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ebol's Youngest son RAW - Chapter (129)
130화. 차분히 압박하다.
9월 4일.
한도영은 언론에 아성자동차와 미래자동차가 합쳐져 BF Motor가 되었음을 알렸다.
합병을 선언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일단 아성자동차 부분은 김경철에게, 미래자동차 부분은 김혁수에게 맡겼다.
광명 자동차공장(구 아성자동차).
김경철은 수행원을 데리고 공장을 찾았다.
노조원과 근로자들은 호기심, 기대감, 두려움을 갖고 김경철을 맞이했다.
통상 부도에 몰린 기업이나 부도난 기업을 인수한 기업이 회사를 방문하면 거센 반발이 벌어졌는데, 아주 대조적인 행동이었다.
노조위원장 김성호도 멀찍이서 노조간부들과 함께 김경철을 바라보았다.
소회의실.
김경철이 들어섰을 때, 김성호와 노조간부들은 미리 들어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눈빛은 밖의 근로자들과는 또 달랐다.
밖은 근로자들이 희망과 기대를 주로 품었다면, 이들은 두려움, 적개심, 질투, 안도감 등이 복합된 눈빛을 발산했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해볼까요?”
김경철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다이어리를 꺼내 펼치고 볼펜을 집어 들었다.
“인터뷰 보셨죠? 저는 광명공장과 광주공장에서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서만 노조가 노동쟁의’를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셨습니까?”
“김 대표님. 우리도 힘듭니다. 자꾸 정치파업 운운하시는데, 그거 다 근로자들의 복지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노조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노동자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안 좋게만 보지 마십시오.”
황경태가 발끈하고 나섰다.
김경철은 싱긋 웃고는 차분하게 그를 설득했다.
“알죠. 압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사측에서 그걸 위해 노력할 테니까, 노조도 법대로 움직여달라는 겁니다. 법을 보면 노조는 노동자를 위해 일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정부에서 노동법을 바꾼다. 법이 잘못되었다. 등의 이유로 파업 등을 하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럼 이제까지 노조활동을 부인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김성호가 묵직한 어투로 물었다.
“부인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법을 지키자는 겁니다. 법대로요. 그리고 앞으로는 노조 관련하여 불법적으로 지급되었던 급여를 비롯한 각종 비용은 모두 지급되지 않습니다. 일하세요. 노조위원장 빼고는 누구도 일하지 않는다면 급여를 지불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회사에서 해직된 전 노동자나 외부 인력에게는 당연히 급여를 지급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이제까지 아성자동차의 관행이었고 노조에 대한 예우였습니다. 이제까지 기업은 노동자를 착취했고, 노조가 앞장서서 그걸 타파했습니다. 지금도 전국에는 그런 악질기업이 수없이 많고요. 그걸 타파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그건 감옥에 수감 중인 안철중 전 대표에게 가서 말하세요. 그리고 아성자동차는 이제 없습니다. BF Motor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자꾸 옛날 일이나 다른 악랄한 기업을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우리 백산그룹은 다릅니다. 실제로 백산중공업이나 백산건설에서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김경철은 노조간부들의 반발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노조가 백산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김성호의 질문에 김경철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모든 노동자에게 회사의 방침을 알리고 그들의 대답을 들을 생각입니다. 노조가 합법적으로 운영되면 구조조정은 없습니다. 다만 불법적인 부분은 엄정하게 대처할 생각입니다. 판단은 제가 아니라 근로자들이 하겠죠.”
김경철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는 팔짱을 끼며 김성호를 쳐다보았다.
어디 자신 있으면 해보라는 식이었는데, 김성호는 분노로 몸을 떨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지금 김 대표님은 노조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또 불법 운운하며 노조를 불법적인 집단으로 몰아 노조파괴행위를 하는데 당장 멈춰주십시오.”
“그건 알아서 판단하시고, 오늘 중으로 언론을 통해 이 내용이 전달될 겁니다. 그런 노동자들이 판단할 겁니다.”
김경철은 뻔한 선동질에 속지 않겠다는 듯 단칼에 상대의 말을 일축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논리로 맞서야 하는데, 형체도 없는 감정에 매몰되어 상대를 비난하는 행위가 불쑥 튀어나왔기에 답답했다.
김경철은 이런 감정적인 심리전이 싫었다.
“노조를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사과하십시오.”
김경철은 분노하여 떠들어대는 노조간부들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은 왜 이럴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백산그룹에서 잘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이미 다른 기업에서 그렇게 시행하고 있는데 자꾸 다른 사례를 끌어와서 자기주장을 정당화하며 다른 말을 하니 답답했다.
‘법을 지키며 노사가 협력하자’는 말이 사과할 말인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뭘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다른 기업에서 노조를 파괴하려고 악랄한 짓을 했다는 거 저도 압니다. 하지만 백산은 다르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다른 기업의 악랄한 사례를 여기에 적용하려고 합니까?”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고 나중에 다르게 행동하는 기업들이 많으니까요.”
“백산중공업, 백산건설의 사례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백산그룹은 약속을 반드시 지킵니다.”
“그래도 믿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내일 다시 이야기합시다.”
김경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밖으로 나와 활기차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바라보고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노조간부들은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씨도 안 먹힌 것 같은데요.”
황경태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하자, 김성호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반드시 싸워서 노조를 지켜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결국 노조는 와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그룹에서 시행한 사측의 노조파괴활동을 기억해야 합니다. 백산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본색을 드러내 구조조정을 단행할 겁니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회사경영진은 우리의 적입니다.”
장태석이 주위를 둘러보며 강하게 다그쳤다.
그는 아성자동차 노동자가 아니라 노조업무를 위해 전민노총에서 파견된 근로자였다.
물론 급여는 아성자동차에서 받았었다.
장태석의 발언권은 매우 컸다.
흔들리던 노조간부들의 표정이 결연하게 변했다.
“우리가 힘을 합쳐 강경하게 버티면 결국 백산그룹도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고 노조탄압을 중지할 겁니다.”
장태석은 논조를 이상한 방향으로 유도했다.
그의 연설 아닌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노조간부들은 묵묵히 그의 말에 경청했다.
**
그룹으로 돌아온 김경철은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여러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1면에 광고의뢰를 진행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노조가 합법적인 운영과 노조원들의 복지를 위해 노동쟁의를 약속한다면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겠다.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담아 언론사에 전달했다.
덕분에 광고비로 많은 돈이 지출되겠지만, 김경철은 후회하지 않았다.
이미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도영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어때요?”
한도영이 들어왔다.
“아, 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내가 쉬는 걸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쉬는 건 집에 가서 쉬어야죠.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고요.”
김경철은 한도영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협상해보니 어떻습니까?”
“말이 안 통합니다. 백산그룹의 말을 들으려고 하질 않고, 자꾸 다른 악랄한 기업을 백산그룹과 혼동합니다. 오늘 성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단 신문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알렸으니, 내일 아침에 근로자들이 볼 테고, 노조도 볼 테니 좀 협상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흐음. 고생하셨습니다.”
김경철로부터 상황을 보고 받으니 협상장의 분위기가 어떤지 훤히 그려졌다.
“대표님. 미래자동차는···. 아니지. 죄송합니다. 입에 붙어서.”
“괜찮습니다. 부산공장은 차분하게 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래그룹이 원래 노조가 없고 노사협의회가 존재하잖아요. 그래서인가 말이 잘 통한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정 말을 안 들으면 내쳐야 할 텐데, 해고까지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냥 이직하는 선에서 마무리하세요.”
“광명공장에서 광주공장으로 이직시켜봐야 소용없습니다. 갑자기 집에서 멀어지니 몸은 힘들겠지만, 환경이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부산공장으로 보내야죠. 가서 열심히 일하라고 하세요. 특히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10원도 지급해선 안 됩니다. 노조위원장 빼고는 아무도 안 돼요. 그리고 BF Motor의 직원이 아닌 사람이 공장에 상주하면 모조리 쫓아내세요.”
“예. 대표님.”
한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하십시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자신이 구조조정에 포함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밤잠을 설칠 겁니다. 우리 백산그룹은 여느 악덕기업과는 다릅니다. 그 점을 근로자들에게 확실하게 인지시켜주세요. 김 대표님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경철은 굳은 표정으로 한도영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
다음날 아침.
‘백산그룹의 진심’이란 광고가 주요 신문의 1면에 실렸다.
오프라인 시대였던 이때는 조간신문의 비중이 매우 컸는데, 이 광고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아침방송에서 짤막하게 보고하는 등 이날 아침은 순식간에 백산그룹이 아침밥상에 올랐다.
광명공장.
노조사무실은 벌집을 쑤신 것처럼 시끄러웠다.
아직 중우건설처럼 온건한 노조원들이 사무실을 쳐들어온 건 아니었지만, 강경한 노조간부들을 흔들어놓기엔 충분했다.
황경태는 김성호를 찾았다.
“위원장님. 이거 심상치 않은데요.”
“예상했잖아.”
“오늘 오면서 노동자들과 노조원의 분위기를 살폈는데, 아주 안 좋아요. 특히 노조원의 표정이 더 안 좋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만약 노조와 사측의 갈등이 표면화되어 구조조정이 단행된다면 누가 구조조정 대상이 될까요?”
“설마?”
“예. 노조원들이 자신들이 대상이 될까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노조에 가입하라고 제안해도 근로자들이 손사래를 쳐요. 일단 이번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심리가 강해요.”
어제까지만 해도 강경했던 황경태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중간 정도에서 협의가 안 될까요?”
“어제 김경철이 너도 봤잖아. 씨도 안 먹히는 거. 이건 우리가 모든 걸 포기하고 수그리고 들어가느냐? 아니면 김경철이 숙이고 들어오느냐? 둘 중 하나야. 중간협상은 없어.”
“그러다가 해고되면 어쩌려고요? 이제까진 해고돼도 급여를 받았지만, 이젠 방법이 없잖아요.”
“그땐 들고 일어나야지. 해고가 시작되면 ‘백산그룹이 구조조정하지 않겠다는 말은 거짓이다’로 몰아가면 돼. 그러면 국면전환을 할 수 있어.”
김성호는 차라리 해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걸 크게 선전하고 전민노총 금속노조의 도움을 받는다면 사측과의 싸움도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장태석은 뭐랍니까?”
“끝까지 싸우자고 하지.”
김성호는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어려운 싸움이야. 백산그룹에서 뭔가 헛짓거리를 해야 우리가 움직일 공간이 생겨. 지금처럼 촘촘한 그물망을 쳐서 압박해오면 대책이 없어. 그렇다고 여기서 그들에게 굴복할 수도 없고.”
김성호는 답답한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아성자동차 시절 노조위원장으로 직접 경영에 참여해 이런저런 요구를 했었다.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김성호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김성호가 급히 밖으로 튀어나왔고, 황경태를 비롯한 노조간부들이 밖으로 나왔다.
“노조는 백산그룹의 제안을 수용하라!”
근로자들이 노조사무실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하며 지나갔다.
이제까지 노조를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그들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흔들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저들을 계몽해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결국 노조는 와해됩니다. 그걸 명심하십시오.”
어느새 다가온 장태석이 김성호를 비롯한 노조간부들을 압박했다.
김경철은 언론을 통해 노조를 압박했고, 사내 게시판을 통해 백산그룹의 진심을 알렸다.
백산중공업의 사례를 들어 근로자들을 설득하는 당근책을 제시했다.
동시에 채찍도 꺼내들었다.
9월 10일까지 노조에 백산그룹제안 수용여부를 알려달라고 통보했다.
굉장히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이대로 강행했다.
일부 노조원들은 노조를 압박했고, 강경한 노조원들은 버티기를 주문했다.
점차 혼란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노조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오히려 강경해지는 분위기였다.
무너지더라도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