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69)
나의 악당들 169화
42. 굴레(1)
형광등 하나가 점멸하다 꺼졌다.
병상 앞에 선 남자들의 얼굴에 그 림자가 졌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감돈다.
“……정말입니까?” “어, 네.” 숙취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럽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기억이 안 난다니, 기억상실증이 라도 걸렸다는 겁니까?”
익숙한 대학 마크가 찍힌 환자복을 만지작거리다가 머리를 긁었다.
“……그냥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것 같은데요.”
남자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온 다. 복도에서는 의사가 중년인에게 무어라 설명을 하고 있다.
“……계열의 약물이…… 예후에 따
라서 면담이나 뇌파검사를…… 일단 지금은 절대 안정을……
“정소하는 어디에 있습니까?”
누군가의 질문이 의사의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정소하, 요?”
“네.”
“어••••••
남자들의 눈빛에 영문 모를 기대감 이 서린다.
“그러고 보니까, 어제 소하가 절 데리러 왔던 것 같은데…… “어제요?”
“네. 열한 신가, 열두 시쯤에-”
“……그게 끝입니까?”
고개를 끄덕거리자, 남자들은 실망 한 기색으로 저들끼리 쑥덕거리다 병실을 떠났다.
나는 8인용 병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내 옷가지나 소지품은 보 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창밖을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어.” 캠퍼스는 하얀 눈에 덮여 있었다.
“으어허어-”
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니 신 음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음, 이렇게 깊게 잠든 게 얼마 만 이지? 진짜 세상모르고 잔 것 같은 데…….
눈을 비비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 니, 이제는 꽤 익숙해진 영주관의 객실이었다.
내가 몸을 뉜 침상 곁에는 두 사 람이 앉아있었다.
내 얼굴 쪽 가까이에 앉은 이는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엎드려있었 다. 흰 셔츠를 입은 조그만 체구,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 은은한 라임 향기는 둘째치고 풍성한 금발만 봐 도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엘렌의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겼다. 기다란 속눈썹과 오똑한 코, 색색거리며 숨을 내뱉는 입술, 투명한 피부…….
왼쪽 귀의 귓바퀴에 남은 자그마한 흉터에 기억이 되살아난다.
검은 늑대들, 랜달의 용병들, 궁전 의 마법사들, 아누파드 여왕, 검은 통로, 우쉬투의 권속들, 그리고 암흑 기사…….
“우음.”
귓불을 만지는 손길에 엘렌이 목을 움츠렸다. 나는 얼른 손을 떼다가 녀석의 머리칼을 쓸어 만졌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고 소 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이씨, 깜짝이야!”
잠든 엘렌의 옆에는 한 여인이 앉 아있었다. 마치 정물화처럼 가만히 앉아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여인.
“오랜만이야.”
“어, 음-”
침착한 어조로 말하는 여인을, 나 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유체이탈 비스무리한 걸 겪으며 보았던 그 얼굴, 지구에서 모니터로 익히 보았던 바로 그 얼굴 이다.
근데, 익숙하다는 감흥은 전혀 안 든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 주 보는 게 처음이라서 그런가?
와, 말이 안 나오네. 어떻게 사람 이 이렇게 생겼지?
내가 어물거리고 있는 사이 잠들어 있던 엘렌이 미간을 꿈틀거리며 일 어났다.
“우음,”
눈을 비비적거린 녀석은 잠시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가 왓, 하고 놀라더니 냅다 내 가슴 에 안기는 것이었다.
“포이!”
“엘렌.”
엘렌은 팔을 쭉 뻗어 내 가슴둘레 를 끌어안았다. 나는 녀석의 등을 토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많이 걱정했어? 갑자기 왜 이래?”
그러자 엘렌은 옆에 앉은 여인을 흘긋거리더니 입술을 꾸물거렸다.
“……갑자기 아니야.”
“ o 응2”
“근데 너, 괜찮아? 어디 이상한 데 없어?”
“이상한 데?”
“이차원의 마력에 오염됐었잖아. 금방 정화되긴 했지만 혹시 몰라.”
내 눈을 빤히 올려다보는 녀석에게 피식 웃어 보였다.
“괜찮아. 그냥 푹 잔 것 같고……
“당연하지. 이틀을 꼬박 잤으니까.”
“이틀이나?”
“오염된 것도 그렇고, 몸에 무리가 많이 간 거야. 네가 이틀씩이나 몸 져누울 정도면……
어쩐지 허리가 좀 뻐근하더라니.
나는 목을 매만지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맞다, 뭉치는?”
“……우테콰이가 숲을 수색해서 걔 랑 자나바스, 둘 다 데려왔어.”
“다친 데는 없고?”
“쇠뇌를 맞긴 했는데, 지금은 치료
해서 멀쩡해.”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재차 흑발 의 여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내가 이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더라. 으, 김승수와 포이닉스의 기 억이 마구 뒤섞인 탓에 머리가 지끈 거린다.
자하카르의 가주이자 아일란트의 공작인 ‘스키엘레’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켈레’, 아일란트 최 고의 기사라고 일컬어지는 자다.
여느 귀족가와는 달리 스키엘레와 아켈레 형제는 우애가 두터운 편이 었다.
그래서 스키엘레는 공작위에 오르 자마자 자신의 동생에게 단승 백작 위와 함께 여러 직책을 내렸다.
백작이 된 아켈레는 ‘타우즈 덴’의 경비사령관이자 아일란트의 세 번째 제독, 공작궁의 위사총관(衛士標管) 으로 활약했다.
아켈레는 쌍왕가의 적손다운 사내 였다. 힘을 숭상하고 살육을 즐기며, 뱀처럼 냉혹한 자였다는 뜻이다.
그런 아켈레의 마음을 훔친 여인이 있었다. 해적을 소탕하던 중 만나게 된, 노예 신세가 된 미녀였다.
그 외모에 혹해 여인을 품었던 아 켈레는 곧 그녀의 품성에 깊이 빠지 게 되었다.
‘리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은 무 감정한 아켈레를 흠뻑 물들일 정도 로 풍부한 감수성과 선한 품성을 지 녔다.
아켈레와 리라는 서로에게 깊이 빠 져들었고, 곧 사랑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자 아켈레는 사촌이자 정실부 인의 차가운 반대를 무릅쓰고 리라 를 첩실로 들였다.
궁중에 든 리라는 건강한 아들을 낳았지만, 산욕열을 이겨내지 못해 사망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포이닉 스였다.
……문득 의문이 든다.
포이닉스의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 로 슬퍼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단순히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포이닉스의 성격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아무런 감 흥도 느끼지 못했던 걸까?
이런 의문이 들 정도로 포이닉스는 쌍왕가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아이 였다.
사람들에게 무관심했고, 무술을 익 히는 것을 즐겼으며, 살육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타고난 마력이나 혈조술의 재능은 조금 부족했지만, 성장하며 아버지 인 아켈레보다도 커다란 기골을 갖 추게 되었다.
핏줄에 흐르는 차가운 분위기는 어 쩔 수 없었지만, 어머니를 닮아 용 모도 수려한 편이었다.
아버지의 배려로 가문의 다른 아이 들과 함께 자란 포이닉스는 15살 성인이 되며 약혼을 하게 된다.
상대는 사촌인 헤일라였다.
헤일라 오브 발루인. 자하카르와 짝이 되는 가문의 소녀로, 차기 아 일란트 공작이 될 사내인 ‘카이시스 오브 발루인’의 동생이기도 했다.
라즈일에서 가장 아름답고 똑똑한 소녀로 이름이 높은 헤일라였지만, 포이닉스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헤일라가 아니라 그녀의 언니인 아일라였으니까.
김승수로서 더듬어보건대, 참 오묘 한 감정이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 운 사고방식이었고.
헤엘라와 아일라는 친자매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동생인 헤일라는 천사가 조각한 것 처럼 아름다웠지만 언니인 아일라 는…… 음, 솔직히 말해 농담으로라 도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여인이 었다.
그럼에도 포이닉스는 아일라를 원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미소를 원했다.
아일라는 돌연변이였다.
그녀는 바람이 좋으면 기분 좋게 웃었고, 애마가 죽으면 슬피 울었으 며, 사촌들이 서로 칼집을 내면 불 같이 화를 내었다.
포이닉스가 원하는 게 그것이었다. 아일라가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마도, 김승수로서 보기에, 포이닉
스는 아일라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일라는 포이닉스의 형이 자 아켈레의 적자인 가닉스와 혼인 했다. 차차기 공작을 낳을 잉태자, 소위 ‘브리더’로서 점찍힌 것이다.
아일라가 혼인하던 날.
포이닉스는 생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공작궁의 그늘진 정원 아래 에서, 달이 완전히 기울 때까지.
포이닉스로서는 다행스럽게도, 그 의 혼인은 미뤄졌다. 상대인 헤일라 가 이름 모를 병에 걸린 덕이다. 대 기의 마력을 제멋대로 흡수하는 병 이라던가.
그리고 5년이 흘렀다.
또래 중 최고의 기량을 갖추게 된 포이닉스가 종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기사로 서임 받을 즈음.
아일라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
장례식이 끝난 직후 포이닉스는 공 작궁을 떠났다.
머릿속을 정리한 나는 눈썹을 긁적 거리며 입을 열었다.
“헤일라, 맞지?”
“응.”
헤일라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 다. 그 무감정한 눈빛이 나를 속속 들이 파헤치는 것만 같다.
……눈치챘겠지?
그래, 분명 눈치챘을 거다.
헤일라는 포이닉스와 사촌 간인데 다가 한때는 약혼까지 했던 관계다. 포이닉스의 성격을 모를 리가 없지. 지금의 나는 포이닉스보다는 김승 수에 훨씬 가까운 인간이다. 포이닉 스처럼 차갑고 냉정한 놈이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 그 자체라고.
아마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껍질 만 같지 포이닉스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금세 눈치챌 거다.
음, 일단 포이닉스의 기억을 최대 한 활용해 보자. 성격은…… 여행을 하면서 바뀌었다고 우겨보지, 뭐.
“으음- 오랜만이네. 5년만인가?”
“맞아.”
헤일라는 조용히 눈을 깜빡거렸다.
아름다운 얼굴 탓일까?
작은 깜빡임마저 너무나 흥미롭게 느껴진다.
눈꺼풀이 움직이며 기다란 속눈썹 이 서로 교차하는 그 움직임이 그림 내지는 조각 같던 얼굴에 아주 약간 의 생기를 불어넣었다. 흰 도화지에 붉은 잉크를 한 방울 떨군 것처럼 별것 아닌 듯 급격한 변화다.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거렸 다.
눈을 깜빡거리는 것만큼이나 입술 을 움직이는 것 역시 시선을 끌어당 겼다. 붉은 입술이 벌어지고 하얀 이가 비치자 괜스레 애가 탄다…….
“포이?”
“어, 어‘?”
내가 허둥지둥 고개를 돌리자, 엘 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 려다보고 있었다.
“안색이 안 좋아. 괜찮아?”
“아, 음, 괜찮아.”
나는 고개를 두어 차례 내저으며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멀쩡해, 완전.”
“ o 으……”
—M •
침음을 흘리는 엘렌을 뒤로하고, 다시 헤일라에게 시선을 던졌다.
……음, 되도록 눈 마주치지 말자. 괜히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
“미안한데, 뭐라고 했어?”
“가닉스와 아일라의 혼례 이후로 처음 본다고 했어.”
“ 아.”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침묵했다.
음, 아무리 포이닉스의 기억을 뒤 져봐도 헤일라에 대한 건 특별할 게 없다. 워낙에 사람에 무관심했던 놈
이라서 그런가.
그러다 헤일라의 일행들에 생각이 닿았다.
“아, 혈기사들은?”
정신이 나간 채 본능대로 날뛰던 내 육신을 떠올리니 부끄러움이 든 다. 하지만 난 뻔뻔한 투로 말을 이 었다.
“내가 잠깐 정신을 잃어서 실수를 한 것 같은데.”
“괜찮아. 물약으로 치료했어.”
“다행이네.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 어디 있어, 다들?”
“그라두일 산에 있어.”
“……그라두일 산에? 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 하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는 미간을 좁힌 채 그녀에게 물 었다.
“시선을 피하다니, 왜?”
“혈기사들을 보면 누구나 라즈일의 두 가문을 떠올릴 거야.”
“그런데?”
“네 근처에 혈기사들이 있으면 네 정체를 짐작하는 사람들이 생기겠 지.”
내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자 헤일라가 말을 이었다.
“너는 자하카르 가문의 잉태자야. 제오레 왕가의 왕자에게 기사 서임 을 받았다는 사실은 절대 알려지면 안 돼.”
……아, 그래.
정복왕인 ‘제오트 오브 제오레’가 아일란트를 복속시킨 이후, 왕 노릇 을 하던 자하카르와 발루인은 그저 그런 대귀족으로 영락했다.
그래서 두 가문은 전통적으로 제오 레 왕가를 내심 원수로 여겼다. 그 런데 가문의 후계를 이을 잉태자가 거기에 충성하는 건 당연히…….
……잠깐만.
“근데, 내가 잉태자라고?”
« o ” 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으며 헤일 라에게 말했다.
“잉태자는 가닉스랑 아일라잖아. 아니, 아일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네가 잉태자가 될 거라 고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에 엘렌 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너, 모르고 있었어? 이 여자는 자 기가 네 약혼녀라고 하던데.”
“약혼녀? 어, 그랬었지.”
내 말에, 엘렌의 눈동자가 반짝 빛 을 내었다.
“그랬었다고?”
“헤일라가 새 잉태자로 지정되면서 약혼은 파기됐어. 서자의 약혼 따위 보다 후계를 잇는 게 훨씬 중요하니 까.”
“••••••하.”
녀석은 코웃음을 치더니 홱, 고개 를 돌려 헤일라를 흘겨보았다.
“갑자기 뭐가 튀어나왔나 했더니, ‘전’ 약혼녀였어?”
헤일라는 여전히 나를 향한 채, 엘 렌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있었 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차 분히 대답했다.
“그렇게 될 뻔했어.”
착각일까?
헤일라의 티 없이 새까만 눈동자가 음울하게 일렁거렸다.
“하지만 가닉스가 죽으면서, 네가 새 잉태자로 지정됐어.”
“••••♦•뭐?”
“그리고 처음부터 약혼은 파기되지 않았어. 포이, 넌 아무런 말 없이 떠나버렸고, 나는 약혼을 파기할 생 각이 없었으니까.”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손을 내저 었다.
“잠깐, 잠깐만. 누가 죽었다고?”
“가닉스.”
포이닉스의 기억 속에서 가닉스를 건져 올렸다.
삼백안, 강퍅한 인상, 비열한 심성 의 청년. 포이닉스와는 세 살 터울 이 나는 이복형제. 포이닉스와 대련 을 하다 흠씬 두들겨 맞은 뒤 온갖 꼬투리를 잡아 괴롭혀대던 못난 형. 잘난 것도 없는 주제에 아일라와 결 혼한 등신.
가닉스에 대한 기억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가닉스가 죽어? 왜?”
“열병에 걸려서 죽었어.”
“……열병? 가닉스가 못난 편이긴 해도 명색이 혈기사인데, 열병에 걸 려서 죽었다고?”
헤일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언제 죽었는데?”
“4 월에.”
“4월이면, 너랑 혼인하자마자 죽은 거야?”
“아니.”
단호한 고갯짓 후, 잠시 침묵이 감 돌았다. 헤일라는 서너 번쯤 눈을 깜빡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혼인식 전날 밤에 죽었어.”
“ 아.”
“스키엘레 공작님도 그날 돌아가셨 어.”
“……큰아버지도 돌아가셨다고?”
예상치 못한 소식을 연달아 전해 들은 탓에 머리가 뜨거워질 지경이 다.
김승수의 입장에서는 생면부지의 남이나 다름없고, 포이닉스의 입장 에서도 그다지 신경이 쓰이는 사람 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혼란스러워 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헤일라는 평온한 태도로 말을 이었 다.
“카이시스가 새 공작이 됐고, 너와 난 후계자를 낳을 의무를 지게 됐 어.”
“아니, 갑자기 그게……
“그게 전부야.”
검게 반짝거리는 헤일라의 눈을 마 주 보며,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