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철컥, 철컥, 철커덕.
“와아아아!”
“다 죽여 버리자!”
번쩍이는 판금갑옷을 입고 검을 든 병사 서른 명이 살기를 내뿜으며 덤벼드는 모습은 오금이 떨리게 만든다.
마을 사람들은 훨씬 수가 많지만 마물과도 같은 그들의 기세에 겁을 먹고 들고 있던 활을 내던지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나마 용기 있는 사람들 몇 명이 남아 울타리 사이에서 화살을 쏘았지만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 일쑤다. 간신히 맞혀도 판금의 견고한 방어력에 힘없이 튕겨 나간다.
“이 미친 새끼들이 감히! 귀족의 병사에게 공격을 해?”
그 어설픈 공격은 판금갑옷의 방어력을 실감하게 만들며 도리어 사기와 화를 돋웠다. 그들은 굶주린 늑대들처럼 눈에 불을 켜고 가브와 그 안쪽에 숨어 있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그때, 가브가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오히려 뒤돌아서 다시금 검을 들고 자세를 잡는다. 그 모습에 병사들이 의아함을 느낄 때쯤, 시야가 낮아졌다.
쿠궁! 쿠구궁.
커다란 굉음과 함께 땅이 한번에 푹 내려앉았다.
급하게 준비하느라고 무릎 높이밖에 되지 않지만 무거운 판금갑옷을 입은 병사들을 넘어트려 한순간 무력화시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즐길 사냥꾼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이다!”
“예! 가브 님!”
“네, 조장!”
가브의 양옆으로 두 손에 도끼를 든 발튼과 세검을 든 세실리아가 튀어나왔다.
“흐앗! 다 뒈져라!”
발튼은 땅바닥을 박차고 높이 뛰어올라 병사들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가 도끼를 무작위로 휘둘러 댔다. 그의 무식한 괴력 앞에서는 강철판금도 소용이 없었다.
퍽, 퍽, 퍼석!
도끼가 판금투구를 종잇장처럼 찢어발기고 그 안의 머리통을 으깨어 버린다.
콰직.
나무로 된 도끼의 자루는 그 충격을 버텨 내지 못하고 금세 부러졌다. 그러나 도끼 대신 주먹으로 바뀌었을 뿐, 그 살상력은 오히려 더 증가한 듯했다.
슥, 서걱, 스걱.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는 사람의 시야가 매우 좁아진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비범한 자들은 오히려 피가 차갑게 가라앉으며 시야가 평소보다 더 넓어지고 반응 속도도 빨라진다.
가브의 시야는 지금의 전장을 모두 아우른다. 그는 먼저 정신을 차리는 병사들을 귀신같이 알아내어 목을 잘라 냈다.
푹, 푹, 푸슉.
전장을 휩쓰는 그들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검이 있다. 세실리아는 둘에게 정신을 빼앗긴 병사들을 위주로 목에 세검을 쑤셔 넣었다.
척.
비명과 핏줄기가 솟구치던 그 짧은 시간이 끝나고 지독한 적막이 찾아왔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완전무장 한 서른 명의 병사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였다.
그들의 가공할 무위에 마을 청년들은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승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적막을 깰 용기가 없어 침조차 삼키지 못했다.
가브는 마지막 남은 병사의 어깨에 남의 피로 얼룩진 중검을 올려놓고, 그 특유의 건조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눈.”
그의 말에 병사는 덜덜 떨리는 턱을 간신히 들어 올려 눈을 마주했다. 병사의 눈에 가브는 마치 지금 막 현신한 피에 굶주린 마족처럼 보였다.
“벨켄에게 병사가 얼마나 남았지?”
병사는 감히 목숨을 구걸하거나, 속여서 말할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가브의 질문에 가감 없이 답하기 위해서만 머리를 세차게 굴렸다.
“유, 육십이 조금 안 됩니다…….”
가브는 병사의 눈에 가득 담긴 두려움을 보았다. 그의 말은 진실이다.
“그래.”
지독하리만치 차가운 대답에 병사는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살, 살려-.”
그의 머리는 하던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브는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자신의 중검을 내려다보다가 뒤돌아섰다.
마을 울타리 사이사이에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흠칫하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익숙한 눈빛들이다. 가브는 건조하게 한 바퀴 둘러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리합시다.”
* * *
첨벙첨벙!
값어치가 나가는 쇳덩이들은 모두 벗겨 낸 병사들의 시체가 모두 밤바다에 던져진다.
쾨록 쾨록!
크오올.
때아닌 풍년에 멀록들은 흥분하여 서로 싸우며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서 바닷속으로 데리고 갔다.
석양 때문인지 피 때문인지 바다가 유독 빨간 모습이 기괴하다.
“형님,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큰 빚을 졌네요.”
헤딘 케리에드는 어린아이와 노인이 대피해 있던 마을 뒤쪽 동굴에 들어가 있어 당시의 상황을 보지 못했다.
그는 바다에 던져지는 시체들을 보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이렇게 빨리 추적대를 보내다니, 그것도 남작의 호위 기사 에파드 경을……. 계속 여기 있다가는 나 때문에 이 마을도 파멸하고 말…….’
“가자.”
“예? 어딜요?”
헤딘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했나 싶어 놀란 눈으로 대답했다. 가브는 뒤돌아서 걸음을 옮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되찾아야지, 성.”
“예? 그게 무슨……. 엇, 같이 가요!”
가브는 결단을 내렸다. 케리에드가 벨켄을 몰아내고 성을 되찾아야 마을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벨켄이 아무리 날고뛰어 봤자 남작이다. 무리하게 용병들을 굴려 케리에드성을 차지했으니 이제 유지할 수 있는 용병은 없다.
남은 병력은 마지막 병사가 말했던 숫자가 맞을 것이다. 다른 변수가 생기기 전에 행동한다.
처컥, 철컥.
마구간에서 세 마리의 말을 모두 꺼내어 말안장을 올리는 동안 세실리아와 발튼 그리고 촌장이 왔다.
“바로 가는 겐가?”
“빨리 움직여야죠.”
“부디, 살아 돌아오길 기도하겠네.”
“알겠습니다.”
가브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고는 말을 끌고 걸음을 옮겼다.
세실리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붙어서 다른 말 한 마리의 고삐를 잡았고, 발튼은 씁쓸한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발튼.”
“예! 대장! 마을은 제가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일부러 더 당차게 외치는 그의 모습에 가브는 고개를 미세하게 저으며 입술을 떼었다.
“가자.”
“예! 예?”
가브는 그의 물음을 무시하며 지나갔고, 그 뒤를 따르는 세실리아가 발튼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합니까, 빨리 안 옵니까?”
“어, 예!”
그제야 상황을 받아들인 발튼이 전장에 가는 주제에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남은 말 한 마리를 끌었다.
* * *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마을을 떠난 지 한나절, 헤딘은 달빛이 지상을 환하게 비출 무렵이 되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가브의 허리띠를 소심하게 잡은 채 작게 목소리를 내었다.
“저기…… 형님, 근데 우리 편은 어디서 만나기로 했습니까?”
“우리 편?”
헤딘은 난생처음 듣는 단어를 들은 것만 같은 가브의 표정을 보고 더욱 불안감이 증대되었다.
“서, 설마…….”
‘이 인원으로 벨켄에게 들이받는다는 건 아니죠? 정신 나간 것도 아니고? 맞죠, 형님?’
헤딘은 에파드가 병사들을 이끌고 왔을 때 동굴에 피신해 있어서 발튼과 세실리아가 싸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의 당연한 걱정을 읽지 못한 가브는 세실리아와 발튼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여기 있잖아.”
“아…… 그, 네 명이서…… 음, 무슨 계획이 있으신 거죠?”
“쉿.”
가브는 돌연 미간을 좁히며 헤딘의 입을 막았다.
스슥, 스스슥.
수풀 스치는 소리.
케레이드 남작은 왕국에서의 명예는 없다시피 했지만, 자신의 영지민들에게는 명망이 높았다. 적자가 나더라도 치안을 매우 신경 써서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는 남작령 내에 도적이나 마물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있더라도 신고를 하면 수일 내로 소탕되고는 했다.
그러나, 마을을 떠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케리에드 남작의 부재를 느끼게 되었다.
척, 척, 처적.
말 두 마리 정도만 한번에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숲길, 그 양옆에서 가죽옷에 무기를 든 도적 무리가 튀어나와 앞길을 막아섰다.
가브 일행이 걸음을 멈추자 그 뒤로도 한 무리가 나타나 퇴로를 막았다. 그 수는 합해서 열 명이 넘었다.
저벅저벅.
원형탈모에 어깨에는 철퇴를 짊어진 사내가 턱을 들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검지로 세실리아를 가리키며 호기롭게 소리쳤다.
“여자와 말! 가진 돈을 전부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 주지!”
젊은 여자는 보통 성 노리개로 쓰거나 노예로 팔고, 말은 한 마리당 10골드에서 비싸면 100골드도 넘어가니 무조건 강탈 대상이며, 가진 돈은 부가적인 것이었다.
가브는 달빛에 비치는 그의 가운데 머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어 던졌다.
턱.
탈모 사내는 그것을 한 손으로 낚아채어 안을 살폈다. 대충 보니 50실버 정도 들어 있었다.
“이건 무슨 귀여운 짓거리지?”
“통행료 받았다고 생각하고, 길 좀 터 주지.”
사내는 주머니를 거꾸로 뒤집어 실버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인상 더럽게 웃음을 지었다.
“내가 왜? 이딴 푼돈을 받고? 말 한 마리만 팔아도 열 배는 넘는데? 이거 웃긴 놈일세.”
사내의 말에 발튼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말에서 내렸다. 그는 허락을 구하듯이 가브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브는 그 눈빛을 한 번 받고는 탈모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쩔 수 없군. 치워.”
“명 받들겠습니다!”
발튼은 가브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목을 풀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이것들이 미쳤나!”
훙.
탈모 사내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철퇴를 휘둘렀다. 발튼은 길고 두꺼운 팔을 뻗어 철퇴의 손잡이를 잡아채고, 놈의 얼굴에 머리통만 한 주먹을 꽂았다.
푸확!
주먹 한 방에 놈의 안면이 함몰되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 모습에 다른 도적들이 다급히 소리치며 덤벼들었다.
“쳐, 쳐라!”
“죽여 버려!”
도적들은 흥분 또는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무기를 들고 덤벼들었다. 양쪽에서 오는 도적의 수는 총 열두 명이었다.
“흐음.”
세실리아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안장 위에 올라서더니 그것을 박차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한 여인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내려온다. 말안장을 박찰 때는 맨손이었지만, 내려올 때는 왼손에 가느다란 세검이 들려 있었다.
서걱.
세실리아의 세검은 양쪽에 날이 서 있어서 검끼리 부딪치지만 않으면 베는 것도 가능했다.
그녀는 바닥에 착지하며 가까이 있는 도적의 얼굴을 베었다.
곡예와도 같은 몸놀림에 얼이 빠져 있던 도적은 반으로 갈라진 코를 부여잡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크하아악!”
“저년도 죽여!”
챙, 푹, 푹!
그녀는 가벼운 스텝으로 도적들 사이를 오가며 한 명 한 명 정확하게 목을 찔렀다.
퍼석! 퍼억!
앞에서는 발튼이 방금 빼앗은 철퇴와 맨손으로 도적들을 무자비하게 뭉개고 있다.
가브는 말안장에 걸려 있는 석궁을 꺼내어 화살을 장전했다.
아무리 실력자라고 해도 살가죽이 강철로 되어 있지는 않다. 가브는 힘에 밀려 빈틈이 나올 수 있는 세실리아 쪽으로 석궁을 겨누고 있다가 돌연 방아쇠를 당겼다.
푹.
“억!”
몸을 낮추고 세실리아의 등 뒤로 다가가던 도적의 관자놀이에 화살이 꽂혔다.
세실리아는 뒤돌아서 가브를 힐끔 보았다가 다시 검을 휘둘러 도적의 목을 베었다.
케리에드가가 무너진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외부에서 이동해 온 도적은 아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산으로 도망친 마을 주민들인 것이다.
훈련받은 적도 없고, 사람을 죽여 본 자도 몇 명 없는 오합지졸은 감히 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뒤쪽은 모두 정리되었고, 발튼이 간 앞쪽에는 한 놈만이 무기를 버리고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십시오!”
발튼은 뒤돌아서 가브를 보며 표정으로 처분을 물었다.
그때, 세실리아가 성큼성큼 다가와 서슴없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어, 어.”
뭐라 할 새도 없이 도적의 목이 떨어지자 발튼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지만, 그녀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다른 도적들의 목이나 심장에 세검을 한 번씩 쑤셔 박았다.
아무리 여린 성정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녀는 사해에서 10년 넘게 구른 전직 1급 해수인 것이다.
“허얼…….”
“헐…….”
발튼에 이어 헤딘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둘의 엄청난 실력에 얼이 빠져 있었다.
덩치와 근육이 이미 훌륭한 무기인 발튼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쳐도 그와 비등한, 아니 그를 능가하는 듯한 세실리아의 신들린 몸놀림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때, 헤딘의 귓가로 가브의 묵직한 저음이 들려왔다.
“이들이, 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