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42
142 조금은 더 가볍게
* * *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2,804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전부 일어나서 박수를 쳐준다.
무대를 비추고 있는 수많은 조명들.
남녀노소를 특정할 수 없는 다양한 관객들의 외침.
그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나와 함께 연주를 만들어 갔던 피아노는 잠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그마한 수연이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대기실로 들어갔다.
무대에서 들려오는 외침이 이곳까지 들려온다.
수연이는 살짝 들떠 있었다.
“사람들이 오빠 연주를 저렇게 좋아해 주고 있어! 다들 감동 받았나봐!”
“그랬으면 좋겠다.”
“분명 그랬을 거야. 나도 그랬거든.”
“수연이도?”
“응!”
수연이는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내 피아노에서.
바다와 바람과 햇빛을 느꼈다고.
그게 무척이나 포근했다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준다.
“수연이가 그렇게 느꼈다면 오늘 공연은 성공이네. 오빠는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주를 했었거든.”
“정말?”
“그럼~”
“그러면 내가 맞춘 거네? 아니다. 오빠가 멋지게 연주한 덕분에 내가 맞출 수 있었던 건가? 그게 더 맞겠다. 그치?”
나를 보며 배시시 웃는 수연이.
나는 수연이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줬다.
그때, 로저스 디렉터님께서 무대 상황을 확인하시며 내게 말했다.
“이만 무대로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늦으면 곤란해지겠어요.”
하나같이 앙코르를 외치고 있는 관객들.
안 그래도 무대에서 들려오는 외침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지금 나가면 딱 적당할 것 같았다.
그런데 수연이가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며 내게 손짓을 한다.
고개를 숙여 눈높이를 맞춰달라는 우리 남매 사이의 수신호였다.
내가 수연이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잠깐 주저하던 수연이가 손을 높게 뻗어왔다.
그러곤.
“나는 오빠가 이렇게 해주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그래서 나도 이렇게 해주고 싶었어. 괜찮지?”
수연이는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
문득, 옛 생각이 나버렸다.
이게 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이 행동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수연이의 조그마한 손이 나를 위로해준다.
그 손길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나는 활짝 웃었다.
“고마워, 수연아. 오빠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수연이는 좌우를 살피다가 내게 작게 속삭였다.
“히히히. 그럴 줄 알았어. 그러면 내가 나중에 또 해줄게. 오빠, 앙코르 잘하고 와~”
내게 손을 흔들어주는 수연이.
나는 수연이에게 똑같이 손을 흔들어주며,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본 공연은 이미 끝났다.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정경은 모두 보여줬다.
평온과 행복, 위로를 연주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하게 될 앙코르는 내 연주에 공감을 해준 관객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준비된 연주를 했다.
무척 즐겁게.
무대의 마지막을 만들어갔다.
* * *
공연이 막을 내렸다.
객석에 있던 사람들은 소년을 보기 위해 로비로 향했다.
소년에게 칭찬과 응원을 보내며,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는다.
상황이 이쯤 됐다면, 보통의 어린 연주자들은 한껏 들뜨거나 놀라기 마련이다.
로비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고 평온을 유지할 연주자는 몇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 카네기홀의 주인공인 만 13세의 피아니스트는 차분해 보였다.
그는 미소 지으며 사람들의 말을 하나하나 들어줬다.
“네 피아노 덕분에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 부모님과 함께 바다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고마워······. 고맙다······.”
“제 연주를 그렇게 들어주셨다면 제가 더 고맙죠. 공연 보러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거울⌟이었어. 자연스럽게 풍경이 그려지는 것 같더구나. 그리고······. 그리움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거울⌟은 제가 꽤 오랜 시간 준비한 곡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는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힘든 일이 있었는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네 연주는 무척 따뜻하더구나. 눈물이 날 정도로 말이야. 그게 고스란히 느껴졌단다. 너는 어떻게 그런 연주를 하는지······.”
“음악이란 참 신기하죠. 제 감정이 잘 전달된 것 같아 다행이에요.”
“그래. 네 연주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내 평생 잊지 않으마. 절대로.”
이 모습은.
관객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년의 모습은.
따로 준비되어 있던 인터뷰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CNN의 기자 노라 워드는 카메라에 찍히고 있는 어린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보며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천재가 나왔네요. 이번이 저 아이의 첫 공연이라고 그랬죠?”
“에틀링겐 갈라 콘서트를 제외한다면 처음이 맞습니다.”
“로저스 디렉터님께서 왜 그렇게 자신만만해했었는지 알 것 같네요. 저조차도······. 저 아이의 연주를 듣고 잊혀졌던 추억이 떠올랐거든요.”
“그랬습니까.”
워드 기자는 시선을 아이에게 그대로 둔 채로 말을 이어갔다.
“다음 일정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하셨죠?”
“네.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요.”
“혹시 일부러 그렇게 스케줄을 비워둔 건가요? 이번 공연이 성공할 걸 알고서. 저 아이의 가치를 단번에 올리기 위해서요.”
“······.”
로저스는 이번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았기 때문이다.
저 아이는 보통의 연주자와 다르다.
피아노의 스킬, 기교나 기술을 떠나.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피아니스트.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무대만 주어진다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한 마디로.
‘예정된 성공이었지.’
저 아이와 계약한 총 3회의 공연 중에서 나머지 2회의 공연은 천천히 일정을 잡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카네기홀 공연 이후, 저 아이의 연주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된다면.
좋은 공연장에서 ‘먼저’ 섭외가 들어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 아이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고, 저 아이가 공연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로저스는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저 아이는 분명 성장 중이었다.
에틀링겐 갈라 콘서트에서 보여준 연주와 오늘의 연주를 비교해본다면, 저 아이는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다음은?
그다음은?
지금은 아이의 성장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봤다.
그래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끔만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카네기홀로 유명세를 얻고, 가치를 올려, 선택권을 가져온다.
아이가 원하는 공연을 원하는 시기에 할 수 있게 된다.
그거면 충분했다.
‘거기에다가 내년에 퀸 엘리자베스도 나가고 싶다고 했으니까.’
급할 건 없었다.
로저스 디렉터는 워드 기자에게 적당한 선에서 답변을 해줬다.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아이의 가치가 조금 더 올라갈 정도로만.
워드는 결국 양손을 들었다.
“알겠어요. 자세한 건 묻지 않을게요. 다만, 다음 일정이 정해지면 저희 CNN에 제일 먼저 알려주세요. 그 정도는 괜찮죠?”
“물론이죠. 한국까지 저 아이를 보러 가준 기자님께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둘의 대화가 모두 끝난 뒤.
예정돼 있었던 CNN하고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오늘 연주에 대해 심도 있게 말하면서, 영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는 아이.
그는 준비된 천재였다.
* * *
우리는 카네기홀 로비를 빠져나간 ‘척’을 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어느새 한산해진 로비를 지나 카네기홀의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레이 디렉터님께 질문을 해봤다.
“꼭 이런 식의 연출이 필요했던 건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돌아가지를 않으니까. 오랜 세월의 노하우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CNN과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관객들은 한참 동안 로비에 남아있었다.
한결같이 내게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
마음 같아서는 관객들과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는데, 그레이 디렉터님께서는 “우리 직원들도 퇴근은 해야 하지 않겠니?”라며 나를 단번에 설득하셨다.
덕분에 내가 카네기홀을 떠나는 연출(?)을 한 이후, 우리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원하는 장소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카네기홀의 구석진 곳.
자물쇠로 잠긴 문을 열자, 고급스러운 책장이 주욱 늘어서 있는 작은방이 보였다.
공연 전에 그레이 디렉터님과 함께 와본 장소.
이곳은 카네기홀의 방명록이 있는 방이었다.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레이 디렉터님은 책자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셨다.
“이름과 날짜를 먼저 기록하고, 쓰고 싶은 말을 쓰면 된단다.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기록하면 더 좋겠지.”
“넵. 알겠습니다.”
역사의 유물에 가까운 책자.
그레이 디렉터님이 건넨 고급스러워 보이는 볼펜을 받아 들고, 잠시 고민했다.
이 방에 온 것은 오늘이 두 번째지만, 앞으로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밀러 아저씨의 방명록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아저씨는 그때, 공연에서 관객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오늘 공연에서 한 사람을 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걸 여기에 풀어내기로 했다.
나는 방명록을 채워나갔다.
이미 내 것이 된, 아저씨의 말을 적었다.
–
음악. 저는 그 안에서 모든 답을 찾았습니다.
새 소리, 파도 소리, 바람 소리.
하물며 사람의 감정에 숨어있던 소리조차 제 음악에 깃들어버렸습니다.
나는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평온한지 묻습니다.
당신이 행복한지 묻습니다.
당신이 위로받길 원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기쁨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을 찾아와준 수많은 관객들이 미소를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제 연주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음악가들이 만드는 음악을 통해.
당신이 치유를 받았으면 합니다.
저는 이 방명록을 쓰면서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슬픔이 있다면 오늘 제 연주를 듣고 털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에게 제 뜻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음악가입니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13살의 철없는 피아니스트입니다.
–
한 호흡에 써 내려간 방명록.
그레이 디렉터님은 내가 쓴 방명록을 보다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셨다.
“어디서 본적이 있는 내용 같은데? 누구더라?”
“어쩔 수 없죠. 저는 오늘 ⌜거울⌟을 연주한 사람이니까요.”
“거울?”
“네. 그래서 제 첫 번째 방명록은 이거면 충분해요.”
그레이 디렉터님은 ‘첫 번째’라는 말을 듣자마자 미소부터 지으셨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카네기홀의 연주자라면 어떤 내용을 써도 의미가 있을 테니까.”
나는 방명록에 쓴 글귀를 바라보며.
그레이 디렉터님이 그 방명록을 책장에 꽂는 것을 쳐다보며.
에틀링겐의 소원을 들어주는 분수에서 바랐던 내 작은 바람을 다시 한번 떠올려봤다.
우리는 카네기홀 로비로 돌아갔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이쁘장한 드레스를 입은 수연이.
강유한 교수님.
로랑 피아니스트님과 자신을 파얀스라고 소개하시는 피아니스트님.
로저스 디렉터님과 ⌜Schmid⌟ 관계자분들.
그리고.
많은 음악가들.
나는 그분들과 한분 한분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 인사가 끝나 갈 때쯤, 수연이가 내 옆으로 와서 옆구리를 콕콕 찌른다.
슬쩍 손을 내미는 우리 동생님.
수연이가 내게 속삭인다.
“크흠! 오빠 손을 잡고 있어야 내 마음이 편해서 그래. 오늘은 다들 오빠 손을 노리고 있는 것 같네. 이러다가 뺏기겠어.”
내 손 ‘지분’을 주장하는 한수연님.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작은 손을 꼭 잡아줬다.
“이러면 됐지?”
“히히. 이러면 됐어.”
카네기홀을 나서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을바람이 내 주위를 맴돌다가 저 멀리 가버린다.
바람이 지나간 곳을 바라봤다.
하늘.
그곳엔 달이 떠 있었다.
반은 어둡고, 반은 밝은 상현달.
시간이 지나면 금방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언젠간 나도 그렇게 가득 채워지겠지.’
우리는 카네기홀에서부터 이어진 길을 따라 잠시 걸었다.
서늘한 가을 날씨가 약간의 쓸쓸함을 주는 이곳에서도.
내 동생의 손만큼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그 작은 손이······.
오늘은 더욱더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조금은 더 가볍게 다음 걸음을 옮겨봤다.
이곳에 있는 모두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