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인성 터진 엘프들 (1)
신궁 에밀리아.
그녀가 아르카디아 대륙에서 활동했던 시기는 다름 아닌 드워프와 엘프 사이에서 피 튀기는 종족 대전이 벌어진 때였다.
“크윽…… 이 빌어먹을 인간들! 저런 열등한 엘프 새끼들의 편에 서다니!”
“지랄. 열등하기는 누가 열등해, 이 난쟁이 똥자루 같은 놈들아!”
여전히 인성이 터져 버린 발언을 일삼는 드워프. 그들의 광역 어그로에 전의를 불태우는 엘프와 주워 먹을 게 어디 없나 눈을 번득이며 두리번거리는 인간들. 비록 인간들이 엘프의 편에 섰다고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엘프들은 인간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어휴…… 하여간 인간의 탐욕은 끝을 모르는군……. 구역질이 날 정도야.”
“비록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고는 있지만,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도 천박한 종족이군.”
종족의 명운을 걸고 싸우는 엘프와 드워프들의 숭고한 목표와 다르게 철저하게 드워프들이 만들어 낸 장비를 약탈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인간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제삿밥에만 침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으니 엘프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모든 인간이 다 그런 건 아니라 다행이군. 아주…… 아주 극소수지만 정의와 품격을 가진 이들도 존재하니 말이야.”
인간에 대해 뒷담화를 하던 엘프들. 그들 중 누군가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에밀리아를 힐끗 바라보고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른 엘프들 모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에밀리아 같은 사람만 존재한다면 인간들도 괜찮은 종족일 텐데 말이야…….”
“에밀리아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정말 아쉽군. 만약 엘프 태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붉은빛이 감도는 머릿결. 주근깨가 얼굴에 가득 박혀 있는 에밀리아. 겉보기에는 수수하고 여느 농촌 마을에서 자주 보일 것 같은 외모였지만, 그녀의 궁술 실력은 엘프들조차도 극찬할 정도로 대단했다.
투웅. 퍽.
화살 하나가 드워프 목숨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 수준의 명중률을 보이며 위기에 처한 엘프들의 목숨을 셀 수도 없이 구한 그녀. 그렇기에 그녀는 엘프들의 인정을 받은 아주 극소수의 인간 중 하나였다.
“우리 엘프들은 에밀리아 당신에게 명예 엘프의 직위를 선사합니다. 비록 인간이지만 그대의 공로를 인정하며 우리와 함께 위대한 자연의 품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렇기에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에밀리아는 엘프들에게서 명예 엘프라는 직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 세계수가 잠든 곳(Where Tree Rest)에서 머물며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해냈어……. 드디어……!’
엘프들의 이웃으로 인정받은 그날. 에밀리아는 뛸 듯이 기뻤다. 전쟁이 끝난 것 때문도, 이들의 인정을 받은 것 때문도, 이들의 영역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가 이렇게 기뻐한 것은 바로…….
“정말 축하해, 에밀.”
곱상곱상 한 잘생긴 외모로 주변의 같은 남자들을 죄다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는 엘프, 페일. 에밀리아가 기뻐한 이유는 사실 첫눈에 반해 버린 그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앞으로 자주 볼 수 있겠네. 전장에서의 전우가 아니라 이웃으로서 말이야.”
보기만 해도 빠져드는 미소를 지으며 축하한다는 의미로 꽃을 건네주는 페일. 그것을 받은 에밀리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정말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으응! 아, 앞으로 잘 부탁해!”
“나야말로.”
드워프들에게는 사악한 사신으로, 엘프와 인간들에게는 신궁이라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그녀.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신궁 아멜리아는 사실 사랑에 빠져 버린 한 인간이 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탄생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 * *
엘프들의 마을, 세계수가 잠든 곳까지 성심성의껏 안내를 해 주던 에밀리아. 그런 그녀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재영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까…… 네가 사랑에 빠졌었던 페일이라는 작자가 너 말고 다른 엘프에게 붙어먹고 다녔다…… 이 말이야?”
복수형을 강조하는 에밀리아. 그녀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 때려죽여도 무죄라는 페일이라는 작자가 최소 6명이 넘어가는 엘프들을 상대로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제가 드워프 놈들한테서 자기 목숨 구해 준 은혜는 생각도 안 하고, 이렇게 저의 진심 어린 사랑을 몰라보고 다른 놈들한테 시선을 돌릴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아요? 그런데…… 제가 죽고 나서 그 새끼가, 흐윽…….]그러면서 그녀가 살아생전에, 그리고 또 죽어서 목격했던 광경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늘어놓는 에밀리아. 얼마나 페일이라는 작자가 개새끼인지를 이야기하던 에밀리아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제발 그 페일을 보게 되면 저 대신 복수해 주실 수 있나요? 아예 죽이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아요. 그냥 흠씬 두들겨 패서 절반 정도만 죽여 주세요. 그 정도로라도 만족할게요.]뭔가 천계에 오른 위인이나 영웅이 하기에는 질 떨어지는 부탁. 그녀의 마음에 얼마나 진심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진지한 듯 재영에 앞에 하나의 창이 나타났다.
[퀘스트, ‘한을 품은 여자의 복수’가 생성되었습니다.] [퀘스트, ‘한을 품은 여자의 복수’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퀘스트, 한을 품은 여자의 복수]여자가 오뉴월에 한을 품으면 한파가 불어닥친다고 했던가요? 죽어서까지도 자신의 반려가 한눈팔지 않나 감시하며 원한과 앙심을 키워 낸 에밀리아. 그녀를 대신해서 페일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려 주세요.
[성공 조건]-엘프, ‘페일’을 사망 혹은 빈사 상태로 만들기.
진짜 페일을 뒈지게 패라는 퀘스트가 생성되어 버린 상황. 그것에 재영이 어찌할 바를 몰라 황당해하며 그 퀘스트창을 쳐다보고 있는데, 엘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어휴, 이래서 종족 간 연애는 하지 말라는 건데…….”
“그게 무슨 소리야?”
엘의 혼잣말 같은 한탄을 들은 재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자 그녀는 엘프와 인간의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알려 주었다.
“애초에 엘프에게는 인간처럼 사랑과 결혼 같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요. 원체 수명이 길기도 하고, 또 인간처럼 한 사람에게만 오로지 충실해야 한다는 관념도 존재하지 않고요.”
“뭐……?”
천 년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엘프. 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의 10배나 되는 긴 시간을 살아가기에 그들의 관점은 인간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엘은 에밀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하거나 안쓰러워하기보다는, 그게 왜 잘못이냐는 듯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페일은 엘프예요. 그리고 에밀리아는 명예 엘프라는 이상한 명칭을 달기는 달았어도 인간이고요. 엘프가 ‘엘프’ 한 것을 두고 인간의 잣대를 갖다 대며 비난하고 원망할 수는 없다고요.”
엘프가 엘프 했다.
그 말이 와닿은 재영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에밀리아는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지 한참을 훌쩍거리며 엘과 연신 대화를 하다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 죄송해요.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했네요. 하지만 다시 그를 마주할 자신은 없네요. 이제부터 저의 도움 없이도 그들의 마을에 당도하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을 테니 이만 다시 천계로 돌려보내 주시겠어요?] [퀘스트의 대상자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퀘스트, ‘한을 품은 여자의 복수’가 삭제되었습니다.]엘과 정확히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몰라도, 잘 해결된 듯 퀘스트를 도로 물리며 자신을 돌려보내 달라는 에밀리아. 그런 그녀의 말에 재영은 기회를 놓칠세라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아 물론. 당연히 그래야지.”
이제 엘프 마을의 초입까지 당도했기에 굳이 강신을 유지하며 개연성을 소진할 필요가 없는 상황. 거기에 한을 가득 품은 그녀를 데리고 엘프들의 마을까지 갔다가는 무슨 사달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재영은 황급하게 강신을 해제했다.
“안내해 줘서 고마웠어……. 그럼 돌아가서 쉬어.”
[아니에요……. 오랜만에 바깥 구경 해서 좋았는걸요…….]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천계로 복귀하는 에밀리아. 그녀의 존재가 몸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난 후, 재영은 엘을 바라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와…… 진짜 그 사람은 다시는 불러내면 안 되겠다.”
도대체 얼마나 배신감에 치를 떤 건지 몰라도, 자신의 전남편을 죽여 달라는 부탁까지 할 정도면 이미 바닥까지 치달을 대로 치달은 상황. 도대체 어떻게 저런 광기 어린 사람이 천계에 소속되어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저희도 그녀의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가 살아생전에 쌓은 위업은 천상에 오르기 충분했죠. 문제는 우리에게 소속된 이후에 생겨난 것이니까요.”
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이리저리 다른 여성 엘프들을 후리고 다니는 자신의 전남편을 보면서 광기에 어린 복수의 화신으로 다시 태어난 에밀리아. 그런 그녀 때문에 엘도 약간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 난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경우도 있어……?”
“있죠.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는 것은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니까요. 에밀리아의 경우에는…… 죽어서도 현생에 대한 미련을 이겨 내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지만, 저 광기만 빼면 딱히 문제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어서 제재하기도 애매하네요.”
천사들조차 예의 주시하고 있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 그런 걸 보면 천사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 사람은 강신 목록에서 제외해 줘. 뭔 짓을 벌일지 겁난다.”
“걱정하지 마세요. 애초에 강신 목록에도 올라와 있지 않았었어요. 엘프들과 유일하게 친분이 두텁고 또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영혼이어서 특별히 데리고 왔던 거예요.”
자기도 알고 있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하는 엘.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엘프들의 영역 깊숙한 곳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을 때, 갑자기 화살 하나가 날아와 재영의 발 바로 앞에 꽂혔다.
푸욱.
마치 이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듯한 경계의 의미가 가득해 보이는 경고사격. 그리고 재영의 주변에서 날렵하게 움직이는 재빠른 기척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방을 점한 채 활시위를 잔뜩 당기며 그 모습을 드러내는 엘프들. 재영을 포위한 그들 중에서 리더로 보이는 이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이며 외쳤다.
“꼼짝 마라, 인간! 허튼수작 부리면 바로 고슴도치로 만들어 주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첫 만남부터 화살을 들이밀며 위협적인 어조로 으르렁거리는 엘프들. 드워프들과 다를 바 없는 적대적인 태도에 재영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인간이랑 엘프랑은 서로 친한 거 아니었어?”
드워프라는 공동의 적을 위해서 수백 년 전에 엘프들과 함께 짝짜꿍했던 인간들. 하지만 엘프들의 반응을 보면 드워프들 수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인간을 적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엘프랑 인간이랑 친하냐고요?”
재영의 말에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조소를 내뱉는 엘. 그녀는 위협적으로 화살을 들이밀며 재영을 포박하는 엘프들을 보며 말했다.
“그 당시에는 손이 부족하니까 인간들하고 어울려 준 것뿐이지, 엘프들도 인간들 별로 안 좋아해요.”
“뭐라고? 아니, 어째서……?”
인간들을 싫어한다는 엘의 말에 재영은 인간들이 뭐 잘못한 게 있나 싶어 물었다. 하지만 엘의 대답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거야…… 인간들이 대부분 못생겼잖아요.”
“뭐……?”
“엘프들이 봤을 때 인간들 대부분은 그냥 오징어 수준이거든요. 아주 극소수의 인간은 엘프와 견줄 외모를 가지기도 했지만…… 뭐, 솔직히 죄다 못생겼잖아요?”
그랬다.
드워프들이 지독한 종족 차별주의자였다면, 엘프들은 그들에게 절대 지지 않는 외모 지상주의자들이었다. 결국 드워프들에게나 엘프들에게나 하등한 존재에 불과한 인간. 엘프들에게 포박당한 재영은 이 정신 나간 이종족들의 설정에 황당해하며 소리쳤다.
“이런 씨발, 그러면 정상인 새끼들이 없잖아? 어떤 놈이 이런 엿 같은 설정으로 만든 건데?”
못생기면 차별받는 더러운 세상, 아르카디아.
재영은 오늘도 다시금 깨달았다. 이 게임은 개발자가 제정신이 아닌 X 같은 게임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