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38)
#38화
구상을 끝냈으면 이제는 실물 구현이다.
슬슬 어려운 국면에 봉착한다고 보면 된다.
조금 극단적으로 비유하길, 구상과 구현은 어린아이의 ‘난 대통령이 될래요!’라는 꿈과 그것의 실현 가능성만큼의 간극이 존재하는 일이었다.
모델링 단계부터 간수의 기믹, 그리고 난이도 조절과 보스전 진행방식까지 신경 써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하나씩 짚고 넘어가자면 그랬다.
‘모델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정치 경제학과로 진학하는 정도의 문제다.
애초에 이미 전작으로 컨셉을 완성해둔 캐릭터다.
모델링에서 주의할 점은 두 가지, 도트 SD 캐릭터를 3D로 구현하면서 따라올 이질감을 지울 것, 또 하나가 간수 특유의 삐걱이는 모션을 재현할 것.
사실상 아트팀 자체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인 만큼 나는 다른 쪽에 더 신경 쓰기로 했다.
이르길 정치 경제학과에 진학한 아이가 정계에 입문하는 문제다.
다름 아닌 밸런싱 및 기믹 구현.
‘전작 주인공이야.’
그게 꽤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전작을 플레이한 유저들··· 그러니까 헬릭의 코어 팬층에겐 어쩌면 2의 주인공인 앨리스보다 더욱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간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애정은 곧 분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유저들은 이미 알려진 정보와 제작사 측에서 제공한 정보를 엮어 간수의 설정 하나를 확실히 이미지화했다.
『간수가 지옥에서 제일 쎈 거 아닌가? 사실 스토리적으로만 보면 모든 죄수를 죽이는 고문 전문가잖아.』
실제로 맞는 말이다.
내가 본 지옥을 통틀어서도 간수는 손에 꼽힐 정도로 강했다.
이유야 많다.
처음부터 지옥에 속했기 때문에, 그리고 소멸을 모르기 때문에.
영원이라는 시간에 관한 아득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감하기 때문에.
간수는 내가 아는 모든 상황에서 단 한 번도 패배를 겪은 일이 없었다.
‘그런 간수가 적으로 나와야 해. 압도적이어야 한단 말이지.’
한데 간수가 너무 쉽게 클리어되어 봐라. 그것은 캐릭터의 붕괴를 일으킨다.
반대로 너무 어렵다?
‘그것대로 문제지.’
이건 게임이다.
클리어라는 목표치를 향해 달려 나가는 놀이임으로 절대다수의 유저가 클리어할 수 있는 적절한 난이도를 선택해야 한다.
한데 설정을 지키겠다고 난이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봐라.
게임은 망한다.
클리어라는 목표점 앞에 벽을 세우는 일이니까.
‘곤란해.’
사실 전작의 주인공을 끌고 온다는 것은 개발 난이도를 배로 올려버리는 하드코어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알면서도 한 것이다.
더 재밌을 수 있는 방향, 그게 나의 개발에서 가장 우선되는 과제니까.
다행히 밸런싱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헬릭의 설정을 이용해 보자.’
단편적인 정보로 유추할 수 있는, 나비의 승리에 필요한 ‘개연성’을 쥐여주면 된다.
‘간수는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 스타일과 무력이 달라져.’
모든 헬릭이 그랬고, 앞으로의 헬릭도 그럴 것이다.
그 점에서 착안하여 간수의 무기를 설정하는 것이다.
‘실톱.’
헬릭1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받는 기본무기.
간수가 그걸 들고 오면 어떨까.
왜, 고작 여자 둘 잡겠다고 최종 루트의 무기를 쓰진 않을 것 아닌가?
그리한다면 확실히 개연성적 밸런싱이 된다.
고작 죄수에 불과한 여인이 간수와 비벼볼 일말의 가능성이 생긴단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죄수와 간수다.
그 극적인 우열을 뒤집을 수는 없다.
애초에 간수가 실톱 하나 들고 왔다가 여인에게 패배한다면 ‘방심맨’ 따위의 우스꽝스러운 밈이 들러붙지 않겠나?
그러니 전투의 방향성을 달리 제시하는 것이다.
‘타임 어택.’
이길 수 없는 강적을 상대로 일정 시간 동안 물고 늘어진다.
장점으론 자식을 지키는 어머니의 처절함을 나타낼 수 있다.
하나, 단점으론 버티기 하나만을 기믹으로 뒀다간 ‘시간 내도록 간수를 피해 다닌다’라는 선택지가 생겨버린다는 것이다.
두 번째가 그래서 필요하다.
‘기믹의 파훼.’
특정 분기마다 진행되는 간수의 패턴을 파훼하여야 한다.
파훼하지 못하면 즉사, 리트라이로 넘겨버리는 것이다.
‘···괜찮은데?’
자세한 사항은 폴리곤 모델을 세워 구현해봐야겠지만 이렇게 한다면 긴장감과 서사를 모두 충족하는 형태로 보스전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달리 말해, 간수라는 요소를 넣으며 변할 엔딩의 깔끔한 봉합이 가능하다.
상상해보자.
연이어진 나비와 간수의 전투, 간수는 굳건히 같은 자리에 서 있지만 나비는 기믹을 파훼해 나갈수록 몸의 균열이 극심해진다.
마지막 패턴을 파훼하는 순간이면 나비의 팔은 이미 조각조각 떨어져 내린 상태가 될 터.
그 순간, 황금색 문이 완전히 사라진다.
두 사람이 그것을 확인한다.
나비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쓰러진다.
딸을 지킨다는 목적을 완수했으므로.
무너져내리며 죽는 그 순간까지 문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웃는다.
그렇게 한마디.
-···잘 가.
직후 가루가 되어 밀려 들어오는 파도에 나비는 휩쓸려 사라질 테다.
목표한 죄인이 죽자 간수는 무기를 수습하며 뒤돌아선다.
쏴아아아―
파도 소리가 일 것이다.
무엇도 남지 않은 해변이 화면에 비치고, 그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겠지.
BGM을 깔아두자. 조아윤에게 서정적인 음악을 부탁하는 것이다.
엔딩을 여운을 곱씹고 나면 다음 회차다.
구성이 좋다.
2회차는 나비의 정체를 알고 스토리를 보는 것인 만큼 나비의 대사, 행동, 그리고 행동 기전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
‘이제 인 게임 내의 재미를 생각해야지.’
서사는 이렇게 완성한다 한들 게임은 유저가 놓지 않는 한 영원히 이어진다.
다 회차 플레이의 변경점을 둬 보자.
그리고,
‘변태들을 위한 선물이 있어야지.’
최종보스전의 히든 루트.
전작의 캔서 자이언트 때처럼, 이번에도 같은 것을 만들어둬도 좋을 것이다.
아무렴, 이스터에그는 게임의 또 다른 재미이지 않던가.
곧장 그에 관한 구상을 시작했다.
* * *
어느새 11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가을이 다 지나가고 학교는 기말고사 준비로 한창인 시기.
조금 더 넓게,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면 ‘그래, 이땐 이랬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2010년의 어느 날이다.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꺄하하핳! 대애박! 완전 똑같애!”
“명규명규 오빠 멋지다!”
사무실 한구석에선 명규 형이 반짝이 츄리닝을 입은 채로 광대놀음을 하고 있다.
아직 공중파 미디어가 우뚝 서 있는 시대, 저렇듯 잘 나가는 드라마 하나가 나오면 세상은 어딜 가나 그 드라마 이야기로 들썩거렸다.
이 시기도 그랬다.
반짝이 츄리닝을 입은 재벌 3세와 흙수저 여주인공의 로맨스였나, 한때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명규명규 오빠! 그거 해줘요! 그거!”
“궈, 권라임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빠하하핳!”
많은 생각이 든다.
정말··· 너무 많은 생각이 든다.
‘아! 명규 형···!’
하지만 참았다.
명규 형은 행복해 보였으니까.
사무실 다른 구석을 봤다.
이제야 스마트폰에 입문한 한서림이 가전제품 하나는 튼튼하게 만들기로 유명한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휙휙 조작하며 감을 익히고 있었다.
뭘 하나 봤더니 또 커뮤니티다.
질리지도 않는가 보다.
“···.”
우리 사무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문득 생각이 들었고, 그때 조아윤이 입장했다.
“아, 안녕하세요···!”
하고 문을 연 순간.
덜컥―
조아윤과 명규형의 몸이 동시에 멎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똑같은 반짝이 츄리닝을 입고 있었으므로.
“···.”
“···.”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제 옷을 바라봤다.
이내 다시 서로를 향하는 눈, 차마 다 형용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게 보인다.
그나마 보이는 것은 당황, 뒤로 이어진 충격과 이윽고 떠오르는 거부감 및 절망··· 저것은 자괴감일까?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거울 치료를 당하고 있단 말이다.
“응? 뭐야, 둘이 옷 맞췄어?”
커뮤니티에 빠져있던 한서림이 눈치 없이 뒷북을 쳤다.
조아윤이 스르륵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약 10분 뒤, 다시 돌아온 조아윤의 복장은 평시의 개구리색 츄리닝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명규형도 반짝이 츄리닝을 벗었다.
오늘 티셔츠엔 염소와 늑대가 서로를 물어뜯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회의실은 초상집 분위기, 다만 호들갑 듀오가 꺽꺽 웃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회의 시작하자.”
이만큼 놀았으면 됐지.
학교 동아리도 아니고(물론 동아리로 시작하긴 했지만) 해프닝이 일에 지장을 주는 건 안 될 말이다.
다행히 팀원들도 금방 기색을 수습했다.
명규 형이랑 조아윤만 빼고.
아무튼,
“슬슬 시작해야해.”
“뭘요?”
“뭐긴.”
프로토타입 개발은 이제 거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꽤 골머리를 썩였던 최종보스까지 게임은 프로그래밍 단계의 일과 사운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부턴 발매 초읽기 시기.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겠는가.
“마케팅 들어가야지.”
홍보다.
‘우리 게임 나와요. 우리 게임 사주세요.’ 하고 온 세상에 상품을 알릴 때가 온 것이다.
또한 홍보 마케팅이란 것이 그렇다.
가장 기본, 그리고 좋은 마케팅은 상품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게임으로 치면···.
“우리 트레일러 만들어야 해.”
홍보 트레일러.
헬릭1을 만들 때는 그리 큰 지분을 갖지 못했던, 덩치가 불어난 이제야 본격적인 힘을 가지게 될 홍보 수단.
“아트 팀은 1차 모델링 끝나서 할 일 적지? 한 달 안에 만들어보자.”
곧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다.
즉, 헬릭2를 기다려온 유저들에게 산타가 되어줄 시간이었다.
* * *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온 세상에 캐럴이 가득 울려 퍼졌다.
거리는 어딜 가도 LED등을 빛내는 트리가 가득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따뜻한 방구석에서 그것을 바라보면 참으로 마음이 포근해질 것이다.
실제로, 방구석에서 그런 포근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잡담)스윗블엘남38 : 크리스마스,,, 저도 곧 아홉수네요,,,^^
(게임)S2뽀삐S2 :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따뜻한 게임 추천!
(게임)악의종복김갑수 : 아이원 길드원 모집한다!
(잡담)T없이맑은 : 윗글 종겜 커뮤에서 뭐함? 느그 홈피로 꺼지셈ㅡㅡ
(잡담)헬릭2기다림 : 기다림 381일째, 날씨 추움.
(잡담)z존한수 : 아! 외롭다!』
말해 뭐할까, 게임 커뮤니티의 고인물 유저들이었다.
이런 날조차 전자 세계를 살아가는 메타버스의 선구주자들.
놀러 나갈 시간도 아깝다.
정확히는, 놀러 나갈 거리가 없다.
왜냐? 약속이 없으니까!
모두가 ‘난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개중 괜찮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었다.
오늘따라 글을 올리지 않는 몇몇 유저를 찾는 목소리가 그랬다.
『(잡담)z존한수 : 꽃재희랑 방배동 어디감…』
···아무튼 그런 날이었다.
오늘도 평화로운 커뮤니티, 대부분의 잡담글과 몇몇 영양가 있는 게임의 소식글이 한창 리젠되는 와중이었다.
그것은 그런 순간에 올라왔다.
정확히 저녁 6시였다.
『(홍보)서림서림 : 헬릭2 트레일러입니다!』
누군가는 간절히 기다렸던 게임의 트레일러 영상이었다.
『
헬릭2기다림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T없이맑은 : 오
S2뽀삐S2 : 헉! 맛있게 먹겠습니다!』
글에는 링크가 달려 있었다.
아직 유명하지 않은 빨간 아이콘을 가진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였다.
다만 그 커뮤니티뿐만 아니었다.
북미 서버의 커뮤니티도 같은 게시글이 올라왔고, 수많은 유저가 링크를 타고 5분 남짓한 트레일러 영상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영상이 시작됐다.
[꺄아아아악!]이젠 시그니처 사운드로 굳어진 여인의 비명소리.
동시에 [STUDIO REWIND]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쏴아아아―
파도 소리를 시작으로 영상은 해변을 비춘다.
한 소녀와 그녀에게 날아드는 나비의 모습이 드리워진다.
몽환적인 만남, 나비가 소녀의 손끝에 내려앉는 순간 현악기의 날 선 소음이 BGM으로 깔린다.
둥, 둥, 북소리가 박자감을 더한다.
소녀가 떠난다.
풍경이 변한다.
먼저 유토피아, 이교도, 그리고 거대한 신이 존재하는 화원.
쨍그랑!
소리와 함께 변한 풍경은 보라색, 착시를 일으키는 환영 속, 일그러진 인간의 덩어리.
푸화악!
이어서 검은 땅, 메마른 인간들, 그리고 뼛골이 드러날 정도로 말랐음에도 배만 부풀어 오른 거인.
쩌저적!
고요하게 재가 내려앉은 평원, 땅 위로 솟아있는 것은 가시를 닮은 수많은 창, 그 꼭대기에 앉아있는 것은, 수십 개의 창에 몸이 꿰뚫린 산양의 머리를 가진 인간.
빠각!
파열음을 끝으로 고조된 음악이 잦아든다.
쏴아아아―
다시 한번 화면은 해변을 비춘다.
구름이 달빛을 가리고, 파도를 막아서는 황금색 문이 오롯이 존재하는 곳에서.
사박―
모래를 밟는 소리가 인다.
사박― 사박―
빠르지도 느릿하지도 않게, 점점 소음을 키운다.
여유로운 듯, 공허한 듯 파도 소리와 발소리만이 정적을 일깨운다.
시점이 하늘을 향한다.
달빛을 가리던 구름이 걷힌다.
그 순간이었다.
스릉―
께름칙한 쇳소리.
화면이 다시금 땅을 비춘다.
모래사장에 푹 박혀 있는 창백하게 질린 발을.
앵글이 위로 올라가며 검은색의 넝마 수의를, 또 올라가 목덜미를, 구름의 형상을 한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며 드러나는 얼굴을.
그렇게, 꿰매진 눈과 입, 잘려 나간 코, 못 박힌 귀와 창백하게 질려 마비된 푸른 피부를.
끼긱―
순간적으로, 실톱을 든 간수의 형상이 드러난다.
쿵!
화면이 암전된다.
[Hellic2 : Hell Of Alice]붉은색으로 드리워진 제목과 함께, 영상이 끝이 났다.
첫 댓글이 달렸다.
『Fuck?』
기념비적 댓글은 욕설이었다.
트레일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