을 울렸다. 자신을 민우진이라고 소개한 남성이 허리를 깊이 숙인 채 인사를 했다. 둥근 얼굴의 자연스럽게 늘어진 히피펌이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요란한 인사에 놀란 한유일 역시 그를 따라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한유일이라고 합니다.”
“넷! 저는 앞으로 배우님의 로드매니저를 맡을 예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서로가 고개를 들 생각 없이 몸을 깊이 숙이고 있을 때, 장재이 실장이 미팅룸으로 들어왔다.
“···둘이서 뭐해요?”
“···.”
민우진은 멋쩍은 얼굴로 허리를 폈다.
“민우진 매니저가 앞으로 유일 씨 스케줄 관리랑 이동을 책임질 거예요.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배우는 중이라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어요. 이해해줘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인데요.”
한유일의 말에 민우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음~ 역시 우진 씨는 목소리에 힘이 빡 들어가 있네. 화이팅이에요, 둘 다.”
“넷!”
민우진는 만 25세. 한유일보다 세 살이 많았다.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다, 우연히 JJ엔터의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한다. 세 달의 수습기간이 끝난 뒤 로드매니저까지 맡게 된 것이다.
“실장님 말씀대로 매니저가 처음이라 많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과한 열정이 약간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인 듯 보였다.
“매니저 님,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저도 형이라고 부를게요.”
“···그, 그럴까요? 아니,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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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합이 잔뜩 들어갔던 민우진은 일주일 쯤 지나자 한유일을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유일에겐 반가운 일이었다.
“오늘 컨디션 어떠냐, 유일아?”
“좋아요. 형은요?”
“나야 뭐. 언제나 괜찮지~ 다른 건 몰라도 체력 하나는 끝내주거든.”
유일은 우진의 말에 작게 웃었다.
물론 스케줄을 챙겨주고 차로 데려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아직은 어색하긴 했지만.
우진은 룸미러로 유일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전에 후시 해본 적 있어?”
“아뇨, 처음이에요.”
후시녹음은 촬영 이후에 편집본에 맞춰서 녹음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보통 촬영장에서 동시녹음을 하기 때문에 후시녹음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깔끔한 사운드를 위해 후시녹음이 필요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지금, 유일은 후시녹음을 위해 녹음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녹음실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들이 그를 맞이했다.
“오, 유일 씨! 오랜만이에요.”
반갑게 그를 맞이한 유재호 연출이 한유일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참, 기사 봤어요. 소속사 들어갔다고.”
“아, 네.”
“크··· 내가 보석을 알아봤지.”
뿌듯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보인 유재호는 녹음부스와 커다란 모니터를 가리켰다.
“저 모니터에서 영상이 나올 거예요. 그 영상에 맞춰서 녹음 하면 됩니다. 아무래도 처음이라 어려울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요. 일부러 시간 넉넉히 잡았으니까.”
“감사합니다.”
유재호는 걱정 반, 기대 반인 얼굴로 유일을 바라보았다. 편집본은 이미 그의 마음에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후시녹음이 어떻게 나올지였다.
‘···아무래도 어렵겠지.’
상대배우와 감정을 다 잡은 상태에서 촬영을 하는 현장도 아니고, 녹음실에서 영상을 보며 하는 녹음이었다. 입 모양과 호흡을 맞춰서 녹음하는 것은 숙련된 배우가 아닌 이상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유일은 이제 처음 영화를 촬영한 신인이 아니던가.
‘너무 기대하지 말자.’
지금껏 그가 했던 모든 기대를 충족시키다 못해 기대치를 높여놓은 유일이었다. 녹음까지 완벽하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유재호는 괜히 실망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자, 그럼 21번 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음향 엔지니어의 말을 시작으로, 한유일의 후시녹음이 시작되었다.
“와아··· 돈 많이 쓰셨네, 누나.”
한유일이 처음으로 뱉은 대사에, 유재호의 긴장이 풀렸다.
잘하긴 하지만, 유재호 감독이 원했던 느낌과는 약간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신인은 신인이네.’
유재호가 팔짱을 낀 채 녹음부스 너머의 한유일을 지켜보고 있던 그때, 불쑥 긴 손 하나가 천장을 향해 뻗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다시 한번 해볼 수 있을까요?”
“그래요.”
어깨를 으쓱하며 답한 유재호는 기대 없는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유일의 목소리가 두 번째로 녹음되기 시작하던 순간, 재호의 얇은 눈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와아~ 돈 많이 쓰셨네, 누나.”
한유일의 얼굴에 삐뚜름한 미소가 덧그려진다. 편집본에 클로즈업된 표정과 똑같은 얼굴.
마치 영화 속 한유일과 복사-붙여넣기를 한 듯했다.
“···!”
유재호는 눈을 깜박이지도 못한 채 한유일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렇게 자연스러워진다고?’
유재호는 수도 없이 돌려본 편집본과 헤드셋을 낀 채 녹음부스 안에 있는 유일을 계속해서 번갈아 살폈다. 그러던 중 21씬이 순식간에 끝났다.
브윈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었다.
【잘하셨습니다. 연습한 보람이 있군요.】
한유일은 가볍게 숨을 내쉰 뒤 고개를 들었다. 부스 너머로 묘한 표정의 유재호가 보였다.
‘···별로였나?’
【그건 아닙니다.】
‘확실해?’
유일이 부스 안에서 브윈과 대화하고 있을 때, 유재호는 자신을 부르는 음향 엔지니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감독님?”
“어, 어?”
“들어보셔야죠.”
재빠르게 키보드 단축키 몇 개를 눌러 음성과 영상의 시작 시간을 맞춘 음향 엔지니어는 스페이스바를 탁, 하고 눌렀다.
그러자 영상과 유일의 음성이 함께 재생되기 시작했다.
– 와아~ 돈 많이 쓰셨네, 누나.
영상 속에서 유일은 의자를 소리나게 끈 뒤 비스듬히 걸터앉는다.
– 소희 누나, 맨날 이런 곳에서 밥 먹어서 이혼 당한 거 아니에요?
싸해진 분위기 속에서 유일이 억지로 목소리를 높인다.
호텔 식당에 그의 목소리가 울리고.
-아이, 아이··· 다 장난이죠~
“···허.”
유재호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시녹음이 신인에게 어려운 이유는 입모양을 맞추는 것 뿐만이 아니다. 중요한 건 호흡, 그리고 소리의 공간감과 거리감을 살리는 일이었다. 넓은 평원에서 멀리 있는 사람을 부를 때와 작은 방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을 부를 때가 다르듯이 말이다.
그러나 녹음부스는 작은 공간이다. 촬영 현장과 장소도, 분위기도 다르다.
소리를 내는 방식을 섬세하게 구분해서 연기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완벽했다.
동시녹음을 한 음성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다시 한 번 녹음된 음성을 들은 유재호는 천천히 헤드셋을 벗었다. 한유일이 유리 너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은 무얼 할까요?’라고 묻는 듯한 맑은 얼굴이었다.
“···후시녹음 처음이라 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이고.”
짤막한 감탄사를 흘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유일 씨 컨디션은 어때요?”
“좋습니다.”
“바로 다음 씬 가도 될까요?”
“네!”
그 뒤로 유일은 남은 씬들을 차례대로 녹음하기 시작했다. 한 씬 당 두 테이크 이상을 녹음할 필요는 없었다. 유재호는 그 두 테이크를 남기는 것조차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