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22
외전. 슈퍼 패스 04
태산이의 완력이라면 한 손에 한 명씩 싸우는 상대를 뜯어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전후 사정을 모르기도 했지만, 처음 보는 데뷔 조 멤버를 위해서 나설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서였다.
-콰앙!
-탕!
“무슨 일이야?”
“뭐야? 이게 무슨 소란이야!”
복도에서 벌어진 소란이 제법 요란했는지, 방음 설비가 되어 있는 보컬 연습실까지 소리가 전해진 것 같았다. 몇몇 보컬 연습실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복도로 나왔다.
그 사람 중 강사로 보이는 이가 바닥을 뒹구는 창민과 그런 창민에게 발길질하는 남자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연습생으로 보이는 몇도 두 사람과 아는 사이인지 이름을 불러 대며 강사를 도왔다.
“산아, 대화야! 너희 괜찮아?”
“괜찮아요.”
“응. 우린 이쪽으로 피해 있었어.”
“잘했어, 잘했어.”
복도로 나온 사람 중엔 재민도 있었다. 그는 싸우는 사람에겐 관심이 없는지 눈길도 주지 않고 한구석에 피해 있던 태산이와 대화를 챙겼다. 동생 둘이 싸움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여전히 악다구니를 쓰며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띵!
“강창민! 이영호! 당장 그만두지 못해!”
재민이 태산이와 대화를 챙겨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비상구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4층에서 벌어진 싸움 소식을 들었는지, 연습생의 관리를 맡은 팀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복도를 발을 디디자마자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팀장은 일단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면서 입단속을 부탁했다. 사람들에게 싸움의 원인이나 과정을 묻고 싶었지만, 당장은 바닥에 쓰러진 창민을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 급했다. 우선 환자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이후의 일을 처리해야 했다.
“자, 자. 다들 해산하세요. 거기 너희도 얼른 레슨 들어가. 시간 다 됐어. 뭐해? 빨리 내려가.”
“네.”
“선생님은 주차장까지 얘 부축하는 것 좀 도와주시죠.”
“그렇게 할게요.”
“영호, 넌 이대로 3층 상담실로 가 있어. 튀면 죽는다.”
“…네.”
재민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상황이 정리되는 걸 구경하는 태산이와 대화의 등을 떠밀어서 레슨실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4층에서, 갓 중학교에 입학한 애들도 같이 쓰는 보컬 연습실이 있는 장소에서 싸운 두 사람에게 이를 갈았다. 다 큰 어른들이 그것도 되도록 몸을 사려야 하는 데뷔 조 멤버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
태산이는 팀장이 바로 불러서 어떤 상황이 벌어진 건지 물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당시 일을 소문내지 말라는 주의만 주고 넘어갔다. 아마 태산이가 연습생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3층 상담실로 갔던 사람이 사실을 전부 밝혀서일 수도 있었다.
연습생들 사이에선 어쩌다 벌어질 법한 해프닝 정도로 여겨졌지만, 기획사 임직원들에겐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데뷔 조 멤버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은 자칫하면 새로운 아이돌 그룹의 멤버 구성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싸운 이유가 뭐랍니까?”
“연애 문제로 싸웠답니다.”
“아니요. 저희가 연애를 금지하긴 했지만, 같은 멤버가 연애했다는 정도로 이렇게 싸우지 않는다는 건 압니다. 오히려 숨겨 줬으면 숨겨 줬지. 무슨 일이랍니까?”
“…창민이가 호영이가 사귀던 여자와 사귀었답니다.”
“그게 싸울 이유가 됩니까?”
당연히 거기까지라면 싸울 이유가 되진 않는다. 어느 정도 껄끄러움이 남기야 하겠지만, 두 사람 모두 그런 상황을 이해 못 할 정도로 어리진 않았다. 문제는 실제론 호영이 여자 친구와 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여자 친구가 친구와 바람을 피우고 아이까지 가진 사실을 알게 된 호영의 눈이 돌아가는 것은 이해가 갔다. 만약 기획사의 데뷔 조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를 비난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몇 년간 쌓은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들인 모든 노력이 이 일로 인해 빛을 잃을 수 있었다.
팀장은 참담한 표정으로 상담실에서 호영에게 들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미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덮고 말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전부 오픈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급했다.
“…그렇게 된 겁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알았다면, 이렇게 될 때까지 두진 않았을 텐데.”
“됐습니다. 애들이 작정하고 감추는 걸 송 팀장이 어떻게 알아냅니까. 숙소 관리하는 매니저도 몰랐는데. 그 이야기는 이제 됐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정합시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으음.”
“….”
한 명은 화가 났다지만, 같이 데뷔할 멤버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폭행했다. 다른 한 명은 비록 상대에게 속은 것이었지만, 다른 멤버의 여자 친구와 사귀고 임신까지 시켰다. 둘 모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의실에 모인 임직원들은 저마다 곤란한 표정을 띄운 채 주저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자르고 다른 멤버로 데뷔 조를 구성하는 게 최선이었지만, 데뷔 하나만 바라보고 수년간 노력한 아이들을 내치자는 말이 쉽게 나오진 않았다.
“확실한 사실은 두 사람을 같은 그룹에 넣을 수 없다는 겁니다. 아니, 난 솔직히 둘 다 그룹에서 빼는 게 낫다 생각합니다.”
말을 꺼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던 대표가 포문을 열었다.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다들 같은 의견을 낼 게 분명했다. 굳이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데뷔 후엔 이보다 더 험한 꼴을 볼 수도 있는데, 그때도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들면 방법이 없습니다.”
“창민이 문제도 그렇습니다. 이런 문제는 아무리 잘 봉합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꼭 다시 튀어나오곤 합니다. 아니면 같은 일이 반복되던가요.”
“그렇다고 데뷔 조 인원 다섯 중에 둘을 한 번에 내보내는 건 좀….”
“아니요. 차라리 일찍 터지는 게 낫습니다. 데뷔하고 나서 이런 일이 터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럼 부족한 인원은 연습생 중에서 뽑습니까? 아니면 새로운 얼굴로 찾아보는 게 낫겠습니까?”
회의에 참석한 임직원들이 데뷔 조 멤버 충원에 관해 얘기하는 동안 대표는 조금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인 줄은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연습생이 된 지 얼마 안 되는 태산이를 새로운 아이돌 그룹의 센터에 세우는 일이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충격적인 만남. 연습생이 된 동생의 보호자로 온 이태주와의 만남이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이미 한 달도 더 전에 있었던 만남이었지만,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빛나는 사람, 나아가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를 빛나게 만들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게 하는 사람이었지.’
몸을 감싸는 공기마저도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압도적인 존재감. 서른일곱이라는 나이가 무색한 무결점의 외모. 상대를 꿰뚫는 것 같은 눈빛이나 귓가에 여운이 남는 목소리까지. 이태주는 괜히 전 세계 곳곳에 팬을 거느린 스타가 아니었다.
그리고 대표는 그런 느낌을 동생인 이산한테서도 받았다. 사랑스러운 외모에 장난기 가득한 눈빛, 귀에 착 붙는 맑은 목소리까지. 이산 역시 천생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이였다.
‘순한 맛 이태주 같았지. 아니지! 그게 순한 맛이면 다른 스타들은 다 맹물인가.’
“이산….”
“산이요? 산이가 잘하기는 하지만 이제 들어온 지 한 달 좀 넘은 아이입니다. 아직 이렇다 평가할 만한 게 없는데….”
“그렇죠. 산이에 관한 건 이달 평가가 지난 다음에 다시 얘기합시다. 그보다 멤버를 늘리는 건 어떻습니까? 원래 셋에 넷이나 둘에 다섯으로 할 계획이었잖습니까.”
“아!”
처음 데뷔 조를 구성할 때 래퍼 셋에 보컬 넷이나, 래퍼 둘에 보컬 다섯으로 구성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원을 늘려서 어중간하게 지원할 바에야, 멤버의 숫자를 줄이고 지원을 늘리는 게 낫다는 게 임원들의 의견이었다. 관리도 그쪽이 더 수월하고.
딴생각하다 실수로 산이의 이름을 흘린 대표는 티 내지 않고 담담한 태도로 화제를 바꿨다. 다른 기획사에서 나온 연습생이나 언더에서 활동하는 래퍼들의 프로필을 살펴보자는 얘기 중이던 사람들은 새로운 화제, 데뷔 조 멤버를 늘리자는 화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데뷔 조 두 사람의 처우는 회의 결과대로 하기로 합시다. 나중에 시간 잡아 주세요. 내가 직접 얘기하겠습니다. 새로운 멤버는 최대한 우리 연습생 중에서 뽑아 보고, 부족하다 싶으면 외부에서 영입하기로 합시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회의는 질질 끄는 걸 싫어하는 대표의 빠른 결정으로 삼십 분 만에 끝났다. 결정자인 대표는 회의실을 벗어났지만, 남은 사람들 사이에는 할 얘기가 더 있었다. 특히 데뷔 조를 새로 짜다시피 해야 하는 신인 개발본부장이 할 말이 제일 많았다.
“우리 회사에 여력이 있습니까? 에스텔라 애들 망하고….”
“망하긴 누가 망했습니까. 아직 제대로 빛을 못 봐서 그렇지, 우리 애들이 망한 건….”
“두 분 그만하시죠. 회사에 여유는 있습니다. 얼마 전에 투자를 받아서요.”
“오! 우리 회사가 이제 운이 트이나 봅니다. 얼마 전엔 그 이태주 동생도 들어오더니.”
그 이태주가 동생을 위해서 투자한 투자금이었다. 일반적인 투자자와 전혀 다른, 순전히 자기 동생의 편의를 위한 투자였지만, 아이돌 그룹 하나 론칭하는 데 무리 없는 거액이었다. 좋은 곡을 받고 뮤직비디오도 멋지게 찍는 게 가능한 금액이었다.
‘그런데 산이를 데뷔시킬 마음이 있긴 한 건가?’
꽤 큰 금액을 투자했지만, 이태주가 바란 것은 동생의 레슨 시간을 줄이는 것뿐이었다. 추가로 레슨을 가능하면 저녁 식사 전에 끝내 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데리러 올 수 있게.
아무리 봐도 방과 후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은데, 동생이 데뷔 조에 뽑히는 것이나 실제로 데뷔하는 걸 허락할지 걱정이었다.
*
“지난 월평 때 봤었지? 댄스는 그룹 댄스 아닐 때는 마음대로 해도 돼. 친구랑 듀오로 해도 되고 혼자 해도 되고.”
“그럼 난 형이랑 듀오로 할래.”
“아하하. 저번에 같이 했던 거?”
“응.”
“그것도 괜찮았지. 그런데 너무 짧으니까, 안무 좀 더 추가하자. 음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재민이 아는 편곡이 가능한 친구들은 대부분 기획사를 나갔다. 그뿐 아니라 회사에 그와 비슷한 나이의 연습생은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았다. 데뷔 조가 뽑히고 난 뒤에 다른 회사로 가거나 연습생 생활을 그만둔 사람이 많아서였다.
재민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연습생에 지원해서 아직 2년도 채 되지 않아서 남게 되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조급해하지 않고 이삼 년 정도 더 투자할 생각이었다.
“나 아는 사람 있는데, 같이 만나러 가 볼래?”
“우리 회사 사람 아니야?”
“응. 그 형 스튜디오 여기서 가까워. 편의점 돌아서 조금만 가면 돼.”
“진짜 가깝네. 그런데 괜찮을까?”
“응. 태주랑 친해. 괜찮아.”
재민은 그 이태주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는 태산이 때문에 흠칫 놀랐다. 가족이니 편하게 언급하는 것일 테지만, 형 이름을 가볍게 부르는 모습은 볼 때마다 그를 놀라게 했다. 아무리 해외에서 오래 살다 왔다지만, 꽤 당황스러웠다.
“태주 형이라고 해야지.”
“태주는 태주야. 이미 최고라서 그걸로 충분해.”
“그게 뭐야.”
“그런 게 있어. 재민이 형 우리 가는 길에 크레이프 먹을까?”
“지금 가자고?”
우선 안무를 보충한 뒤, 편곡을 부탁하러 가자는 재민을 태산이가 당장 가야 한다며 닦달했다. 저녁에 태주가 데리러 오기 전에 크레이프를 한 번 더 먹어 둬야 했기 때문이었다. 주말에도 나와서 연습하는 연습생들과는 다르게 태산이는 주말엔 집에서 쉬기 때문에 지금 먹지 않으면 다음 주까지 참아야 했다.
“하여간. 크레이프 진짜 좋아해.”
“이히히. 박대화 너는 안 가?”
“나도 가?”
“응. 나는 예전부터 아는 형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태주가 유명한 PD랬어. 알아 두면 도움될 거야.”
“누군데?”
“이름은 몰라.”
태산이의 설명에 따라나서려던 대화와 재민의 몸이 굳었다. 태산이가 호언장담했지만, 이름도 모르는 유명한 PD한테 월말 평가에 쓰일 곡의 편곡을 부탁하러 가는 일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현실감이 들어서였다.
“진짜 가도 돼?”
“응. 친해. 가자.”
“으아아!”
“이사니! 멈춰어!”
태산이는 친하다 말하며 대화와 재민의 목에 팔을 두르고 달려 나갔다. 뭉그적거리던 두 사람이 비명을 지르면서 같이 달리는 게 재밌었다.
두 사람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지만, 걱정할 필요 없었다. 실제로 태산이는 PD 형하고 꽤 친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PD 형보다는 그의 고양이들과 더 친했다. 고양이 모습이었을 때였지만, 같이 간식을 나눠 먹기도 했었고, 그루밍도 여러 번 받았었다.
“꺄아아!”
“산아! 여기 좀 봐줘.”
“이산! 산아!”
PD를 만날 겸 크레이프를 먹으러 회사 밖으로 나온 일행을 반겨 주는 것은 태산이를 기다리던 팬들이었다. 연습생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로 하나둘 모이더니, 지금은 꽤 많은 숫자가 회사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테산이는 그런 팬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손 키스를 보내면서 길을 걸었다. 가끔은 길 중앙에 선 팬에게 위험하니 길가로 물러나라는 손동작을 보여 주기도 했다.
“어제보다 늘어난 거 같지?
“네. 점점 느는 것 같아요.”
“산이 진짜 인기 많구나.”
“어릴 때부터 유명했잖아요.”
“대단하다.”
아직 데뷔는커녕 데뷔 조에도 들지 못한 연습생이 수십 명의 팬을 모이게 하고, 또 그런 팬을 노련하게 다루는 모습에 대화와 재민은 혀를 내둘렀다.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사람들을 피해 제 길을 가는 태산이를 본 두 사람은 다음에 론칭할 그룹의 데뷔 조 멤버에 그가 반드시 포함될 거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