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삶이란 투쟁의 연속이다.
타인의 시선 속에 바랄 것 없이 편한 삶이라고 해도 나름의 고민은 있는 법이고, 그렇기에 객체는 각자의 위치에서 투쟁을 이어 나간다.
그것은 아렌 역시 다르지 않았다.
현생의 아렌은 말할 것도 없고, 전생의 아렌 역시 그다지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으니까.
태어나 세상을 인지하고 사고가 굳어지며 뜻을 세우는 그 순간까지 한순간도 투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러한 투쟁을 모두 물리치고 아렌은 위대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쾅!
– 크헉!
“어설프다.”
그렇기에 아렌은 인간이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을 살아온 불멸자를 향해서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남을 괴롭히는 건 모르겠다만 싸움 실력은 그저 그렇군.”
– 네놈!
이리저리 전신이 패이고, 검은 연기를 흘리는 고문전문가가 흉흉한 살기를 아렌에게로 집중했다.
고통의 권능이 잔뜩 실린 악마의 의념은 그 조각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생명체의 심장을 멈춰 버릴 정도였지만, 아렌은 그저 가볍게 손을 저었다.
훅.
문자나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치가 담긴 움직임에 권능마저도 비켜 가고, 그렇게 한가롭게 움직인 손을 악마는 피하지 못했다.
콰직!
– 아아악! 왜! 왜!
수육한 육체를 넘어 본체에까지 이르는 타격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것보다는 지금의 상황이 악마의 정신을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내몰았다.
– 왜 맞지 않는 거냐! 왜 피하지 못하는 거냐!
권능을 각성하고 호각으로 다투던 둘의 차이가 벌어진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악마의 공격에도 몇 번 얻어맞던 아렌이 어느 순간부터 악마의 공격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고, 반대로 악마는 아렌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으니 상황은 점점 불리해져만 간 것이다.
그나마 치명적인 타격은 어찌어찌 방어하거나 피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로 보였으니 더더욱 그랬다.
“태어나기를 강하게 태어났겠지.”
– 뭐?!
“악마 아니더냐. 태어나기를 불멸자로 태어난 축복 받은 자.”
악마에게 축복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창세 이래 아렌이 처음일지도 몰랐다.
일순간 고통마저도 잊게 만드는 황당한 말에 악마가 잠시 멈칫했지만 아렌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너도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나름 노력을 했겠지. 하지만 네가 강하게 태어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렌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고문전문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나는 그저 그랬다.”
쾅!
– 큭!
그 와중에도 아무렇게나 휘두른 주먹이 공간을 넘어 악마의 본신을 타격했다.
“그냥 평범했지.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을 인지했을 때는 부모조차 없었지.”
콰직!
옆구리를 노린 일격에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귀신같이 따라온 공세는 기어코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제법 힘들었다. 몇 번의 행운이 아니었다면 진작 죽었을 거야.”
전생의 아렌은 약자였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약자.
아렌의 말대로 몇 번의 행운과 기연이 없었다면 언제 어디서 죽어 나갔을지도 모르는 인생이었고, 그것은 힘을 넣은 이후에도 여전히 그랬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수련했다.”
우우웅!
아렌의 주위로 수십 개의 빛 덩어리가 떠오르더니만 아렌의 주위를 슬며시 돌다가 일제히 쏘아져 나갔다.
하나하나가 강기를 집약시킨 강환.
거기에 아렌이 깨달은 권능이 듬뿍 담겨 있었으니 악마로서도 가볍게 여기지 못했다.
– 으아아아아!
숫자가 제법 줄은 고문도구들이 일제히 맞서 나갔고, 악마와 초인 사이에 있는 공간이 커다란 폭발과 함께 빛에 휩싸였다.
쿠르르르릉!
“매 순간마다 목숨을 걸지 않은 때가 없었지.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제야 조금 살만해지더군.”
이류 정도 되는 무공을 배우고 강호에 출두해서 필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무수한 일이 있었고, 단 하루라도 편히 쉬어 본 적이 없었으니 제 아무리 치열한 무림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의 고행을 한 이는 흔치 않았다.
– 으아아아아!
강환이 기기묘묘하게 움직이며 고문도구들을 피해 악마의 본체에 작렬했다.
악마의 본체로 파고 들어간 강환이 길쭉해 지더니 이내 거대한 창으로 변해서 악마의 몸을 꿰었다.
이어서 박혀 든 강환도 각자 다른 형태로 변해 악마의 몸을 구속하니 붉게 타오르는 강기로 이루어진 수십 개의 무기가 악마의 몸을 꿰뚫어 허공에 단단히 고정하는 모양이 되었다.
“그렇게 조금 살만해지고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더군.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무공밖에 없었다.”
악마의 뼈로 만든 고문도구들이 먼지가 되어서 사라지고, 아렌의 몸이 느릿하게 유영하더니 악마의 앞에 섰다.
“남은 것이 무공밖에 없으니 그것을 더욱 갈고 닦을 수밖에 없었지.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이더구나.”
세력을 이루고 만금의 부를 쌓았지만 그의 마음에 닿은 것은 없었다.
천하를 울리는 절세의 미녀도 하룻밤의 여흥에 불과했고, 사람의 진심을 알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그의 손에 남은 것은 그 자신이 쌓아올린 무 하나뿐.
오직 집착하는 것은 무공밖에 없었으니 그는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무공을 수련했다.
“제법 재미있었다. 지금도 재미있고. 무공 외에 마음이 가는 것도 생겼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겠지.”
아렌과 악마의 시선이 마주쳤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하급 마물로 오염시킬 만한 힘이 깃들어 있었지만, 아렌은 담담하게 그저 시선을 마주했다.
– ……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
악마는 패배를 직감했다.
처음에 조금 어색했던 권능은 이내 능숙해졌고, 치명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공격들은 권능을 체화시키기 위한 연습이었음을 깨달았다.
괴물.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살아온 악마도 처음 보는 종류의 괴물이었다.
“글쎄. 그냥 이야기 해 주고 싶었다.”
아렌의 손이 느릿하게 움직이더니만 악마의 가슴께에 닿았다.
“최소한 어떤 자에게 당해서 가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
아렌의 그 말에 악마는 이해했다.
불멸자로 태어난 자신과 필멸자로 태어나 반신에까지 도달한 인간이었으니 쌓아온 업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 큭크크크 …… 크하하하하!
아렌의 손이 물살을 가르듯이 악마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어 영적인 공간 저 너머에 있는 악마의 핵을 잡았다.
– 웃기는 놈이구나. 무슨 이야기인가 했더니 잘난 척이냐.
아렌이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악마의 기나긴 생이 끝날 상황이었지만 악마는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고,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 네가 쌓은 힘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라도 바란 거냐! 어차피 티끌 같은 것이 인간의 시간!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가 약해서 진거야!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당당한 악마의 모습에 아렌이 미소 지었다.
“…… 그렇군. 새로운 경지에 접어드니 나도 모르게 감정적이 된 모양이다. 한 수 배웠어.”
아렌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이름을 말해라 악마.”
– 고문전문가다.
악마의 눈에 진지한 빛이 떠올랐다.
이름은 악마의 정체성이자 모든 것.
오직 그것만이 소중하다.
“아렌 드 그라인드다.”
엄숙한 목소리에 세상이 호응했다.
전생의 이름을 버리고 오롯이 아렌으로 살겠다는 선포에 세상이 반응했고, 그것을 느낀 악마가 미소 지었다.
– 그래. 아렌 드 그라인드.
악마의 입가가 일그러지고 눈가에 흉흉한 기색이 가득 떠올랐다.
– 최대한 비참하게 죽기를 바라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마지막 힘을 실은 언령이 저주가 되어서 아렌에게 파고들려 했지만, 아렌의 권능은 단단하기 그지없었으니 아렌은 피식하고 웃었다.
뚝.
둘밖에 듣지 못한 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악마의 신체가 허물어져서 안개로 변했다.
* * *
– 이 녀석이 마지막이군요.
싸늘한 한 마디와 함께 화면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사내가 나타났고, 동시에 검이 그어지며 화면이 암전되었다.
빛살 같은 검격에 영상을 전송해 주던 아티펙트까지 파괴당한 것이고, 화면의 암전과 함께 죽음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제법 넓은 공간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건만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 공간은 마치 무덤 같았다.
“…… 피해상황 보고.”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드라고가 탁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고, 멈춰있던 상황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회수팀 13명중 생존 5인입니다! 현재 빠른 속도로 이탈 중! 지원 인력이 접근 중입니다!”
“메카니에 생포 된 것으로 보이는 요원의 숫자 4인! 정밀 확인 필요합니다!”
“아티펙트 파괴 술식 확인!”
“결계 흔적은 어떻게 됐나?!”
작전 실패에 황망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한 요원들이지만 이내 각자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과연 정예라고 할 만했다.
그래서 드라고는 가슴이 무거웠다.
그런 정예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인재들을 이번 작전으로 잃어버린 것이다.
“기록삭제를 지시하겠습니다. 공식적으로 공안과의 관련은 없을 겁니다.”
루드비히의 말에 드라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일 테지만 공식적인 기록을 말소함으로서 붙잡힌 요원들은 공안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들이 될 것이다.
심증만으로 공안이라는 거대한 집단과 척을 두려 하는 귀족은 없으니 시선만 돌릴 수 있다면 이 또한 흐지부지 넘어갈 것이리라.
“데이터 확보는 완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시그마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수 있을 겁니다.”
드라고의 생각을 읽은 것만 같은 루드비히의 말에 드라고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준비 자체는 끝났으니 오늘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방아쇠만 당기면 제국 각지에서 끝없는 소요가 일어날 것이다.
요원 한 명의 목숨으로 적당한 악마를 소환하고 근처에서 대기시켜 놓고 있던 공안의 대악마부대가 제압, 그 공로를 황제에게 돌려 궁극적으로는 황제를 현인신으로 숭상케 한다는 것이 프로젝트 시그마의 골자였다.
드라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황제는 분명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걸출한 인물이었지만,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
황제에게 정복당하고 복속당한 자들은 둘째 치고, 너무도 독선적인 행보에 제국 내부에도 무수한 적을 만들었으니 황제가 좋아서 칩거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거듭되는 전쟁에 지친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서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황태자는 분명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황제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황위를 잊는 즉시 귀족들과 타협하고 제국의 기조를 변경할 것이 분명했으니 대륙을 통일하고 천년제국을 건국하여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를 이어 가려는 황제의 뜻과는 맞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한 황제와 공안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알파에서 시작되는 프로젝트들이다.
제 각각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목적은 하나.
황제에게 신성을 부여하고 더 없이 강력한 철인으로 만들어 영원히 제국을 통치하게 만드는 것이다.
황제 자신의 결의는 확고했고, 공안들 역시 황제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기꺼이 피를 뒤집어 쓸 각오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