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114
“…그러니 증거를 찾는 게 여러분들이 해 주셔야 할 일입니다.”
리조트에서도 회의가 마무리 되고 있었다.
도미닉의 마지막 말에 좌중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갑작스러운데다 지나치게 스케일이 큰 일감이 던져지자 행정관들은 저마다 머리를 굴리느라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고 있었고, 노영주 역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팔짱을 끼고 앉아 간헐적으로 혀를 탁, 탁, 찰 뿐이었다.
달그락.
“시장님의 추측이 아귀가 맞는 듯 하니 우리는 이 가설을 참으로 두고 증거를 모으는 것이 옳을 듯 싶습니다.”
카림이 안경을 테이블 위에 올려다두며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정황이 모두 이 쪽을 가리키고 있으니…’
‘황자가 최근에 재건청장을 맡게 되었다고 들었으니 일을 꾸미기는 더 쉬웠을 것이다.’
‘천벌 받을 놈들! 겨우 돈 몇 푼 더 벌자고 영지민들의 안위는 생각도 하지 않다니.’
에버그린 시청의 요직에 앉아있는 행정관들은 대다수가 카림과 비슷한 자들이었다.
수도에서 차별과 핍박을 받으며 가진 능력이 우수함에도 기회조차 얻지 못한 평민 출신 인재들!
그들을 조롱하고 비웃던 주동자 격의 인물들이 수도 중앙 귀족 가문의 덜떨어진 놈들이지만 이런 짓까지 벌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저마다 테이블 아래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결국 그들에게 평민들이란 그저 서류 상의 숫자일 뿐이었네요.”
“익히 잘 알고 있던 것이 아닌가.”
몇몇은 허탈한 듯 자조하며 한숨 같은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장님.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앙 귀족들의 영지민들이 안쓰럽긴 해도 우리 에버그린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아마도 수도 서쪽 해안에 위치한 영지들이 타겟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테이블 위에 펼쳐진 대륙 지도를 가리키며 몇몇이 의문을 표시했다.
노영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미닉.”
“예, 노영주님.”
“설마 황제 폐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폐하의 편에 서서 해양 왕국을 막을 셈이더냐?”
굳은 표정의 노영주가 심란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요? 아뇨?”
하지만 도미닉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손사레를 치며 ‘내가 미쳤다고 그 불구덩이 속에 기어 들어가요?’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카림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왜 이렇게 내막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일까?
결국 이번 일도 그들만의 땅따먹기읠 일종인 셈인데 이방인이 끼어들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처음엔 에버그린이 타겟일까봐 조사를 한 건 맞아요. 하지만 다행히 우리와는 관계 없는 일 같아요. 그렇다고 구경만 할 수는 없죠.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알아버렸는데.”
도미닉이 입맛을 다시곤 다시 행정관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나는 오만한 북부놈들의 기둥 뿌리를 하나 뽑아먹을 생각인데, 어때? 협력해주겠어?”
“…!”
돈벌이에 전쟁을 이용하려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의 주머니를 털어먹는데 양심을 찾을 필요가 뭐가 있겠나.
도미닉은 적어도 그들이 얻게 될 이익보다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작정이었다.
“제대로만 하면 그대들도 혼인할 때 제법 한 밑천 가지고 장가들 수 있게 보너스 제대로 챙겨줄게.”
“자, 장가요?”
“응. 곧 사막에서 라비아 님의 친척 여인들이 온다더라고. 계승 서열이 먼 방계들이라고는 하나, 어엿한 사하르 가문의 여인들인데 아무나 수행원으로 붙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시의 행정관들을 추천했거든.”
“사막에서 올 여인들과 저희들은 혼인이 무슨 관계가…”
“아, 죄다 미혼이래. 모두 적령기의 여인들인데 하나같이 능력 있는 사내를 배필로 맞고 싶어 한다지? 적령기의 젊은 남녀가 한 달을 넘게 붙어 지낼 텐데 한 번 노력해 볼 만 하지 않겠어? 우리 행정관들이 사실 바빠서 그렇지 뭐 하나 빠지는 건 없잖아? 안 그래?”
이어진 도미닉의 이야기에 미혼 행정관들의 눈이 점점 더 커지며 마치 커피 원액을 때려 마신 사람들처럼 피곤함 따위는 모조리 사라지는 중이었다.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시장님!”
“첩자로 보내주십시오!”
걱정스러워하던 이들까지 눈이 돌았다.
‘…너네 되게 결혼하고 싶었구나…’
행정관들이 조금은 안쓰러워진 도미닉이었다.
“해양 왕국이 공격할 시기와 장소를 특정해야 해. 구체적일수록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이득은 늘어날 테니.”
“그런데 혹시 군수품을 제작하실 겁니까? 그럴 생각이시라면 계획을 바꾸심이.”
“맞습니다. 이미 물자 보급에 관해서도 10대 상단이 자기들끼리 해먹을 준비를 마쳤을 겁니다.”
“내가 한 말 잊었어?”
“네?”
“기둥 뿌리를 뽑아먹을 거라니까. 전면전도 아니고 국지전인데 군수품 그거 팔아먹어봐야 얼마나 번다고.”
도미닉이 씩 웃었다.
“내가 요새 카림한테 제국법을 배우잖아. 이걸 이렇게 써먹네.”
“제국법…”
카림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뭘 가르쳤더라, 뭘 가르쳤기에 제국법을 이용해 수도의 귀족들 뒤통수를 칠 수 있다고 저렇게 자신하는 걸까.
“제국의 귀족은 자신의 영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외세로부터 침략받았아 곤궁을 겪고 있는 타 영지를 구휼할 의무가 있다.”
답은 이안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귀족들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기술한 법안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귀족이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에 관한 항목이었다.
다만, 이 법안의 문제는 의무의 범위와 같은 구체적 지침을 마련해놓지 않아서 오롯이 귀족들 개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맹점을 가진 탓에 유명무실한 지침이기도 했다.
“기둥 뿌리를 뽑아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 법안은 네 재산을 한 몫 뚝 떼다가 북부의 돼지들의 주머니에다 넣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노영주가 지적했다.
“구휼의 방법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이에 대한 답은 이번에도 도미닉이 아닌 이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도미닉이 함박웃음을 짓는 것으로 보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하다.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
“네. 구휼이라는 것이 꼭 물자와 돈을 내어주어 불행한 일을 당한 영지를 도와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다른 구휼 방법이 있단 게냐?”
“도미닉 시장이 잘 하는 것 있지 않습니까?”
“음?”
이안이 회의실에 있는 자들을 하나씩 물끄러미 돌아보았다.
제일 먼저 카림을 비롯한 행정관들.
남부 마탑에서 지원을 나온 마법사들.
재능을 인정받아 마법사의 조수가 된 수도 출신의 운 좋은 평민들.
인어 이스티나와 그녀에게 에버그린을 소개시켜주었다던 거북이의 통역을 도와준 엘프까지.
“우리 모두 이방인이군요.”
카림이 눈치챈 듯 씩 웃으며 말했다.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유연한 행정관 몇몇도 깨달은 듯 했다.
“허허. 이 놈들. 늙은이를 놀리면 쓰나. 쉽게 말하라.”
노영주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짐작을 포기하고 도미닉을 바라보았다.
“구휼을 꼭 우리가 가서 먹이고 입혀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이쪽으로 데려와서 먹이고 입히는 것도 충분히 황제 폐하께서 즐거워하실 구휼일 것 같은데요.”
“사람…!”
“땅도 있고 돈도 있는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게 사람 아닙니까. 이참에 한 번 채워볼까 싶은데, 노영주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도미닉의 말에 노영주의 입이 찢어지려 했다.
“이 놈! 장한 놈! 당장 백작에게 통신을 넣어라. 남부의 싱클레어 백작가가 해양 왕국의 침략으로 굶주림에 고통받는 제국민들을 거둘 준비를 마쳤다는 서신과 준비를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제국법은 평민들의 이주를 막지 않았다.
원하는 곳에서 거주할 수 있는 자유를 준 것이다.
하지만 법이 그렇다 한들 힘과 능력이 없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살던 영지를 떠나기란 쉽지 않았다.
땅과 집, 가족이 모두 고향에 있는데 모두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간혹 돈벌이를 위해 외지로 떠나는 경우가 있긴 했어도 가족들이 단체로 이주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 단위로 수백, 수천의 사람이 이동을 하는 것은 오직 환란을 겪을 때 뿐이지.’
살고 있는 땅에 문제가 생겨 더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사라지면 평민들은 수레에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정처없이 길을 떠나곤 했다.
도미닉은 이를 노린 것이다.
“아무리 그런 법안이 있다한들 영주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인구는 곧 생산력이니.”
“그러니 영주들을 정신없게 해주어야지요. 영지민들이 짐을 싸서 도망가는 걸 신경도 못 쓸 정도로.”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행정관들이 시기와 장소만 특정해주면 괴롭힐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죠. 그러니… 뭐 해? 아직도 일하러 안 갔어? 결혼 안할 거야?”
“헉! 갑니다! 반드시 증거를 찾아내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장, 출장갑니다! 수도에서 뭔가 이상 기류가 없는 지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허가해주십시오, 시장님!”
“저는 서부 해안가 영지를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상인 신분패를 하나 내 주십시오! 꼭 원하시는 물증이든 증인이든 잡아오겠습니다1”
이안은 자신감 넘치는 도미닉과 헤까닥 돌아버린 행정관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다들 도미닉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구와 성비, 서부 영지에 있는 기술자들의 현황부터 먼저 챙겨 봐야겠군. 기초 훈련을 받은 병사 출신의 자경단이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항구 쪽에 새로운 마을이 생겨나고 있으니.”
남의 것에 침부터 바르고 보는 자신 역시 도미닉을 닮아가고 있단 생각은 채 하지 못한 채.
“저… 그런데 시장님. 사막에서 오신다는 레이디들은 언제쯤…”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행정관 하나가 질문을 했다.
“그동안 살도 좀 빼고 옷도 사입고 해야 되서미리 알려주시면 좋겠는데요… 하핫!”
막내 행정관의 말에 카림을 비롯한 몇몇 적령기를 놓친 이들이 무언가를 꺠달은 듯 했다.
‘이거 잘하면 닭 쫓던 개가 될 수도 있는 거네?’
‘젠장! 바로 의상실에 예약부터 해야겠다. 근데, 한 번도 맞춤옷 주문 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떡하지?’
‘피부관리 뭐 그런 것도 해야 하나? 퇴근길에 상점가에 들러 세안수부터 사야지!’
단체로 온다는 사막의 레이디들. 문제는 그 여인들도 자신들을 ‘단체로’ 보게 된다는 점이었다. 어떻게든 옆의 동료보다 그녀들의 눈길을 끌어야 했다.
어릴 때부터 수재니 영재니 소리를 들으며 수도의 아카데미에 입학했을만큼 머리 좋고 능력 있는 평민 출신의 행정관들이 새로운 난제를 만난 셈이었다.
‘그런데 여자들은 어떤 걸 좋아하지?’
막막함에 그들이 쳐다본 건,
“하노버 경! 저녁 식사 같이 하시지요! 제가 술 한 잔 사겠습니다!”
“어어! 저, 같이 가도 됩니까?”
“그럼 내일 점심은 저와 드시는 게…! 제가 아카데미로 가겠습니다, 기사님!”
에버그린 최고의 인기인을 꼽으라면 당연히 시장인 도미닉이겠지만 여인에게 인기가 많은 이로 질문을 바꿔보면 그 누구라도 고민없이 이안을 선택할 것이 자명했다.
상점가를 걷기만 해도 여인들의 편지와 선물을 한 바구니씩 받아오는 이안은 평생 공부와 일만 하던 행정관들로서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한 인물.
평소 그런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온 행정관들은 이안에게 조언을 얻고자 그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 모양새였다.
‘쯧쯧-. 그거 아니야.’
물론 도미닉은 혀를 끌끌 찼다.
괜히 이안을 따라 했다가 꼴값 한다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일 텐데.
아무리 봐도 전생의 공대 너드들을 보는 것 같아 이마를 짚는 도미닉이었다.
저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돼?