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0
10 어른들의 일
* * *
밀러 아저씨가 작곡했다는 ⌜Live forever⌟라는 노래가 스마트폰에서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어쿠스틱 기타를 베이스로 만든 컨트리 송.
가수는 미국에서 유명하다는 20대 싱어송라이터였다.
정제된 세션, 완벽한 보컬, 아름다운 가사.
정말 멋진 곡이다.
나는 병실 침대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지나간 기억들이 순차적으로 떠올랐다.
밀러 아저씨와 함께 폭포에 뛰어들었던 기억.
소통이 되지 않아 지켜봐야만 했던 아저씨의 그 이상한 연기.
여름밤, 캠프파이어 앞에서 기타를 처음으로 배웠던 순간.
내 기억들은 찰나처럼 지나갔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그저 지나가기만 했다.
때문에 아쉬움과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기억이 거짓은 아니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아저씨의 항공권을 무심결에 집었다.
그가 쓴 글자를 손으로 직접 만져봤다.
– 내 영원한 친구 서진에게. 앞으로 찬란한 길이 열리길 바라면서.-
볼펜에 눌려 생긴 종이의 양각과 음각이 내 손에 그대로 느껴졌다.
‘밀러 아저씨는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을까.’
평소처럼 물어볼 사람이 없어 답답했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는 저 스마트폰으로 수백 만개의 답변을 찾을 수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은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새 ⌜Live forever⌟ 노래가 끝이 나버렸다.
그런데 곧바로.
처음으로 돌아가 노래가 다시 재생됐다.
인트로의 기타 솔로 부분이 나오고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
아무렇지도 않은듯,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신기한 일이었다. 밀러 아저씨가 없는데도 그의 음악은 계속 남아있었다. 이렇게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밀러 아저씨가 작곡한 곡들을 여러 개 찾아 들어 봤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 있다.
꼭 ⌜Live forever⌟가 아니라도 음악만 듣고 밀러 아저씨의 노래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악가는 각각 특유의 음색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나는 나대로.
이것만큼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영원히 남아있을 그의 음악과, 그에게서 하나부터 열까지 배운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
그러니 남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무어라 하는 남들의 외침은 흘려들어도 될 것 같았다.
저 노래의 가사처럼, 영원한 것 또한 분명히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별의 인사말을 나눌 기회조차 주지 않은 그 괴짜 아저씨를 조금 원망하면서.
그의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 * *
“네. 택시도 미리 준비해뒀습니다. 저희 영사 한명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한서진 군한텐 제가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조심히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뚜. 뚜. 뚜.
주, 싱가포르 대한민국 대사관 소속 영사 김영희는 깊은숨을 뱉었다.
최근 들어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AC 2505편 추락에 따른 사고 수습, 생존자 가족들과 연락, 상담, 보험 처리, 병원 관계자 설득, 나라 간 갈등 해결, 항공사 관계자와 미팅 등등.
평소 하던 일의 100배 정도가 쏟아지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 천만다행인 점은 이번 비행기 사고가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사상자가 없었다는 것.
엔진 결함과 폭풍우, 산발적으로 돌풍이 몰아치는 그 악조건 속에서 기장은 기적적으로 AC 2505편을 바다 쪽으로 몰았다.
수직 낙하하던 비행기 기체를 제어하는 데 성공한 기장은 그대로 바다에 동체 착륙을 시도했다.
관제탑과 미리 연락을 주고받은 덕에 구조대도 빠르게 파견됐다. 그렇게 모든 게 순탄하게 끝날 줄 알았다.
단 한 명, 한서진 군의 실종만 없었다면 말이다.
총 258명의 탑승 인원 중 257명 생존.
사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기장은 영웅이라고 불릴 만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어린아이가 하나 없어졌다.
언론에서는 이 점을 집중적으로 때렸다. 대한민국은 물론 싱가포르, 말레시이아, 미얀마 등 여러 국가들은 이 내용을 메인 뉴스로 보도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뉴스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비관적으로 바뀌어갔다.
폭풍우 속 바다 한가운데에서 아이가 없어졌다.
누가 이 상황을 실종으로 보겠나.
처음에 활발하게 구조 활동을 이어가던 구조대조차 다음 주까지만 활동하기로 잠정 결론이 나 있었다.
사람들은 257명이 살았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보다 1명이 죽었다는 비관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한서진 군이 발견됐다.
예상 발견 지점에서 무려 250km나 떨어진 지점.
그를 구조한 선원의 말에 따르면 서진 군은 작은 나무배에 타고 있었다고 한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
그 탓에 벌써부터 여러 가지 소문이 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납치됐던 것이 아니냐, 동정 여론을 바라는 어떤 나라의 계략이 아니냐, 심지어 조작이 아니냐는 소리마저 돌고 있었다.
그걸 간신히 잠재우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대사관 영사, 김영희가 하고 있는 일이었다.
김영희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병원 로비로 들어갔다.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환자 중에 이번 AC2505 사고 승객들이 몇몇 보인다. 김영희는 그들 중 몇몇 한국인들과 간단히 안부 인사를 나눈 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의사가 눈에 들어왔다.
파란색으로 수놓아진 명찰이 그가 누군지 알려주고 있었다.
Jang Loong, M.D., Ph.D.
한서진 군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 룽. 김영희는 가볍게 묵례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2층, 3층, 4층, 5층, 6층.
층이 올라갈수록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9층에 도달했을 땐 룽과 김영희만 엘리베이터에 남았다.
김영희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다 순간적으로 문을 잡았다. 고개를 돌려 룽을 쳐다본다. 잠깐의 정적. 입을 먼저 꺼낸 건 김영희였다.
“실례지만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룽은 무언가를 예상하고 있다는 듯 날카롭게 그녀를 쳐다봤다.
“뭐죠.”
“한서진 군이요. 상태가 어떤가 해서요.”
“······.”
“한서진 군 부모님께서 조금 전 비행기에 탔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아마 세 시간 안에 이 병원에 오시게 될 거예요. 그전에, 혹시 제가 미리 알고 있으면 좋을 사항이 있을까 해서요.”
“······.”
“한서진 군이 의식불명인 상태일 때 MRI를 찍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략적인 내용만 살짝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영희는 만약을 대비하는 거였다. 오전에 한서진 군의 상태를 잠깐 보긴 했지만 무어라 딱히 장담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나이를 혼동하고 이상한 탑승객을 찾는다. 정신나간 사람처럼 날카롭게 소리도 지른다. 이걸 정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AC2505 사고의 마지막 한국인 생존자의 상태가 안 좋다면.
언론에 주목받게 될 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면.
그에 맞는 대비를 해둬야 했다.
그게 대사관이 할 일이었고 그래야만 한국의 아이를 보호해 줄 수가 있다.
룽은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제게 환자에 대해 묻는 건가요?”
“네. 영사로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한서진 군을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대한민국 대사관은. 그런 질문이 금기시돼있다는 것도 모르나 보네요.”
“······.”
“굉장히 기본적인 건데 말이죠.”
“······.”
김영희는 엄지손톱으로 괜스레 다른 손톱 끝부분을 긁어댔다. 그러다가 살짝 뜯기도 했다.
불안할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습관 같은 거였다.
룽이 말하는 건 의사의 환자 비밀 보호 의무였다. 물론 자신도 알고 있다. 일종의 상식 같은 것 아닌가.
그런데도 말은 해야 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혹시 그 아이에게 정신착란이라든가 조현병 같은 게 생긴 거라면 언론에 보이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전후 상황도 다시 따져봐야 할 거고 보험사와 항공사 간의 이야기도 완전히 달라지겠죠. 룽 선생님도 지금 밖이 얼마나 시끄러운 줄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는 그저 그걸 미연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하루라도 빨리요.”
김영희의 장황한 설명. 룽은 오히려 기분이 나빠졌는지 괜히 꼬투리를 잡는다.
“정신착란이요? 조현병이요? 영사님은 그게 뭔지나 알고 저한테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그냥 예를 들어 말씀드린 겁니다.”
“그냥이라고요? 말씀 한번 참 쉽네요. 사실, 저도 ‘그냥’ 의사 면허를 땄던 거거든요.”
“······.”
“그러니까 이만 가보시죠. 저도 곧 회의에 들어가 봐야 합니다. 늦었어요.”
“······.”
단호한 룽의 반응에 김영희는 마지못해 엘리베이터 문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룽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보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는 걸 느꼈다. 그래도 짜증은 남아있었다.
‘웃기지도 않는군.’
AC2505 사고 이후 저 대한민국 영사와 부딪히는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비행기 추락 사고 당사자가 대부분 한국인이다 보니 어느 정도 필연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지금은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살아나지 않았나?
희망의 아이가 조금 다쳤다 해도 어떤가.
그렇다고 희망이 꺾이는 것도 아니고.
요즘 사람들은 중요한 게 무엇인지 도통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괜히 영사에게 화풀이를 했다. 영사도 나름대로 방법을 강구하려던 것 같긴 했지만, 그 방법이 틀려먹었다.
룽은 문뜩 한서진을 떠올려봤다.
처음엔 자신이 몇 살인지도 몰랐고, 환시를 본 것처럼 사람을 찾았다. 미친 사람처럼 고함도 쳤다. 그 모습은 얼핏 보면 비정상처럼 보여졌다.
그런데 조금 전에 수 간호사에게 전달받은 내용은 영 딴판이었다.
한서진은 안정돼있었고 가만히 노래를 들었으며 그 누구보다 얌전했다. 더 이상 자신을 15살이라고도 하지 않았고 한참 동안 찾던 마크 밀러라는 사람도 더는 찾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상태가 갑자기 좋아졌다고 봐야 할까.
룽은 가지고 있던 파일 중 한서진의 MRI 필름을 꺼내 봤다. 그중에서도 뇌 사진을 꺼내 유심히 살펴봤다.
“음···.”
그러곤 묵묵히 그 필름을 다시 파일에 끼워 넣었다.
한서진의 뇌에는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쉽게 말해 정상. 영상의학적으로는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충격이 있었다? 정신과적 문제. 그건 천천히 확인해보면 될 문제였다.
반대로 룽의 인상에 선명히 남는 부분도 있었다.
또래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언행과 그걸 완벽히 표현할 수 있는 영어 실력. 그리고 미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발음.
그런 것들이 묘하게 룽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띵!
룽은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것을 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어차피 내일 아침 회진 때 한서진 군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때 다시 판단해도 늦지 않았다.
룽은 그런 생각을 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