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포상 (2)
초월무구. 최소 7서클급 이상의 마법이나 권능을 품고 있는 영물화된 무구.
그중 최하급으로 평가받는 무구라 하더라도 주인을 스스로 선택하는 영성이 있어서,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장 흔한 조건이 바로 오러유저나 마도사지.’
물론 무구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초인의 경지를 요구하는 게 아닌 경우에는 대개 더욱 까다로운 조건이 붙곤 했다.
‘가령 성별, 나이, 외모가 모두 최초의 주인과 일치해야 한다든가.’
황궁의 수많은 기사, 마법사, 심지어 강력한 마도사였던 루드비히 조차 초월무구를 소유하지 못한 것을 보면 황실 보고에 있는 초월무구들은 타이니에겐 그저 그림의 떡일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나한텐 녹턴 하나면 충분해.’
언제고 마땅한 경지에 오르게 되면 당장 찾으러 가야 할 대미궁의 보물.
녀석의 더럽게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하는 자는 자신뿐일 테니, 녹턴의 주인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타이니는 그림의 떡을 욕심내지 않고 다른 포상을 요구한 것이다. 그에게 다른 재화나 보물 따위는 고려할 대상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듣는 이들의 반응은 그의 생각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허……. 배짱이 대단하군.”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실로 건방진 자가 아닌가.”
대전에 바글바글 모인 귀족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을 토해 내며 타이니와 그들의 군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황태자는 흥미로운 눈길로 타이니를 내려다보았다.
“초월무구를 대신할 포상이라니, 뭘 원하는 건지 듣고 싶구나. 그대가 빌려 갔던 성물을 다시 가져가고 싶다고 한다면 곤란하다만.”
황태자의 웃음기 어린 너스레에 타이니 역시 빙긋 웃었다.
그간 무시당했던 성물의 가치가 황궁의 변란 이후로 재조명되었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약속은 이미 따로 받아 냈다.
‘필요할 때 한 번 성물을 빌린다는 것은 됐고.’
카룬의 재앙에도 꿈쩍 않던 황실의 기조가 바뀐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 지금은 자신의 마음에 걸리는 것을 해결하고 싶었다.
황궁의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도 내내 마음에 걸렸던 일.
“……무리한 청이 아니라면, 황실 휘하에 있는 모르스 가문의 후예를 자유롭게 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실제로 그 가문의 누명은 이미 풀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옛 동료였던 사신에게 한 거짓말을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모르스?”
황태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듣고 있던 귀족들 역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 한 사오십 년 전쯤인가. 황족을 암살한 죄로 사라진…….”
늙은 귀족 중에는 그 이름을 들어 본 이도 있는 것 같았지만, 대다수에게는 생소한 듯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황태자는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스라면 자네가 카룬에서 사용했던 성이 아닌가? 정말 그 가문 출신이었나? 임시 신분으로 도용한 것이라 들었네만?”
도용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타이니는 속으로 괜히 움찔했지만,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던 만큼 대답은 빨랐다.
“어쩌다 인연이 닿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진 빚을 갚고자 이렇게 무리한 청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흠, 어려울 것 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대의 공에 비하면 작고도 작은 일. 다만 그 청을 들어주고 싶어도 모르스 가문의 후예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잇던 황태자의 시선이 그 오른쪽에 시립해 있던 익실란에게 향했다. 오랜 세월 함께해 온 기사가 뭔가 아는 게 있는 듯 순간 움찔한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러자 익실란이 바로 고개를 숙이며 황태자의 귓가에 뭐라 속삭였다.
“호오…… 그런…….”
귓속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황태자는 이내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대전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타이니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런. 당장은 그 말을 들어줄 수가 없겠구나, 타이니 경.”
“예?”
좀 전에는 어려울 것 없다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타이니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고 황태자를 올려다보는데.
“저런, 역시 야인은…….”
“기본적인 예의도 안 된 이로고.”
“저래서야 무슨 광휘의 기사라고…….”
그 순간 대전의 좌우에서 그를 지켜보던 대신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황태자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반문하는 건 충분히 무례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황태자는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하지만 내 약속하니, 향후 반년 안으로 ‘그녀’의 자유를 약속하겠다. 그것이면 되겠는가?”
여기서 어찌 다른 말을 할 수 있을까.
타이니는 바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좋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그 간단한 청 하나로 큰 공의 보상을 갈음하기에는 과인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러니 앞서 언급한 선물도 받아 가도록 해라.”
“예!?”
반문과 함께 또다시 고개를 발딱 드는 타이니.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대신들도 그 결례를 나무라지 못했다. 그들 역시 옥좌에 앉은 황태자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기 바빴으니까.
“그대의 말대로 모르스 가문의 누명은 이미 벗겨졌으니, 그대의 청은 청이라 볼 수 없다. 다만 가문의 부흥을 위해 잠시 황실에 몸담고 있던 그녀는 마지막 소임을 다한 뒤, 스스로가 한 약속보다 10년 빠르게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미리 약속된 보상과 함께.”
……마지막 소임?
“하지만 그녀의 10년도 그대가 세운 공에 비할 바는 아니니, 앞서 말한 선물은 그대로 받아 가도록 하라.”
그 마지막 소임이 뭔지는 몰라도, 황태자가 사신의 진짜 가치를 알았다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죽은 황제도 그녀의 가치를 몰랐나?’
아니면 선황의 죽음 이후 정권이 인계되는 며칠 사이의 정보 공백이 이런 판단을 내리게 만든 것일 수도 있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어찌 된 일이든, 타이니는 냉큼 다시 고개를 숙이며 크게 소리쳤다.
‘조건에 맞는 초월무구 하나만 있어라, 제발!’
좀 전까지만 해도 녹턴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잊은 채, 타이니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 * *
대전에서 나온 그 후의 이야기.
이를테면 2황비 카르티아와 기사단장 그리웰을 극형에 처한다거나, 죽은 청혈의 마도사를 반역자로 공언하고 황실 명부에서 지우겠다는 안건들.
검제와 로히터 공작의 이차 설전 같은 시끄러운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타이니의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그저 한 귀로 듣고 흘릴 뿐이었다.
황태자와 클로이의 결혼식이 즉위식 뒤로 미뤄진 사실 정도만 참고할 만할까.
그나마 유일하게 귀가 솔깃했던 소식은.
– 악마추종자들이 사용한 정체 모를 아티팩트, 가칭 폭뢰에 대한 정보를 타국과 공유할 것이며 그것을 찾아낼 마법을 속히 개발하겠다.
악마추종자들을 충분히 엿 먹일 수 있는 이 발표 하나.
그 외에는 귀에 들어오는 것이 없으니, 타이니는 대전 회의가 끝난 뒤 자신이 받게 될 보상을 생각하기에 바빴다.
‘황실에는 어떤 초월무구가 있을까? 도통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일반적인 무기 중에서도 비주류인 워해머가 있을 것이라고는 언감생심 기대도 하지 않았다.
‘설령 있다 한들 녹턴보다 뛰어날 리는 없겠지.’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방어구나 액세서리 형태의 초월무구.
그중에 자신이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있기를 타이니는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대전 회의가 끝나자마자, 흰 수염을 기다랗게 늘어트린 백발의 노인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자네가 그 광휘의 기사인가? 허, 생각보다 더 어리군.”
백발에 흰 수염만 보면 나이가 지긋한 듯한데, 피부는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갈색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넘쳐 보였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특이한 외모의 노인을 타이니는 전생에 만난 적이 있었다.
‘이때는 아직 젊으시구려, 빙염의 마도사 티네스.’
마계 대전 때도 제국의 후방에서 화력을 지원하고 보급을 책임졌던 유능한 인재.
악마추종자들이 일으켰던 지방 반란의 일각을 제압하러 갔던 황실마탑의 또 다른 마도사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황실 마탑의 기둥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타이니라고 불러 주십시오.”
“하하, 생각보다 예의 바른 젊은이일세. 견식도 넓고. 그럼 내가 온 이유도 알겠지?”
“저를 황실 보고로 안내해 주시려는 겁니까?”
“그래, 그렇지. 아, 물론 그 반지에도 볼일이 있고 말일세.”
“예? 아……!”
타이니는 그의 시선이 자신의 왼손에 끼워진 금룡 무늬 반지로 향하는 것을 보며 반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황태자가 대전에서 대놓고 언급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만큼 대단한 보물이 바로 그 반지였으니까.
적어도 황궁 내에서는 웬만한 초월무구보다 더한 권능을 발휘하는 데다가, 황궁의 마나를 다루는 것 외에도 부가적인 효과가 있는 최고급 아티팩트.
타이니는 그런 보물을 서슴없이 빼서 눈앞의 마도사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티네스 님.”
그 거침없는 행동에 티네스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
“허허, 이렇게 바로 주는 것인가?”
“예? 당연히 원주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물건이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이것은 그대의 전리품이 아닌가? 그래서 전하, 아니 폐하께서도 언급하지 않으신 것일 텐데.”
“아…… 제가 가져 봤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일 뿐입니다.”
“그렇다 한들……. 아니, 아니지. 사양할 입장이 아니니 감사하게 받겠네.”
손사래를 치던 빙염의 마도사는 결국 겸연쩍은 얼굴로 반지를 받아 들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반지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품 안에 반지를 집어넣고는 타이니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황실 마탑의 대표로서 보물을 돌려준 것에 대해 지극한 감사를 표하네, 타이니 경. 앞으로 황실 마탑은 폐하의 명이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대의 부탁 한 가지를 무조건 들어주도록 하겠네.”
“기억해 두겠습니다, 티네스 님.”
그것은 티네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이었기에 타이니는 사양하지 않았다.
황실 마탑은 엄연히 황실 소속이기에 귀속된 재산이나 보물을 임의로 남에게 넘겨줄 수 없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기약도 없이 공언만 하는 것도 양심에 찔리니, 당장 자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주겠네.”
“예?”
“황실 보고를 그저 귀족의 보물 창고 같은 곳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은 데다가 초월무구는 여러 곳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으니, 내 오러유저 이상의 무력을 조건으로 하지 않는 초월무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네.”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정보까지 뒤따랐다.
“물론 더 까다로운 조건이 요구될지도 모르지만, 혹시 아는가? 자네가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물건이 있을지.”
타이니로선 그저 감사할 따름인 제안이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만약에 제가 반지를 드리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하셨습니까?”
“그래도 당연히 안내해 줬겠지. 폐하의 명령인데.”
응? 그럴 양반이 아닌데……?
‘이 양반도 전생과 성격이 다른 건가?’
타이니가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난다 긴다 하는 역대 황실 오러유저들도 고배를 마시게 한 콧대 높은 초월무구들이 있는 곳으로, 친절하게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짓궂은 표정을 짓는 마도사의 얼굴을 보고서야 타이니는 마주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