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31
130. 단막극 촬영 시작 >
단막극을 찍기 전에 태주는 꽤 바쁜 시간을 보냈다. 건설 중이던 전원주택의 건물이 거의 완공되어서 확인차 들르기도 했다. 확인 후 넓은 부지 전체를 담으로 둘러 달라 부탁도 하고 추가로 온실에 창고 건설까지 의뢰하고 왔다.
전원주택 건설 진척도를 본 후 그는 대본을 보는 시간이 아니면 인테리어 잡지나 가드닝 잡지를 봤다. 괜찮은 가구나 장식이 보이면 펜으로 표시를 해 두었다. 나중에 인테리어를 의뢰할 때 표시한 것들을 사용하도록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의 취향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라서, 표시한 식탁 의자 하나가 오천만 원, 조명 하나가 삼천만 원 하는 물건들을 골랐다. 물론 그가 표시한 것들을 전부 사용하진 못할 게 분명했다. 그저 비슷한 느낌이 나는 것들로 꾸며 달라고 얘기할 생각이었다.
태주는 잡지를 보며 약속 시각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이후에 일정이 없어서 느긋하게 표시하면서 잡지를 보고 있었다. 같이 온 태산이는 켓 타워에 매달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장난감은 오늘 태산이가 오는 걸 알고 다른 거로 바꿔 둔 것 같았다. 전엔 공이었는데 오늘은 물고기 모양이었다.
-달칵!
“기다렸어요? 미안해요. 앞에서 김 이사를 만나서요.”
“아니에요.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래요. 이 배우, 얼마 전에 진혁 씨 영화 카메오는 어땠어요?”
“하하하. 재밌었어요.”
“다행이네요.”
소파에 앉으며 태주에게 카메오는 어땠는지 묻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한 최 대표였다. 하지만 그 후로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맛만 다셨다.
할 말을 참는 법 없는 대표님이 무슨 부탁을 하시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건지 궁금했다. 태주는 난감해하는 태도에 짜증이 살짝 묻어나는 대표의 얼굴을 마주 봤다.
“이 배우. 혹시 신조선 사또전 일 있었을 때 만난, 이지명이 기억하세요?”
“네. 기억해요.”
“어휴! 글쎄 이 자식이, 이 배우가 신조선 사또전에 카메오로 나와 줬으면 한다고 부탁을 해서요.”
“사또전에 카메오로 저를요?”
자신이 빠진 신조선 사또전의 주연을 아이돌 출신 배우가 맡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카메오는 주연 배우의 지인이 나서는 게 모양새가 좋을 텐데, 왜 하차한 자신에게 부탁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출연진 중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배우도 없었다.
“주연 맡은 사람이 배우 쪽 인맥이 전혀 없나 보더라고요.”
“대본 좋으니까, 굳이 카메오는 없어도 괜찮을 텐데요.”
“1화에서 시선을 끌어 줄 인물이 있으면 더 좋을 테죠. 이 배우와 트러블이 없다는 것도 보여 주고.”
“트러블이라 할 것도 없죠. 이지명 씨도 결국 배역을 안 맡았으니까요.”
신조선 사또전엔 태주의 하차가 전화위복이 되었다. 태주가 하차하면서 문젯거리가 될 만한 일들을 싹 정리했다. 최 대표가 부추기면서 이지명과 성덕 여사님이 깐깐한 투자자 역할을 해 촬영 여건이 좋아졌다는 얘기도 건너 들은 적이 있었다.
“관직을 제수받는 신을 추가한다고 거기서 임금 역할을 맡아 달라네요.”
“음. 단막극하고 일정이 안 겹치면 출연할게요.”
“고마워요, 이 배우. 내가 정말, 아는 누님 아들만 아니었으면…. 나중에 아주 제대로 후려쳐 줄, 흠흠.”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온 최 대표의 말을 듣던 태주가 놀라서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모습을 최 대표가 멋쩍게 외면했다. 그는 괜히 잘 놀고 있는 태산이에게 간식을 줘야겠다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대표실에서 나온 태주는 우 팀장이 돌아온 것을 보고 그쪽으로 향했다. 문제의 로션 광고를 찍을 건지 답변을 줘야 했다. 트랜드가 급변하는 상품도 아니고, 단가도 높은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산이와 같이 촬영하는 것이라서 아직 확실한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이 배우님 왜 그쪽에서 오세요?”
“대표님이랑 얘기 좀 하느라고요. 신조선 사또전 카메오 출연해 달라는 얘기하고 왔어요.”
“며칠 동안 피해 다니시더니, 결국 거절 못 하셨나 보네요. 날짠 제가 확인하고 알려 드릴게요.”
“네.”
우 팀장은 태주가 사무실에 들른 것을 기회로 일정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에게 자리를 내주고 광고와 화보 리스트를 꺼냈다. 제일 위에 올라온 것은 그도 고민했던 아기 로션 광고 섭외였다.
“이건 저 혼자라면 괜찮은데, 우리 산이랑 같이 찍는 거는 힘들 것 같아요.”
“냐앙.”
“왜? 형, 팀장님이랑 얘기하는 중이잖아.”
“태산이가 심심한가 보네요.”
“좀 전까지 대표님이랑 잘 놀고 왔는데요.”
사무실에만 오면 여기저기 직원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녀석이 태주의 무릎에 얌전히 앉아있을 정도였다. 대표님의 놀아 주는 기술이 좋은지 매번 정신을 놓고 사냥 놀이를 하는 둘이었다. 태산인 신나게 놀고 간식까지 배부르게 얻어먹은 상태였다.
‘돼지고기 광고에 태산이랑 같이 출연하라는 섭외였으면, 바로 받아들였을 텐데. 아쉽네.’
“그럼 로션 건은 다시 얘기를….”
“냥!”
“얘가 왜 이러지? 응? 태산이 왜 그래?”
“호호호. 꼭 태산이가 이 배우님 로션 광고하라고 하는 것 같네요. 어쩜 우는 타이밍이 딱 맞아요?”
“에이. 얘가 똑똑하긴 하지만 광고가 뭔지 알겠어요?”
광고를 거절하려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맞춰서 우는 바람에, 마치 거절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긴 했다. 그런 태산이 반응을 그는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다. 광고 촬영장도 가 본 적 있는 태산이지만, 그걸 이해할 거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럼 이 광고는 다시 연락해 볼게요.”
“네. 그래 주세요. 지금 광고하는 보습크림하고 같이 해도 문제없는 상품이니까요.”
“사실 화장품 쪽 광고 섭외가 꽤 들어와요. 기초 화장품 제외하고는 기존 계약과 상관없으니까요. 리스트 보실래요?”
“와! 뭐가 이렇게 많아요?”
태주는 다른 3년 차 배우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광고를 찍고 있었다. 그 덕분에 경제적인 면에선 다른 배우보다 여건이 훨씬 나았다. 출연한 드라마가 인기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의 뛰어난 외모 덕을 본 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드라마와 상관없는 여성용 색조 화장품이나 선크림 광고 섭외가 들어오진 않았을 것이다.
“아기 로션 말고 다른 보디로션 섭외도 있네요.”
“그렇죠. 산이랑 같이 찍으실 거 아니면, 사실 조건은 그쪽이 더 좋아요.”
“냐앙.”
“팀장님 로션 광고는 산이한테 다시 물어볼게요. 광고를 찍고 싶은지.”
사실 태주는 태산이랑 광고를 찍는 것도 괜찮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태산이는 보통의 다른 보호자와 아이 같은 관계가 아니었다. 태산이가 기분이 내킬 때만 산이로 변하는 것이라서, 그는 추억을 쌓을 만한 일은 되도록 모두 하고 싶었다.
만약 태산이와 같이 아기 로션 광고를 찍어 두면, 나중에 시간이 흘러 되돌아봤을 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태산이가 2차 성장을 해서 성체가 되어도, 쭉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태산이 협조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자꾸 울음소리를 내며 거절하는 말을 끊는 걸 보니, 뭔지 잘 몰라도 제 이름이 나오는 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오늘 돌아가면 태산이 의사를 다시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로션이 뭔지, 광고가 뭔지 알기 쉽게 설명하고 같이 찍을 생각이 있는지 들어 봐야 했다.
그날 저녁, 태주는 태산이를 앉혀 놓고 광고에 관해 설명했다. 미튜브에 나온 자신의 광고를 찾아 보여 주며, 광고란 이런 거라고 알려줬다. 이걸 같이 찍자고 하는데, 하고 싶은지 물었다. 태산인 그의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에겐 태산의 ‘냐앙’하는 대답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
광고 촬영과 인터뷰, 다시 화보 촬영과 리딩. 바쁘게 짜인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어느덧 단막극의 촬영 시기가 되었다. 아직 한겨울의 추위가 모두 가시지 않았지만, 3월의 햇볕은 꽤 따뜻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딱 좋은 때였다.
태주와 일행은 경기도의 한 세트장에서 촬영 준비가 마무리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세트 리얼하네요. 이대로 영업해도 될 것 같아요. 진짜 무당집처럼 꾸며놨네요.”
“그러게. 으으. 소름 돋을 것 같아.”
“진짜 점집도 아닌데, 뭘 그러세요.”
“그래도. 보이는 게 저러니까, 무섭잖아.”
평소의 화통한 성격은 어디로 갔는지, 세트를 보는 미나의 표정은 하얗게 질린 것 같았다. 태주는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의 세트가 꽤 마음에 들었는데, 그녀는 전혀 아닌 것 같았다. 점점 질려 가는 그녀의 표정이 신경 쓰여서 태주가 농담을 건넸다.
“에헴. 누나. 이래 보여도 제가 도깨비 왕 출신이에요. 잡귀는 제 상대가 아니에요.”
“뭐? 도깨비 왕 출신? 호호호. 말이 되긴 한다.”
태주는 턱을 치켜들고 전직 도깨비 왕이 있는데, 귀신 같은 걸 무서워할 이유가 뭐냐며, 자신만 믿으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회색 면티에 파란색 운동복 하의를 입고 분홍색 볼에 고무줄로 앞머리를 묶은 채 장담하는 모습에 믿음이 가진 않았다. 그래도 꽤 귀여운 모습에 긴장이 풀렸다.
더 노블레스를 찍을 때도 얼마 전 카메오로 출연한 영화를 찍을 때도 비싸고 귀한 것들을 두르고 있었는데, 이번엔 영 폼 나는 차림새가 아니었다. 물론 뭐든 잘 소화하는 모습이라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꾸며 주는 보람이 덜했다.
“네 작품 중에서 이번 단막극 의상이 제일 준비하기 쉬웠던 거 아니?”
“그래요?”
“응. 제일 싼, 할인하는 면티랑 바지야. 위아래 다 합쳐도 이만 원도 안 할걸?”
“어쩐지. 바지 길이가 짧더라.”
“어휴. 얄미워. 그래 너 키 크다.”
실제로 미나는 태주의 옷을 고르는데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키가 큰 편이라 허리는 맞는데 발목이 짧았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오늘 준비한 의상은 마트 가판의 세일 품목을 사 온 것인데, 바지 기장이 짧아서 밑단이 발목 위로 껑충 올라와 있었다.
“호호호. 지금 바지 길이가 딱 좋아요.”
“아! 작가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농담 아니고요. 박수 모습으론 지금 의상이 정말 딱 맞아요.”
“그렇죠? 작가님 보시기에도 어울리죠?”
“네.”
여랑 작가는 촬영장에 도착해서 처음 본 태주의 모습에 혼자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글로 적은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상상했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네 청년의 모습을 태주가 그대로 하고 있었다.
“혹시 오늘 모습도 팬 카페에 올리실 건가요?”
“네? 아! 네. 올려도 괜찮으면 올릴 생각이에요.”
“오, 오, 올리셔야죠. 백 장이든 천 장이든 마음껏 올리세요.”
“호호호. 작가님도 참. 그건 너무 많죠.”
태주가 사진을 찍는다는 소리에 앞머리를 풀려다 미나에게 막혔다. 팬들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모습 그대로 올리길 바랄 거라는 이유를 대는 그녀를 거스를 수 없었다. 사과 머리가 민망했지만, 어차피 드라마에도 이 모습으로 나간다. 그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밝은 얼굴로 포즈를 잡았다.
“오케이. 좋아. 호호호.”
“누나. 저번부터 이상한 쪽으로 의욕적인 것 같아요.”
“어머. 오해야. 난 그저 팬들의 바람을 들어주려는 것뿐이야.”
“맞아요.”
여랑 작가가 옆에서 미나의 편을 들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미나는 최근 태주의 굴욕 샷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는데,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자초한 태주는 몰래 한숨을 삼켰다. 지난 카메오 촬영에서 괜히 미나를 도발해서 그녀가 이상한 의욕에 불타게 해 버렸다.
“올렸다.”
“흐흐. 아, 어떡해. 너무 좋아요.”
“네?”
“헉.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실 태주의 팬 카페에 분장한 사진을 올리는 일은 단막극 홍보에 꽤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태주는 팬 서비스 차원에서 하는 일이었지만, 첫 작품인 단막극의 성공을 바라는 작가와 감독에겐 무척 기꺼운 상황이었다.
연출자나 배우 할 것 없이 방송 관계자들에겐 단막극 공모전과 제작이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일은 아니었다.
단막극을 시청률과 전혀 무관하게 제작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작품보다는 신경을 덜 쓰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내용도 좋고 시청률까지 잘 나오는 반전 아닌 반전을 모든 연출자가 바랐다.
특히 태주 같은 화제를 몰고 다니는 배우를 기용한 여랑 작가와 강은진 PD는 내심 기대하는 게 있었다. 연예인 팬클럽 같은 곳에 가입해서 소식을 얻어가는 기자들의 활동이 그것이었다.
[이태주 tvM 단막극 촬영 중배우 이태주는 현재 tvM에서 단막극 공모전의 입상 작품을 촬영 중이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대로 바로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짤막한 설명 한 줄의 기사가 나간 뒤였다. 따로 단막극의 제작 발표회를 하지도 않았는데, 태주가 출연하는 단막극 박수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실린 기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팬 카페에 올릴 사진을 찍은 후 태주는 언제나처럼 대본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촬영 전엔 폰을 꺼서 견우나 미나에게 맡기는 태주는 자신의 기사가 좀 전에 찍은 사진을 달고 나간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평소처럼 대본을 확인하고, 같이 촬영할 배우와 대사를 맞추고 있었다.
단막극 제작 발표회를 하기 전까지 몇 주 동안 인용할 사진이 될 줄 알았다면, 아마 미나 역시 사과 머리에 분홍 볼을 한 태주를 찍진 않았을 것이다. 태주가 부끄러워하는 장면을 보길 바라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션을 성공한 상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