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23
외전. 슈퍼 패스 05
크레이프 가게 사장은 태산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팬에 반죽을 올렸다. 이미 단골 중의 단골이 된 태산이라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얼굴만 보면 반사적으로 초콜릿 잼 크레이프를 만드는 수준이 되었다.
“와플도 전부 포장해 주세요.”
“헐! 크레이프 먹고 와플도 먹게?”
“아니. 와플은 방문 선물.”
“몇 명인데 이걸 다 포장해?”
“몰라. 남으면 우리가 먹자.”
“그럼 최소한 반은 다른 잼으로 해!”
태산이는 스튜디오 방문 선물로 가게에 있는 모든 와플의 포장을 주문했다. 토핑을 본인의 취향대로 전부 초콜릿 잼과 초콜릿 쿠키로 통일했다. 대화는 사장이 미리 만들어 둔 십여 개의 와플에 전부 초콜릿 잼을 바르려는 누군가의 만행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에이! 초콜릿이 제일 맛있는데.”
“산이 너 진짜 취향 확고하다.”
“응. 초콜릿은 사랑이야.”
“고기는 진리고?”
“응. 캬하하.”
셋이 웃고 떠들면서 걸으니 목적지는 금방이었다. 그러나 그 목적지의 앞에 선 대화와 재민은 들어갈 생각은 못 하고 자신들이 제대로 온 것이 맞는지 눈을 의심하는 중이었다.
“왜 그래? 들어가자.”
“아는 PD 형이라며!”
“아는 PD 형 맞는데?”
회사 뒤편 거리에는 작곡가들의 사무실이 꽤 여럿 있었다. 소규모의 레코딩 스튜디오나 촬영 스튜디오도 많았다. 그래서 태산이가 아는 PD 형이라고 말했을 때, 그런 소규모의 레코딩 스튜디오를 떠올렸었다.
“설마 그 PD 형이 작곡가 네온 K는 아니겠지?”
“우음. 몰라.”
대지 PD인지, 뭔지 태산이가 말한 PD 형이 그가 아는 네온 K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장소가 장소라서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어게인 레이블의 스튜디오. 전직 아이돌이자 현직 배우인 박준과 멤버 둘이 모여서 시작한 작은 레이블이었지만, 지금은 히트곡을 많이 보유한 작곡가와 PD가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아이돌 기획사와는 추구하는 음악의 색이 달랐지만, 작곡 실력이나 프로듀싱 실력이 좋아서 누구나 협업하길 바라는 곳이었다.
-딩동!
“누구세요?”
“나 왔어.”
“…산이. 소개 똑바로 안 하면, 안 열어 준다.”
“산이! 산이! 사, 읍읍.”
“야아! 그만해!”
“헉! 산아!”
대화와 재민은 장난기가 돋은 태산이 큰 목소리로 제 이름을 외쳐서 깜짝 놀랐다. 쩌렁쩌렁 건물 로비가 울리게 큰 목소리로 외치는 걸 기겁해서 말리는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태산이는 인터폰을 누른 상태로 계속 이름을 외쳤을 것이다.
“빨, 빨리 들어와.”
-삑!
재민은 문이 열리기 전에 당황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그냥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그는 태산이의 입을 막고 있는 대화를 향해 들어가자고 고갯짓했다. 태산이의 짓궂은 행동에 이미 의외의 장소에 도착한 당황은 사라진 채였다.
스튜디오 안의 상대가 먼저 포기하고 문을 열어 줬지만, 태산이는 이름을 외치는 걸 그만두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외쳤다.
“대지야! 나 마중 왔어?”
“냐아.”
“여름이랑 겨울이는?”
“냐앙.”
“휴게실에 있다고? 다른 친구도?”
“냐아아.”
스튜디오 안에서 기다리던 사람과 여상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태산이와 다르게 대화와 재민은 입을 떡 벌린 채 굳어 있었다. 당황스러움은 문밖에서 모두 느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둘은 설마 하던 의심이 현실로 드러나서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태산이가 신나게 마중 나온 고양이와 말이 통하는 것처럼 대화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거 선물.”
“…혹시 와플 가게 털었어?”
“캬하하. 많이 먹어.”
“그냥 오라니까. 그나저나 놀러 오랄 때는 안 오더니, 오늘은 무슨 일이야?”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
태산이는 ‘안녕하세요, 박재민입니다.’ 이후로 굳어 있던 재민이의 팔을 건드려 정신을 차리게 했다. 태주를 보고도 놀라서 굳더니 PD 형을 보고도 놀라서 굳어 버렸다. 심장이 너무 약한 것 같았다. 나중에 트리즈에 데려가서 단련을 시켜야 할 듯했다.
“재민이 형 노래 줘 봐. 이 노래 편곡 좀 해 줘, 형.”
“헉! 여, 여기요.”
“편하게 해요, 편하게. 노래는 본인이 작곡한 거?”
“아니요. 클라운 선배님들 노랜데요. 이게 45초짜리로 편곡된 곡이거든요. 그걸 이 곡과 연결되게….”
설명을 한참 들은 대지 형, 작곡자이자 네온 K라는 예명을 쓰는 PD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지금 자신이 받은 부탁이 현실이 맞나 하는 의심도 잠시 들었다.
작곡 유망주를 데리고 와서 편곡을 부탁한 것도 아니고, 안무용으로 편곡된 45초짜리 기성곡을 다른 곡과 합쳐서 1분 50초짜리 곡으로 편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기획사들도 미리 약속을 잡고 와서 곡을 부탁하는 자신에게.
“이거 어디에 쓸 곡이야?”
“월평에서 재민이 형이랑 듀오 할 때 쓸 곡이야.”
“월평이라니…. 네가 연습생이 된 게 맞기는 하구나.”
“응.”
“연습생 재밌어?”
“응!”
그 역시 연습생 생활을 했었다. 보장 없이 긴 시간 노력하는 게 힘들어서 떨어져 나가는 아이들도 여럿 봤었고, 반대로 새벽이고 주말이고 없이 이를 악물고 연습하는 아이들도 봤었다. 그중에 태산이처럼 상쾌한 얼굴로 재밌다 대답하는 아이는 많지 않았었다.
‘초조하고 피로한 얼굴이 대부분이었지.’
“옛날 생각나네. 알았어. 잠깐 기다려 봐.”
“와플 먹고 해야지.”
“…초콜릿은 좀.”
“어유! 편식하면 못 써. 골고루 먹어야 튼튼하지.”
편식이니 골고루 먹어야지 하는 그런 대사는 절대로 할 것 같지 않은 상대가 뱉은 말에 녹음실 안에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네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너는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이 편식쟁이야.”
“이야! 내가 그 꼬맹이한테 이런 소리를 듣다니.”
그러나 침묵은 말 한 상대가 상대인지라 금세 소란스러운 저항에 사라지고 말았다.
“꼬맹이, 얌전히 고양이들이랑 놀고 있어. 재민이라고 했지? 넌 잠깐 기다리고.”
“대화도 같이 있어도 돼?”
“어. 상관없어.”
“대화 너도 여기 있어.”
“응.”
초콜릿이 아닌 다른 토핑이 얹어진 와플을 하나 챙긴 PD가 편곡 작업을 위해서 태산이를 쫓아냈다. 꼬맹이랑 있으면 시끌벅적하니 재밌긴 했지만, 작업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얼마 걸리지 않는 간단한 편곡 작업이지만, 대충할 생각은 없었다.
“여름아, 겨울아.”
태산이는 작업에 들어간 PD와 재민, 그것을 흥미롭게 구경하는 대화를 두고 휴게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여름이와 겨울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스튜디오는 그 두 마리 털북숭이 친구 외에도 다른 친구들도 많았다. 한창 작업 중인 PD도 배우 겸직인 박준과 다른 친구까지 고양이를 좋아해서 어느 순간 대가족이 되어 있었다. 태산이를 반겨 줬던 대지와 형제인 바다랑 하늘이, 자두와 살구도 있었다.
“오랜만이야. 너흰 오늘도 건강하네. 다행이다.”
“냐아아!”
“이거 먹어. 몸에 좋은 거야. 태주가 만든 건데, 맛있어.”
“냐앙.”
태주와 미국에서 생활하는 사이, 또 다른 친구인 진혁의 반려견 밤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평범한 동물의 수명이 짧은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별을 겪은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건강한 고양이들이 더 반가웠다.
태산인 반갑다고 다리에 몸을 비비는 고양이들한테 목줄에서 꺼낸 영양제와 육포를 먹였다. 꿈의 정원이나 전원주택에는 몸에 좋은 게 많은데, 지금은 길고양이나 강아지에게 주려고 챙긴 이 두 가지뿐이라 아쉬웠다.
그렇게 태산이가 고양이들과 소파 위를 뒹굴며 노는 사이 월평에서 쓸 안무 곡이 완성되었다.
*
커다란 연습실에 회사의 모든 연습생이 모여 있었다. 곧 있을 평가 때문에 모인 연습생들 대부분은 잔뜩 긴장한 채였다. 데뷔 조가 뽑히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풀어질 법도 했지만, 누구 한 명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연습실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검은색 계열의 셔츠와 바지, 화려한 검은색 비즈로 장식된 재킷과 액세서리로 꾸민 재민과 태산이었다. 삼삼오오 뭉쳐 떠들던 연습생들은 풀 세팅한 두 사람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우와! 재민 형, 산아. 둘이 뭐야?”
“…대화야.”
“어때? 우리 메이크업도 받았다.”
“장난 아니다. 이대로 무대 올라가도 되겠어.”
“이상하진 않아?”
재민의 물음에 대화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문가의 손길을 탄 듯 깔끔하고 보기 좋았다. 이상하긴커녕 그대로 데뷔해도 괜찮을 정도로 멋졌다.
“미나 누나가 해 줬어.”
“미나 누나?”
“태주 형 스타일링 담당하는 실장님이셔. 산이 머리 다듬으러 간대서 같이 갔다가 스타일링 받았어. 거기가 어디냐면….”
“형 진정해요.”
자신의 모습이 낯선지 재민은 평소보다 말이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그에 비해 태산이는 화려한 메이크업이나 의상, 반지, 이어커프 같은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잠시 후 진행될 월말 평가에서 선보일 노래의 가사와 안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평가 시간이 다가올수록 태산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연습생이 늘었다. 재민도 태산이가 안무를 맞춰 보자고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간 뒤엔 정신을 차리고 연습에 몰두했다.
-짝짝짝!
“자, 지난 한 달 동안 얼마나 나아졌는지 보자. 준비됐지?”
“네.”
월말 평가의 시작은 노래 실력 확인부터였다. 태산이의 순서는 기존에 트레이닝을 받던 연습생들 다음이었다. 노래 평가에서 태산이는 지난 한 달 동안 지겨울 정도로 연습하면서 부른 곡을 불렀다. 보컬 코치가 추천한 곡으로 맑은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이건 솔직히 기대 이상이야.’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정말 곡 표현력이 좋아. 형 덕인가?’
‘편하게 부르는군. 언제 봐도 호흡이 안정적이야.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맞는 발성을 선택해서 부른다더니. 그 말 그대로야.’
‘정체가 뭐야? 어떻게 몇 년씩 트레이닝을 받은 애들보다 한 달 좀 넘은 애가 더 나을 수가 있지?’
대표를 비롯해 월말 평가에 참석한 임원들은 태산이의 순서를 내심 기다렸다. 연습생이 된 기간은 짧았지만, 그에 대한 기대는 무척 높았다.
회의에서 데뷔 조로 뽑고 싶다는 의중을 은근히 드러냈던 대표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산이 자체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기대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태산이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최고의 배우를 보고 자라서인지, 곡 표현력에 대해선 손을 댈 곳이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발성과 호흡이 상당히 안정적이어서 다른 멤버와의 여러 조합을 떠올리게 했다. 음색 역시 독보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유니크했다.
-쓱쓱!
-쓱쓱쓱!
태산이의 노래가 끝난 뒤에 각 파트를 담당하는 코치와 임원들의 손이 바빠졌다. 모두 평가지 위에 점수를 매기고 각자의 의견을 첨부하느라, 송 팀장이 댄스 평가를 위해 연습생을 정렬시키는 것도 보지 못했다.
“우리는 사니미니예요.”
“하하하! 너희 듀오 이름이야?”
“네.”
“잘 지었는데, 뭘 부끄러워해.”
당연히 부끄러웠다. 이름만 ‘사니미니’로 했다면 괜찮았지만, 같이 하는 동작이 문제였다. 검은색 계열로 멋지게 차려입은 두 사람이 만화에서나 볼 법한 크로스 포즈를 취하는 것은 성인인 재민에겐 특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의상도 그렇고 멋지네. 기대할게.”
“네!”
힘차게 대답하는 태산이와 다르게 재민은 힘겹게 대답했지만, 준비한 춤을 보여 주는 일에 소홀함은 없었다. 그는 태산이가 인정할 정도로 춤에 대한 애정도 컸고 그만큼 재능도 있었다. 물론 그것은 장난기를 지우고 안무 곡의 분위기에 맞게 감정을 잡는 태산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페어 댄스는 처음에는 나란히 서서 같은 춤을 다른 느낌으로 추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천천히 시동을 걸듯이 옆으로만 움직이던 둘은 음악이 진행되는 것에 따라 전후좌우 공간 전체를 무대로 사용했다.
두 사람의 춤은 뒤로 갈수록 동작이 커지고 격렬해졌지만,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각자의 개성대로 움직이면서도 호흡이 딱딱 맞았다. 특히 하이라이트인 서로의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안무는 연습실 안 전원의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
“…잘 봤어. 연습 많이 했구나. 자리에 가서 쉬어.”
“네.”
“네.”
두 사람의 퍼포먼스에 놀란 것인지, 평가해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기다렸지만, 여전히 두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을 대신해서 송 팀장이 두 사람을 칭찬하고 들여보냈다.
두 사람이 자리로 들어가고 다음으로 댄스 평가를 받을 연습생이 와서 앞에 선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표를 비롯해 평가를 위해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제 조용했냐는 듯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소년미가 가미된 퇴폐미가….”
“스피디하고 남성적인 매력이….”
“같은 동작인데도 훨씬 더 역동적으로 보이는….”
“당장에라도 연말 시상식 공연에….”
데뷔 조에 넣을 멤버를 고르는 평가라서 누구 한 명 소홀히 봐선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태산이와 재민이 듀오의 페어 댄스가 충격적이었는지, 다음 순서로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송 팀장은 그런 사람들을 말로 달랠 생각은 포기하고 그냥 준비된 안무 곡을 틀었다.
“송 팀장님.”
“네.”
“산이 보호자하고 면담 잡아 주세요.”
“…네.”
연습생 전원의 노래와 댄스 평가가 끝나고 연습실을 나가기 전 대표가 송 팀장을 찾았다. 그는 데뷔 조 멤버에 태산이를 포함 시키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
좌불안석, 가시방석. 송 팀장은 이런 단어 외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느긋한 태도로 다리를 꼬고 상석에 앉아 있던 대표의 다리가 공손히 펴지고 허리가 세워진 것을 보면, 아마 대표의 상태 역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숨, 숨 막혀라.’
이 모든 것은 이태주, 태산이의 보호자인 그가 대표실로 들어오고 나서부터였다. 그는 처음 인사를 나눈 뒤로 아무 말도 없이 줄기차게 대표와 자신을 쏘아보기만 했다. 그 눈빛 속에 담긴 뜻은 바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자신들을 사기꾼으로 보는 눈빛이었다.
송 팀장은 태산이에게 데뷔 조로 뽑혔다는 소식을 전하고 보호자와 면담을 요청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 벌어지진 않을까 걱정하긴 했었다. 동생이 바라니 연습생은 허락했지만, 아무리 봐도 데뷔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어서였다.
“한 달 반 만이네요.”
“예, 그렇습니다.”
“이런 이슈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요.”
“그, 러십니까?”
“네.”
태주의 말은 가시가 돋은 듯 날카로웠다. 연습생이 되고 겨우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월말 평가를 진행한 걸 알았지만, 직후 아티스트 계약을 하자고 연락하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었다.
그만큼 태산이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태산이의 유명세를 이용하거나 자신한테서 투자를 더 끌어내거나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되었다.
“당황스러우시겠지만, 믿어 주십시오. 산이가 데뷔 조에 포함된 것은 순전히 실력만으로 평가한 결과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산이를 데뷔시킬 마음이 없어요. 그냥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즐겁게 춤추고 노는 걸 바랐지, 아이돌처럼 힘든 일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
“…진심이십니까?”
말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송 팀장도 대표도 할 말을 잃었다. 데뷔 조만 되어도 연습생의 보호자들은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역시 이태주는 이태주였다. 다른 보호자와는 전혀 달랐다.
“태주 나 데뷔 조 할래.”
“산아….”
“재민이 형도 데뷔 조야. 같은 팀 할래.”
“산아. 데뷔 조 힘들어. 매일 열 몇 시간씩 트레이닝 받고, 숙소에서 단체 생활도 해야 하는걸.”
“그러면….”
태주의 단호한 거절에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송 팀장과 대표의 머릿속에 떠오를 때였다. 옆자리에서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먹던 태산이가 나섰다.
태산이는 재민이와 같이 연습했던 일도 그런 둘을 보고 사람들이 감탄하던 것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는 몇십 명이었지만, 더 많은 사람 앞에서 더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더 큰 환호를 얻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냥 춤추고 노래하는 게 재밌었다.
“그러면?”
“태주가 해결해 줘.”
“….”
“나 춤추는 거 재밌어. 데뷔 조 하고 싶어. 응?”
“…진짜로 하고 싶어?”
“응. 진짜로.”
태주는 당장에라도 머리를 부여잡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이스크림까지 내려놓고 그의 사랑스러운 호랑이가 품에 안겨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대하는 얼굴로 저를 보는 아이를 실망시킬 자신이 없었다.
‘그런 얼굴은 반칙이다, 호랑아!’
재밌다. 하고 싶다. 태주에게 언제나 통하는 태산이의 슈퍼 패스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