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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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당들 182화
43. 발버둥⑵
말을 마친 헤일라가 입을 다물었 다.
오묘한 눈빛이다.
차갑게 가라앉은 듯 뜨겁게 소용돌 이치는 눈동자. 무심과 열망이 뒤섞 여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꿀꺽, 하는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 럼 귓가를 울렸다. 나도 모르게 마 른침을 삼킨 것이다.
……그래, 긴장할 수밖에 없지. 전 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했는데.
포이닉스의 기억 속에서 헤일라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했지만 존재 감이 없고, 무생물 같았으며, 어떤 의지도 느껴지지 않는 여자였다.
그래서 포이닉스는 헤일라가 이름 모를 병을 얻어 쌍왕가의 성역(聖 域)에 들어갔을 때도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더랬다. 자신의 약혼녀임 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무관심이 독이 된 걸까?
나는 포이닉스의 영혼과 기억을 흡 수했음에도 헤일라가 이런 납치극을 벌이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한편 김승수로서의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빌드15’는 그리 강력한 캐 릭터가 아니었다.
……빌드 15가 아니라 14였나? 아 니, 16? 헷갈리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나는 8, 9년쯤 전에 혈기사의 빌드 하나를 연구한 적이 있다. 마력을 중점적으로 찍어 혈조술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일명 ‘혈법사 빌드’가 그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혈법사 빌드’ 는 실패했다.
포텐셜은 꽤 괜찮은데 아무리 빌드 를 깎아봐도 조금씩 하자가 생기더 라고. 공방 밸런스가 무너진다던가, 키우기가 너무 빡세다던가, 아이템 세팅이 까다롭다던가, 그런 하자들 이었다.
결국 난 열댓 번의 시도 끝에 ‘혈 법사 빌드’를 포기했고, 그렇게 남 은 흔적이 바로 여성혈기사 캐릭터 인 ‘빌드IX’였다.
이러한 정보 탓에 그녀를 얕잡아 본 걸까? 난 ‘빌드IX’, 그러니까, 헤일라가 이렇게 강력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후우.”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긴장하긴 했지 만, 나는 애써 호흡을 고르며 마음 을 가라앉혔다. 그리곤 흐룬팅과 원 방패를 고쳐 쥐며 헤일라를 노려보 았다.
«으 » “5三
그녀는 턱선 바로 아래까지 철혈갑 주를 두른 채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사 람들이 모두 죽을 텐데.”
“……하.”
말하는 본새가 딱 테러리스트네.
난 가슴에서 치고 올라온 감정을 그대로 입으로 뱉어냈다.
“사람들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건 내가 아니고 너야. 나 때문에 죽 는다는 듯이 지껄이지 마, 이 싸이 코 같은 년아.”
헤일라의 눈이 두어 차례 빠르게 깜빡거렸다. 그녀는 잠시간 침묵하 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사람들의 생사는 포이, 네 선택에 달렸어.”
“개소리.”
“이성적으로 행동해. 엘렌과 아틸 리아를 살리고 싶다면.”
일대를 뒤덮은 피의 커튼, ‘혈왕의 영토’가 위협적으로 일렁거렸다. 평 범한 촌부라도 불길함을 느낄 만큼 노골적이고 강력한 마력이 사방을 짓누르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기절한 아 탈란테와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 는 엘렌. 그들이 저 피의 커튼 안쪽 에 매달려 있었다.
유 | 99
순간, 난 엘렌과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숨이 막혀 얼굴이 벌게진 와중에도 분노인지 의지인지 헷갈리 는 무언가로 눈동자를 파랗게 불태 우고 있었다…….
“••••••후우.” 난 얼른 눈을 돌리며 심호흡했다. 가슴을 두드리는 분노며 적개심을 애써 내리눌렀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난 김승수로서 눈을 번뜩이며 포이 닉스로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꼭 개미 새끼들 같 아.”
“개미?”
“그래. 군체의 번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개미들 말이야.”
여느 캐스터를 상대할 때처럼, 혈 법사를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접근이었다. 공격을 피하거나 버텨 내며 최대한 빠르게 거리를 좁혀야 했다.
관문의 잔해를 한 걸음 오르며 말 을 이었다.
“아니, 아니지. 너희들은 개미들만 도 못해.”
“어째서?”
“놈들에겐 그래도 열패감이나 복수 심, 더러운 욕망 같은 건 없으니까.”
유니크 단검인 ‘유혈’이 눈에 들어 온다. 레어 등급인 ‘은하수의 장갑’ 은 전에 본 적이 있고, 망토는 아마 매직 등급인 ‘보호의 망토’인 것 같 은데.
난 아랫입술을 핥으며 또 한 걸음 올라섰다.
“포이, 거기 멈,”
“만약에.”
난 헤일라의 말을 얼른 가로챘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아일란트로 돌 아가자고 했다면. 아주 조금쯤 흔들 렸을지도 몰라.”
새까만 눈이 가만히 깜빡거렸다.
“그래, 나도 알아. 자하카르와 발루 인의 피를 이은 족속들은 그딴 말 안 한다는 거.”
본신의 능력으로 ‘피보라’와 ‘피의 늪’을 쓸 테고, 단검 유혈의 힘으로 ‘붉은 가시’와 ‘피바람’도 다루겠지. 아, 그녀가 철혈갑주를 쓰기 전에 살펴본바 ‘별의 탄환’은 다섯 발쯤 남은 것 같았다.
난 원방패를 또다시 고쳐 쥐며 한 걸음 올랐다.
“아니, 못 하지. 너희들은 거짓말을 싫어하니까.”
“포이.”
“그렇다고 이딴 짓을 벌여? 롱빌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뒤에 날 데려갈 거라고?”
“그게 싫다면 거래를 받아들여.”
“그렇게 아일란트로 끌려가면 내가 얌전히 기둥서방이 돼줄 거라고 생 각했어?”
“기둥서방이 아니라 잉태자야. 혈 왕의 후예로서 영광스러운-”
헤일라는 무어라 말하다가 홱 고개 를 돌렸다. 오른편 어딘가에서 마력 이 휘몰아친 탓이다.
우웅.
마력을 끌어올린 건, 다름 아닌 엘 렌이었다. 사지를 결박당하고 목까 지 조여진 채 주문을 시전한 것이 다!
헤일라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 았다. 그저 혈왕의 영토를 움직여 엘렌을 더 강하게 조일 뿐이었다.
“케훗,”
엘렌이 밭은기침을 터뜨릴 무렵, 나는 두어 걸음쯤 도움닫기를 디디 며 훌쩍 뛰어올랐다.
“흡!”
타닥-
그리곤 커다란 바위를 손으로 짚으 며 몸을 끌어올렸고, 곧장 흐룬팅을 내질렀다. 상당한 거리와 높이를 순 식간에 지워낸 기습이었다.
그럼에도 헤일라는 아주 침착하게 대응했다. 철혈갑주를 얼굴까지 차 라락, 덮으며 어깨를 비튼 것이다.
까가각-
유백색 칼날이 암적색 비늘에 기다 란 상흔을 남겼다.
철혈갑주는 깨지지 않았지만, 헤일 라에게는 충격이 전해진 모양이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난 그녀에게 따라붙는 대신 피로 코팅한 원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 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그러니까, ‘혈왕 의 영토’에서 맹렬한 공격이 쏟아지 기 시작했다.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혈편이 흩뿌려졌고, 내 허벅지보다 도 두꺼운 가시가 방패를 쪼갤 듯 박혀왔다.
“끄으윽-”
나는 방패로, 어깨로 그 맹공을 막 아내었다. 갑옷이 찢어지며 살갗이 헤집어졌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헤 일라에게 다가갔다.
그때, 굉음이 터졌다.
꽈앙-! 열기가 뿜어져 오는 곳을 흘긋 돌 아보니 엘렌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 다. 헤일라에게 포박당한 와중에 어 떻게든 화염구를 완성한 뒤 제자리 에서 터뜨려버린 것이다.
헤일라가 펼친 피의 장막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지만 엘렌은 머리카락 한 올도 그을리지 않은 상태였다. 녀석의 로브가 화염에 대한 면역을 선물한 덕이었다.
거의 10미터쯤 추락한 엘렌은 땅 에 꼬라박기 직전에 ‘춤의 정령’을 소환해냈다.
부웅!
정령이 녀석을 끌어안았다.
뒤늦게 불어온 바람이 엘렌의 추락 속도를 상당히 늦추었지만, 녀석은 바닥을 거세게 구르며 기절하고 말 았다.
“엘렌……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이를 갈았다. 그리곤 헤일라가 펼친 ‘피보라’와 ‘붉은 가시’가 뜸해진 틈 을 타서 그녀에게 몸을 날렸다.
붉은 소나기가 방패와 어깨, 그리 고 전신을 두드렸다. 나는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흐룬팅에 덧씌우는 한편, 혈기를 끌어올렸다.
“후욱, 후우-”
……아, 개 같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때문에 이 스킬은 한동안 봉인해두려고 했는데.
망설임은 짧았다. 끌어올린 혈기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탓이다. 시야가 붉게 물들고, 입술이 메말랐다.
“o o_|”
툭.
무언가 끊어지는 듯, 혹은 이어지 는 듯한 소리.
동시에 ‘피의 갈증’이 감각을 선명 하게 일깨웠다.
쑤우우우-
머리 위에서 쏟아지던 붉은 파편과 가시가 눈송이보다도 느리게 쏟아졌 다.
“〒 o ” —-?
나는 방패의 각도를 조금 기울이며 머리 위로 흐룬팅을 휘둘렀다.
느릿해진 세상 속에서 영롱한 붉은 색으로 물든 칼날이 잔상을 남겼다. 투두둥, 하는 뭉툭한 소리와 함께 붉은 가시들이 터져나간다.
뒤이어 대부분의 혈편들이 방패에 막혔고, 미처 막지 못한 것들은 어 깨며 팔뚝에 틀어박혔다.
과연, 헤일라의 혈조술과 마력은 어마어마하게 강력했다.
그녀가 뿌린 혈편들은 마법이 깃든 털가죽과 사슬을 단숨에 끊어냈고, 탈피를 거치며 질겨진 피부와 근육 역시 손쉽게 찢어발겼다.
“흐우,”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통증이 느 껴지질 않는다. 그저 혀가 저릿하고 아랫배가 뜨거울 뿐이다.
세 걸음을 날 듯이 뛰어 헤일라의 앞에 섰다. 그녀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을 주시하다가 어깨를 비틀었다.
투웅-!
별의 탄환. 예상한 공격이었다.
헤일라가 뒤로 물러나며 반대편 팔 을 뻗기에,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며 흐룬팅을 마구 휘둘렀다.
“아으,”
따다다당, 하는 쇳소리가 길게 늘 어졌다. 피를 머금은 흐룬팅이 혀를 날름거리며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나 철혈갑주 여기저기를 두드렸 다. 견고하게만 보이던 검붉은 비늘 이 깨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헤일라는 비틀거리면서도 상체를 숙이며 단검을 쥔 오른손을 내뻗었 다.
아. 짧고, 느리고, 엉성하다.
형편없는 공격에 짜증이 치밀어서 걸레짝이 된 방패를 내던졌다. 그리 곤 왼손을 마주 뻗었다.
내 손아귀가 단숨에 그녀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때, 헤일라의 손등이 희 미하게 빛났다.
투웅-! 또다시 별의 탄환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하늘을 향해 끌 어 올린 채 손목을 쥐어짜고 비틀었 다.
꽈드드득.
꺄아아악- 하는 비명이 울려 퍼졌 다. 그녀가 뱉은 것들 중 가장 아름 답고 순수한 것이었다.
그 비명이 끝날 즈음 왼손도 부러 뜨렸다.
그대로 헤일라의 두 손목을 끊어버 리고 싶었지만, 견고하게 이어진 철 혈갑주가 내 뜻을 방해했다.
그때. 기다란 꼬챙이가 등을 비스 듬히 파고들어 왔다.
푸우욱.
“끄으억.”
헤일라는 양 손목이 부러진 채 비 명을 삼키고 있었지만, 그녀가 펼친 혈왕의 영토는 여전히 건재했다. 거 기서 뻗어온 붉은 가시가 내 등을 찌른 것이다.
거의 한 뼘도 넘게 파고든 붉은 가시는 창자를 여럿 짓이기며 아랫 배로 비죽 튀어나왔다. 고양감이고 뭐고, 어마어마한 고통에 눈이 뒤집 혔다.
“끄으으-” 그래서 눈깔이 뒤집힌 채로 헤일라 에게 몸을 던졌다. 그녀의 양 손목 을 으스러뜨린 왼손이 이번에는 오 른쪽 발목을 잡아채었고, 쥐어짰다.
빠드득.
또다시 비명.
나는 손을 당기며 그녀를 넘어뜨렸 다. 그리곤 전력을 다해 흐룬팅을 내리찍었다.
까아앙!
칼을 휘두를 때마다 갑옷의 아랫배 부분이 들썩거렸다. 붉은 가시가 더 깊숙이 관통해온 것이다.
다행히 고통은 길지 않았다.
혈왕의 영토로부터 끊임없이 피를 공급받으며 스스로 수복하던 철혈갑 주가 집중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속살을 드러낸 것이다.
드러난 부분은 아주 작았다. 기껏 해야 주먹만 한 크기 정도.
물론 나한테는 충분한 크기였다.
“흐흐.”
흐룬팅의 칼끝이 헤일라의 배를 파 고들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숨이 뜨겁고 거칠게 뿜어졌다.
그녀의 배에 칼을 박은 채 골반과 어깨를 무릎으로 찍어눌렀다. 왼손 으로는 얼굴을 붙잡고 땅에 처박았 다.
푸우욱.
또 다른 꼬챙이가 어깨를 통해 가 슴으로 파고들었다. 별 상관없었다.
금세 모습을 되찾은 철혈갑주는 주 인을 파고든 칼날을 밀어내려 했지 만, 내 우악스러운 힘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덕분에 흐룬팅은 여전히 헤 일라의 배에 박혀있었다.
칼끝이 혀를 날름거렸다. 그녀에게 서 약탈해온 진한 피가 온몸을 휘돌 았다.
전신에 새겨진 상처들이 순식간에 아물어갔다. 장정 수십을 죽여도 얻 지 못할 생명력이 몸을 씻어내었다. 그 강력한 재생에 힘입어 등과 어깨 를 파고든 붉은 가시들을 밀어냈다.
“하아, 으-”
형용하지 못할 감각에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나는 고양감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벌렸 다. 어디선가 기이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더. 더 깊이, 더! 더—!’ 몇 번쯤 들어본 목소리였지만, 이 번엔 은근히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숫제 미친놈처럼 날뛰고 있었다 ……극심한 거부감을 원동력 삼아, 의식이 단숨에 깨어났다…….
“으헉!”
펄쩍 몸을 일으킨 나는 거칠게 숨 을 골랐다.
이런 썩을, 또 그 목소리가,
“끄으으-”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몸을 일으키려는 헤일라를 넘어뜨 리며 짓누른 다음, 그녀의 귀에다 대고 고함을 내질렀다.
“멈춰! 이제 다 끝났어!”
“O O O ” —–9–9
“죽기 싫으면 멈추라고-!”
해일라는 양 손목과 오른쪽 발목이 제멋대로 꺾이고, 배에는 칼을 박은 채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쳐댔다.
그러나 그녀의 형편없는 근력으로 는 나를 절대로 당해낼 수가 없었 다. 지금처럼 심각하게 다친 상태에 서는 더더욱.
“우리는, 내 운명을-”
“젠장,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하지만 나도 여유를 부릴 수는 없 는 형편이었다.
아직도 혈왕의 영토가 건재했거든. 헤일라에게 마력을 끌어올릴 틈을 주면 또 온갖 맹공을 쏟아부을 터였 다.
“……후, 좋아. 한번 해보자고.”
눈깔이 돌아간 채 헤일라의 피를 마구 빨아댄 탓에 온몸에 혈기가 들 끓어 올랐다. 300%쯤 충전된 상태 라고 할까.
나는 그 들끓는 혈기를 왼손에 모 아서 헤일라의 얼굴을 거머쥐었다.
뒤이어 내 혈기가, 마력이 뻗어가 며 철혈갑주의 통제력을 빼앗기 시 작했다.
츠츠츠 _
내 마력은 꼴랑 23. 헤일라는 엘렌 보다도 마력이 높을 테니 한 40 정 도 되겠지. 혈조술의 숙련도도 나와 는 비교도 안되게 높을 테고.
그러니 헤일라가 부리는 피의 통제 력을 내가 빼앗는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조금 달랐 다. 헤일라는 여기저기 부상을 입은 데다가 결정적으로 배에 흐룬팅을 꽂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뭐, 이마에 총을 겨누고 협상을 시작하는 거랑 똑같지.
“끄읏, 크으-”
헤일라가 안간힘을 쓰며 마력을 끌 어올릴 때마다 흐룬팅으로 피를 빨 아들였다. 그렇게 얻은 혈기를 다시 그녀의 얼굴 쪽으로 쏟아부어 철혈 갑주의 통제력을 앗아갔다.
“ O O O , ——
마치 버터 덩어리에 달군 나이프를 댄 것처럼, 검붉은 비늘이 부글부글 녹아내렸다. 헤일라의 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이거, 놔-!”
“끄응, 어디 보자.”
발악하는 그녀를 짓누르며 품속을 뒤져 구리 병을 꺼내 들었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긴 했어도 내용 물이 샌 것 같지는 않았다. 유리병 에 안 담길 천만다행이군.
나는 구리 병의 뚜껑을 열어 헤일 라의 붉은 입술에 가져다 댔다.
“자, 죽기 싫으면 마셔.”
“으으, 싫어.”
“빨리!”
“으, 으으-!”
무감정한 얼굴이 고통으로 물든 탓 일까? 도리질 치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기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거 안 마시면 내가 널 죽일 수 밖에 없어! 마셔!”
“싫, 어.”
“이런 개 같은,”
그렇게 한참을 씨름한 뒤에야 헤일 라에게 구리 병의 내용물을 먹일 수 있었다.
“으, 포이, *흐으* 네가…… 그녀에게 먹인 것은 엘렌이 만든 ‘마력억제의 물약’이었다.
‘해제의 물약’의 복제품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마력을 흩어내는 부작 용만 강화되었던, 바로 그 물약 말 이다.
파괴술사 놈들에게 써먹을 일이 있 을까 싶어서 챙겨둔 건데, 이걸 헤 일라에게 쓸 줄이야…….
그녀는 마력이 흩어져가는 것을 느 꼈는지, 가쁜 숨을 내쉬며 무어라 더듬거렸다.
“운명을, *하으* 나의, 우리, *흐 으* 운명은, 분명히…… 그렇게 무어라 중얼거리던 헤일라 는 마치 전원이 꺼진 것처럼 툭 기 절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일렁거리던 혈왕의 영토가 조각조각 찢어졌다. 나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펄쩍 일어섰다.
“어, 어어—!”
그리곤 재빨리 몸을 날려 막 관문 의 잔해에 처박히려는 여인을 낚아 채었다.
목재며, 깨진 바위며, 벽돌 위를 구르느라 허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 지만 혈왕의 영토에 묶여있던 여인, 아탈란테는 무사히 구해낼 수 있었 다. 팔과 어깨를 심하게 다치긴 했 지만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아탈란테를 평평한 바닥에 눕힌 뒤, 나도 그 옆에 냅다 자빠져버렸 다.
“……하아. X팔, 죽겠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쏴아아 아’ 하고 하늘에서 빗방울이, 아니, 핏방울이 쏟아졌다. 혈왕의 영토가 완전히 허물어진 것이다.
나는 그 붉은 비를 맞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