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porate state tycoon of the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03
제203화
#203. 2021년 SR데이 (2)
가이아 망원경에서 헤일로 1을 포착하기 전부터, SR의 우주 진출은 이미 무수한 의심과 추측의 스택을 쌓고 있었다.
각종 전파 방해 장치와 가림막으로 가렸다고 해도 화성시 서신면의 조선소에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원자재가 들어가고 있었고 달을 비롯한 지구 궤도 곳곳에서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각종 신호가 잡혔다.
또 전 세계적으로 UFO 목격담이 폭증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달 뒷면을 떠다니는 각종 탐사선에서 갑자기 신호가 끊겼다가 몇 시간 후 다시 연결되는 일이 반복되었는데, 유독 지혜의 바다 인근에서 잦았다.
“그래, 뭐, 먼저 몰래 진출할 수도 있지.”
“우리였어도 저렇게 했을 거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는 이러한 SR의 행보를 침묵으로 일관했다.
좀 서운하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아쉬운 건 자신들인데.
하지만 그런 그들도 최근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일이 하나 생겼으니, 바로 자국 내 기업들의 행보였다.
“요즘 기업들이 정부의 권한을 지나치게 넘보려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얼라이언스 협력사입니다.”
“배후에 SR과 성세류가 있는 게 아닐까요?”
기업들, 특히 SR 협력사들의 기업 국가화, 추가로 갑작스레 유행 중인 세류교까지.
어떻게 보면 우주 진출보다 이게 더 큰 문제였다.
“따져야 합니다! 우주 진출부터 기업 국가, 세류교까지 전부!”
“따져요? 성세류 회장에게요?”
“성세류와 SR은 좀 그러니 한국 정부에 따집시다!”
“한국 말입니까? 지금 한국 정부는 SR에 찍소리도 못하는데요?”
“압니다. 그래도 우리 기업들 단속에는 괜찮은 메시지가 될 겁니다.”
“듣자 하니 한국 정부와 SR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우리에게 욕만 먹고 SR에게는 제대로 전달조차 못 할 겁니다.”
“아주 좋은 샌드백이 되겠군요.”
그래서였다. 2021년 SR데이에 몇몇 국가 지도자들이 용사 파티를 꾸려 한국 정부를 추궁한 것은.
대마왕을 잡기 위해선 일단 사천왕부터 잡는 것이 국룰 아니겠는가?
“허허허허, 성세류 회장님이 지금 바로 여기로 오시겠다고 합니다.”
“어, 그게…….”
“제가 미리 여러분의 탄원을 말해 뒀으니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진행하면 됩니다.”
“아니, 그러니깐…….”
하지만 이 국룰이 깨져 버렸다.
아니! 왜! 사천왕이 다짜고짜 마왕부터 소환하냐고?!
프랑스를 비롯한 마왕 토벌 파티는 레벨 업도 하지 못한 상태로 대마왕 성세류를 상대해야만 했다.
몇 분 후, 마왕 기업 SR의 회색 마졸들과 함께 대마왕 성세류가 행사장 중심부로 소환됐다.
새하얀 유니폼 입은 대마왕 성세류와의 면담을 사천왕 문경인은 기어코 해낸 것이다.
“다들 반갑습니다. 이렇게 모인 것은 2017년 SR데이 이후로 처음인가요?”
회색 마졸, 아니, 가디언즈의 엄중한 호위로 성세류와 세계 각국 지도자들 주위에는 짙은 회색 결계가 펼쳐졌다.
“자아, 이렇게 귀한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허심탄회하게 대화들 나눠 보십시오. 허허허허허…….”
사천, 아니, 대통령 문경인은 힘을 다 썼는지 바로 턴을 종료하고는 뒤로 슉 빠졌다.
“역시 SR데이군. 볼거리가 많아.”
그렇게 펼쳐진 세기의 이벤트.
미국 대통령 보 바이든과 얼라이언스 미국 대사 버락 오바마, 일본 총리 등등이 ‘나만 아니면 돼에에~’를 형상화한 얼굴로 이를 구경 중이다.
“아! 일단 민원부터 들어 보겠습니다. 몇몇 국가에서 SR의 행보에 불만이 있다 들었습니다.”
성세류는 이미 들어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내숭을 떨었다.
“……하하하하, 성세류 회장님? 이번 SR데이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SSR, 날이 갈수록 잘생겨지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 SR데이도 참으로 훌륭합니다. 날씨도 좋고요.”
이에, 지목된 나라 정상들은 애써 대화의 주제를 돌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허허허허, 탄원에 어떤 것들이 있었냐면…… 크게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SR에서 몰래 먼저 우주 진출을 한 것에 대한 국제 우주법 위반이 첫 번째고, SR의 해외 협력사들이 최근 벌이고 있는 매우 우려스러운 행보, 이렇게 두 개였습니다. 아! 세류교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였군요.”
턴을 종료했던 문경인이 그사이 마탐이라도 했는지 다시 전장에 난입했다.
“국제 우주법 위반이랑 얼라이언스 협력사들의 행보, 그리고 세류교 이렇게인가요?”
성세류는 파랗게 질린 이들을 향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
“…….”
그들은 침묵으로, 정확히는 입을 뻐끔거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주 진출 사실은 인정합니다. 현재 L2포인트와 달 뒷면에 실험 기지가 있습니다. SR의 다양한 우주 제품들을 테스트하기 위함입니다. 비밀로 한 이유는 보안 때문이라고 해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에 성세류는 쿨하게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 국제 우주법을 어겼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성세류가 사실을 인정하자, 끝끝내 눈치 없던 어느 나라 지도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반중력 엔진 안 받으실 겁니까?”
그 말에 대한 성세류의 대답은 짧았지만 강력했다.
“하하하하하, 그럴 리가요? 저희는 그냥 그러니깐……. 우려! 우려를 표했을 뿐입니다.”
“이건 기존 국제 우주법이 잘못된 거라 봅니다. 슬슬 국제 우주법도 시대에 맞춰 개정해야죠.”
“다음 UN 총회에서 국제 우주법 개정에 표를 던지겠습니다.”
“SR에서 얼라이언스 이사국들을 위해 테스트를 철저히 하는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하하하하!”
“맞습니다. 품질 테스트, 그래! 품질 테스트 같은 거죠. SR의 품질 경영은 세계 제일이니까요.”
성세류의 말, ‘꼬우면 도태되든가?’의 효과는 대단했다.
우주에 대한 문제는 그렇게 순식간에 함락됐다.
“그리고 두 번째 탄원이 뭐였죠? 일부 SR 협력사의 정부 주권 침해였나요? 이건, 각국에서 알아서 하시죠? SR은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 주의입니다.”
이어서 협력사들의 기업 국가화에 대한 성세류의 대답도 나왔다.
알아서 하라는 듯한, 마치 양보에 가까운 성세류의 뉘앙스.
“!!”
각 나라 지도자들의 얼굴이 급격히 환해졌지만.
“알아서 할 수 있다면 말이죠.”
이어지는 차가운 한마디에 침묵 상태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세류교는…… 지금 이 자리에 해당국 당사자가 있……? 아! 인도가 있군요? 모디 총리님,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그러니깐…….”
“없나 보군요?”
“아……!”
“그럼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세 번째 민원은 그냥 개무시로 일축해 버렸다.
“…….”
“…….”
적막과 어색한 분위기가 주변을 채웠다.
“자아, 무거운 얘기는 이쯤 하고, 이번에도 제가 직접 SR데이를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어색해진 분위기를 성세류가 능숙하게 전환한다.
“그나저나 다들 SR데이 선물은 잘들 받으셨습니까?”
“아! 예! 받았습니다.”
성세류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던진 말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한다.
“아이들이 참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할 장난감이지요.”
“장난감보다는 피규어가 더 정확한 뜻입니다.”
“집무실 책상에 두면 두고두고 멋진 자랑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 SR데이 선물은 마지막 날 공개될 우주선을 1,500분의 1로 축소한 피규어였다.
이틀만 지나면 전 세계로 우수수 풀릴 피규어지만, SR데이 선물이 늘 그렇듯 초대받은 자들에게 제공되는 피규어에는 한정판 특유의 기믹이 추가돼 있었다.
그래 봤자 스티커 몇 장이랑 LED 색상 정도 차이지만 원래 수집가들을 이러한 차이점에 환장하는 법.
SR데이 첫날부터 이 한정판 우주선 피규어 관련 경매가 정신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참고로 메타버스에서는 아바타용 신형 우주복이 선물로 제공됐다.
“선물이 마음에 드셨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장담컨대 SR데이 또한 유익하고 즐거우실 겁니다.”
여하튼 이제 행사장 분위기는 완전히 성세류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것은 SR과 NASA가 만든 우주복입니다.”
성세류는 마치 엄마 오리가 새끼 오리 떼를 데리고 다니듯 세계 각국 정상들을 이끌었다.
“기존 우주복과 달리 매우 얇고 활동하기 편하게 디자인되었지요. 가격도 차원이 다를 정도로 내려갔고 생산성은 압도적으로 향상됐습니다. 한번 입어 보실 분 계십니까?”
“내가 한번 입어 보겠습니다, SSR.”
“아! 오바마 대사님!”
“배리 다음엔 제가 입어 보지요.”
“물론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님.”
그 누구도 이 상황에 토를 달지 않았고 그저 조신하게 언터처블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문경인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민국 정부 관료들도 그런 성세류와 세계 정상들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도대체 성세류 회장은 무슨 생각이지?’
성세류의 뒤를 쫓는 그들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냥 막 지른 것인데 이렇게 호응까지 해 줄 줄이야.’
‘지난 총선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진 것은 둘째 치고, 로봇세 통과와 기본소득을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모르진 않을 텐데?’
방금의 ‘대마왕 성세류 소환’은 문경인에겐 일종의 도박이었다.
한국 정부와 SR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지난 총선 이후로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그 과정에서 SR이 반쯤 한국으로부터 독립한 것도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랬기에 몇몇 나라에서 한국 정부에 화풀이하듯 추궁했던 것이다.
“아! 문경인 대통령님, 이쪽으로 오시죠? 개최국 정상께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죠.”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몇몇 국가의 추궁에 빡쳐 누른 통화 버튼이었지만, 의외로 성세류는 받아 줬고 직접 몸소 현장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정부와 화해하자는 제스처는…… 아니야.’
이런 성세류의 유화적인 행동에 몇몇 청와대 관료들은 행복 회로를 돌렸지만, 누구보다 정치적인 문경인은 본질을 명확히 보고 있었다.
‘방금 내 전화에 응한 것은 유희에 가까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경인은 속마음과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허허허, 웃으면서 성세류 곁에 섰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까?’
성세류에게 특히나 궁금한 점.
로봇세와 기본소득이 통과되고, 청와대에서의 대화 내용들을 다 들었음에도 별 반응 없는 SR.
오히려 갈수록 여유로워지고 있는 SR.
그 이유가 문경인과 청와대 관료들은 너무나 궁금했다.
“그으, 성세류 회장님?”
“예?”
결국 문경인은 눈을 딱 감고 질러 보기로 했다.
“올해 SR데이가 끝나면 바로 로봇세와 기본소득이 시행됩니다.”
“그렇지요?”
“많은 혼란이 발생할 거고 그 여파가 SR에도 미칠 텐데, 괜찮겠습니까?”
좋아! 자연스러웠어!
문경인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혼란이 있을 순 있겠죠. 하지만 SR을 향한 우리 국민들의 애정을 저는 믿습니다.”
이에 성세류가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답했다.
“SR의 시뮬레이션의 결과가 긍정적인가 보군요……?”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솔직히 좀 부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인공지능의 시뮬레이션이라고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닙니다. 틀린 경우도 많아요.”
“허허허허, 그렇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까요.”
방금 성세류의 대답이 진담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하나는 확실했다.
‘SR의 시뮬레이션에서 분명 부정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 회장은 이를 애써 부정하고 있어!’
‘성세류는 지금 자만하고 있다!’
‘확증 편향, 자존감 강한 천재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지.’
이는 함께 성세류의 대답을 들은 대한민국 정부 관료들도 비슷했다.
‘원래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깊은 법이거늘.’
‘시민 단체부터 노조, 페미니스트 등등, SR을 증오하는 세력은 엄청나게 깊고 덩치가 커!’
‘무엇보다 네츄럴! 세계적인 반SR 조직은 우리 정부뿐 아니라 세계 각국 정부의 지원을 알음알음 받고 있지.’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엄청난 가능성을 보았다.
‘반SR 세력과 함께 여론을 장악하고, 뒤이어 군과 경찰을 동원하면!’
‘아무리 성세류와 SR이라 해도 항복할 수밖에 없지.’
문경인과 현 정부 관료들은 군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국군은 우리 정부를 지지할 것이다.’
‘우리 정부 때 도입한 첨단 무기가 얼마인데.’
대대로 밀덕 성향이 있던 대통령과 진보 성향 정치인들은 집권하자마자 SR가디언즈의 무기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원자력 잠수함 개발과 미사일 사거리 해제 등 자주 국방에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국방에 대한 관심은 어디까지나 ‘무기’에만 있었다. 이런 첨단 무기를 운용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SR이 우주에 먼저 진출했다고? 괜찮아. 우리도 한국 우주군을 창설했으니깐.’
‘아무리 첨단 무기로 무장했어도 숫자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우월해.’
‘애초에 첨단 무기 운용은 우리 국군도 SR에 뒤처지지 않고!’
‘SR은 자신들이 개발해서 납품한 무기에 역으로 당하는 꼴이 될 것이다!’
군인을 사람으로 안 보는 선입견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예비역들이랑 하급 간부들 불만이 좀 있다고 하지만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니 패스하자.’
‘대신 병사들 복무 일자도 줄여 주고 휴대폰도 쓰게 해 주고 월급도 많이 올려 줬잖아? 이 정도면 된 거지 뭘 더 바라?’
그들에게 군인과 예비역은 국민이 아니었다. 그저 필요하면 슉슉 휘두를 수 있는 검이었다.
그 검이 인격을 품고 있었고 오랜 무시와 박해로 ‘마검’이 되었다는 것을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무수한 동상이몽을 한가득 안고.
2021년 SR데이의 첫날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