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하인리히를 처리한 헬 마스터는 아르고스와 블랙하운드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반갑게 손을 들어 보였다.
“요! 알, 그동안 잘 지냈어?”
그를 본 아르고스의 표정은 환해졌고, 블랙하운드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30년이 넘는 우정이 쌓여 있었다.
“션은 어땠어?”
“잘 지냈으니 이렇게 무사히 얼굴을 들이밀고 있겠지? 어이, 하인즈. 넌 오랜만에 본 친구한테 그런 표정이 뭐냐.”
“용케 숨이 붙어 있군.”
“그게 친구한테 할 소리냐?”
“못할 건 없지.”
불만이 담긴 볼멘소리에 헬 마스터는 혀를 찼다.
“아무튼 못 하는 소리가 없다니까. 알, 부하 녀석을 잘 좀 가르쳤어야지. 웃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르고스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인즈가 부하라니 농담이 과하잖아.”
“왜 그래, 부하 맞으면서.”
“내가 부하면 너도 부하다.”
“아니, 난 친구. 넌 부하.”
블랙하운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죽고 싶어서 용쓰는 건가?”
“응, 그래 봤자 너한테는 안 죽어.”
“한번 해 볼까.”
“오! 그동안 실력이 좀 늘었나 봐?”
“…….”
티격태격하는 블랙하운드와 헬 마스터를 보며 아르고스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든든한 두 친구가 존재하기에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또한 두 사람이 있기에 리그가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고.
한창 설전을 벌이다가 아르고스가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본 헬 마스터가 질색했다.
“야, 그 표정 짓지 마.”
“이젠 보는 걸로도 그러는 거야?”
“속으로만 간직하면 안 돼?”
“흐뭇해서 그래.”
“난 못 봐 주겠는데.”
몸서리치는 헬 마스터의 말을 블랙하운드가 보태 주었다.
“이번만큼은 션의 말에 동감이다.”
“알았어. 그럼 일 이야기로 들어갈까.”
리그의 삼악이라 불리는 셋은 처음 리그를 세운 당사자들이자, 세계에서 가장 강한 초인인 십대초인의 일원들이다.
그들의 존재만으로 웬만한 강대국을 멸망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본론에 들어가자 블랙하운드와 헬 마스터 모두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하인리히는?”
“내가 처리했어. 까다로운 녀석이라 기프트를 썼고.”
“그럼?”
“다시 떠날 거야.”
“이번에는 같이 들어가길 원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 그래.”
헬 마스터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블랙하운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기프트 발동이 불가능해도 네 힘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래.”
“…….”
침묵하는 아르고스를 달래듯 헬 마스터가 말했다.
“몇 개 흔적을 찾았으니 곧 얻을 수 있을 거야.”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
“그걸 노리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냐? 내가 직접 찾지 않으면 중간에 누가 꿀꺽할걸?”
“그래서 찾을 수는 있고?”
“어, 곧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헬 마스터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신수의 잔해.”
신수의 존재가 남긴 힘. 아르고스는 그것을 얻어 불멸의 힘을 얻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게 해 주는 신수의 잔해는 헬 마스터가 가진 기프트의 부작용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
그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르고스였다.
“꼭 찾으면 좋겠다.”
“찾을 거야. 하필 잘되려고 할 때 초 치는 녀석이 문제지. 그렇다고 친구가 부르는데 안 올 수도 없고.”
“너 없어도 위기는 잘 헤쳐 나갔을 거다.”
“도와줘도 필요 없다는 소릴 듣네.”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그래, 너 잘났다.”
“아무튼.”
헬 마스터는 언짢은 표정으로 블랙하운드에게 물었다.
“그 고자 녀석이지?”
“맞다.”
“내가 기프트 제한만 사라지면 그 고자 자식은 죽여 버려야겠어. 사사건건 아주 귀찮게 군단 말이지.”
“션, 나는 그날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어.”
“노력할게. 아, 그리고. 고자보다 더 까다로운 녀석도 있다며?”
아르고스와 블랙하운드의 시선이 헬 마스터에게 향했다.
“헤드 브레이커, 걔랑 붙지 않은 건 좋은 선택이야. 미친놈은 상종하면 안 돼.”
“하인즈 좀 설득해 줘.”
“알았어.”
히죽 웃은 헬 마스터가 블랙하운드에게 말했다.
“네가 더 약하니 괜히 비비지 말고 내가 신수의 잔해 얻을 때까지 기다려. 날뛸 시기가 곧 올 거니까.”
“…그 전에 네놈부터 죽이고 싶다만.”
“어이쿠 무서워라. 너무 무서우니 난 도망친다. 알, 나중에 보자!”
그 말과 함께 헬 마스터가 자리를 이탈했다.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블랙하운드가 물었다.
“션의 기프트가 완성될 거라 보나?”
“신수의 잔해만 얻으면. 제약 없이 선사할 절대적인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거야.”
“하긴. 아무리 괴물이어도 죽음은 피할 수 없겠지.”
헤드 브레이커를 죽일 수만 있다면.
블랙하운드의 중얼거림에 아르고스도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했다.
* * *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세계 정복이나 세계 지배 같은 건 허황된 망상이라 생각한다.
당장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만 해도 지역을 따지고, 출신을 따지는데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세계를 지배하겠다고? 깃발만 꽂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리그도 아르고스나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지, 범죄 저지르는 빌런 집합소일 뿐이었다.
걔들로 세계 정복을 하겠다고? 마물과 맞서 나름 회복기에 접어든 세계를 말아먹을 소리였다.
그래도 한때 세계 정세를 주도했다는 파티의 능력을 기대하긴 했다.
미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보았으니까.
하지만 막심 게데스에게서 들은 내용은 다분히 기대 이하였다.
-실패했다. 면목이 없다.
“리그 애들이 그렇게 강하냐?”
-강하다. 결정적인 순간 모든 전력을 끌어모을 줄 몰랐던 게 불찰이다.
처음부터 그걸 상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대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제임스 리드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파티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모인 만큼 하나로 힘을 모으기 힘든 구조라고 했지.
막심 게데스가 자기 전력을 최대한 끌어모았지만 실패한 걸로 보는 게 맞다 싶었다.
“파티가 리그보다 전력이 열세인가 봐?”
-잃을 것이 더 많은 건 우리 측이 맞다.
전력을 동원한 리그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파티는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막심 게데스의 이야기였다.
결국 자기 무능을 가리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지만.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한 건 아니니 상관없어.”
-다음에는 만족할 성과를 가져오지.
“가능은 하고?”
-물론이다.
“기대하지.”
막심 게데스와 통화를 마쳤다.
“어떻습니까?”
“제가 들어도 되는 내용이었을까요?”
“상관없습니다. 제 일을 도와주시는데 자세히 알고 계셔야죠.”
“네.”
옆에서 듣고 있던 진세정은 간단한 소감을 내놓았다.
“리그를 없애고 싶은 사자왕의 마음은 진심이네요.”
“진심일 겁니다.”
“네, 하지만 그 파티라는 곳 구성원들의 마음도 똑같을까요?”
“그 말은?”
“파티가 기득권을 대변한다면 적당히 긴장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적의 존재는 굉장히 유용해요. 책임을 전가할 수 있고, 자기들이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해도 합리화시켜 줄 수 있거든요.”
막심 게데스와 파티의 생각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의 목적은 리그의 궤멸이지만 파티의 목적은 리그의 약화일 확률이 높다.
그럴 듯한 얘기로군.
내가 혈종일 때 일부 정치인들이 각성자를 통제하기 위한 법을 몇 개 통과시켰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럼 파티도 잠재적인 적이라고 봐야 하나?
“사자왕에게 힘을 실어 주는 걸로 충분하다고 봐요.”
“그거면 됩니까.”
“네, 그리고 신경을 쓰지 않는 거죠.”
“그게 끝?”
진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리그는 동아시아 세력이 일소되었고, 세력이 겹치는 건 파티니까요. 지켜보다 가끔씩 한 수 보태 주고 생색내는 게 최선이라 생각해요.”
그 말은 즉, 내가 할 일을 하라는 이야기였다.
나도 그게 더 낫다.
“그리고 새로운 영향력 강화 방법을 찾으셨잖아요? 거기에 더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같은 생각이었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 * *
우 아예 쪼와의 만남은 내게 몇 가지 깨달음을 안겨다 주었다.
우선 나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영웅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칠 수 있는 모습은 존중할 가치가 있으나 내가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난 그렇게 살 수 없겠다 싶었다.
종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우 아예 쪼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방법을 정할 수 있었다.
내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바로 초인 강화 프로젝트다.
날 찾아오는 초인들을 개별 면접을 통해 강화시킨다. 그 과정을 통해 겸사겸사 내 영향력도 확장하는 것이다.
실력은 모자라더라도 고군분투하는 초인들이 있는 만큼 그들의 역량 강화는 고스란히 내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 구상을 제임스 리드에게 이야기하니 순순히 동의했다.
“졸라 좋은 방법이야. 하지만 파티나 미국은 좋아하지 않을걸.”
“내가 걔들 눈치 보고 행동해야 되냐?”
“하긴…….”
제임스 리드는 어리석은 질문이었다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아시아 초인들의 역량 강화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거라면서 날 띄워 주었다.
왜 말하는 게 작별 인사 같지?
아니나 다를까, 제임스 리드는 머뭇거리다가 작별을 고했다.
“준호, 나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이번 리그와의 충돌 때문이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먼 곳에서 지켜만 보고 있는 건 내 취향이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로군. 제임스 리드의 두뇌가 아쉽긴 했지만 본인의 의지가 그렇다는 걸 내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스트 마무리 짓고 가지 못해서 미안.”
“힘들다며.”
제임스 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인간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물건이야. 한 번만 사용해도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세 번이 넘어가면 목숨이 위험해져.”
결국 부스트 연구는 거기에서 끝을 맺고 말았다. 애초에 생명력을 기반으로 힘을 증폭시키는 것이기에 더 연구해 봤자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인명을 경시하는 리그다운 물건이고, 단기간 전력 강화를 위해 좋은 물건이다 싶었다.
그 말을 듣고 미련을 버릴 수 있었고.
“그동안 수고했다. 많은 도움이 되었어.”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졸라 미안.”
“미안할 것까지야.”
제임스 리드의 머리를 이용하기 위해 눌러앉혔지만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들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았지.
그리고 난 도움을 잊는 사람이 아니다.
“그동안 수고했고. 네가 원한다면 한 번쯤 도와줄게.”
“진짜?”
“어.”
“내가 미국에서 도움을 요청해도?”
“어.”
“지, 진짜?”
“그럼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겠냐.”
“와! 나 진짜 졸라 놀랐어.”
음.
210cm의 중년 백인이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뭐, 좋아하면 그걸로 된 거겠지.
한결 밝아진 제임스 리드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준호는 처음보다 졸라 많이 바뀌었어.”
“내가?”
“응, 졸라 많이!”
“그런가?”
“처음에는 영락없는 빌런이었어. 리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졸라 빌런!”
이 졸라맨이 호의를 베풀었더니 시비를 터네?
아르고스처럼 빌런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느니 뭐니 떠들면 귀국 기념 교육을 시켜 줄까 싶었지만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훨씬 부드러워졌어.”
“갑자기?”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거야. 준호에겐 그게 졸라 옳은 모습이야.”
반박할 수 없는 말이로군.
나 스스로도 바뀌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막연하게 강해지고 싶었던 최준호가 무분별하게 힘을 탐하다 혈종이 되어 버렸고, 미쳐 버리지 않기 위해 경계하면서 초인으로서 하나씩 이뤄 나가고 있었다.
“졸라 보기 좋아.”
그거 참 다행이군.
그렇게 제임스 리드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멍멍이를 데리고 마물 몇 마리를 사냥했다.
그런데 멍멍이 녀석 성장 속도가 요즘 많이 빠른 거 같던데.
[주인에게 버려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나 봐.]이러다 나중에 집에 못 들어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멍!
멍멍이가 그건 아니란다.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미얀마에 도착한 우 아예 쪼가 나를 은인으로 칭하면서 내가 베푼 선한 영향력을 자기도 이어받아 세계가 평화로워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 아예 쪼가 미얀마로 돌아가고 사흘 뒤 유해 8단계 마물이 습격해 왔는데 그는 전보다 훨씬 압도적인 무위로 마물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우 아예 쪼가 언론에 말하길, 그 이유가 나와의 만남이라고 지목했다.
자기가 죽어라 굴러서 얻은 성과긴 한데, 내 이름까지 언급하니 홍보 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하긴, 기프트가 없는 초인에게 기프트 개방만큼 극적인 효과는 없겠지.
초인이 기프트 개방은 못 했어도 잠재된 기프트를 알 수 있다는 건 앞으로 수련할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자신에 대한 확신은 정신적인 안정감을 부여하고.
날 찾아온 천명국도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우 아예 쪼에게 기프트를 알려 주신 겁니까?”
“예.”
“역시.”
“그게 끝인가요?”
“그렇습니다.”
“괜한 짓 했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요.”
“아닙니다. 저는 초인님이 품은 대의는 굉장히 건강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초인이라면 절대 베풀 수 없는 호의니까요.”
천명국에게 이런 극찬을 듣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다만 제가 묻고 싶은 건 이런 호의가 우 아예 쪼에게만 향할지, 다른 초인이게도 향할지입니다.”
“문의가 많이 들어오나 보네요.”
“연락받느라 업무를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천명국의 말에 의하면 각국 초인들의 문의가 폭주 중이란다.
초인이 강해지기 위해 눈이 뒤집힌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마물의 위협이 점점 거세지는 상황이니 초인의 역량 강화를 위해 레벨 9 테스트 자리를 늘릴 생각입니다.”
“진심이십니까?”
“우 아예 쪼를 보고 느낀 게 많아서. 인간의 선의를 한번 믿어 보려고 합니다.”
인간 모두가 악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정다현 때도 느낀 걸 우 아예 쪼를 보며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선하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명국에게서 저런 눈빛은 처음 받아 본다.
이래서 사람이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건가 싶다.
“그럼 스케줄을 조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여기에 나는 초인 선정에 관한 건 천명국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날 믿어 주고 열심히 해 보겠다는 의욕을 보고 맡겼지만 어째 천명국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진세정은 이게 엄청난 특권이 될 거라 말했는데?
“사방에서 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괴롭힐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다른 분한테 부탁할까요?”
“아닙니다. 정부가 중간에 있어야 잡음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저도 천 실장님이 가장 믿음직하네요.”
“예.”
천명국은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100% 탈이 날 거라고 말했다.
고작 이걸로도 비리가 발생할 수 있나? 비리가 발생하면 그 사람 머리를 부숴 버리면 그만인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들 한다 싶었다.
뭐, 기왕이면 아무도 머리가 부서지지 않으면 좋을 테니까.
“좋은 일이니 기쁜 마음으로 협력하겠습니다. 그럼 일정을 잡는 데 있어 원하시는 부분이 있는지?”
“기왕이면 우리나라와 교류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죠? 해당 국가가 우호적인 스탠스면 좋겠는데요.”
“당연합니다.”
“그걸로 됐습니다.”
“제가 우려되는 부분은 초인의 도덕성입니다.”
천명국이 조심스럽게 말하는 이유는 초인이 혼자거나 없는 국가의 초인일 경우 좋은 말로 초인의 도덕성이 좋다고 보기 힘들었다.
우 아예 쪼가 그만큼 희귀한 케이스였다.
나도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다.
“상관없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모두가 우 아예 쪼처럼 청렴결백하길 바라는 건 과한 기대니까요.”
적당히 세파에 찌든 정도면 나도 눈감아 줄 의향이 있다.
그래야 자기도 적당히 찌든 줄 알고 대어가 걸려들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고 관대하더라.
“일회용이긴 하지만 빌런급 초인이 자기도 자격이 되는 줄 알고 자발적으로 잡혀 주러 오면 그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 나름대로 대비책을 강구해 놓고 있어서요. 실장님도 알고 계셔야겠죠.”
내가 호구도 아니고 갑자기 정의감이 폭발해서 세상을 이롭게 만들겠다는 게 아니다.
“초인이 방문하면 계약서를 하나 쓸 생각입니다.”
“계약서라면?”
“일종의 A/S 계약서죠.”
모든 초인이 기프트를 개방하고 완벽하게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위한 계약서였다.
왜, 그 수술 받으면 동의서 받지 않는가.
그런 거랑 비슷한 거다.
“초인님. 이거 다른 의도가 있는 거 같습니다만.”
역시, 천명국을 속일 수 없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고,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걸 위한 A/S죠.”
가령 이럴 수 있다.
그 전까지 적당히 세파에 물든 초인이 기프트를 개방하고 행동이 빌런급으로 바뀐다면?
난 빌런보다 더 악랄한 녀석의 기프트를 개방해 준 사람이 되지 않는가.
나로 인해 발생한 일이니 당연히 A/S를 해야지.
“제가 뿌린 씨앗은 제가 거둬야죠.”
“초, 초인님 지금 그 말씀은…….”
천명국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 의도가 제대로 전해졌나 보다.
“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초인들이 전부 초심을 가지면 되는 거니까요.”
내가 미치지 않겠다는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초심을 유지하는 게 제일 쉬운 일 아니겠는가?
난 천명국이 안심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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