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06)
나의 악당들 406화
63. 은왕자의 기사들(13)
어느새 자정에 가까운 깊은 밤이었 다. 전투를 벌이고, 얼마간 기절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성밖엔 온통 어둠이 깔렸지만 아켈 레 백작은 거침이 없었다. 탑에서 내려온 그는 아성 ‘발레솔리스’가 마치 제집 안방인 양 활보했다.
그에 더해 에오르단 경 등 여러 혈기사들이 따라붙은 탓에 발레솔리 스의 경비병이며 하인, 하녀들은 겁 을 먹고 흩어지거나 깜짝 놀라 요란 을 떨어댔다. 하긴 평범한 손님도 아니고 백작씩이나 되는 양반이 야 밤에 예고도 없이 튀어나왔으니 그 들로서는 놀라는 게 당연했다.
다만 그 놀람의 정도가 어느 이상 을 넘어가진 않았기에, 종종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 었다.
“배, 백작 각하!” 아성의 1층 한가운데 있는 본당에 다다를 즈음, 눈에 익은 사내와 그 동년배로 보이는 마른 사내가 허겁 지겁 뛰어나왔다. 앞선 자는 아성의 청지기라고 스스로 소개했던 중년인 이었고, 동행한 자는 아성의 집사였 다.
“이 늦은 시각에 어찌 행차하셨습 니까?”
“걸어서.”
“예- 예에?”
아켈레 백작은 당황한 청지기를 휙 지나쳐 길이가 10미터도 넘어 보이 는 커다란 직사각형 탁자에 앉았다. 당연하게도, 제일 상석에 해당하는 자리였다.
“아이네스 백작과 슬랜위드를 불러 와라.”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시간이, 다들 침소에 드신 터라-”
“급한 일이다.”
청지기는 선혈백과 그의 뒤에 늘어 서 있는 혈기사들을 번갈아 살피고 는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그러자 백작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덧붙 였다.
“내가 직접 움직여야겠나?”
“아니, 아닙니다.”
“출출하니 식사도 내오거라.”
“예엡
청지기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물러났다. 난 그를 따라나서려는 집 사를 얼른 붙잡았다.
나를 한참 기다리다 강철함대의 정 박지로 돌아간 랭볼트 경과 아성의 객실 하나를 빌려 쉬고 있는 아탈란 테. 그 둘을 호출하기 위해서였다.
“아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포이닉스 경.”
“백작님 식사 준비하시는 김에 제 것도 좀 부탁해요. 한 4인분 정도. 저녁을 못 먹었거든요.”
“……알겠습니다.”
집사가 급한 걸음으로 떠나자 나는 쯧, 혀를 찼다.
“이 야밤에 남의 집에서 이게 뭐 하는 거랍니까? 민폐도 정도가 있 지.”
“ 민폐?”
백작은 작게 코웃음을 쳤다.
“오든록과 아비든으로부터 온우터 와 미드우터에 이르기까지. 하나같 이 아일란트의 품에 안겨 기생하는 자들이다. 눈치 볼 이유가 없다.”
“……아이고, 대단하셔라. 혹시 갑 질이라는 표현 들어보셨어요?”
“갑질?”
“처음 들어보셨구나? 낮은 사람들 한테 엿 같이 구는 걸 갑질이라고 하거든요.”
“그렇군.”
“어떻게, 좀 찔리십니까?”
백작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니.”
“……뻔뻔하시네요.”
“저들은 아일란트가 이 항구를 탐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 야 한다. 엿 같은 것 정도는 마땅히 감수해야지.”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 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듯했 다.
“나를 나무랄 시간에 네 언행이나 주의해라. 지금 너는 자하카르가 아 니다.”
“알아요. 제 걱정 마시고 아저씨나 잘하세요.”
“건방진 놈. 교육 못 받은 티를 내 는구나.”
아켈레 백작이 나를 붙잡으려 들지 않는 건, 기본적으로는 또 다른 잉 태자인 헤일라가 하이캐슬에 있어서 였다. 하지만 내가 자하카르임을 숨 기고 다닌다는 사실 역시도 그에 한 몫을 했을 거다.
다시 말해, 내가 자하카르라는 성 을 쓰며 울카르의 기사 노릇을 했다 면 또 다른 잉태자고 뭐고 내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서 섬으로 끌고 갔을 거라는 뜻이다. 자하카르가 제 오레를 섬긴다는 말 따위가 나도는 걸 지켜만 볼 리 없으니까.
청지기와 집사, 하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식사는 그리 오래지 않 아 준비되었다. 야밤에 뜬금없이 주 문한 만큼 만찬이라 할 정도는 아니 었지만 다양한 요리가 넉넉히 차려 졌다.
식초와 올리브유, 레몬즙에 버무린 각종 채소에 얇게 포 뜬 생참치와 소금절인 청어를 얹어 먹는 요리. 불린 완두콩과 훈제 돼지고기에 잘 게 간 계피와 신 포도즙을 뿌려가며 볶은 요리. 손바닥만 한 바닷가재를 흰 포도주에 삶고 돼지기름에 구운 뒤 꿀, 후추, 쿠민 (Cumin), 루 (Roux)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요 리…….
그 외에도 생선을 듬뿍 넣어 만든 죽이나 저민 레몬을 얹은 굴 등 온 갖 해산물이 상에 올라왔다.
그야말로 항구도시다운 차림표라고 할까.
꽈드득.
바닷가재에 소스를 듬뿍 끼얹고 등 부분을 통째로 깨무니 감칠맛이 폭 발한다. 돼지기름에 튀기듯 구워선 지 껍질은 바삭했고, 속살은 탱탱하 고 쫄깃쫄깃했다.
완두콩 볶음은 입안을 묵직하게 채 우면서도 산뜻한 향기가 났고, 생선
죽은 살을 잔뜩 넣은 탓에 걸쭉하고 짭조름했다.
아켈레 백작은 걸신들린 것처럼 요 리를 먹어 치우는 나를 빤히 바라보 다가 나지막이 질문했다.
“생선을 못 먹는다고 들은 것 같은 데.”
“못 *우물우물* 먹죠. 없어서 못 먹어요.”
이어서 로메인과 케일에 참치와 청 어를 잔뜩 얹어 포크에 꿰는 모습에 그는 눈을 끔뻑거렸다.
“채소도 잘 먹는군.”
“제가 애도 아니고, 있으면 먹어요. 굳이 찾아서 먹지는 않고.”
백작이 오묘한 기색으로 입을 다물 자 난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러 자 그는 ‘흠’ 하고 중얼거리더니 곧 나 못지않은 호쾌함을 뽐내며 음식 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머리가 산발이 된 아탈란테가 나타 난 건 바로 그즈음이었다.
“닉스! 너 도대체-”
그녀는 내게 따지려는 듯 목소리를 높이다가, 상석에 앉은 아켈레 백작 을 발견하고 턱 멈춰 섰다. 그리고 얼른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켈레 백작 각하를 뵙습니다.”
백작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하얀 면수건으로 깔끔히 면도한 입 주변 을 닦아내었다.
“네가 그 누데인족 계집이군. 아탈 란테라고 했나?”
“아탈란테 ‘나피닷’ 알 누보아라 합니다. 명성 높은 쇠비늘 함대의 제독이자 리힐의 지배자이신 선혈백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듣기로는 이번 공세에서 한 축을 맡는다던데.”
“그렇습니다. 따르는 전사들이 있 어 3왕자 전하의 큰 뜻을 돕게 되 었습니다.”
아탈란테를 압도한 게 백작의 기세 인지, 권세인지, 명성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여튼 그녀는 온순한 양처 럼 몸을 잔뜩 굳힌 채였다.
“ 앉아라.”
조용히 고개를 숙인 아탈란테는 선 혈백의 시선을 얼른 피하고 싶은 듯 잽싸게 내 옆에 앉았다.
“왜 이렇게 쫄았어?”
“……왜겠니?”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 린 아탈란테는, 열심히 굴을 까먹고 있는 내게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냥 뭐, 이것저것.”
“‘그냥 뭐, 이것저것’? 이 개자-”
무어라 역정을 내려던 아탈란테는 ‘흐흠’ 헛기침을 하더니 상석의 눈 치를 살폈다.
“……나 다섯 시간도 넘게 기다렸 거든? 관리와 하인들은 계속 모른다 고만 하고, 혈기사들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본 척도 안 하고. 근데 ‘이 것저것’으로 끝이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원해서 널 기다리게 한 게 아니라고.”
“아으.”
그녀는 계속해서 곁눈질을 하며 나 와 백작을 번갈아 살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불안한 눈 치였다.
“다 잘 풀렸으니까, 오두방정 떨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
“계속 속 편한 소리만 할 거야?”
“응. 자, 굴이나 하나 먹어봐. 미쳤 어.”
아탈란테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 어?’ 하는 시선으로 나를 흘겨보았 다.
음. 아주 익숙한 눈빛이구만.
얼마 지나지 않아 랭볼트 경이 등 장했고, 식사를 마무리할 즈음엔 슬 렌위드 경과 아이네스 백작까지 나 타났다.
상급기사(Knight banneret) 슬랜위 드 경은 시릴로 자작의 사촌이자 대 리자로, 현재 이곳 발레솔리스와 오 두엔느의 책임자였다.
부유한 사촌을 둔 것과는 별개로, 그 자신도 드넓은 땅을 가졌다고 들 었다. 그런 넉넉한 재산 상태가 반 영된 건지는 몰라도, 슬랜위드 경은 푸짐한 체형에 동글동글 순한 얼굴 의 중년인이었다. 뒤에서 ‘고블린 자작’이라 불릴 만큼 왜소한 체격을 가진 사촌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다만 그간 길러온 눈썰미로 보기 에, 저 푸짐한 체형이 몽땅 지방으 로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이른바 근육돼지라 불리는, 전형적인 장사 체형이라 기량이 꽤 기대되는 자였 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각하.”
슬랜위드 경은 산만한 덩치를 굽실 거리며 아켈레 백작에게 인사를 올 렸지만 돌아오는 답은 거만하기 짝 이 없는 턱짓뿐이었다.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호출을 하고, 당연하다는 듯 상석을 차지한 주제 에 인사도 제대로 안 받아주는 깡패 같은 손님이라…….
그런 손님을 앞에 두고 입도 벙긋 못하는 슬랜위드 경이 안쓰러울 따 름이 다.
뭐, 열댓 가구 짜리 장원이나 몇 개 가진 지주기사가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와 천오백이 넘는 군대, 그리고 너른 영지를 거느린 백작 앞 에서 찍소리도 못하는 건 상식적인 일이긴 했다.
“부르셨나요.”
슬랜위드 경과 함께 나타난 아이네 스 백작도, 호위 기사를 다섯이나 데리고 있긴 했지만 그 신세가 그리 달라 보이진 않았다.
아비든의 대영주이자 밀그레스터 가문의 당주인 아이네스 백작은, 끽 해야 열다섯 살이나 됐을까 싶은 조 그만 소녀였다.
달걀형의 얼굴과 갸름한 턱선, 뽀 얀 피부와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장밋빛 볼을 보아하니 장차 미녀로 자랄 것이라는 전망에 금화 백 장쯤 은 걸 수 있겠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눈동자였다.
나가의 후예라는 가문의 전설을 품 은 눈동자는, 미세하게 위아래로 갈 라진 동공과 사파이어 빛깔 홍채가 신비로운 조화를 이룬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신비로움은 비단 외모에 서만 비롯된 건 아니었다.
마력이 느껴졌다.
이전의 나였다면 소녀의 손에 끼워 진 반지와 펜던트에 박힌 보석이 뿜 는 기운에 눈이 가려졌겠으나, 레벨 이 오르며 기감도 오른 덕에 아이네 스 백작이 마력 사용자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아, 이제 왔군. 앉으시오.”
선혈백은 아이네스 백작에게 내 건 너편 자리를 권하며 짐짓 예의를 차 린 어조로 말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반말을 찍찍 갈겨댈 것 같았는데, 그렇진 않네. 같은 백작이라고 나름 대우를 해주 는 모양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아이네스 백작이 아켈레 백작보다 신분이 높다. 오래 도록 명성을 떨쳐온 백작가의 당주 와 단승백작을 비교하면 당연히 전 자가 우위에 있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그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듯, 아이네스 백작은 작게 고 개를 숙이고 얌전히 착석했다.
이어서 눈치를 보던 슬랜위드 경까 지 자리에 앉자, 아켈레 백작은 좌 중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제안할 바가 있어 자리를 마련했 소.”
야밤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에 대한 양해의 말이나 본론으로 들어 가기 전의 빌드업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 로 곧장 용건을 꺼내 들었다.
“시릴로 자작이 3왕자의 휘하에서 선제후들과 맞서고 있으니, 백작도 그와 뜻을 함께하는 거겠지. 안 그 렇소?”
질문을 받은 아이네스 백작은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실 수도 있죠.”
“그럼 3왕자가 그의 기사와 벌이는 일에도 관심이 있겠군?”
진즉 눈치를 챘지만, 아까 아켈레 백작이 언급한 ‘이 거래에 흥미를 보일 만한 아이’란 바로 아이네스 백작이 었다.
소녀는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가만 히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맹한 인 상이다. 잠이 덜 깼나?
그러기를 잠시, 졸음기가 조금 감 돌긴 해도 초롱초롱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3왕자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일이 무엇이오?”
“어……
울카르가 들려준 계획에는 아이네 스 백작이 없었는데.
난 눈썹을 긁적이다 어깨를 으쓱였 다. 에라, 모르겠다.
“칼날 만을 건널 겁니다.”
“칼날 만을. 스트롬 가문의 영지를 칠 생각이군. 하지만-”
무늬만 대영주인 건 아닌지, 흐리멍 덩하던 눈이 금세 파랗게 빛을 내었 다. 소녀는 아켈레 백작을 돌아보았다.
“아일란트가 3왕자께 협력할 줄은 몰랐는데요.”
“협력은 아니오. 거래를 한 것뿐.”
“거래라고 하시면?”
에오르단 경이 울카르 왕자와 협상 한 바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듣고 아이네스 백작은 미간을 좁혔다.
“제가 무엇을 하길 바라십니까?”
“바라는 바는 없소. 그저, 동맹이 힘써 싸우는 모습을 지켜만 보는 게 현명한 선택은 아니라 조언하고 싶 은 것이오. 이웃으로서 하는 조언이 지.”
“……조언에 감사드려요.”
소녀는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다만, 어리고 미련한 제가 보기에 도 이 계획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에 요. 원정을 보낼 군대를 마련하자면 시일이 지체될 터. 때를 놓쳐 3왕자 께서 안배하신 계획을 그르치게 될 까 두렵습니다.”
“정 그렇다면 조언을 몇 개 더 해 주겠소.”
“……각하께서 요?”
“그대 말대로 촌각을 다투는 일이 니 원정군은 소수로 편성하시오. 이 번에 거느리고 온 병력의 절반만 떼 어도 밀그레스터의 전투용 범선 한 척쯤은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오.”
“그들은 제 호위 부대입니다.”
“자기 영지를 순행하는데 호위병을 삼백이나 끌고 다니는 대영주는 없 소. 영민들을 경계하여 대병을 거느 리고 다니는 건 제 위신을 깎아 먹 는 짓거리니까.”
아이네스 백작이 입을 다문 사이, 선혈백의 시선이 슬랜위드 경에게로 향했다.
“출항 및 원정에 필요한 군량과 물 자는 네가 보급해라.”
“제가, 말입니까?”
“그래.”
그는 투실투실한 손등으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낼 뿐 아무 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문제가 있나?”
“아니- 아닙니다, 각하.”
슬랜위드 경이 고개를 처박자 아이 네스 백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원정군을 보내는 건 어렵지 않지 만, 대가가 필요해요.”
“아비든은 변경에서 지척인 땅이 오. 3왕자가 변경을 지켜내지 못하 면 그대의 영지도 쑥대밭이 될 텐데 대가를 운운한단 말이오?”
“수비를 돕는 것이라면 몰라도, 바 다를 건너 반격을 가하는 데 동참하 는 건 제 의무가 아닙니다.”
아켈레 백작의 묵묵한 시선을, 소 녀는 맹한 눈빛으로 마주했다.
딱히 기세를 뿜어내고 있진 않았지 만 충분하다 못해 넘칠 만큼의 압박 감이 느껴질 텐데, 아이네스 백작은 끝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여기 있는 포이닉스 경과 상 의하시오. 밀그레스터 백작가의 기 여도에 따라 프로스하펜의 지분을 얼마쯤 나눠줄 것이오.”
어차피 쇠비늘 함대의 직접지원을 받으면 아일란트에 항구의 지분을 상당량 넘길 셈이었다. 그 지분이 굳은 이상, 밀그레스터 가문의 정예 병력을 지원받는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난 아탈란테와 시선을 교환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스하펜의 지분을 최소 일 할, 지원해주신 병력의 활약에 따라 최 대 삼 할까지 보장해 드리겠습니 다.”
아이네스 백작은 잠시 망설였다.
그녀도 해안을 다스리는 대영주인 만큼 바다 건너에 있는 부유한 항구 에 욕심이 날 텐데, 어째 다른 것을 원하는 눈치였다.
느긋이 기다리고 있자니 소녀는 천 천히 입술을 떼었다.
“……항구의 지분도 좋지만, 전 다 른 것을 원해요.”
“말해보시오.”
“최근, 쇠비늘 함대가 무언가를 쫓 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의아함에 슬쩍 돌아보았으나 아켈 레 백작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 이었다.
“일부라도 좋으니 밀그레스터 가문 에 그 성과를 공유해주세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찬송의 마녀요.”
……찬송의 마녀?
“칼날만 일대를 쥐잡듯 뒤져 어인
족의 산란지를 찾아 불태우고 계시 죠. 그 목적이, 찬송의 마녀를 사로 잡는 것 아닌가요?”
선혈백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 다. 하지만 그가 잠시간 보인 침묵 은 그 자체로 충분히 유의미한 대답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