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로스트 킹덤 (1)
새해가 밝고도 여러 날이 지났다.
청룡의 해를 맞이하는 여러 축제가 있었으나, 그런 열기가 사그라드는 것도 금방이다.
보통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그렇다.
해가 넘어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극적인 변화를 맞는 법은 없단 말이다.
그런 이유로 새해의 열기는 금방 잊혔고, 사람들이 본래의 삶으로 완전히 돌아갔다.
그런 때의 이야기였다.
로스트 킹덤의 최종 출시 일자가 확정되고, 그와 관련하여 업계의 폭풍이 몰아친 것은.
『우리노견뽀삐 : 드디어!!!마침내!!!
끝까지 출시 일자를 감추더니 이렇게 갑작스러울 줄은 몰랐네요!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기분 좋은 충격이었습니다!』
2월 11일.
최종 확정된 로스트 킹덤의 출시일이었다.
사실 일반적으로는 게임의 출시를 한 달 앞두고 확정 짓는 경우는 잘 없었으나 그런 특이성도 ‘발할라의 루소’라는 이름 앞에 있을 만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무렴, 업계 부동의 1위, 살아있는 전설이 바로 그인 데다 마지막 게임 출시 이후 10년간 이어온 긴 침묵을 끝내고 돌아온 것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니던가.
예약 구매 페이지는 공개 첫날 터져버렸다.
로스트 킹덤에 관한 관심도가 너무 커진 탓에 업계의 여타 이슈들은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라면 아예 언급도 되지 못했다.
이것은 연호가 알던 전생의 사건들이 그대로… 아니, 전생보다 더한 파급력을 자랑하는 일이었다.
전생 당시 기록은 판매 첫 주 차에 300만 장.
이번이 그때보다 덜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도 있었다.
아니, 높은 확률로 전생보다 큰 숫자가 나올 것이다.
누구도 루소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누구도 로스트 킹덤의 작품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것이 루소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커리어의 결과물이었다.
『방배동피의군주 : 진짜 너무 기대된다….
로드 투 하르신 이후로 거의 10년 언저리 아닌가? 그게 헬릭3 공개될 쯤 나왔던 게임이잖아.
이번엔 진짜 아껴 먹어야지….
헬릭5기다림 : 안 아껴먹어도 될듯ㅋㅋㅋ 풀린 정보들 보니까 볼륨 말도 안 되던데
사축커검사 : 엠바고 어제 풀렸었음. 걍 평가부터 끝판왕 냄새 풀풀 나드라ㅋㅋ』
공격적이고 무식하기 그지없는 마케팅은 결국 성공했다.
모두가 오로지 로스트 킹덤 하나만을 기다리는, 그런 한 달이었다.
그리고 세상일이란 게 그랬다.
얼마나 긴 기다림이든, 일단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끝은 온다.
어느덧 2월 10일.
로스트 킹덤은 업계를 광란의 장으로 만들며 출시 하루 전날까지 도달했다.
* * *
아직 겨울이 한창이다.
창밖으로는 가로등의 불빛 너머로 눈이 소복이 쌓인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숲이나 산, 바다가 보이면 훨씬 더 감성적인 광경이었겠으나, 안타깝게도 도심지에 살며 누리기엔 너무 사치스러운 것들이다.
뜨겁게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별스러운 생각이 다 들어 집안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사실 별달리 구경할 게 있지도 않았다.
애초에 나라는 인종이 집에 잘 붙어있는 사람도 아닌 데다가, 무언가를 장식할 바에 차라리 그 공간을 수집해 둔 게임 패키지 전시대로 쓰는 인간이 아니던가.
그나마 티비, 스피커, 비싼 돈을 들여서 산 소파나 탁자 따위가 봐줄 만한 물건의 끝이다.
그조차도 결국은 게임에 필요한 기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게임과 수면으로 제한된다고 봐도 될 터다.
…아, 그나마 게임이 아닌 장식 하나가 비교적 최근에 더해지긴 했다.
티비 아래 선반에 놓인 액자였다.
액자엔 트리를 배경으로 나와 한서림과 조아윤이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는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묘하게, 왜인지 참 마음에 들어 그 사진을 프린트 해 액자에 담아뒀다.
그리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이 사진에 꽤 자주 눈길을 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스스로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려 했으나 알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그저 둘 중 누구 하나를 골라 나머지 하나를 슬프게 하는 일이 싫다고.
이렇게 계속 사이가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만다는 것.
그것이 가능할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불가능하다 한들 당장 내가 수긍하진 것이다.
인간은 자기 방어기제가 아주 강한 동물이고, 나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않으니까.
상념이 깊어지자 또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한숨을 내쉬었다.
구경거리가 저 액자밖에 없어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 까닭이다.
‘…괜히 큰 집으로 왔어.’
매번 그 생각을 한다.
혼자 살기엔 너무 크고 사치스러운 집을 구해버렸다고.
재테크 개념으로 산 집이건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회사가 너무 커져 집테크를 할 필요가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차라리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여, 시계를 확인했다.
‘23시 30분.’
30분 뒤면 시작이다.
로스트 킹덤이 출시되는 시간.
그 사실을 되새기자 다행스럽게도 직전까지의 여러 상념이 다 밀려났다.
로스트 킹덤은 내게 그 정도로 큰 의미가 있는 게임이었다.
업무적으로도 내 삶의 질적으로도 말이다.
자리에 앉았다.
패드를 손에 쥐고 멍하니 아직 열리지 않은 화면을 보며 지난날을 회고하고, 지금과 비교했다.
‘많이 바뀌었네.’
전생의 나는 게임 회사의 일개 팀장이었다.
하는 일마다 애매한 성적이나 남기는 천덕꾸러기였으며, 어디 가서 디렉터란 명함 하나 내밀기 힘든 일개 회사원이었다.
그 시절의 내게 루소는, 그리고 로스트 킹덤은 너무 먼 꿈이었다.
닿고 싶다는 생각조차 실례라고 느껴지는 또 다른 세계였다.
한데 지금은 다르다.
회귀라는 기적으로부터 다시 쓴 나의 여정은 대학생 인디 개발자, 국내 콘솔 게임계의 선두주자, 그리고 GOTY 사냥꾼까지 왔다.
루소와 같은 비교선상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루소가 로스트 킹덤의 경쟁 상대로 지목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찌나 큰 변화인가.
하나, 본질적으로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시간을 돌렸다 한들 나는 게임이 좋아 거기에 미쳐있는 인간이었고, 내 손으로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짓고 싶어 하는 별종이었고, 그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 모든 여정과 변화는 남들은 갖지 못한 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물론, 한없이 고개를 낮추고만 있을 생각도 없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나는 일평생 게임을 고민하며 지냈던 내 모든 날이 바로 그 준비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 길의 목표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올려다 봤고, 마주 보게 됐고, 이젠 넘어서야 할 사람의 카드다.
팬심을 접어뒀다.
개발자로서의 시각도 접어뒀다.
리와인드의 총괄 디렉터라는 명함도 넣어뒀다.
그저 한 명의 게이머로서 훗날 출시될 헬릭5와 이 게임 중 하나의 손을 든다면 누구의 것을 들 것인지.
순수하게 이 게임이 내게 재미를 주는지만 볼 생각으로, 그렇게.
[press to start]나는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재밌네.’
로스트 킹덤은 역시 재밌다.
내가 살아생전 해온 어떤 게임보다 더.
* * *
로스트 킹덤은 겉으로 보기엔 그리 특별하거나 대단한 느낌을 주진 않았다.
도리어 진부하다거나 고전적이라는 평가가 어울리는 게임이었다.
그럴 수밖에, 게임은 망국 최후의 기사인 주인공을 내세운다.
시대는 전쟁 이후를 다루며, 메인 서사는 충심 깊은 주인공이 나라를 잊지 않고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국가 재건에 성공하는 내용.
한데 그 게임이 왜 시대를 열광시켰는가.
그 이유를 파악하려면 디테일을 봐야 했다.
첫째가 클리셰 비틀기다.
고전적인 서사 배경을 내세우며 ‘수인’이라는 설정을 더한 것.
그로 하여금 배경, 인물, 캐릭터의 설정을 고전에서 비틀어 버리는 것.
최후의 기사인 주인공은 사슴 수인이다.
그런 만큼 고고하고 우아하며 때로는 초라할 때가 있었다.
그걸 아트의 깊이로 더욱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게임도 결국 시각적 자극이 유효한 장르인 만큼, 현대적이고 클리셰 파괴적인 여러 미술적 해석이 고전적인 플롯을 새로움으로 탈바꿈시켰다.
둘째로 컨텐츠의 방대함.
로스크 킹덤은 메인 컨텐츠 외에도 수많은 서브 컨텐츠가 존재했다.
단순한 서브 퀘스트부터 해서, 미니 게임이나 탐험 컨텐츠까지.
게임에 구현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구현했다는 걸 시작 직후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접근성 또한 훌륭하다.
하나, 앞의 두 장점은 결국 하나의 목적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한 장작에 불과했다.
로스트 킹덤이라는 게임이 한 해를 다 휩쓸어 먹고 그 후 몇 년 동안 따라올 게임이 없었다 평해졌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야기’다.
인 게임 내의 컨텐츠, npc, 그리고 서브 퀘스트와 여러 탐험 컨텐츠 속 이스터 에그에 일관적으로 녹아 있는 ‘세계관 속 이야기’가 그 게임의 흡입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오픈 월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던가.
바로 유저로 하여금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로스트 킹덤은 모든 서사를 ‘세계관 녹여내기’라는 과제의 수행을 위해 소모하며 한순간도 그 세계관에서 유저가 떨어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의문은 그 방법에 관한 것.
본능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이 서사를 유저의 가슴에 새기는 방법으로, 로스트 킹덤은 가장 단순하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너를 증오해. 비참하게 살아남은 주제에 홀로 고고하려는 사슴아.]화면 너머로 쥐 수인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주인공인 사슴 기사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눈을 감았다.
망국의 백성이었던 자였고, 주인공이 지켜야했던 자였다.
서브 퀘스트 중 하나다.
주인공이 노예가 된 쥐 수인을 탈출시키려다 발각되어 실패하며 마무리되는 이야기.
처음엔 주인공을 영웅으로 보던 쥐 수인이 점점 그를 원망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시 봐도 좋네. 여기는.’
로스트 킹덤은 이런 입체적인 npc 캐릭터를 정말 수도 없이 만들어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주인공의 입장을 다른 캐릭터로 유저에게 새겨버리는 것이다.
개발자로서 보면 노가다도 이런 노가다가 없다.
각자 다른 수십, 수백 개의 캐릭터를 개성 있게 설정해, 그들의 서브 퀘스트를 하나하나 다 만든다.
그걸 게임 내에 삽입하고 유저가 취사선택해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 후처리까지.
거기서 끝나느냐?
아니다.
로스트 킹덤은 오픈 월드의 자유도를 극한으로 활용했다.
내가 헬릭5에서 기획하는 것처럼, 로스트 킹덤은 유저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향에 따라 NPC들의 태도나 게임 내 상황에 변동이 생긴다.
그 변동은 갈수록 커지다가, 끝끝내 엔딩 분기점에까지 영향을 준다.
이런 일을 가능케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들였을지는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렇기에 로스트 킹덤이 더욱 경악스러웠다.
문득, 이 게임과 정면으로 경쟁해야 하는 내 처지가 떠오른다.
‘지난 생보다 더 방대해졌어.’
이길 수 있는가.
그걸 한참이나 고민했고, 이윽고 그런 결론을 냈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