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stellation Returned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397)
397화
‘괜찮겠지.’
지금이 몇십년 전도 아니고, 둘 다 나이 지긋하게 먹은 어른들 아닌가.
중요한 상황 앞에서 서로 묵은 감정을 드러내며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 * *
“아 저 놈은 누가 왜 데리고 왔어?!”
“…병실에서 요양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두 인간의 팽팽한 대립에 주변에 있던 오크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싸우나?
“누가 이길 거 같나?”
“나는 황씨를 믿는다. 황씨는 우리를 많이 도와줬다. 황씨 덕분에 된장 맛이 더 좋아지지 않았나.”
“하지만 황씨는 지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데…”
원래 최연승이 와서 농사를 가르쳐주기 전에, 오크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즐거움은 싸움이었다.
종족 자체가 싸움을 즐기는 종족!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심심하면 서로 맞붙고 싸워서 누가 강한지 가리는 게 오크들이었다.
그런 만큼 원래 있던 인간 황씨와, 새로 나타난 인간의 대결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하는 거냐 다들??”
뒤늦게 나타난 오다이곤은 경악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최연승이 모처럼 영역에 돌아와서 ‘이번에 내 인간 권속이 일 돕겠다고 찾아왔는데,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도움이 될 거다. 잘 부탁한다 오다이곤’이라고 말해준 덕분에 ‘과연! 주인님께서 그렇게 말하실 정도라면 분명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겠군!’이라고 생각하며 찾아왔는데…
황경룡하고 서로 노려보고 있는 걸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주인님이 이걸 보면 ‘오다이곤 너는 인간 권속들도 관리를 못하나? 정말로 고블린 왕이 맞나? 앞으로는 오크라고 하고 다녀라’라고 말할지도 몰랐다.
“멈춰라! 여기가 어디라고 싸움을!”
“저런…”
“아쉽다.”
오크들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아쉬워했다.
모처럼 싸움 구경을 하나 했더니…
“알 만큼 아는 권속들이 무슨 추한 싸움이란 말이냐! 지금 여기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오다이곤은 지팡이로 땅을 쾅쾅 두드리면서 화를 냈다.
새로운 성좌가 나타나서 어비스의 분위기가 뒤숭숭한데 권속들끼리 다투다니.
그 진심이 와닿았는지 황경룡과 이창식은 서로를 노려보는 것을 멈췄다.
“내가 잘못했다. 먼저 온 만큼 넓은 아량으로 창식이를 봐줬어야 했는데.”
“딱히 봐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물론 그런다고 대화가 바로 부드러워지진 않았다.
오다이곤이 골머리를 앓는 사이, 리치 가논바이알이 입을 열었다.
“한심하군. 이런 걸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다니.”
“그래! 여기 이 언데드 놈도 아는 당연한 걸!”
오다이곤은 반색했다.
이 리치한테까지 비난을 들으면 둘도 좀 반성하지 않겠는가.
“나 때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힘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권속들끼리 말로만 다투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아니야!”
오다이곤은 어이가 없어서 외쳤지만 오크들은 환호했다.
“힘으로 증명하라니.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냐. 창식이가 날 이겨본 적이 없는데.”
“얼음 속에 갇히신 채로 그렇게 말하니 정말 겁이 나는군.”
“이건 자체 페널티야 임마! 얼음 속에 있어도 너 정도는 이긴다!”
“그렇게 믿고 싶겠지.”
둘의 다툼에 리치 가논바이알은 매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아주 좋다! 이렇게 된 이상, 어비스의 적들을 누가 더 많이 해치우느냐로 승부를 가리면 되겠군!”
최연승이 옆에 있었다면 뒤통수를 한 대 때렸을 소리였지만, 가논바이알은 진심으로 이 방법이 좋다고 생각했다.
원래 권속들끼리 서로 다투고 찔러야 강한 권속들만 남지 않겠는가.
가논바이알은 이 느슨해진 성좌의 권속들에게 긴장감을 줄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자신의 공도 세우고…
“창식아. 먼저 골라라. 내가 먼저 고르면 다 내 편으로 참가하려고 할 테니까.”
황경룡은 선심을 쓰며 이창식에게 양보했다.
이제 막 최연승의 영역에 찾아 온 이창식과 달리, 황경룡은 오크들과 동고동락하며 나름 오랫동안 지내 온 사이였다.
서로 김치도 담그고 된장찌개도 끓이고 추수도 같이 하고 막걸리도 같이 마신 사이.
이런 끈끈한 정이 있는 만큼 오크들이 다 황경룡의 편을 들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한빌딩에 있는 악마들이야 전투에 직접적으로 나설 수가 없으니 제외하고, 공단의 죄수들도 별 의미가 없으니까 제외하고…
오다이곤이나 가논바이알, 기암골렘이나 도플갱어 왕도 황경룡의 편에 서면 섰지 이창식의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쯤이면 거의 영역의 모든 전력이 황경룡의 편을 든다고 봐야 하는 상황.
황경룡은 그 정도로 잔인하진 않았다. 이창식과 승부를 한다면 정정당당하게 하고 싶었다.
“우린 저 인간 편에 서겠다.”
“나도!”
“…????”
황경룡은 얼음 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오크들이 이창식의 편에 서겠다고 우르르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어, 어째서!? 야! 이 놈들아! 내가 해준 건 다 까먹은 거냐?!”
“미안하다. 황씨. 황씨의 도움은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오크 전사들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싸움은 기동력이 중요하다. 황씨는 얼음 속에 갇혀서 못 움직이잖나.”
“……”
황경룡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배신감까지 안 드는 건 아니었다.
“이런 머리털 없는 짐승들을 내가 믿고 있었다니…!”
“나도 저 인간 편에 서는 게 좋겠군.”
쿵, 쿵-
믿고 있던 다른 권속들도 오크들의 논리에 동의했는지 이창식 편에 섰다.
보고 있던 오다이곤은 황경룡이 안쓰러웠는지 황경룡 옆에 섰다.
“힘내라. 인간. 승부의 세계는 원래 냉혹한 법 아니겠는가.”
“…크흑…! 지구 헌터들 불러오게 해줘…! 불러오면 내가 이긴다고…!”
황경룡은 매우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여기 있는 어비스의 이종족들에게 닿을 리는 없었다.
* * *
“정말 미궁 같은 지형이군.”
-예.
일링가르스는 최연승을 태우고 대수림을 질주하고 있었다.
대수림은 어비스에서도 상당히 희귀한 지형이었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미궁 지역은 어비스에서도 흔치 않은 것이다.
겉은 거대한 숲이지만, 안은 어마어마한 마력이 응축되어 있어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숲 안의 지형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이런 지형은 파악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힘으로든 속도로든 무조건 뚫고 나가야 했다.
-태초부터 있던 숲인 만큼 어비스에서도 가장 깊은 혼돈이 자리 잡고 있는 곳입니다.
“오크들이 열심히 길을 내는 이유를 알겠군.”
-…그런데 주인님.
“?”
-저… 왜 인간으로 위장하고 계시는 겁니까??
일링가르스는 주저주저하다가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성좌께서 인간으로 위장하고 계시다는 것이냐? …아무리 속아주려고 해도 농담이 너무 심하군!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나!
-그게 진실이라면 내가 뒷발로 서서 꼬리를 흔들겠다!
-…내 체면을 생각해서 한 번만 봐다오!
…오죽했으면 이런 굴욕까지 겪었겠는가.
“목적을 위해서지.”
-……
일링가르스는 최연승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성좌씩이나 되는 존재가 목적을 위해 저런 굴욕을 참고 인간으로 변장해 있다니.
오랫동안 살아 온 일링가르스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독한 심계였다.
-대단하십니다. 주인님 같으신 분이 지도하고 계시니, 인간 놈들도 더욱 더 발전할 겁니다.
“내가 딱히 지도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예?? 그러면 어느 누가…?
일링가르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연승 같은 존재가 왕의 역할을 맡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왕을 한단 말인가.
“이야기하면 길어지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앞에 봐라. 지금 똑같은 곳 세 번 돌았다.”
-죄, 죄송합니다.
일링가르스는 정신을 집중하고 속력을 올렸다.
대수림에서 길을 잃지 않고 원하는 곳을 가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했다.
숲의 변덕이 사람을 현혹시키는 걸 버티고, 조그만 변화도 민감하게 눈치 채야 하는 것이다.
‘잘 하고 있겠지.’
쉭쉭 바뀌는 주변의 풍경을 보며 최연승은 오크 대농장에 있을 황경룡과 이창식을 생각했다.
둘 다 어른인 만큼 지금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고 있으리라.
‘그나저나 창식이 형은 정말 괜찮을지 걱정이군.’
사실 적보다 더 걱정인 게 이창식의 능력이었다.
이창식은 한 번 은퇴했던 헌터였다.
헌터도 사람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A급 헌터여도 전성기 때만큼의 실력은 내지 못하게 되는 법.
그런 이창식이 ‘난 할 수 있다’라고 하는 만큼 믿고 맡겼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스탯하고 스킬은 분명 회복이 되어 있긴 했다.’
-실력이 있는 만큼 괜찮을 것 같단다.
-그렇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군.
나태의 여신이 하는 말에 최연승은 안심했다.
-그런데 그 인간이 맡고 있던 클랜은 괜찮은 거니?
-아. 두억시니 클랜을 말하는 거군. 걱정 안 해도 된다.
최연승은 즉답했다.
오기 전에 이창식과 이야기를 해서 클랜을 어떤 식으로 훈련시켜 놓을지 미리 대비를 해놓은 것이다.
이창식이 자리에 없다고 하더라도 클랜 소속 헌터들은 정해진 일정대로 던전을 돌고 공략을 하게 되어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최연승이 인맥이 있는 A급, B급 헌터들을 참가시키기까지 했으니 걱정할 게 전혀 없었다.
-아니, 내가 물어본 건 그 인간들에게 너무 일정이…
-쉽지 않냐고?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나태의 여신. 강해지기 위해서 그 정도는 해야 하니까.
-…아무것도 아니란다.
나태의 여신은 일정이 너무 힘들지 않냐고 말하려다가 포기했다.
어차피 말해봤자 통하지도 않을 테니까!
* * *
칼라스네겐은 나가들을 데리고서 숲 주변을 정찰하고 있었다.
그 때 대수림 안쪽에서 최연승이 일링가르스를 타고 뛰쳐나왔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저희도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출발하기 전 최연승이 받은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이 대수림 인근에서 수상쩍은 적들의 움직임을 감지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권속, 칼라스네겐에게 전권을 부여할 테니 같이 협력해서 적을 쓰러뜨리자고 이 제안합니다.] [이 취해서 쓰러집니다.]‘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성좌가 저렇게 놀고먹어도 되는 게 맞나?’
인간 출신, 그것도 한국인 출신답게 최연승은 놀고먹는 성좌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저래도 되나?
정말 저래도 되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니.
나태의 여신이 던진 말에 최연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 주변에 나타난 수상쩍은 놈들을 찾아보는 게 먼저였다.
“가 보낸 권속일 가능성이 높겠지?”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의 권속이라면, 꼭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후퇴해서 지원을 더 데리고 올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칼라스네겐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중했다.
요리사 성좌의 권속들이 지금 살벌하게 날뛰고 있는 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말이 잘 통하는군.’
최연승은 살짝 안심했다.
칼라스네겐은 어비스의 종족들 중 말이 잘 통하는, 이성적인 편이었다.
나름 수많은 어비스 종족들을 만나 본 만큼 칼라스네겐 정도면 상위 1%의 이성에 속하는 것이다.
“아. 혹시 최연승 헌터께서 공을 세우고 싶으시다면 저도 협력을 고민해보겠습니다만…”
“아니. 나도 굳이 전투를 고집할 생각은 없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연승 헌터께서는 역시 현명하시군요.”
칼라스네겐은 쉿쉿대는 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들었다.
“적들을 추적하기 위해서 내가…”
“사실, 최연승 헌터. 저희 나가들은 추적술의 달인입니다. 아주 작은 온도의 변화도 오랫동안 파악해서 적을 쫓을 수 있지요. 제가 데리고 온 나가 마법사들은 이 추적술의 달인 중에서도 달인인 만큼, 적들의 흔적을 금세 찾아낼 것입니다.”
“…그, 그렇군.”
최연승은 멈칫했다.
왜냐하면 여기 오기 전에 에게 부탁을 했었던 것이다.
-여신님.
-!!!
-제가 부탁을…
-네!!!! 제게 맡기세요!
-…듣고 결정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신은 어찌나 신이 났는지 듣지도 않고 수긍부터 하려고 했다.
미래 예지로 이 주변을 돌아다닌 적들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여신 정도 되는 성좌에게, 이 정도 단서가 있다면 이렇게 짧은 미래를 예측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칼라스네겐과 나가들이 저렇게 준비를 해오자 말을 꺼내기가 미안해졌다.
‘그래도 말을 해야겠군.’
[이 자신은 괜찮다고 최연승을 말립니다.] [그저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이 말합니다.]-그냥 한 번 해주면 안 되겠니?
나태의 여신은 참으로 안쓰럽다는 듯이 최연승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