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지옥을 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옥에 속한 존재뿐이다.
그것은 내가 관측했던 모든 지옥에서 공통으로 적용된 진리였다.
그러니, 이 또한 당연한 결과였다.
―뒤를 보시오!
기동력을 잃은 군인이 외쳤다.
전쟁사는 야만인의 등 뒤에서 도끼를 내리찍고 있었다.
꽈직!
―으, 우워어어어!!!
야만인이 고통을 감내하며 포효했으나 의미 없는 울부짖음이었다.
반격하는 그의 도끼보다, 전쟁사의 발걸음이 더욱 빨랐기 때문이었다.
마치 늑대의 몰이사냥을 연상케 하는 움직임이었다.
전쟁사는 수많은 무기를 그 품속에 가지고 있을 터임에도, 오로지 네 명의 순례자들이 쥐고 있는 것과 같은 무기만을 사용했다.
또한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급소를 피해 공격하는 등 농락에 가까운 행위를 했다.
그 일방적인 폭력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안 돼.’
저건 천만번을 도전해도 정면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후퇴해라!
스파르탄이 외쳤다.
하나, 그 또한 공허한 외침이었다.
저들이 들어온 입구는 이미 굳게 닫혀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인을 부축하며 문까지 후퇴했던 성기사는 말했다.
―문이 열리지 않소!
그 순간 그들의 안색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성기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이오···!
그는 전쟁사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조차 힘든 듯했다.
얼굴 위로 절망보다 더 진하게 배어 있는 것은 배신감이었다.
―무엇을 위한 지옥이오! 당신은 대체 우리가 어찌하길 바라는 것이오!
되새기게 되는 것은 이곳에 들기 전 그가 했던 말이었다.
그 순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던 성직자의 미소가, 지금은 배신감에 절여져 일그러져 있었다.
―으아아아!!!
그가 괴성을 지르며 전쟁사에게 달려들었다.
푸욱―
그렇게 그가 죽었다.
전쟁사의 손바닥에서 튀어나온 검은 정확히 성기사의 심장을 뚫었다.
그가 죽음을 무릅쓰며 찔러넣은 검은 삼켜지듯 부드럽게 전쟁사의 몸 안으로 파묻히기 시작했다.
―떽떽이!
야만인이 쿵쿵 달려 성기사를 수습하려 했다.
하나, 성기사의 눈빛은 이미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빠져라! 위험해!
스파르탄의 목소리는 야만인에게 닿지 않았다.
쑤욱, 불쾌하고 끈적한 소리와 함께 도끼 또한 전쟁사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본체인 무기가 삼켜진 그들에게 무기를 빼앗기는 일은 죽음과도 다를 바 없던 것이다.
다음은 스파르탄이었다.
야만인의 허망한 죽음에 일순 넋이 빠진 그의 앞으로 전쟁사가 나타났다.
―···아, 썩을.
그의 유언이었다.
쑤욱, 소리와 함께 스파르탄의 창과 방패도 전쟁사에 삼켜졌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소화에 시간이 걸리는 것인지, 검과 도끼, 창과 방패는 전쟁사의 몸에 반쯤 박힌 채로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군인은 그것을 발견하며 말했다.
―빠져나오시게! 자네들은 할 수 있지 않나!
이미 총알이 박혀 걷지 못하는 몸일진대 그는 벌벌 떨며 일어났다.
―고작 하나일세! 우리가 이길 수···.
우뚝, 군인의 말이 멎었다.
그는 그제야 무언가를 눈치챈 듯, 떨리는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봤다.
이내 튀어나오는 것은 허탈한 미소였다.
―···그랬던 건가.
어두운 신전 내부, 군인의 시선을 따라간 끝자락에서 나 또한 그가 발견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린 유해의 흔적들이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선은 이윽고 전쟁사를 향했다.
―···선배들이셨군. 이런 결말이었던 거였어.
그가 드디어 전쟁사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했다.
전쟁사는 느릿하게 걸어 군인의 코앞에 당도했다.
무언가 행동을 더 하지는 않았다.
가만 서 있는 전쟁사는 군인에게 유언을 종용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군인의 얼굴 위로 슬픔이 떠올랐다.
―결국 답은 찾지 못했군. 무엇이 그리도 큰 죄였는지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을 모양이오.
전쟁사는 그제야 움직여, 군인의 총을 쥐곤 제 뱃속으로 박아넣었다.
총은 진흙을 파고들 듯 부드럽게 빨려 들어갔다.
―···.
그렇게 군인의 육신이 쓰러졌다.
나만이 남았다.
나는 아직 소화하지 못한 무기가 몸에 박혀있는 전쟁사를 바라봤다.
그것은 소임을 다했다는 듯 왕좌로 돌아가 또 오만한 자세로 앉았다.
* * *
이후로 오랜 시간, 나는 왕좌에 앉은 전쟁사를 바라봤다.
절반은 몸 위로 삐져나와 있던 네 사람의 무기가 이젠 끄트머리만 겨우 보일 정도로 소화되어 있었다.
그걸 보는 내 속은 침잠해져 있었다.
생각하는 것은 이들의 여정을 함께하게 된 것이 누군가의 의도라면, 그는 왜 내게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 그런 고민조차 이윽고 지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이질감이 되었다.
시간을 체감할 수 없는 공간이기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어느 순간 떠오른 의아함은 있던 것이다.
‘···왜 아직 여기 있는 거지?’
이제까지의 경험상 한 지옥의 모든 것을 봤다면 내 몸인지 의식인지 모를 것은 곧장 다음 공간으로 넘어갔다.
마치 파도에 휩쓸리는 듯한 멀미와 함께 말이다.
한데 이번만큼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 의미를 헤아렸고, 나는 스스로 답하기도 전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봐야 할 것이 남아있던 것이다.
뚜두둑―
텅 비어있던 전쟁사의 얼굴 위로, 입술이 돋아났다.
그것이 달싹였다.
―누구 있소···?
내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다름 아닌 성기사였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소?
이번만큼은 지옥도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모르는 일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판단을 온전히 나에게 맡기는 것일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 순간의 나는 짙은 안도와 그것을 덮을 수준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으니.
‘도울 방법이···.’
없다.
나는 유령이나 다름없는 상태로만 존재했기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성기사의 목소리는 그때쯤 한 번 더 울렸다.
―···없군. 아무··· 없어. 모두 당한··· 오?
뚜둑뚜둑 목소리가 끊겼다.
그것은 음악 파일에서 일부분의 데이터만 삭제한 듯, 인위적이기 그지없는 끊김이었다.
―···런, 결··· 신은 없···.
입매가 비틀렸다.
움찔, 전쟁사의 몸이 들썩였다.
무언가에 내리눌리고 있는 것처럼, 근육의 움직임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그대로 다시 주저앉길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일어나려고 하는 것은 성기사이며, 그를 다시 주저앉히는 것은 전쟁사라는 것을.
그 애처로운 줄다리기가 이어짐에 나도 모르게 그에게 달려가 부축하려 했다.
물론 그것이 닿지는 않았다.
하나, 성기사는 홀로 더듬더듬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죄···.
여전히 끊기던 목소리가, 그 순간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죄를, 지었소.
휘청, 그가 옆으로 쓰러지려던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속죄해야 하오. 나의 친구들에게.
뚜두둑, 전쟁사의 왼쪽 눈이 돋아났다.
내가 아는 성기사의 눈이었다.
그것이 뒤틀리며 뜨이고 감기기를 반복했다.
모든 움직임이 그랬다.
그는 필사적으로 무언가에 저항하듯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가슴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칼자루의 끝은 아직 남아있는 그의 혼의 조각처럼도 보였다.
―신의 자비를 말한 나의 죄요. 나는, 내가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면.
그가 손을 뻗었다.
뚜두둑, 손끝에서 칼날이 삐져나왔다.
―자비가 아닌, 승리를 말했다면. 그랬다면···.
뚜두둑, 이번엔 오른쪽 눈이 나왔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
뚜둑―
그의 목이 꺾였다.
부상이 아니었다.
그 동작을 기점으로 성기사를 억압하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동작이 부드러워졌고, 힘겹던 걸음이 힘을 품었다.
눈빛에는 이채가 감돌고 있었다.
그저 행위일 뿐이었으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떠한 깨우침을 얻었다는 것을.
그로 인한 자유를 얻었다는 것을.
―···그래, 그랬군.
그가 낮게 웃었다.
녹슨 눈물이 그의 눈망울에 고여,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아, 그랬던 건가···.
그가 칼날이 삐져나온 제 손을 응시했다.
그의 혼잣말엔 희미한 환희가 맺혀 있었다.
그는 몸을 웅크리고 어깨를 잘게 떨었다.
―···그래, 그것이었어. 우리는 전쟁의 역사였소. 인간이 싸워온 역사였소. 그토록 바랐던 답은···.
녹슨 눈물이 툭,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애초에 우리에게 있던 것을, 그걸 모르고.
이변에 대해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은 광경에 대한 감상뿐이었다.
주저앉은 성기사는 어두운 동굴 속을 내리쬐는 미약한 빛과 그 끝의 볼품없는 꽃을 연상케 했다.
나는 고요함 속에서 애처로움을 느꼈다.
그가 숨을 토해냈다.
―···군인이었소. 우리는 이 몸으로 죄업을 짊어져, 평화를 가져오는 전령이었소.
그가 스스로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 행동은 본인이 아닌 그 속에 녹아있을 수많은 혼을 끌어안는 것처럼도 보였다.
―우리답게, 그리 행했다면 되었을 것을, 그만 눈이 가려져서.
이윽고 그의 손위로 돋은 칼날이 가슴팍에 닿았다.
내 숨이 멎었다.
그가 하려는 행동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감각이었다.
‘···!’
자살.
그는 스스로 희생하여 전쟁사를 끝맺으려 했다.
불가능하지 않았다.
모든 지옥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명제.
지옥을 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옥에 속한 존재뿐이라는 것에 따르면 가능했다.
죄수인 그는 불가해도 간수의 일부인 그는 지옥에 속한 것을 해할 수 있단 말이다.
입술이 뻐끔거렸다.
그제야 나는 지옥이 나를 아직 이 자리에 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저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터였다.
성기사의 눈이 굳게 닫힌 석문을 향했다.
무언가를 본 듯, 미소가 짙어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기도하듯 읊조렸다.
―수호하고 희생하여, 또 평화가 오기를.
이윽고 칼날이 심장 위로 쑤셔 박혔다.
푸욱―
작은 들썩임, 직후 그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숨과 움직임이 멎어갔다.
그렇게 이변이 일어났다.
사아아―
칼날을 타고 흐른 녹슨 피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다만 먼 곳으로 가지 않고, 그의 등 뒤로, 왕좌 앞으로.
거대한 옥좌를 시야에서 가리며 뭉치기 시작했다.
완성되는 것은 황금색 문이었다.
···훗날 소녀가 나비의 인도에 따라 도달한 종착역에서 넘어간 바로 그 문 말이다.
무엇도 알지 못한 채 문을 바라보길 한참, 전쟁사의 육신이 녹아내리길 또 한참.
그런 어느 순간이었다.
쿠구구궁!
굳게 닫혀있던 석문이 열렸다.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키이이잉―!
이명과 함께 시야를 잃었다.
공간을 떠나게 된 것이다.
도착한 곳은 전혀 다른 장소였다.
[안녕, 난 나비야.]원한의 바다.
나는 그렇게 소녀와 나비를 만났었다.
* * *
전란의 지옥에서의 기억은 여러 가지로 의아한 부분이 많았다.
실제로 나는 그 일을 끝까지 마주하고도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내가 그 의미를 진정으로 깨우친 것은 원한의 바다를 본 이후였다.
추측하자면 그랬다.
황금색 문.
지옥의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그것은 분명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하나 그 구원을 본인의 손에 쥘 수는 없었다.
나비가 그랬고 성기사가 그랬듯 문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남을 구원하는 장치일 터다.
실제로 나비와 성기사는 황금색 문에 들어가지 않고, 문으로 누군가를 넘겨 보낸 후 소멸하지 않았던가?
그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성기사는 이 몸으로 죄업을 짊어져 평화를 가져오는 전령이 군인이라고 했다.
끝으로는 그리 말했다.
―수호하고 희생하여, 또 평화가 오기를.
그것이 자신들다운 방식이며 행해야 할 일임을 ‘우리’라는 단어로 표현했으니, 아마 그들이 원했던 ‘지옥에 떨어진 이유’ 또한 그 말속에 있을 터였다.
마치 쥐덫 한가운데 놓인 치즈처럼, 신전이라는 덫에 빠진 후 살아남아야만 깨달을 수 있는 점이 바로 그것일지도 몰랐다.
애초에 그들이 구해야 했던 것은 본인이 아닌 타인이었던 것이다.
살아생전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전쟁사라는 이름에 꽤 어울리는 결말이 아닌가.
결국 그들이 모여 완성된 괴이는 역사라는 이름대로 자신들의 실수와 절망으로 미래의 누군가를 구원했으니까.
물론 의아한 점은 아직 남았다.
그 속에서 왜 성기사만이 전쟁사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아 주도권을 잠시 빼앗아 올 수 있었는가.
최후의 순간 성기사는 어떤 과정으로 깨달음을 얻었기에 자멸할 수 있었는가.
그때 그를 억압하던 것들이 돌연 멈춘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나는 영영 답을 알 수 없을 터였다.
그저 희망적인 추측을 해보자면, 그를 향한 억압이 풀린 것은 전쟁사 속에 깃들어있던 혼들이 성기사를 도왔을 수도 있겠지.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게임이 발매된다면 내가 그랬듯 유저들 또한 각자의 해석을 할 테고, 나는 그 영역을 침범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구태여 한 가지 장치를 두니.
‘아무도 구원해주지 않았으니까.’
죽음 이후에도 희생한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나 이외에 존재하지 않으니.
끝까지 이름조차 몰랐던 네 영웅을 기릴 수 있는 것이 나 하나뿐이니.
이제 와 내 빈약한 상상력으로 그들에게 다른 결말을 주려 한다.
더해서, 게임적으로 필요한 결말을 만들고자 한다.
‘멀티 엔딩.’
헬릭3는 3이라는 숫자에 맞게 세 개의 엔딩을 준비할 것이다.
나는 회의실에 모인 인원들에게 말했다.
“보스전은 세 개로 나눠서 치를 거야.”
그것을 위한 ‘성흔’ 시스템이었다.
명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